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8_3
그러나 나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왕성을 버리고 도망쳐 놓고서, 이제 와 왕 대접은 무슨.’
코웃음이 나오려는 걸 삼키며 물었다.
“지금 날 협박하는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국왕의 일행들은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혹여나 내 심기가 뒤틀려 저희 왕자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봐 걱정하는 모습이 퍽 우스웠다.
나는 국왕으로부터 받은 보석 주머니를 품에 챙기고 일어났다.
그대로 자리를 떠나려다가 불쑥 생긴 궁금증에 물었다.
“그런데 테오도르 황제는 왜 떠나는 걸 미룬 거죠?”
그리고 돌아온 답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영주성을 나서는 내 걸음걸이가 평소와 달리 늘어졌다.
나는 조금 전 영주성 안에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황제가 이곳에서 무슨 사람을 찾았다더군요. 체르니시안가 뭔가 하는, 아무튼 대단한 가문의 생존자를요.]아무리 생각해도 수상쩍었다.
체르니시아의 생존자를 찾았다고?
하필 이 시점에, 이곳에서? 이렇게 갑자기?
[그래서 그자를 내세워 그 가문을 복권할 거라고…….] [그와 관련하여 준비할 것들이 있어 곧바로 돌아가지 않는다고…….]게다가 뜬금없이 가문의 복권이라니.
나는 당연히 믿지 않고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무시했다.
아니, 무시하려고 했다.
[그 생존자의 이름이 뭔데요?]그러나 나는 구질구질하게 묻고 말았다.
묻지 말았어야 했다.
말도 안 되는 뜬소문이라고 무시했어야 했다.
[브리안 체르니시아, 라고 한답니다.]그 이름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 이후로 줄곧 지금의 상태였다.
브리안.
짓궂은 나의 막내 오빠.
그는 툭하면 ‘테오도르 1황자에게 시집보낸다’며 나를 놀렸고, 그럴 때면 나는 엉엉 울며 리하르트 오라버니에게 브리안의 괴롭힘을 일러바치곤 했다.
십수 년 전 가문이 그렇게 몰락한 뒤로는 두 번 다시 부르지 못한 이름이었으며, 그 짓궂은 괴롭힘마저 그리워 소리 죽여 울어야 했다.
‘정말 브리안일까?’
나는 잠시 마음속에 피어오른 의문에 희망을 걸었다가, 이내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브리안일 리가 없어.’
하지만 그 헛소문일 게 틀림없는 말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살짝, 아주 살짝 신경이 쓰였다.
“이브! 아버지와는 이야기를 잘 끝냈나요? 표정이 왜 이렇게 어두워요?”
밖으로 나오자마자 데릭과 마주쳤다.
“날 기다린 거야?”
“네, 이브. 다람쥐 용사 공연은 잘 보셨나요? 아이들이 좋아했지요?”
데릭이 쑥스럽게 웃으며 내게 조잘조잘 말을 걸어 댔다.
잠시 그를 쳐다보던 나는 길어지는 그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잘됐어, 데릭. 마침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거든.”
“네? 제게요?”
내가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하자, 데릭이 눈에 띄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번 필요한 게 없냐고 찾아오는 그에게 그런 건 없다고 매정하게 잘라 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건 제 기쁨입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있지 말이야…….”
나는 데릭의 귀를 잡아당겨 속닥속닥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그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 빙긋 웃으며 답했다.
“얼마든지요.”
그리고 며칠 뒤, 아르벨라를 넘어 칼리고르 왕국 전역에 소문이 퍼졌다.
호수 저택의 마녀가 검 한 자루로 아르벨라 일대의 마물들을 모두 초토화시켰다고.
아예 씨를 말리고 박멸하여, 작은 흔적 하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소문은 빠르게 번져 나갔다.
이 속도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칼리고르 왕성에 있는 테오도르의 귀에까지 들릴 것이다.
* * *
“왜 이브가 안 오지.”
테오도르는 삐딱하니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분명 체르니시아의 생존자를 보기 위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잘생긴 미간 위로 주름이 졌다.
본래의 그였더라면 브리안 체르니시아를 광장에 거꾸로 묶어 전시하듯 세워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나타나길 기다렸다가 군사들을 풀어 덮쳤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와 저의 마지막이, 그녀에겐 퍽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오도르는 그녀가 겁먹지 않도록, 좋게 좋게 소문을 퍼뜨렸다.
체르니시아의 생존자를 찾아 극진히 대접하고 있으며, 곧 그의 가문을 복권할 것이라고.
