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9_3
“아조씨, 리아 보러 온 거야?”
오딜리아는 에른스트의 뒤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서 물었다.
서로 아는 사이인 듯한 두 사람의 모습에 에른스트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 찰나.
차박, 차박-
단정한 발소리와 함께 저택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궁에 다녀온다더니, 연락도 없이 손님을 모셔 왔나 보네.”
곱슬곱슬한 은발을 허리까지 늘어뜨리고서, 편안한 흰색 셔츠에 검은 팬츠를 입은 여자는 새로이 체르니시아의 주인이 된 이보네였다.
“브리안 오빠.”
이보네가 마차를 정리하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브리안을 책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니, 그게 폐하께서…… 친히 하사하신 저택을 살펴보신다기에.”
브리안이 억울한 표정으로 우물우물 항변했다.
싸늘한 시선이 브리안을 떠나 테오도르에게 정착했다.
테오도르가 억지를 부렸다면 누구도 막지 못했을 테니, 브리안을 탓할 것은 없었다.
“……이보네 체르니시아가 알브레히트의 주인을 뵙습니다.”
이보네는 못마땅한 목소리로 테오도르를 향해 인사했다.
테오도르는 그 자리에 우뚝 굳어 버렸다.
단순히 편한 차림새를 한 그녀가 너무 예뻐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의 품에 안긴 작은 남자아이를 발견한 탓이다.
그녀에게 착 달라붙은 아이는 그녀를 닮은 은색 머리카락을 지녔다.
[아, 아이가 둘이 있었습니다.] [둘……?] [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이렇게 둘…….]칼리고르의 왕자는 그녀에게 아이가 둘이 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 말에 테오도르는 더 자세히 묻는 것을 포기하였다.
설령 제가 본 여자아이가 저와의 관계로 태어난 아이라 할지라도 다른 아이가 하나 더 있다는 건, 그녀에게 제가 아닌 다른 남자가 또 있었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그녀가 안고 있는 남자아이는…… 아래에서 두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있는 여자아이와 같은 나이대였다.
이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경우의 수였다.
“……이럴 줄 알았어.”
테오도르는 그녀의 품에 안긴 아이를 보며 멍하니 읊조렸다.
“내가, 내가 정말 이럴 줄 알았어…….”
느닷없이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웅얼거리는 테오도르의 모습에 이보네가 인상을 작게 썼다.
야트막하게 입술을 달싹이며 속삭이는 소리는 무척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폐하?”
이보네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그를 부르던 때에, 테오도르가 희열에 찬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나는 항상 쌍둥이를 낳고 싶었어.”
“……?”
난데없는 그의 자식 계획에 이보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너를 닮는다면 딸이든 아들이든 모두 사랑스러울 것 같다고 생각했지. 둘 중 하나를 고르기 어려우니까 쌍둥이를 낳으면 딱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었어.”
속사포처럼 쏟아 낸 말을 이보네가 이해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런데, 역시……!”
테오도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이 두 눈을 접으며 외쳤다.
“역시 우리 아기들은 너를 닮을 줄 알았어!”
우리, 아기들?
뒤늦게 그가 말하는 바를 알아들은 이보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브! 우리 아기들이야! 그렇지? 우리 아기들이 맞지?”
테오도르는 막무가내로 기쁨의 탄성을 터뜨렸다.
심지어 그 눈꼬리에 그렁그렁한 눈물방울마저 어울리지 않게 매달려 있었다.
그런 테오도르를 향해, 이보네는 서늘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이게 무슨 개…… 헛소립니까?”
금방이라도 상대를 베어 낼 듯한, 첨예하고 날카로운 음성이었다.
멋대로 저택에 난입한 테오도르는 별안간 화사한 웃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이브! 우리 아기들이야! 그렇지? 우리 아기들이 맞지?”
확신에 가까운 그 목소리에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해졌다.
“이게 무슨 개…… 헛소립니까?”
당장 욕설을 퍼붓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으나, 인내심 있게 꾹 눌러 참았다.
에르빈과 오딜리아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아이들에게 비속어를 들려줄 순 없었다.
