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7_4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는 테오도르의 이맛살 위로 자그마한 실금이 그어졌다.
‘이브가…… 아니야.’
비록 서너 살 무렵의 이보네를 본 적은 없지만, 그녀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이는 그녀를 복제한 것처럼 닮았지만, 고개를 기울일 때 깜빡이는 눈의 각도가 그녀와 미묘하게 달랐다.
또한 얼굴에 난 솜털의 수가 그녀와 달랐으며, 결정적으로 숨을 쉴 때 코와 입가의 움직임이 그녀와 달랐다.
‘그럼 이 아이는 누구지.’
테오도르가 두 눈을 가늘게 좁혀 뜨며 아이를 응시했다.
그녀에 대한 것이라면 세상 누구보다 자신 있는 저마저 깜빡 헷갈릴 만큼, 이보네와 닮은 여자아이였다.
“아조씨?”
‘아, 설마……!’
순간 테오도르는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미래로 온 건가?”
내내 말이 없던 그의 입술 사이로 듣기 좋은 굵고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두 눈이 땡그래진 오딜리아가 박수를 치며 신기해했다.
“어? 아조씨 말할 줄 알아?”
“그녀를 되찾는 데 성공한 내가, 그녀와 나의 아이를…….”
“아이참, 무슨 말 하는 고야?”
영 알 수 없는 소리만 해 대는 테오도르로 인해 오딜리아는 불쑥 심통이 났다.
오딜리아는 양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테오도르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테오도르는 찬찬히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두근, 두근-!
아이를 샅샅이 훑어보는 그의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어 대기 시작했다.
물론 테오도르와 여자아이는 외관상 닮은 부분이 전혀 없었다.
속눈썹 한 올만큼도 닮지 않았다.
그렇지만 테오도르는 언제나 생각했다.
그녀가 만약 아이를 낳게 된다면, 분명 태어날 아기는 그녀를 닮았을 거라고.
그리고 그녀의 아기의 아버지가 될 남자는 오직 저뿐이라고.
“네 어머니는 어디 있지?”
테오도르는 대뜸 물었다.
“우리 어몬니 왜?”
“내가 네 아버지니까.”
테오도르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있는 테오도르의 얼굴은 무표정한 얼굴보다 훨씬 더 잘생겼다.
오딜리아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한참 뒤에 물었다.
“아조씨 다람찌 욘싸(용사) 젤리꼬 알아?”
“……?”
“젤리꼬 모루네(모르네). 아조씨 리아 아빠 아냐.”
오딜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러자 테오도르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아니야?”
“젤리꼬 모루눈(모르는) 아조씨 리아 아빠 아냐.”
“그럼 네 아빠는 누군데?”
“우움…….”
오딜리아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 뜸을 들이더니, 이내 천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리아 아빠는 데릭이야!”
“데릭……?”
순간 테오도르의 눈동자 위로 번뜩이는 광채가 서렸다.
“데릭이 젤리꼬 초대짱 줬어. 리아랑 에르랑 어몬니랑 로라랑 젤리꼬 봤어.”
“데릭, 데릭이라고…….”
“웅웅, 데릭! 구리고 데릭은 리아한테 뚜래고 이녕(드래곤 인형) 줬어.”
“데릭…….”
“구론데 리아는 이제 뚜래고 안 할 꼬야. 다람찌 할 꼬야.”
“데릭…… 데릭이라…….”
테오도르는 그 이름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듯이 몇 번이나 곱씹으며 읊조렸다.
“구리고 젤리꼬는 다람찌야. 셰샤(세상)에서 쩰루 쎈 다람찌! 젤리꼬가 뚜래고 이겨.”
“데릭…….”
“구리고 젤리꼬는 개물(괴물)도…….”
“그래서.”
한참 동안 데릭의 이름만 중얼거리던 테오도르가 오딜리아의 말을 끊으며 싱긋 웃었다.
“그럼 네 어머니는 이름이 뭔데?”
“웅?”
한참 동안 제리코에 대해 떠들던 오딜리아가 두 눈을 토끼처럼 땡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테오도르를 따라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안 대. 어몬니가 모루눈 사람한테 알려 주지 말랬어.”
“괜찮아. 난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테오도르가 천사처럼 선량한 얼굴로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만일 린든이나 아르민이 보았더라면 우리 폐하가 드디어 미치신 거라고 절망스러워했을, 그런 얼굴이었다.
