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8_1
07. 체르니시아의 생존자
호수 저택으로 돌아온 직후로 기분이 몹시 저조해졌다.
테오도르를 피해 도망치느라 얼결에 프레데릭 왕자를 저택까지 데리고 왔으나, 약속한 삼십억 골드를 받아 낼 방도가 없어진 것이다.
‘마도사는 그렇게 되었고…….’
나는 잠시간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굴던 남자를 떠올리다가, 이내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저었다.
차마 그 남자까지 데리고 도망치지는 못했다.
평범한 상대였다면 모를까, 테오도르를 앞에 두고 그런 한가한 시도를 했다간 나도 분명 같은 꼴이 되어 나뒹굴었을 것이다.
[안녕, 쥐새끼야.]여전히 인성 더럽고 말버릇 나쁜 건 똑같았다.
‘잡으면 죽여 버릴 기세였지.’
나를 공격하던 그 으스스한 눈빛을 떠올리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으으, 생각하지 말자…….’
나는 테오도르에 대한 생각을 잠시 밀어 넣고, 나의 삼십억 골드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프레데릭 또한 자기네 사람들과 연락할 방도를 모른다고 했다.
‘태평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나는 일단 삼십억 골드를 받아 낼 때까지 그를 호수 저택에 붙잡아 두기로 했다.
일종의 담보인 셈이다.
테오도르와 맞닥뜨리기까지 하며 벌인 일이었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화가 날 것 같았다.
‘그 마도사, 아르벨라 영주의 소개로 날 찾았다고 했었지.’
영주성에는 편지를 보내 둔 참이었다.
혹시 몰라 자세한 내용을 적을 수 없었기에, 일단 답장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래도 오늘이면 테오도르가 떠나니까.’
그나마 그가 곧 떠날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안도하게 해 주었다.
칼리고르 점령을 마지막으로, 알브레히트 제국군이 오늘 서쪽 대륙을 떠날 것이라 들었다.
지난밤 무리하게 왕자를 구출한 것도 그들이 왕자를 데리고 떠나기 전에 일을 진행하고자 하였던 탓이다.
‘제국군이 떠나가고 나면 안전해지겠지.”
그런데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묘하게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왜지.’
불쑥 드는 의문을 무시하려던 때였다.
“어모니, 연습 다 했어요.”
에르빈이 나를 향해 쪼르르 다가왔다.
에르빈의 옆구리에는 아기 팔뚝처럼 자그마한 청동검이 들려 있었다.
네다섯 살쯤 되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속이 텅 빈 가짜 검이었는데, 에르빈은 아직 세 살이었음에도 무리 없이 검을 들고 휘둘렀다.
“그래, 확인해 볼까?”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일어났다.
그러자 에르빈이 내 앞에서 양손으로 검을 붙잡고서 붕붕 휘둘렀다.
“얍!”
부웅-
“얍얍!”
붕- 붕-
“야아압!”
부우웅-
다소 엉성하지만 알려 준 대로 자세를 잡고 검을 휘두르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심장에 해로울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굉장해, 에르. 열심히 연습했구나. 기특해라.”
“헤헤.”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자, 에르빈이 두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접으며 웃었다.
“어몬니! 리아도 연씁 다 했어요!”
에르빈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오딜리아가 두 팔을 파닥거리고 있었다.
“리아도 기트캐(기특해) 해 줘요.”
오딜리아는 유아용 가짜 검을 붕붕 휘두르는 에르빈의 옆에서 하늘을 나는 법과 불 뿜는 법을 연습했다. 아주 열심히…….
“보세요. 리아 이러캐(이렇게) 파닥파닥하면…….”
오딜리아가 두 팔을 마치 드래곤의 날개처럼 파닥거리며 깡충 뛰었다.
그러자 오딜리아의 발끝이 아이들의 손 한 뼘만큼 뛰어올랐다가 다시 지면으로 내려앉았다.
“리아, 이만큼 날았어.”
옆에서 에르빈이 손가락을 쫘악 뻗어 한 뼘만큼을 표시하며 말했다.
“웅웅! 리아 날았어!”
그러자 신이 난 오딜리아가 두 팔을 활짝 펴며 방방 뛰었다.
“더 연습하면 이만큼, 요만큼, 요마아아아안큼 나를 거예요.”
그 앙증맞은 모습에 나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 우리 리아도 참 기특하네.”
머리카락을 슬슬 쓰다듬어 주자, 오딜리아가 배시시 웃으며 두 눈을 접었다.