“이브…….”
테오도르는 애틋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오딜리아와 에르빈을 차례로 보며 말했다.
“이거 봐, 아기들이 너를 닮았고, 나를 닮았어.”
아니, 에르빈은 내내 내 어깨 위로 고개를 파묻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도 않을 텐데 뭐가 닮았다는 거야?
게다가 오딜리아는 테오도르와 닮은 부분이 정말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오딜리아가 테오도르로부터 유일하게 물려받은 검은 머리카락은 벤야민의 술법으로 밝은 은발이 되어 있으니까.
애초에 두 아이는 모두 나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연상시킬 만큼, 오직 나만을 쏘옥 빼닮았다.
“이상한 억지를 부리시는군요.”
나는 테오도르의 헛소리에 일일이 반박해야 하는 상황에 조금 짜증이 나서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서 과거 아르민 공이 ‘황제만 아니었으면…….’ 하는 말을 매번 소리 죽여 삼켰는지 알 것 같았다.
“제 아이들이 왜 폐하를 닮습니까?”
“아니야, 이것 봐. 저 아이, 이렇게 고개를 기울일 때 깜빡이는 눈의 각도가 나랑 닮았어.”
“…….”
“그리고 네가 안고 있는 아이, 귓불에 난 솜털이 내 어렸을 때랑 닮았잖아.”
테오도르가 오딜리아의 눈가와 에르빈의 귓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랑 나를 섞어서 만들어진 것 같아……. 너무, 너무 사랑스러워.”
“…….”
나는 아주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정말인가?’
한 번도 아이들이 테오도르를 닮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한 번 듣고 나니 괜히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모니, 저 아조씨 누구예요?”
이때, 내내 내 어깨 위로 고개를 푹 파묻고 있던 에르빈이 테오도르를 힐긋 쳐다보더니 내게 물었다.
“저 아조씨도 어모니 친구예요?”
“아니야.”
친구라니. 끔찍한 소리.
나는 좋지 않게 헤어진 전 애인과 구질구질했던 과거를 잊고 친구로 지낼 만큼 속 시원한 성격은 결코 되지 못했다.
오히려 두고두고 욕을 하며 저주하는 쪽에 가까웠다.
아무래도 테오도르를 향한 아이들의 관심이 커지기 전에 쫓아 보내야 할 성싶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에르빈을 품에서 떼어 내 아래로 내려놓을 때였다.
“……!”
테오도르가 에르빈의 얼굴을 응시한 채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뭐지? 에르빈의 금안을 보고 놀란 건가?’
에르빈의 눈동자가 테오도르의 것을 닮긴 했으나, 그만큼 희귀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나는 괜히 마음이 조급해지려는 것 같아 그의 앞을 막아섰다.
“저택을 살펴보고자 납시셨다고요?”
“…….”
“폐하?”
“……아!”
무언가에 홀린 듯이 멍하게 있던 테오도르가 퍼뜩 정신을 차린 듯 탄성을 터뜨렸다.
“으응…….”
멍청하니 말끝을 흐리는 게 영 미심쩍었다.
‘무슨 생각을 했기에 저런 표정이지?’
그러다 나는 몹시 눈에 띄게 어쩔 줄 몰라 하며 테오도르의 눈치를 흘깃흘깃 살피는 브리안과 에른스트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아이들의 친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처럼 더 황망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겠지만, 저렇게 티 나게 굴다가는 테오도르가 이상함을 감지할지도 모른다.
“이쪽으로 따라오시지요.”
나는 일단 테오도르를 데리고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그에게 권유했다.
“으, 응……!”
테오도르는 환하게 웃으며 내 옆에 쪼르르 붙었다.
나는 그를 저택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 와중에도 계속 뒤를 힐끔힐끔 보며 아이들의 얼굴을 훔쳐보는 그의 작태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남의 아이들은 왜 훔쳐보는 거야?’
당장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있던 도중, 그가 입을 열었다.
“너랑, 정말 똑같이 생겼어.”
감격받아 퍽 들뜬 목소리가 내 신경을 거슬렀다.
