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9_4
“뭐?”
이에 울컥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닌 에르빈이었다.
“안 돼! 시러!”
에르빈이 오딜리아의 팔을 잡아당기며 에른스트로부터 떼어 놓으려 했다.
“리아는 에르랑 겨론하기로 해짜나!”
“하찌만 삼쫀이 에르보다 더 애뿐걸.”
그러나 오딜리아는 에른스트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며 비죽 혀를 내밀었다.
“아냐! 에르가 더 애뻐! 어모니가 에르 더 애뿌다고 하서써!”
“에르 멍총이, 그거 어몬니가 고진말(거짓말)하신 거야. 안 구럼 에르가 우니까.”
“……!”
“이고 봐 봐. 지굼도 애기초롬(애기처럼) 떼쓰고 있짜나? 구니까 오몬니도 에르가 더 애뿌다고 고진말하셔찌. 에휴.”
오딜리아는 에르빈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시간 충격받아 굳어 있던 에르빈은 약이 바짝 올라 에른스트를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삼쫀 나빠! 에르한테 리아 뺏어 가지 마! 리아는 에르랑 결혼할 거야!”
“아, 하하…… 그래, 에르. 그렇게 하자.”
에른스트가 난처하게 웃으며 에른스트를 달래고자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딜리아가 두 눈을 뾰족하게 뜨고 에른스트를 쳐다보았다.
“그걸 왜 삼쫀이랑 에르가 결정해!”
“헹! 삼쫀 에르 편이야.”
“아냐! 삼쫀은 리아 편이란 말야! 삼쫀 뺏어 가지 마!”
어느새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에른스트를 내버려 두고 둘이서 툭탁툭탁 싸우기 시작했다.
그런 두 아이의 모습에 에른스트는 자그마한 미소를 내지었다.
‘둘 다 정말 이보네와 닮았네. 귀여워.’
이보네를 그대로 복제한 듯한 작은 두 아이가 다투는 모습은 그저 귀엽기만 했다.
‘나도 어렸을 때 이보네와 저랬었나.’
에른스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어렸을 때, 사람들은 그를 황궁의 부족함 없는 황자님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실상 에른스트는 늘 외로웠다.
어머니는 자신을 애지중지 아끼는 것 같으면서도, 이따금씩 타인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아버지는 오랜 병석에 누워 계셔 자주 만나지 못했고, 이복 형님이었던 테오도르는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이보네와 처음 친구가 되었을 때, 그 애에게 더 의지했는지 모르겠다.
[안녕, 나는 이보네야. 이보네 체르니시아.]살랑살랑 불어보는 봄바람에 달빛처럼 아름다운 은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이보네는, 동화책에 나오는 공주님처럼 예뻤다.
홀린 듯 그녀를 쳐다보던 에른스트는 황자로서의 위엄도 잊고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었다.
[나, 나는 에른스트야.]그 모습에 황후궁의 사용인들이 흐뭇한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에서야 어린 황자가 귀여워 보인 반응이란 것을 알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 숨고만 싶었다.
[황자님은 이보네 아가씨가 그렇게 좋아요?] [응, 너무 좋아! 이보네는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달리기도 잘하고…… 게다가 나무도 잘 타!]이보네가 좋은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렇지만 에른스트는 알았다.
그런 이유들이 아니더라도,
이보네가 예쁘지 않고, 착하지 않고, 똑똑하지 않고, 달리기를 못하더라도, 나무 위에서 맨날 미끄러지더라도,
그래도 저는 이보네를 좋아했을 거라고.
[다행이네요. 두 분의 사이가 좋으셔서. 장차 알브레히트 황실의 앞날이 밝겠어요.] [응? 황실의 앞날?]어려운 말을 하는 사용인을 탈탈 털어 캐물은 결과, 에른스트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그러니까, 이, 이보네랑 나랑 커서 결혼을 하는 거야?]결혼이라니. 그런 건 동화책에서만 보았다.
그가 읽던 동화책의 끝에는 항상 악당을 무찌른 용사님이 공주님과 뽀뽀를 하며 결혼식을 올렸다.
물론 자신은 용사님이 아니었고, 이보네도 공주님이 아니었지만…….
[어, 어떡해, 너무 좋아!]에른스트는 두 뺨을 양손으로 감싸며 폴짝폴짝 뛰었다.