“나뿐 사람 아냐?”
“응.”
오딜리아는 상냥하게 웃고 있는 테오도르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뿐 사람 아닌데 젤리꼬 왜 몬라(몰라)?”
“……?”
“나뿐 사람 가튼데……. 젤리꼬도 모루고…….”
테오도르는 대체 그놈의 ‘젤리꼬’가 무엇인지 몰라 입을 다물며 눈가를 찡그렸다.
순식간에 인상이 사나워진 테오도르를 향해 오딜리아가 두 눈을 가늘게 좁히며 몰아붙였다.
“아조씨 악당 아냐? 이고 바, 머리카랑(머리카락)도 새까매. 젤리꼬 개로핀(괴롭힌) 개물도 까매써.”
테오도르의 검은 머리카락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오딜리아가 사는 아르벨라에서는 제국에서처럼 검은색이 불길한 색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몹시 희귀한 색이었다.
‘리아두 사실 까만 머린데…….’
오딜리아는 자신의 은색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돌돌 감으며 생각했다.
‘리아는 까만 머리 숨겨야 하는데, 아조씨는 왜 안 숨기지.’
오딜리아는 자신의 머리 색이 원래 검은색이란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와 벤야민 삼촌이 이야기하는 것을 몰래 엿들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리아의 검은 머리를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안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을 엿들은 오딜리아는 무척 속상하고, 또 두려웠다.
‘에르는 어몬니처럼 빤짝빤짝한데 리아만 까매.’
그런데 눈앞의 이 낯선 아저씨는 검은 머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오딜리아는 그 사실이 무척 신기하게 여겨졌다.
“아조씨 머리카랑 만져 봐도 돼?”
“방금은 괴물 같다며.”
오딜리아를 회유하는 데 실패한 테오도르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한 번만, 웅?”
“괴물의 머리는 만져서 뭐 하게.”
“아냐, 아조씨 개물 아냐.”
오딜리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대답했으나, 테오도르는 무심히 아이를 밀어냈다.
“저리 가. 난 괴물이니까.”
본래 그는 아이들에게 상냥한 성격이 아니었다.
잠시나마 오딜리아에게 상냥하게 굴었던 것은 혹 아이가 이브와 관련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데릭이라고 했다.
나의 이브가 이름부터 구린 작자와 연관이 있을 리 없으니, 저 아이는 분명 이브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아이일 것이다.
“아조씨? 아조씨, 화나써?”
오딜리아는 싸늘한 그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으며 물었다.
이에 테오도르가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찮게 굴면 잡아먹을 거야.”
그러자 오딜리아의 눈이 땡그래졌다.
테오도르는 이번에야말로 이보네를 닮은 저 귀찮은 아이가 물러날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아이는 그의 예상을 깨뜨리며 두 팔을 붕붕 내저었다.
“아조씨 개물 아냐! 아조씨 머리카랑 밤하눌처럼 에뻐!”
“당장 꺼…… 뭐?”
아이에게 나쁜 말을 내뱉으려던 그는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끔찍하지 않아요.]오래전, 제가 사랑했던 작은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생각난 탓이다.
[밤하늘처럼 예쁜 머리 색인걸요.]오딜리아는 멍하니 굳어 버린 테오도르의 머리카락을 쭉쭉 잡아당겼다.
“아조씨 머리카랑 에뻐. 밤하눌이야.”
“…….”
“구론데 요기 어디야?”
“…….”
“리아는 에르랑 어몬니 기다리고 이썬는데……. 아조씨 또 말 몬태?”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 오딜리아의 모습에, 테오도르는 가슴이 이유 없이 울컥거렸다.
“……너.”
테오도르가 목이 멘 소리로 오딜리아를 부를 때였다.
“어어? 아조씨 리아 몸 이상해.”
오딜리아의 몸이 투명해져 가고 있었다.
오딜리아는 두 눈을 끔뻑이며 차츰 희미해져 가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잠깐!”
당황한 테오도르가 아이를 붙잡으려고 팔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아이의 몸을 그대로 투과했다.
이윽고 오딜리아가 사라지며, 동시에 테오도르의 몸도 거울 밖으로 튕겨 나왔다.
“헉……!”
테오도르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있는 곳은 오늘 아침에 점령한 칼리고르 왕국의 궁전이었고, 그가 앉아 있는 곳은 칼리고르 국왕의 왕좌였다.