“이브, 나는 아기를 낳으면…….”
“죄송합니다, 폐하.”
그가 하는 헛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서, 나는 냉랭한 말투로 그의 말을 끊어 냈다.
“약속 없이 찾아오셔서, 직접 맞이해 드릴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 괜찮…….”
“폐하께서도 보셨다시피, 2황자 전하를 접대하던 중이라서요. 사람을 붙여 드릴 테니, 천천히 저택을 둘러보다 가시지요.”
나는 그에게서 몸을 홱 돌리고서 저택의 집사를 불렀다.
“잠깐, 이…….”
나를 붙잡는 목소리와 함께 내 뒤로 질척하게 따라붙는 처량 맞은 그의 시선이 느껴졌으나, 모른 체하며 집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폐하께서는 몹시 바쁘신 분이니 최대한 간결하고 신속하게 저택을 안내해 드린 뒤 정문까지 배웅해 드리거라.”
“네, 가주님.”
브리안이 고용한 저택의 젊은 집사는 절도 있는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앞에 섰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시길.”
나는 축객령이나 다름없는 인사를 남기고서 쌩하니 걸음을 돌렸다.
황제를 대하기에는 다소 불손한 태도였으나, 그 또한 언질 없이 저택을 찾아온 무례를 범했으니 내게 무어라 하지 못할 터였다.
정원으로 돌아오자 에르빈과 오딜리아가 내게 몰려들었다.
“어몬니, 잘샌긴 아조씨 갔어요?”
“그 아조씨 누구예요?”
테오도르에게 관심을 보이는 에르빈과 오딜리아에게 나는 가볍게 대꾸해 주었다.
“지지야.”
“지지?”
“응, 지지. 더러운 거야.”
“우웅, 지지.”
“지지는 더러워요.”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똑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거 맞지, 이보네?”
“이보네…….”
브리안과 에른스트도 불안한 눈동자로 나를 보며 한마디씩 던졌다.
“괜찮아.”
나는 그들의 걱정을 단칼에 차단하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동했다.
그러나 사실 나 또한 누구보다 놀란 터였다.
테오도르의 꿍꿍이를 알 수 없어 심란했다.
에르빈과 오딜리아가 제 자식이란 걸 그가 정말로 알아본 걸까 봐…….
‘하지만 내가 아니라면 아닌 거지. 어떻게 알겠어.’
딱히 친자를 감별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것도 없으니, 걱정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홀로 고개를 주억였다.
* * *
쫓겨나다시피 체르니시아 저택을 나서며, 테오도르는 조금 속상해졌다.
그녀에게 하고픈 말이 많았고, 또 궁금한 것도 많았다.
그러나 이브는 좀처럼 제게 대화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저와의 재회를 반가워하기는커녕, 불쑥 찾아온 저를 불청객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이야기 한 번쯤은 들어 줄 수 있잖아.’
감히 그녀에게 옅은 원망마저 피어났다.
‘아니야, 테오도르. 살아 있는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잖아.’
테오도르는 그 뻔뻔한 원망을 꾸욱 억눌렀다.
그녀가 저를 미워하고 욕해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냉대하고 외면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저 그녀가 살아 숨 쉬는 모습만 볼 수 있으면 된다고.
그래, 분명 그렇게 여기지 않았던가.
‘그래. 괜찮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괜찮…….’
그가 간신히 마음을 다잡을 때였다.
“에룽쑨뜨(에른스트) 삼쫀 쪼아! 삼쫀 집에 가지 말구 리아랑 살아요. 웅?”
까르륵거리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울타리 너머로 들려왔다.
무심결에 고개를 돌린 테오도르는, 정원에서 사이좋게 놀고 있는 에른스트와 오딜리아를 발견했다.
“…….”
욱신-
에른스트가 아이를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려 주는 모습을 보자, 이상하게 가슴이 아프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에르도! 에르도 높이 올려 줘!”
에르빈이 에른스트의 바지 자락을 잡아당기며 칭얼거렸다.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보네가 아이들에게 한마디 하며 에른스트에게 다가갔다.