그 모습에 하하 호호 웃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너무 기쁜 나머지 쥐구멍에 숨고 싶은 생각도 더는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보네도 기뻐할까? 이보네가 싫어하면 어쩌지?] [이보네 아가씨도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황궁 사용인들의 응원 속에서, 에른스트는 커서 이보네와 결혼할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보네가 황후궁에 한 달간 머물다 갔던 그 여름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군터 체르니시아, 이보네의 할아버지이기도 한 그 남자와 우연히 맞닥뜨렸을 때.
이보네와 똑같은 은색 머리에 녹색 눈동자를 지닌 그 남자를 향해 에른스트는 예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 나는 2황자 에른스…….]군터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이 에른스트에게 반응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정확히는 그 검의 손잡이에 박혀 있던 푸른 보석이 검은색으로 일렁거렸다.
표정이 사아악 굳은 군터가 검을 뽑아 에른스트를 겨누었다.
[당신, 정체가 무엇입니까!] [왜, 왜 그러는 거야……?] [당장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나, 나는 2황자 에른스트…….]울먹이며 왜 그러냐고 물을 적에 에른스트는 검은 연기에 휩싸여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에른스트가 잠시 혼절하였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황궁이 발칵 뒤집혀 있었다.
체르니시아의 가주가 황제를 시해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황제가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황궁의 지휘권은 어머니 마르가라테 황후에게 돌아갔다.
[어쩔 수 없지요. 체르니시아를 멸살해야 해요.] [안 돼요! 어머니, 제발…….]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답니다, 황자. 군터는 폐하를 시해하려고 했고, 황자도 해치려 했어요.]마르가라테 황후는 아들의 애원에도 차갑게 잘라 말했다.
[그, 그럼 이보네라도, 이보네를 살려 주세요……!]에른스트는 이보네를 살려 달라며 울며 부탁했다.
덕분에 이보네를 살릴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 꽤 오랫동안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커서 그녀의 짝이 될 거라는 어린 날의 꿈도 함께 흩어졌다.
이보네는 그 어린 날의 어른들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까?
에른스트가 밀어 두었던 옛 기억에서 깨어날 무렵이었다.
‘어…… 손님?’
저 멀리 손님이 도착했다.
페르디난트, 어머니의 가문의 문양이 그려진 마차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겨울날 내리는 첫눈처럼 새하얀 백발에 나른한 표정을 지닌 미남자는 페르디난트의 가주 벤야민이었다.
에른스트와는 사촌지간이기도 하였으나, 어릴 적부터 딱히 교류가 없어 어색한 사이이기도 했다.
마차에서 내린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두 남자는 멀뚱멀뚱 서로 쳐다보았다.
벤야민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해 갔다.
‘왜 저런 표정으로 쳐다보는 거지?’
뜻 모를 그 표정에 에른스트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벤야민은 짤막하게 고개를 까닥이고는 몸을 돌렸다.
기이한 기분에 휩싸인 에른스트는 벤야민이 이보네가 있을 저택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잠잠히 지켜보았다.
“삼쫀, 삼쫀 뭐 해?”
“삼쫀, 우리 다랑지 용사 놀이 하자.”
어느덧 사이가 좋아진 아이들이 다시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리아가 다람찌 용싸 할 꺼야!”
“에르는 공준님 할 거야! 삼쫀은 두래고(드래곤)야!”
“쪼아! 다람찌 용싸는 뚜래고랑 결혼해!”
“아니야, 다랑지 욘싸는 공준님이랑 결혼해야지!”
“하찌만 이고 봐 봐. 뚜래고가 공준님보다 더 이쁜걸? 그쵸, 삼쫀?”
에른스트는 행복한 시달림 속에서 조금 전의 기이한 기분은 지워 내고 빙긋 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3대 가문에게 마물 토벌령이 하달되었다.
체르니시아도 당연 예외는 아니었다.
애당초 체르니시아가 복권할 수 있었던 계기가 범람한 마물들 때문이었기에, 나는 가주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토벌에 임해야 했다.
수도 북쪽에 위치한 리펠 숲 앞에 토벌을 위한 인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브.”
말 위에 올라타 있던 벤야민이 나를 보고 다가왔다.
얼마 전, 체르니시아 저택을 방문한 벤야민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브?] [미안해, 벤야민. 그동안 네게 숨겼어. 사실 난 체르니시아의…….]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벤야민은 내가 체르니시아의 가주가 되어 다시 나타난 것보다, 내가 알브레히트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왜 돌아온 거야?] [어쩔 수 없었어. 이미 황제에게 들켰으니까.] [그럼 도망을 갔어야지!]벤야민이 그렇게 흥분한 것은 처음 보았다.