그건 본래 그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는 사뭇 달랐다.
생전 사용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녀를 회유해 보고자 한 것이 문제였을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오려고 했다.
“제가 뭐랬습니까. 그 여자는 이브 님이 아니라니까요.”
옆에서 린든이 며칠 전에 비해 훨씬 더 당당해진 말투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정말로 이브 님이었더라면 진즉에 제 가족을 찾겠다고 나타나셨겠지요. 그런데 너무 잠잠하지 않습니까.”
“…….”
제가 틀렸다고 하는 린든의 말에 테오도르는 기분이 몹시 언짢아졌다.
그러나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 폐하, 이제 그만 쓸데없는 일에 힘 빼지 마시고 알브레히트로 귀환을…….”
“하루만 더.”
테오도르가 내내 꾹 다물고 있던 입술을 뗐다.
“하루만 더 기다리겠다.”
“그럼 하루 뒤에도 이브 님이 안 나타나면 그냥 귀환하는 거지요?”
“……하루 뒤에도 그녀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단조롭게 흘러나온 나직한 저음이 여상한 투로 말했다.
“브리안 체르니시아를 광장에 거꾸로 매달아 묶을 것이다.”
“네?”
린든이 그건 또 무슨 해괴한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테오도르를 보았다.
흡사 세상 몹쓸 악한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으나, 테오도르는 개의치 않으며 픽 웃었다.
“회유가 안 되면 그다음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
할 말을 잃은 린든이 속으로 브리안을 향해 애도를 보냈다.
다른 이가 저리 말했더라면 짓궂은 농담이라 생각하며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테오도르의 입에서 나오니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린든은 할 일이나 하자는 심정으로 들고 온 종잇장을 주섬주섬 펼쳤다.
“오늘도 칼리고르는 평화롭습니다. 여전히 국왕의 일당은 흔적을 찾기가 어렵고…….”
그가 펼친 보고문에는 점령지의 안팎으로 일어난 대소사가 간략히 적혀 있었다.
“칼리고르 북부 지방에서는 이른 봄에 우박이 내렸다고…….”
“그래.”
테오도르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린든 또한 그가 자신의 보고를 성심껏 들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던 듯, 대강 읽어 내렸다.
“그리고 아르벨라라는 지역에 마물을 때려잡는 마녀가 나타났다더군요.”
멈칫.
내내 린든의 보고를 흘려듣던 테오도르가 문득 반응하며 물었다.
“마물을 때려잡는…… 마녀라고?”
“네, 검 한 자루로 일대의 마물들을 박멸했다는데, 그 마녀가 엄청난 미인이라고 합니다. 은발에 녹안을 지닌…… 폐하?”
벌떡-!
테오도르가 돌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폐하, 폐하?”
린든은 대뜸 바깥으로 향하는 테오도르의 뒤를 쫓으며 숨을 헉헉댔다.
“폐하? 어딜 가십니까?”
어쩜 기사단장인 저보다도 체력이 좋은지, 테오도르는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폐하, 행선지는 말씀을 해 주셔야지요. 폐하?”
마구간 앞에서 걸음을 멈춘 테오도르가 말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이브다.”
“네?”
“그 여자가 이브야. 틀림없어.”
검으로 마물을 때려잡는 여자라니.
그런 멋있는 여자가 이브 외에 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두근, 두근, 쿵, 쿵-
이번에야말로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여자의 소재지가 어디라고?”
“네? 아, 네……. 아르벨라 영지의 호수가 보이는 저택에 살아서, 사람들이 모두 호수 저택의 마녀라 부른다고…… 폐하!”
테오도르는 린든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낯선 땅에서 길은 알고 달리는 거냐고, 뒤에서 린든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칼리고르 왕국을 침공하기 직전에 지도를 살피며 대강의 지형들은 모두 머릿속에 담아 둔 터였다.
테오도르는 쉬지 않고 말을 달렸다.
뒤늦게 호위단원들과 함께 쫓아가는 린든은 차마 따라잡지 못할 빠른 속도였다.
아르벨라 영지는 지도에서 보았던 것처럼 아주 작은 곳이었다.
이미 그곳의 유명 인사가 된 그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물을 때려잡는 여자는 어디에 있지?”
위협적인 한마디에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녀가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테오도르는 사람들이 알려 준 호숫가의 저택을 찾아갔다.
굳게 닫힌 저택의 정문을 쳐다보는 그의 얼굴 위로 벅찬 희열감이 떠올랐다.