“에르, 리아. 삼촌을 괴롭히면 안 돼.”
“괜찮아, 이보네.”
“그렇게 응석을 다 받아 주다간, 에르와 리아가 너처럼 울보가 되어 버릴지도 몰라.”
하필이면 테오도르가 서 있는 곳에서 그들의 대화가 너무나 잘 들렸다.
“아직 어린데, 뭐 어때.”
“애들이 응석받이가 되면 네가 책임질 거야?”
“뭐, 못 질 것도 없지.”
두 사람은 아이들의 양육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이좋게 대화하는 그 모습에 배알이 꼴렸다.
‘나도 놀아 주고 책임져 줄 수 있는데…….’
“에룽쑹뚜 삼쫀 체고(최고)야!”
오딜리아가 양팔로 에른스트의 목을 끌어안으며 그의 뺨에 입을 맞추는 게 보였다.
당황한 에른스트가 멍청한 표정을 짓자, 이보네가 소리 내어 웃었다.
욱신- 욱신-
가슴이 조금 전보다 더 시큰하게 아파 왔다.
‘왜, 왜 나는 안 되는 거야?’
뾰족하게 튀어나온 의문은 다시 그에게로 돌아와 가시처럼 박혔다.
그 따끔한 통증에 테오도르는 이를 악물었다.
애써 괜찮다고 자위하였으나, 괜찮지 않았다.
전혀, 아주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저 덜떨어진 에른스트는 끼어들 수 있는 저 장면 속에 정작 제 자리는 없다는 사실이, 이다지도 그를 괴롭게 했다.
테오도르는 주먹을 아프도록 꾸욱 말아 쥐었다.
느슨하게 웃고 있는 이브의 얼굴은 너무나 예뻐서, 이 먼 거리에서도 눈에 박혔다.
한때 저 예쁜 얼굴 위로 빈틈없이 입을 맞추며 사랑을 나누었던 때가 있었는데…….
‘오해를…….’
테오도르는 제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조금 전 제게 냉랭하게 홱 돌아서던 그녀를 생각했다.
‘오해를 풀면…….’
목울대가 아프게 일렁거렸다.
‘그래, 오해를 풀면 될 거야. 그럼 이브도 내게 화를 풀고 용서해 줄 거야. 지금은 우리 사이의 오해가 깊으니까…….’
비록 그녀가 지금은 저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었으나,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상 언제고 오해를 풀 기회는 충분하리라.
테오도르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급함을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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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말이야, 이브.
내가 잠시 미쳐서 널 기억하지 못했어.
너를 기억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네가 너무 좋아서, 너를 두고 너와 닮은 여자에게 끌리는 내 자신이 싫어서.
그래서 네게 매몰차게 굴었어.
그 여자와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야.
그러니까 기억을 잃기 전에도, 잃은 뒤에도, 내가 사랑한 건…….
오직 너뿐이었어.
미안해, 이브.
너를 알아보지 못해서.
너를 아프게 해서.
네게 상처를 주어서.
내가 다, 미안해.
그러니 제발 한 번만…… 내 이야기를 들어 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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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테오도르는 한동안 같은 자리에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날이 저물어 그들이 실내로 사라지고 나서도,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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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는 이후로도 이따금씩 이보네를 만나러 갔다.
막상 저택을 방문하면 이보네는 바빠서 만나기 힘들어 대신 아이들과 놀아 주며 시간을 보냈지만, 그는 그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체르니시아 저택을 방문할 예정인 에른스트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들고서 마차로 향했다.
‘……따갑네.’
에른스트는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흉흉한 시선에, 머쓱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다.
테오도르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애써 그 시선을 모른 척하며 마차에 오르려 할 때였다.
“네가 뭔데 내 아이들을 책임진다는 거지?”
“네, 네?”
갑작스럽게 다가온 테오도르가 그에게 시비를 걸며 쏘아붙였다.
에른스트는 긴장으로 몸을 뻣뻣하게 굳히며 숨을 꼴깍 삼켰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테오도르를 무서워했던지라,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테오도르는 그런 에른스트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이딴 게 뭐가 예쁘다고…….”