“헤헤.”
저렇게 웃을 때마다 초승달 모양으로 접히는 눈매를 보면 두 아이가 쌍둥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그런데 리아, 불 뿜는 연습은 잘되고 있니?”
오딜리아가 드래곤 브레스를 뿜겠다며 ‘뿌우우-’ 하고 외치던 게 생각이 나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오딜리아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리아, 불 뿌모야는데(뿜어야 하는데) 잘 안 돼요.”
“당연하지, 리아. 어머니는 아직 한 번도 불을 뿜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걸.”
키득키득 웃으며 비죽 튀어나온 오딜리아의 통통한 입술을 꾸욱 눌러 주었다.
그러자 오딜리아는 돌연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씩씩하게 외쳤다.
“구럼 리아가 채초(최초)의 사람 될 거예요!”
“채초? 채초가 뭐야?”
오딜리아의 입에서 나온 어려운 낱말에 옆에서 에르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에르, 채초 몬라(몰라)?”
“몬라.”
“것도 모루구 애기네.(그것도 모르고 애기네.)”
오딜리아가 턱 끝을 거만하게 젖히며 설명했다.
“채초는…… 다람찌 용싸 같은 거야. 젤리꼬가 쩰루(제일) 먼저 뚜래고 죽였어.”
“우웅?”
“구래서 젤리꼬 채초의 용싸야.”
“구럼 리아가 젤리꼬야?”
“웅! 구런 고야!”
에르빈에게 완벽한 설명을 마친 오딜리아가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초롱초롱한 눈동자는 ‘기트캐 또 해 조요.’ 하는 눈이었다.
“우와! 우리 리아, 정말 기특해. 그렇게 어려운 말도 알고.”
나는 아이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아이의 바람대로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리아가 ‘꺄아-’ 하며 두 눈을 접었다.
‘아, 행복해.’
사랑스럽게 웃는 에르빈과 오딜리아를 보자, 이루 말할 수 없는 충만한 행복감이 물씬 차올랐다.
역시 나는 이 평화가 너무나 소중했다.
이 평화를 지켜야만 했다.
“주인님, 영주성에서 편지가 왔어요!”
이때, 로라가 나를 찾는 소리가 건물 안쪽에서 들려왔다.
내가 줄곧 기다리던 소식이기도 했다.
이보네가 잠시 자리를 뜨고 에르빈과 오딜리아, 둘만 남았다.
그러나 두 아이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도 울지 않았다.
태어나면서부터 노닐었던 호수 저택의 정원은 두 아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놀이 공간이었다.
에르빈은 씩씩하게 다시 검술 연습을 했다.
그리고 오딜리아 또한 씩씩하게 불 뿜는 연습을 했다.
“아이참, 왜 잘 안 되지.”
아무리 ‘뿌우우-’ 하고 불 뿜는 시늉을 해 보아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딜리아가 포기하지 않고 연습을 이어 가던 때였다.
“어어?”
순간 오딜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난 자그마한 불꽃이 들고 있던 나뭇잎을 태우다가 금세 사그라들었다.
“에르! 에르!”
오딜리아는 신기해하며 반쯤 탄 나뭇잎을 들고서 에르빈에게 뛰어갔다.
“이거 봐, 에르! 리아가 성공해써!”
“어? 이고 리아가 한 거야?”
“웅웅! 봐 봐. 리아 불 뿜는 거 보여 주께.”
오딜리아는 에르빈에게 보여 주기 위해 다시 한번 불 뿜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조금 전의 일은 마치 우연이었던 듯, 아무리 낑낑거려 보아도 아주 작은 불꽃 하나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이상하네. 좀 전에 요기서 뚜래고 부레쓰(드래곤 브레스) 뿌우우 핸눈데…….”
오딜리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리아 불 뿜는 거 몬타네(못하네).”
“아냐! 좀 전에 리아가 지쨔루 뿜었어!”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오딜리아는 울상이 되었다.
“지쨘데(진짠데)…….”
오딜리아는 침울해진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러나 에르빈은 그녀가 정말로 불을 뿜었는지보다는 다른 것에 신경이 쓰였다.
“구론데 리아, 요기 다쳤어?”
오딜리아의 앞에 쭈그려 앉은 에르빈이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그녀의 무릎을 가리키며 물었다.
오딜리아의 무릎에는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조금 전 하늘을 날겠다고 껑충껑충 뛰다가 다친 곳이었다.