‘이브가, 이곳에…….’
어느덧 말에서 내린 그가 저택을 향해 걸었다.
자박, 자박, 자박-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쿵쿵거리는 가슴의 울림이 더욱 거세졌다.
마침내 정문 앞에 선 그가 문손잡이를 잡고 가만히 밀어 보았다.
끼이익-
잠금장치를 하지 않은 것인지, 닫혀 있던 문은 손쉽게 열렸다.
“…….”
쉽게 열리는 문고리를 쳐다보는 테오도르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는가 싶더니, 이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이렇게 위험하게, 문단속도 제대로 하지 않고…….
누가, 나쁜 마음이라도 품고 찾아오면 어떡하려고…….
꾸우욱-
테오도르는 괜히 아랫입술을 잘근 베어 물었다.
쉽게 열린 문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다.
그녀에게 가장 달갑지 않은 불청객이 바로 자신일 거라는 생각은 티끌만큼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열린 문을 더욱 거세게 젖히며, 호수를 품은 고저택 안쪽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그리고 그 안에 펼쳐진 풍경에 테오도르는 잠시 그 자리에 굳어 버리고 말았다.
“…….”
그를 맞이한 것은, 텅 빈 저택이었다.
칼리고르의 수도에서부터 말을 달려온 작은 영지의 작은 저택은, 급하게 이사라도 간 듯한 모양새였다.
빈 저택을 응시하는 테오도르의 눈매가 사늘하게 내려앉았다.
짧은 침묵 끝에,
“……하!”
차가운 바람을 닮은 웃음소리가 그의 입술을 비집고 터져 나왔다.
“하하! 하하하하하!”
광포한 웃음소리가 높다랗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웃는 테오도르는 진심으로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말이다.
“이브야. 역시, 그녀가 살아 있었어!”
배를 잡고 큭큭거리던 그가 웃음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네가 아니라면 날 이렇게 엿 먹이고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잖아. 그렇지, 이브?”
세상을 쪼갤 듯 첨예한 눈빛과 달리 ‘그렇지, 이-브?’ 하고 그녀의 이름을 속삭이는 목소리만이 그처럼 달콤하였다.
“그러니까 이건, 네가 살아 있는 증거야.”
빈 저택을 응시하는 테오도르의 목울대가 자그맣게 일렁거렸다.
이때였다.
사박-
뒤편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테오도르가 뒤를 홰액 돌아보았다.
순간 기척의 주인을 알아본 그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브리안을 습격한 이는 다름 아닌 벤야민이었다.
그는 황제가 칼리고르로 향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부터 마음이 몹시 불안해졌다.
칼리고르는 이브가 머무르는 곳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다 황제가 브리안 체르니시아를 불러들였다는 소식에 급기야 눈이 돌아 버리고 말았다.
황제가 그를 부르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브리안을 이용해 이브를 찾으려는 게 아닌가.
‘어쩌면 이미 마주쳤을지도 모르지. 의심 많은 황제가 이유 없이 브리안 체르니시아를 불러들이진 않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불안한 마음이 한껏 증폭되었다.
체르니시아의 복권이 멀지 않았다고, 벌써 제국 안팎으로 이야기가 돌았다.
혹 두 사람이 아직 마주치기 전이라 하더라도, 이브가 이 소식을 접한다면…….
‘안 돼.’
벤야민은 입술을 짓씹으며 생각했다.
그녀를 또다시 테오도르에게 빼앗길 아주 작은 가능성 하나 남겨 두지 않겠다고.
그래서 그는 브리안을 제거하고자 했다. 그 남자가 이브를 꾀어낼 미끼가 되지 않도록.
브리안이 이동 마법을 이용한다는 소식을 접한 벤야민은 마법진에 소소한 장난을 해 두었다.
황명을 받든 브리안의 일행이 마법진이 작동하지 않아 당황하는 사이 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그와 함께 있던 레오브란테의 가주 또한 굉장한 실력자였으나, 브리안 체르니시아 그 자체가 벤야민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검술을 구사하였다.
과연, 체르니시아라.
검기를 발현하지 못한 평범한 인간이라 가볍게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벤야민은 주먹을 아프게 말아 쥐었다.
브리안이 알브레히트를 떠나기 전에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이제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이브의 귀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더 이상 막을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초조한 마음에 사흘 밤낮으로 자지 못하고 손톱만 까득, 까드득- 깨물었다.