‘방금 그건…… 뭐지?’
테오도르는 조금 전 겪은 기이한 현상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브가 너무 그리워서 꿈이라도 꾼 건가?’
그가 생각을 더듬을 때였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마침 문을 열고 들어온 린든이 그를 발견하고는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무슨 일이 있었지?”
“갑자기 한순간 사라지셨습니다. 대체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
“큰일 났습니다. 칼리고르 사람들이 폐하를 정말로 고대 어둠의 현신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린든이 그가 없던 사이의 일들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았으나, 테오도르는 그것을 흘려들었다.
자신이 조금 전 겪은 것을 이해할 수가 없어 머리가 아팠다.
그러다 테오도르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거울을 발견했다.
허리를 숙여 그것을 줍자, 검은 유리판에는 그의 얼굴만이 비칠 뿐이었다. 마치 평범한 거울처럼.
“린든.”
한참 거울을 노려보던 테오도르가 나직한 목소리로 린든을 불렀다.
“젤리꼬에 대해 조사해 와라.”
“네?”
“젤리꼬 말이다.”
“……?”
어리둥절해하는 린든을 향해 테오도르가 험악한 얼굴로 물었다.
“다람쥐 용사 젤리꼬를 모르나?”
“리아 오디 가찌?”
에르빈은 내 품에서 쏘옥 빠져나와 방 안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에르빈이 이불 안과 침대 밑을 살피던 중, 벽장문이 끼이익 열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오딜리아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어? 도라완네(돌아왔네).”
“리아!”
그 소리에 에르빈이 벽장 쪽으로 오도도 달려가 오딜리아를 포옥 끌어안았다.
“왜 요기 숨어써?”
“어몬니다!”
나를 발견한 오딜리아가 활짝 웃으며 내게 뛰어왔다.
“리아,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니?”
“숨바꼭찌? 구게 모에요?”
어려운 낱말에 오딜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에르빈이 의젓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나 숨바꼭찌 알아. 숨는 거야.”
“에르는 어떠케 아라?”
“동화책에서 봤어.”
“우웅.”
오딜리아는 에르빈을 향해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두 팔을 붕붕 흔들며 이야기했다.
“어몬니, 리아가 옴총(엄청) 잘샌긴 아조씨 바써요.”
“잘생긴 아저씨?”
“녜, 잘샌긴 아조씨 조기 안에 이써요.”
오딜리아가 방금 전 나온 벽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벽장은 작은 아이의 몸이 겨우 들어갈 만큼 작았다.
아무래도 오딜리아가 상상 속에서 무언가를 보았나 보다. 아이들은 가끔 이럴 때가 있었다.
“지쨔(진짜) 잘샌겨써요. 구론데 아조씨는 젤리꼬를 몬라요. 구래서 리아가 안녀(알려) 주러고…….”
“리아, 이거 바 바. 창문에서 나문닙(나뭇잎) 주워써.”
옆에서 에르빈이 오딜리아의 관심을 돌리려고 나뭇잎을 흔들었다.
그러나 오딜리아는 ‘잘생긴 아저씨’에 대해 설명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아조씨 머리카랑이…….”
“리아, 에르 머리카랑 바 바. 반짝반짝해.”
“아이참, 조리 가, 에르. 리아랑 어몬니랑 대화 중이쟈나.”
“시러. 에르도 리아랑 놀 꺼야.”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조막만 한 손으로 서로를 붙잡고 밀치며 툭탁거리기 시작했다.
호수 저택에서도 늘 보아 온 일상적인 모습이라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어몬니한테 잘샌긴 아조씨 이야기해야 해. 방해하찌 마!”
오딜리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에르빈에게 쏘아붙였다.
잠자코 지켜보던 나는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당부했다.
“리아, 남자를 얼굴만 보고 판단하면 안 돼.”
“우웅? 구로치만 그 아조씨는 지쨔 잘샌견는데……. 천사 가타써요.”
“잘생긴 남자일수록 속은 쓰레기일 수 있단다.”
“쑤레기? 지지?”
“그래, 지지.”
“우웅, 잘샌긴 아조씨는 지지구나.”
오딜리아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렇지만 너무 못생긴 남자도 안 돼.”
“데릭이나 베냐민 삼쫀처럼요?”
“그래, 데릭이나 벤야민 같은…….”