“웅. 하눌 나는 고 연습하다가.”
“리아, 아푸겠다.”
에르빈이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에르가 호 해 주까?”
“호?”
“호 하몬 나아. 로라가 안녀 조써.(호 하면 나아. 로라가 알려 줬어.)”
오딜리아는 두 눈을 끔뻑이며 에르빈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승낙의 뜻으로 알아들은 에르빈이 자그마한 입술을 모아 오딜리아의 상처 위로 ‘호-’ 하고 바람을 불었다.
간질간질한 숨결이 오딜리아의 무릎을 스치는가 싶더니, 이내 붉은 상처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
그것을 본 에르빈이 토끼처럼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벌떡 들었다.
“리아! 봐써?”
“우아! 에르가 호 해 줘서 리아 다 나았어!”
오딜리아는 꺄아- 하며 에르빈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에르 채고(최고)야! 사랑해, 에르!”
그러고는 에르빈의 뺨에 쪽- 하고 뽀뽀를 해 주었다.
조금 전까지 놀라 눈만 끔뻑이던 에르빈은 금세 배시시 웃으며 입꼬리를 히죽히죽 끌어당겼다.
“헤헤.”
헤실헤실 웃는 에르빈에게 오딜리아가 정원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에르! 우리 인제 조기 가서 놀자!”
“모 하구?”
“다람찌 용싸 놀이 하쟈! 리아가 젤리꼬 할래!”
오딜리아는 신이 나 폴짝폴짝 뛰어갔다.
“에르도 젤리꼬 하고 시픈데!”
그 뒤를 쫓던 에르빈이 무언가 생각난 듯 멈추었다.
“아 마따, 다랑지 용싸 하려면 검 있어야 해.”
에르빈은 두고 온 유아용 검을 챙기러 돌아갔다.
* * *
한편, 에르빈이 돌아간 것을 모르는 오딜리아는 혼자서 정원 안쪽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문득 아이를 둘러싼 공기가 기이하게 일렁거렸다.
솨아아-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바닥을 내려다보며 폴짝폴짝 뛰던 오딜리아는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았다.
“웅? 나무?”
커다란 나무 하나가 오딜리아의 앞에 있었다.
톡, 데구루루-
나무 아래에 작은 도토리들이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도또리!”
그것을 발견한 순간 오딜리아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데릭에게 두런는데, 도또리 1000개 모으면 다랑지 댈 수 이때.] [안 대. 도또리 주우려면 가을까지 기다료야 해.]“에르! 에르! 요기 도또리이……!”
오딜리아가 흥분한 목소리로 에르빈을 부르며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에르빈이 보이지 않았다.
오딜리아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시 발끝에 차이는 도토리를 내려다봤다.
“이상하네. 에르가 도또리 주우려면 갈(가을)까지 기다려야 한다구 했는데……”
어쩌면 에르빈이 잘못 안 건지도 모른다.
“도또리 주워 가면 에르가 조아해.”
오딜리아는 떨어진 도토리를 열심히 주웠다.
에르빈에게 가져다줄 생각이었다.
이걸 보고 좋아할 에르빈을 생각하자, 오딜리아의 기분도 너무너무 좋아졌다.
이제 보니 여기도, 저기도 도토리나무 천지였다.
저택의 정원에 이렇게나 많은 도토리나무가 있었다니, 왜 이제까지 몰랐을까.
신이 나서 도토리를 줍던 오딜리아는 저쪽 나무 아래에 잠들어 있는 테오도르를 발견했다.
“잘샌긴 아조씨?”
나무 기둥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던 테오도르가 슬그머니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아조씨, 안넝.”
오딜리아가 테오도르의 눈앞으로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순간 테오도르의 얼굴 위로 당혹감이 떠올랐다.
‘뭐지?’
그는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테오도르는 자신이 또다시 시공을 건너온 것을 깨달았다.
낯선 장소뿐만 아니라, 살갗에 스치는 쌀쌀한 공기의 흐름마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밤새 감옥에서 그 마도사 놈을 심문하느라 제대로 자지 못했다.
조금 피곤하다고 생각하며 책상 앞에 앉아 잠시 눈을 붙였는데, 그사이에 이곳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아조씨 얼굴 왜 구래?”
오딜리아가 테오도르의 뺨에 난 상처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테오도르는 오딜리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자신의 뺨을 가만히 쓸었다.