“네, 네……?”
“네가 준비한 그깟 사자보다는 이걸 더 좋아할 것이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에른스트를 쳐다보던 테오도르는 불쑥 다람쥐 인형을 내밀었다.
검은 줄무늬가 있는 갈색 털에,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는 리본을 단 귀여운 다람쥐 인형이었다.
당장 건네받지 않으면 죽일 것처럼 노려보는 시선에, 에른스트는 허겁지겁 다람쥐 인형을 받아 챙겼다.
테오도르는 두 눈을 부릅뜨며 무섭게 노려보더니, 이내 몸을 홱 돌려 사라졌다.
“휴우…….”
테오도르가 내뿜는 살기에 하마터면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에른스트는 놀란 가슴을 쓸며 마차에 올라탔다.
최근 며칠 테오도르가 이브를 만나러 찾아갔으나 문전 박대 당한 것을 그녀의 옆에서 몇 차례 목격한 탓일까.
에른스트는 제가 그를 쫓아낸 것도 아닌데 괜히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다.
‘그보다 왜 그렇게 얌전히 찾아갔다 얌전히 쫓겨나는 거지?’
이보네가 사라지고 미친 자처럼 굴던 테오도르는, 막상 그녀가 돌아오자 평범한 옛 애인처럼 굴었다.
그녀가 대화를 하기 싫다고 거부하자, 조용히 입을 다물며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그녀가 꼴도 보기 싫다고 하자, 조용히 사라져 몰래 훔쳐보기만 하고.
그녀가 그마저도 재수 없다며 소금을 뿌리자, 얌전히 서서 소금을 맞더니 그녀가 사라진 뒤에 흙바닥 위의 소금을 한 알 한 알 골라내었다.
‘본래 형님의 성격대로라면 왜 내 말을 들어 주지 않냐고 화를 내야 하잖아? 지금쯤 이보네를 납치했어야 정상 아니야?’
조금 수상했다.
적어도 에른스트가 아는 테오도르는 그렇게 얌전한 남자가 아니었다.
뒤늦게 참회하여 착해진 것은 아닐 테고…….
‘설마 내숭을 부리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소름이 돋아서, 에른스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느새 그를 태운 마차가 저택에 도착했다.
정원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그를 향해 오도도 뛰어왔다.
“삼쫀!”
껑충껑충 뛰어온 오딜리아가 에른스트의 품에 폴짝 안겨 들었다.
“삼쫀, 그거 모야?”
“아, 이건 사자 인형인데…….”
“아아니, 그거 말구, 저거!”
오딜리아는 에른스트의 손에 들린 사자 인형에는 관심도 주지 않으며, 마차 좌석 위에 얌전히 놓인 다람쥐 인형을 가리켰다.
“곤준님(공주님)! 저거 다랑지 곤준님이야!”
어느덧 달려온 에르빈이 빨간 원피스를 입은 다람쥐 인형을 가리키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곤준님이랑 젤리꼬랑 결혼해!”
“……공주님? 젤리꼬?”
에른스트는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참, 삼쫀 젤리꼬 모루눈구나.”
“흥, 젤리꼬도 모루구 나쁜 사람 아냐?”
“아냐! 모룰 수도 있지!”
“젤리꼬 모루먼 나쁜 사람이잖아.”
“에룽쑨뚜 삼쫀은 애뻐. 애쁜 사람은 나쁜 사람 아냐.”
두 눈을 가늘게 좁혀 뜨고 에른스트를 빤히 응시하는 에르빈을 향해, 오딜리아가 두 팔을 파닥파닥 흔들며 변호했다.
“삼쫀, 리아가 젤리꼬 안녀 주까(알려 줄까)? 젤리꼬는 다람찌 욘싼데…….”
오딜리아는 친절하게 제리코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구래서 젤리꼬랑 곤준님이랑 결혼해!”
“와아, 그렇구나.”
에른스트가 다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 주자 오딜리아는 더욱 신이 났다.
“구리고 리아도 삼쫀이랑 결혼할 꼬야!”
오딜리아가 에른스트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