[말했잖아. 체르니시아가 내 이름이라고. 가족을 다시 만나고 가문을 복권할 기회인데, 놓칠 수 없었어.] [하지만……!] [충분히 많이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야.]이에 한참을 말이 없던 벤야민이 어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에르빈과 오딜리아는?] [에르와 리아가 왜?] [그 애들의 친부가…….] [에르와 리아는 체르니시아의 아이야.]딱 잘라 말하자, 벤야민 또한 더는 말을 보태지 않았다.
아무튼 그때 이후로 처음 보는 벤야민이었다.
벤야민은 챙이 없는 푸른 베레모와 페르디난트의 문양이 그려진 청색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격식 있게 갖춰 입은 그의 모습은 처음이라 다소 생경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체르니시아의 정복을 차려입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젠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겠네.”
“응?”
“그냥, 누가 봐도 체르니시아라고.”
뜻 모를 벤야민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벤야민과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노라니, 멀찍이서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셀린느 레오브란테였다.
나는 브리안 오빠의 약혼녀인 그 여자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셀린느가 아니었더라면 브리안은 살아남지 못했을 테고, 체르니시아가 이렇게 다시 일어나는 것도 불가했겠지.
설사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셀린느 님.”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가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감사 인사를 표했다.
“브리안 오빠에게 셀린느 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브리안 오빠를 보호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이보네 님.”
그러자 그녀가 온화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셀린느는 테오도르처럼 금색 눈동자를 지녔다. 에르빈의 눈동자와도 닮았다.
“그나저나 이보네 님은 브리안과 정말 닮았군요.”
셀린느가 신기해하며 건넨 말에 나는 짧게 웃으며 대꾸했다.
“어렸을 때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아주 오래전에는 브리안과 닮았다는 말이 치가 떨리게 싫었던 적이 있었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비슷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짓궂은 남혈육과 닮았다는 말에 기뻐할 여동생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숲의 입구에는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마물을 토벌하는 것은 결국 3대 가문의 가주들의 몫이 될 터였다.
장갑을 바로 끼고 허리에 찬 검을 한 번 더 들여다볼 때였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멀리서 요란하게 등장하는 한 남자가 보였다.
차츰 가까워지는 인영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공작새처럼 휘황찬란하게 단장한 테오도르가 검은 말을 타고서 친히 이곳에 나타났다.
‘뭐야? 오늘 테오도르가 온다는 말은 없었잖아.’
나는 당황하여 벤야민과 셀린느를 쳐다보았다.
그들 또한 테오도르의 행차를 듣지 못했는지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황제로서 마땅히 제국민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왔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테오도르는 거만하게 턱 끝을 치켜들며 말했다.
유독 화려하게 치장을 한 탓에 그렇지 않아도 잘생긴 얼굴이 번쩍번쩍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성군이었다고.’
황당하다는 듯한 시선이 테오도르에게 모였다.
아마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2인 1조로 움직이는 게 좋겠군.”
테오도르는 멋대로 벤야민과 셀린느를 한 조로 몰고, 나와 자신을 한 조로 묶었다.
황제가 그렇게 하라는데 감히 나서서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체르니시아의 가주로 서기로 결심한 이상 그와 공적으로 부딪치는 건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각오했기에, 나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테오도르와 말 머리를 나란히 하고서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다지 걱정되지는 않았다. 아르벨라에서 이미 한 번 마물들을 상대해 본 적이 있었으니까.
“이브.”
“…….”
테오도르가 내게 말을 붙여 왔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홰액!
그러나 나는 그의 부름을 무시하고 말의 고삐를 당겼다.
“단단히, 화가 났네…….”
그가 피식 웃으며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테오도르는 내가 제게 화가 난 거라고 믿고 싶은 듯했다.
정작 나는 그에게 쏟는 감정이라면 이제 화를 내는 것조차도 아까운데.
“이브, 내 이야기를 한 번만…….”
뒤늦게 그가 나를 쫓아오며 말하던 때였다.
꾸에엑-?
반대편 수풀 너머에서 마물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곧바로 허리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잠깐, 위험……!”
그러고는 테오도르가 나를 붙잡을 새도 없이, 허공으로 도약하며 마물에게 달려들었다.
푸욱-!
푸른 검기를 두른 검 끝이 마물의 몸을 꿰뚫었다.
꾸웨에에에에에엑!
마물은 듣기 싫은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 갔다.