무심결에 맞장구를 치던 나는 멈칫하며 말끝을 흐렸다.
두 사람 모두 못생겼다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벤야민은 말할 것도 없고, 데릭 또한 아르벨라 영지 내에서 잘생긴 얼굴로 인기가 좋았으니까.
“데릭이나 벤야민 정도면 못생기지 않았지.”
“하찌만 밀까루 반죽 빠은 거초롬 생견눈데요?”
밀가루 반죽을 빻은 것처럼 생겼다니!
그것은 꼭 테오도르나 쓸 법한 나쁜 말이었다.
언제나 아이들이 테오도르의 인성을 닮지 않도록 노심초사 교육해 왔던 나는 화들짝 놀라 외쳤다.
“세상에, 리아! 그런 나쁜 말은 어디서 배운 거지?”
“이고 나쁜 말예요?”
나의 외침에 놀란 리아가 두 눈을 끔뻑이더니 이내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리아 나쁜 말 쓰는 나쁜 아이야…….”
울적하게 중얼거리는 리아의 모습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리아! 리아는 나쁘지 않아! 나쁜 건 데릭과 벤야민이지. 밀가루 반죽처럼 생겨서는.”
나는 두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속으로 감추어야 했다.
본래라면 잘못된 일에는 따끔하게 혼을 냈겠지만, 아이가 마물과 마주치고 충격을 받았다가 회복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헤헤, 그러쵸?”
그제야 리아가 배시시 웃으며 다시 씩씩해졌다.
그나저나 리아의 심미안이 조금 까다로운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데릭과 벤야민이 별로면 우리 리아에게 잘생긴 사람은 누구야?”
“우움…….”
고민하던 오딜리아가 옆을 돌아보더니, 에르빈을 꼬옥 끌어안으며 외쳤다.
“에르! 에르가 쩰루 잘샌겨써! 에르가 쩰루 조아!”
“어어……?”
그러자 에르빈의 얼굴이 펑 붉어졌다.
“에르가 채고(최고)야! 그리고 어제 개물(괴물) 나타났을 때도 에르가 리아 지켜 줬어!”
“그거 에르가 한 거 아니고 다랑지 욘짜(용사)가 한 건데…….”
“아니이. 그 전에 에르가 개물한테 화내 줬잖아. 에르는 셰샤(세상)에서 쩰루 머시꼬 잘샌기고, 또 쩰루 조아!”
나는 조금 전보다 더 심각해진 표정으로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똑 닮은 두 얼굴을 한 두 아이가 사이좋게 붙어 있는 게 참 보기 좋지만…….
‘리아에게 나르시시즘이 있는 건 아닐까.’
그 잘생긴 벤야민과 데릭도 밀가루를 빻은 것처럼 생겼다고 하더니, 잘생겼다고 지목한 게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에르빈이라니.
‘눈이 너무 낮은 것보단 낫겠지만, 너무 높은 것도 걱정되는걸.’
그렇게 내가 리아의 높은 심미안에 걱정스러워할 때였다.
“어? 리아, 머리카랑 왜 까매?”
“우웅?”
에르빈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내 눈이 조금 전 리아가 나쁜 말을 했을 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졌다.
오딜리아의 머리카락 끄트머리가 검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리아!”
나는 다급히 리아의 어깨를 붙잡으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구, 구게……”
나의 물음에 리아는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이내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리아도 몬라요. 잘몬태써요, 어몬니. 리아, 리아 머리카랑이…….”
뒤늦게 자신의 머리카락이 검어진 것을 알아챈 리아는 잔뜩 겁먹어 말을 더듬었다.
“널 혼내는 게 아니야, 리아.”
나는 울먹이는 리아를 안아 주며 등을 토닥였다.
“구, 구치만…….”
“리아 울디 마. 에르가 어모니 혼내 주까?”
옆에서 에르빈도 리아를 함께 달랬다.
그 내용이 조금 이상하긴 한데…….
어쨌든 나와 에르빈이 함께 달래자 오딜리아는 금세 울음을 그쳤다.
그러고는 에르빈에게 말했다.
“어몬니를 혼내다니. 에르는 나쁜 아이야. 조리 가.”
“우에엥…….”
리아가 울음을 그치고 나니, 이번에는 에르가 훌쩍이기 시작했다.
역시 쌍둥이를 키우는 건 참 고되다.