이브가 제게 준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검기가 깃든 상처를 없앨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력뿐이었으나, 테오도르는 그녀가 남겨 준 흔적을 없앨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고 호오 하면 엄써져(없어져). 리아가 해 주까?”
“일부러 남겨 둔 거다.”
“일보로? 이상한 아조씨네.”
오딜리아는 고개를 으쓱했다.
그러더니 자신이 주운 것을 테오도르에게 자랑하듯 보여 주었다.
“이거 바 바. 도또리야.”
“……?”
“도또리 천 개 모으면 다람찌 댈 수 이써.”
“다람쥐가 되고 싶은 건가?”
“웅! 리아는 불도 뿜꼬 하눌도 나는 다람찌야.”
주먹을 불끈 쥐며 외치는 오딜리아가 귀여워, 테오도르는 저도 모르게 짧은 웃음을 짓고 말았다.
“제리코는 불을 뿜지 않아.”
“어어? 아조씨 젤리꼬 이제 아라?”
“하늘을 날지도 못하지.”
“마쟈!”
테오도르가 제리코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자, 오딜리아가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론데 이 도또리는 리아 꺼 아냐. 에르 줄 거야.”
“에르? 그건 누구지?”
낯선 이름에 테오도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에르는 리아 가족이야. 리아가 셰샤(세상)에서 쩰루 죠아하는 사람.”
“가족이라고?”
테오도르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되묻는 찰나, 오딜리아는 다시 뽈뽈거리며 도토리를 줍기 시작했다.
테오도르는 그런 오딜리아를 유심히 관찰했다.
‘정말, 닮았군.’
그는 힐긋 눈동자를 굴려 오딜리아가 주우려는 도토리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치사하게도 오딜리아가 막 주우려는 도토리를 먼저 주워 버렸다.
고개를 들며 두 눈을 끔뻑이는 오딜리아에게, 테오도르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물었다.
“필요해?”
“도또리, 리아가 주우려던 거야.”
“그럼 네 가족에 대해 이야기해 봐.”
테오도르는 도토리를 두고 거래를 제안했다.
“…….”
오딜리아는 잠시간 말없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자그맣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몬니 말씀 맞아. 잘샌긴 아조씨는 지지야.”
“……?”
“어몬니가 구래써. 잘샌긴 아조씨 지지라고.”
“그게 무슨 소리지?”
테오도르를 향한 오딜리아의 눈매가 뾰족해졌다.
“저리 가, 지지.”
오딜리아는 테오도르에게 손을 휘휘 내저으며 몸을 홱 돌렸다.
그러고는 휙 가 버렸다.
“잠…….”
뒤쪽에서 테오도르가 무언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딜리아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으나, 조금 전까지 그 자리에 있던 테오도르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고지?”
오딜리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해했다.
그러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아차리고 비명을 질렀다.
“도또리!”
분명 조금 전까지 도토리가 아주 많이 있었는데, 짧은 사이 그 많던 도토리가 사라져 있었다.
남은 것은 오딜리아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몇 개뿐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오딜리아는 저쪽에서 씩씩거리며 걸어오는 에르빈을 발견하고 방긋 웃었다.
“리아! 어디 갔었어!”
“도또리 주웠어.”
오딜리아가 에르빈에게 도토리를 건네줬다.
“어? 지쨔 도또리네.”
“웅. 이거 봐. 한 개, 두 개, 세 개…… 천 개!”
오딜리아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턱 끝을 거만하게 치켜들었다.
“이제 에르 다람찌 댈 수 이써.”
“이거 천 개 아냐.”
“구롬 며 깬데?(그럼 몇 갠데?)”
“한 개, 두 개, 세 개…… 욜(열) 깨!”
“욜 깨?”
“웅.”
“구롬 이고 욜 깨야?”
“웅, 욜 깨야.”
오딜리아가 들고 온 도토리는 일곱 개였다.
“구롬 에르 다람지 몬 되네.”
오딜리아는 실망하여 털썩 주저앉았다.
“리아, 속상해?”
에르빈은 오딜리아를 달래 주었다.
“도또리 없어도 갠차나. 리아 있으니까.”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는 건 어머니를 따라 한 행동이었다.
테오도르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눈앞에 보이는 것은 집무실 풍경이었다.
테오도르는 자신이 시공을 건넜다가 돌아온 것을 알게 되었다.
힐긋, 고개를 내리며 주먹 쥔 오른 손을 펼쳤다.
그러자 펼친 손바닥 위에 앙증맞은 도토리 한 개가 있었다.
‘꿈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