그 소리에 숲의 소란을 알아챈 마물의 동료들이 하나, 둘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칫.’
나는 마물의 몸에 박아 넣었던 검을 뽑아내며, 몰려드는 마물들을 향해 검을 고쳐 잡았다.
이때였다.
후우웅-
갑자기 사방에서 황금색 빛무리가 여기저기 피어나더니, 서서히 단검의 형태로 변모해 갔다.
숲을 에워싼 여러 개의 빛의 검이 날카롭게 번뜩이며 마물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기세로 날아들었다.
쿠과과과과과과광-!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돌풍이 불었다.
내 몸마저 휩쓸릴 것 같은 기세에, 나는 흙바닥 위로 검을 박으며 간신히 버텼다.
“이브!”
테오도르가 뒤편에서 나를 끌어안으며 붙잡았다.
“괜찮아?”
창백한 얼굴을 한 테오도르가 내게 물었다.
나는 곧바로 그의 손을 쳐 냈다.
“사사로운 접촉은 불편합니다, 폐하.”
“아…….”
그의 손이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나는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공격에 휩쓸린 마물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바닥이 갈라지고 숲이 파괴되어 있었다.
그 놀라운 위력에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새삼 칼리고르 왕성에서 마주쳤을 때, 그가 봐준 것이란 걸 깨달았다.
“미안해, 이브.”
테오도르가 조심스럽게 다시 내게 말을 붙였다.
“그런데 저 미친 것들이 연약한 널…….”
“연약하다니요.”
나는 우물우물 변명하는 테오도르의 말을 끊으며 차갑게 대꾸했다.
“실례되는 말씀을. 저는 폐하께서 친히 임명한 알브레히트의 가장 날카로운 검이 아닙니까.”
“으응, 맞아.”
테오도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느슨하게 눈매를 휘며 웃었다.
“하지만 넌 내게 늘 지켜 주고 싶은 사람인걸.”
“퍽이나요.”
그 애틋한 속삭임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폐하께서 지키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잖아요.”
“……?”
“수년 전 페르디난트가의 약혼녀와 혼전 임신까지 했다고 알고 있는데.”
“어……?”
순간 테오도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싸아악 가셨다.
“폐하께서 줄곧 제게 부르시던 이름, 이브. 그 사람이 궁금해서 나름의 조사를 해 봤는데요.”
나는 부러 나와 이브를 분리하며 말했다.
내가 이브 로웰린과 동일 인물이라는 걸 나도 알고 테오도르도 알기에, 이것은 그저 고약한 말장난이었다.
“폐하의 명으로 카타리나 페르디난트, 그 여자를 지키려다 죽었다면서요. 폐하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폐하의 약혼녀요.”
“…….”
내가 카타리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할 줄은 몰랐던지, 테오도르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입술만 달싹였다.
“이브라는 그 사람, 폐하의 측근 호위였다면서. 측근 호위까지 내어 주어 지켜 주고 싶을 만큼 폐하께 소중했던 사람은 따로 있지 않나요?”
“이브, 잠깐만.”
그가 다소 창백한 표정으로 내 말을 끊으며 변명을 하려고 했다.
“그건 오해가…….”
“그러니 저는 지켜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할 말만 마친 후 곧바로 몸을 돌렸다.
숲에 남은 마물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살필 때였다.
“이브, 이브.”
테오도르가 내 뒤에 따라붙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내 말 좀 한 번만 들어 줘 봐. 사실은…….”
순간 그를 향해 불퉁한 마음이 치솟았다.
과거, 기억을 잃었던 그에게 내가 잠시만 대화를 하자고, 조금만 시간을 내어 달라 했을 때.
그는 어떻게 행동했었나.
[폐하, 제가 드릴 말씀이 있는데……. 주위를 물려 주신다면…….] [당장, 나가!]화를 내며 쫓아냈다.
[폐하.] [어디서 개가 짖는군. 개 소리가 들리지 않나, 아르민?] [폐…….] [정무 회의 시간이군. 가지.]무시하고 외면했다.
[폐하, 제가 드릴 게 있습니다.] [볼 가치도 없는 쓰레기 따위를.]심지어는 내가 꾹꾹 눌러쓴 편지를 찢고 태워 버렸다. 내 눈앞에서.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리려 할 때마다 그 빌어먹을 두통이 밀려오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는 내 말을 전혀 들어 주지 않고 모든 대화를 단절했다.
그런데 왜 나는, 그의 변명을 들어 줘야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