* * *
호수 저택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
리아의 머리카락은 아기 손가락 한 뼘만큼 짧아졌다.
검게 물든 끝부분을 잘라 낸 탓이다.
그래도 다시 깨끗한 은발로 돌아와, 리아는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이찌 에르, 다람찌 용짜 말야.”
리아가 에르의 소매를 꾹꾹 잡아당기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에르가 짐짓 진중한 표정으로 리아를 돌아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다랑찌 아냐. 다랑지야.”
“웅웅, 구로니까 다람찌!”
“다랑찌 아니구 다! 랑! 지!”
“다! 람! 찌!”
리아는 대체 둘이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에르를 보았고, 에르는 한숨을 포옥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아이참, 리아는 다랑지를 자꼬 다랑찌라고 불러.”
“다람찌라고 해짜나!”
결국 리아가 벌컥 성질을 냈다.
“구니까 다랑찌가 아니라 다랑지라니까!”
에르 또한 지지 않고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모습에 옆에서 로라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도련님과 아가씨는 참 씩씩하시네요. 어제 그런 일이 있어서 놀랐을 법도 한데.”
“그러게 말이야. 다행이지.”
아이들이 겁을 먹고 움츠러드는 것보단 조금 시끄러운 게 훨씬 나았다.
한참 리아와 툭탁거리던 에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왔다.
“어모니, 에르도 개물 때려잡꼬 시포요(싶어요).”
그러고는 내 무릎에 고개를 파묻으며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
“에르가 개물도 때려잡꼬, 리아랑 어모니도 지킬 고야. 로라도 지킬 고야. 에르도 이제 어여탄(어엿한) 세 살이란 말야.”
“어머, 에르가 리아랑 어머니를 지켜 주는 거야?”
에르의 발상이 귀여워 아이의 은색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빙그레 웃었다.
그러자 에르가 벌떡 일어나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네! 에르가 지켜 드릴 꺼에요! 에르도 어모니한테 검 붕붕 배울래요!”
“흐음…….”
나는 에르의 얼굴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본래 체르니시아는 검기의 유무와 별개로 태어나면서부터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검을 잡고 휘둘렀다.
비록 나의 체르니시아는 더 이상 세상에 없지만, 내가 체르니시아로부터 배웠던 모든 것들을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가르쳐 주고 싶었다.
‘하지만 강요하지는 않을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에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에르. 저택에 돌아가면 어머니랑 공부를 시작하자.”
“우아! 에르 개물 때려잡는 거 배워요?”
우리의 대화를 들은 리아가 손뼉을 치며 신나 했다.
“리아도! 리아도 배우고 시포요!”
“리아도 에르와 함께 검을 배울래?”
“아아니, 리아는 검 말구 하눌 나는 거랑 불 뿜는 거 배우고 씨포요!”
“어……?”
순간 나는 당황해 말을 잊고 말았다.
옆에서 로라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리아 구냥 다람찌 아냐! 하늘 날고 불 뿜는 다람찌야! 리아 특펴란(특별한) 다람찌야!”
하지만 그건 이미 다람쥐가 아닌 것 같은데…….
“우아! 리아 머시써!”
에르는 자신이 검을 배울 수 있게 되었을 때보다 더욱 신나 했다.
“구롬 에르가 개물 때려잡으면 리아가 불 뿜어서 통구이로 만두러 버리자.”
“웅웅! 리아가 불 뿜어서 나뿐 개물들 통구이 만둘 꼬야!”
에르를 돌아보며 씩씩하게 외친 리아가 나를 향해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었다.
“어몬니, 리아도 갈쳐(가르쳐) 주실 꺼지요? 하눌 나는 거랑 불 뿜는 거요!”
“……그래, 리아.”
나는 차마 아이들의 동심을 깨뜨릴 수 없어서 떨떠름히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그걸 할 수 있는 선생님을 찾아볼게.”
“어몬니가 안 갈쳐 주세요?”
“으응……. 어머니는 불을 못 뿜어…….”
“……!”
“……!”
에르와 리아는 놀라 두 눈을 토끼처럼 떴다.
“하늘을 나는 것도 못해.”
“……!”
“……!”
쐐기를 박듯 말하자, 이번에는 아이들의 입이 턱 벌어졌다.
“말도 안 대. 어모니가 몬 타는(못 하는) 게 이써…….”
충격에 휩싸인 에르빈의 목소리가 마차 안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