그러다 더 이상 깨물 손톱도 남아나지 않았을 때, 벤야민은 호수 저택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녀를 강제로 납치라도 하여서 세상으로부터 숨길 작정이었다.
한순간 눈에 뵈는 게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막상 그가 호수 저택에 도착하였을 때.
이브는 그곳에 없었다.
이브뿐만 아니라 그녀의 두 아이와 몇 안 되는 사용인들도.
벤야민은 휑한 저택을 둘러보았다.
급하게 짐을 챙겨 사라진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브가…… 사라졌어.’
그리고 그곳에서,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하! 하하!”
미친 자처럼 웃고 있는 테오도르를 발견했다.
“아하하하하하하하!”
텅 빈 저택을 앞에 두고서,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그 모습이 썩 기괴하였다.
‘뭐야.’
벤야민은 테오도르를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았다.
그러나 오늘은 그 정도가 유독 극심했다.
‘미친 건가?’
급하게 사라진 듯 휑하게 비어 버린 호수 저택.
그리고 그 앞에서 기쁜 듯이 눈가를 붉히며 광기 서린 웃음을 터뜨리는 테오도르.
황제가 미쳤다는 이야기는 대륙 내에 자자하게 퍼졌으나, 미친 황제를 직접 대면하는 것은 4년 전 이후로 처음이었다.
‘미친개는 피해야지.’
벤야민은 테오도르와 마주치지 않고자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가 최대한 소리를 죽여 자리를 뜨려는 때였다.
홰액-!
그 작은 기척을 기민하게 알아챈 테오도르가 곧바로 벤야민을 돌아보며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벤야민 페르디난트.”
벤야민은 놀란 마음을 감추며 무심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알브레히트의 주인을 뵙습니다. 알브레히트에 영광…… 윽!”
그러나 그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테오도르의 손이 벤야민의 멱살을 우악스럽게 낚아챘다.
“너지?”
순식간에 코끝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로 다가온 테오도르가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쏘아붙였다.
“무슨 말씀입니까.”
“나의 이브와 작당해서 못된 장난질을 친 게, 너 맞잖아.”
테오도르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쳇.’
벤야민은 속으로 못마땅한 기색을 숨겨야 했다.
쓸데없이 눈치가 빠른 저 미친 황제가 대강의 상황을 알아챈 게 틀림없다.
‘어떻게 안 거지? 설마, 정말로 이브와 마주치기라도 한 건가.’
그러나 이러한 궁금증을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벤야민은 시치미 뚝 떼며 대꾸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브라면 4년 전 죽은 가엾은 이브 로웰린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브는 죽었잖아요. 당신의 약혼녀를 지키느라.”
부러 그의 상처를 긁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테오도르는 그런 식으로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두 눈을 활짝 접으며 웃었다.
“이브는, 또 어디에 숨겼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황금색 빛무리가 피어났다.
빛무리는 서서히 수십 개의 단검의 형태로 변해 가며 벤야민을 겨누었다.
“…….”
벤야민은 소리 없이 숨을 삼켰다.
눈앞에 빙긋 웃고 있는 남자에게서, 죽일 듯한 살기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감각에, 목 뒷덜미 위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알브레히트의 주인이라 하여도 페르디난트의 가주를 이렇게 함부로 공격할 순 없습니다.”
“뭐 어때.”
테오도르는 비식 웃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차피 여기엔 너랑 나 둘밖에 없고.”
“…….”
“널 죽여 없애 버리면, 내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아무도 모를 텐데.”
슈욱!
슉!
슉!
슉!
테오도르가 만들어 낸 수십 개의 빛의 단검들이 벤야민을 향해 일제히 날아들었다.
벤야민은 그 즉시 아까부터 머릿속으로 외우던 술식을 손끝으로 그려 냈다.
작은 파공음이 터지며 테오도르의 몸이 밀려났다.
“크윽…….”
뒤쪽으로 밀려난 테오도르가 눈가를 찌푸리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마찬가지로 반동으로 밀려난 벤야민의 몸이 바닥 위로 나뒹굴었다.
그것을 발견한 테오도르가 재빨리 그를 향해 공격을 이어 갔다.
슈욱- 쿵!
슈욱- 쾅!
슈욱- 쿠구궁!
벤야민을 향해 날아든 단검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벤야민은 바닥을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아, 간신히 테오도르의 공격을 피해 도망쳤다.
‘젠장. 전장에서 구르더니 더 난폭해졌잖아.’
4년 전과 달리 테오도르는 더 이상 자신의 힘을 숨기지도 않았고, 상식적인 대화가 통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