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9_5
설사 우리 사이에 어떤 오해가 있다 할지라도, 내가 왜 그걸 풀어야 하는 거야?
애초에 나와의 관계를 파탄 낸 것은 그가 아닌가?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
나는 주절주절 변명하려는 테오도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내 것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싸늘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테오도르.”
“……!”
내내 폐하라 칭하며 모른 척하던 내가 이름을 부르자, 그가 퍽 놀란 표정으로 굳었다.
“내가 이야기 한 번만 하자고 했을 때.”
그때를 떠올리며 차갑게 물었다.
“넌 어떻게 했었어?”
순간 테오도르가 말을 잃고 멍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
나는 그를 향해 피식, 차가운 조소를 터뜨렸다.
“사적인 이야기는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이곳엔 더 이상 마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군요. 먼저 이동하겠습니다, 폐하.”
나는 그를 두고서 홀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는 떠나는 나를 붙잡지 못했다.
숲 가장자리로 말을 몰던 나는 셀린느와 벤야민을 발견했다.
“이쪽 상황은 어때요?”
“딱히 우리가 할 것도 없겠어요. 폐하의 성력이 여기까지 미쳐서…….”
셀린느가 갈라진 바닥과 나뒹구는 마물들의 사체를 힐긋 가리키며 말했다
“이렇게 공격적인 성력은 처음이에요. 이게 어떻게 신성력이라고 불릴 수 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요?”
“신성력은 본래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에요. 마물을 죽일 수 있는 것도, 그것들이 사람을 해치는 신성하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셀린느가 빛으로 만들어진 긴 창을 내게 보이더니, 마물의 사체를 향해 던졌다.
그녀의 창이 마물의 사체를 통과하고 땅에 박혔다.
검은 사체는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보세요.”
셀린느는 창을 다시 뽑으며 설명했다.
“멀쩡하죠?”
그녀의 창이 박혀 있던 흙바닥에는 작은 자국 하나 남지 않아 있었다.
“어떻게……?”
“치유의 힘이니까요.”
“아…….”
나는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전 숲 안쪽에서 보았던 테오도르의 공격에 갈라졌던 대지를 떠올렸다.
그가 보인 파괴적인 기술들은…… 어떻게 보아도 생명을 치유하는 힘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성력도 주인을 닮아 괴팍한 거 같지요? 솔직히 폐하와 ‘치유’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잖아요.”
셀린느가 목소리를 슬쩍 낮추며 우리에게 동의를 구했다.
나와 벤야민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푸릇한 녹음으로 물든 정원.
세 살에서 네 살가량의 아주 자그마한 아이 둘.
[이고 바, 에르! 리아가 또 불 뿜어써!]아이의 자그마한 손끝 위로 화르르 불꽃이 피어났다.
[우아, 리아 멋있어!]옆에서 다른 아이가 엄지를 치켜들며 외쳤다.
까르륵,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번뜩!
고요히 감겨 있던 눈꺼풀이 들렸다.
선혈처럼 붉은 눈동자에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비쳤다.
[어, 어어어? 에르, 부, 불이……!]돌연 여자아이의 손끝에 피어나 있던 불꽃이 보다 거세게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선연한 붉은빛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리아! 위험해!] [으아앙, 에르……!]놀란 아이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번져 나가는 순간.
‘찾았다.’
남자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나의 제물.’
저 여자아이가, 저를 깨울 제물이 될 것이라는 걸.
짙은 희열감이 남자의 얼굴 위로 번져 나갔다.
* * *
황궁으로 돌아온 테오도르는 뻐근한 눈가를 꾹꾹 눌렀다.
“하…….”
괴로운 숨이 잇새로 터져 나왔다.
돌아온 이브는 조금도 제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으려 했다.
매번 찾아갈 때마다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며 박대를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저택에 있는 걸 뻔히 아는데도 없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울컥 문을 깨부수고 쳐들어가 그녀에게 내 말 좀 들어 달라 외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테오도르는 대단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참아 냈다.
그렇게 했다간…… 가뜩이나 그녀에게 미움받는 중인데, 그녀가 저를 더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
평생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테오도르답지 않은 굉장한 인내였다.
얼핏 정상적으로 보이는 외견과 달리, 그가 반쯤 미쳐 있다는 사실은 측근인 아르민과 린든만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지 않습니까? 이보네 님을 다시 만나기 전까진 한 바퀴 돌아 계셨는데, 지금은 반 바퀴만 돌아 계시지 않습니까? 아, 우리 폐하 말입니다.]테오도르의 두 측근은 종종 그런 대화를 나누었으나, 테오도르는 그들의 불경함을 벌할 정신마저 없었다.
온 정신이 어떻게 해야 이브에게 해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곰곰이 고민하던 테오도르는 불필요한 마물 토벌령을 내렸다.
조금도 제게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 그녀를 저택 밖으로 끌어내려는 나름의 계책이었다.
이번 토벌을 빌미 삼아 어떻게든 그녀와 대화를 하고자 했다.
카타리나와의 일들이 모두 거짓이고 잘못된 오해라는 것을 해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부러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휘황찬란하게 단장을 하고서 나타났다.
오래전의 이브는…… 제 잘생긴 얼굴을 참 많이 좋아했으니까.
그러나 그녀가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을 때.
[내가 이야기 한 번만 하자고 했을 때. 넌 어떻게 했었어?]테오도르는 제게 해명의 자격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악이네…….”
마땅히 탓할 상대 또한 없었다.
모든 일을 자초한 건 저 자신이었으니까.
“넌 정말 최악인 새끼야, 테오도르.”
거칠어진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하던 그의 눈에 문득 책상 위에 올려 둔 검은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새카만 유리판에 비친 제 얼굴이 꼴도 보기 싫다고 느껴졌다.
더 이상 이브에게 사랑받지도 못하는 이 얼굴 따위, 치워 버리고 싶다고 느낀 순간.
오딜리아의 얼굴이 그 위로 슬쩍 겹쳐 떠올랐다.
“아, 오딜리아……!”
테오도르는 저도 모르게 거울 위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손끝이 거울 위로 닿는 동시에, 그의 몸이 스르륵 사라졌다.
조금 뒤.
집무실 구석에 놓인 서랍장 안,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아 먼지 쌓인 나무 상자 속.
그 안에 있던 작은 수정구가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새까맣게 변했다.
오래전 카타리나가 이브를 통해 그에게 전달했던, 바로 그 수정구였다.
그러나 이미 거울을 통해 시공의 공간으로 넘어간 테오도르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 * *
테오도르는 오딜리아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
쭈그려 앉아 흙바닥 위로 낙서를 하던 오딜리아가 힐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이브의 것과 꼭 닮은 그 싱그러운 녹안 위로 테오도르의 얼굴이 비쳤다.
처음 체르니시아 저택에 방문하였다가 쫓겨나다시피 나온 직후, 테오도르는 아르민에게 그녀의 아이들에 대해 조사하라 시켰다.
에르빈 체르니시아.
그리고 오딜리아 체르니시아.
그녀의 성을 물려받은 그녀의 아이들은 서너 살가량의 나이로 추정된다고 했다.
‘어쩌면.’
그녀는 아니라고 했지만, 테오도르는 확신했다.
그녀를 닮은 그녀의 아이들이, 제 아이가 아닐 리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가 훨씬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두근, 두근, 쿵, 쿵, 쿵-!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테오도르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작은 아이를 애틋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아이는 제가 먼저 인사를 건넸음에도, ‘잘샌긴 아조씨, 안넝?’ 하고 인사를 받아 주지 않고 두 눈만 끔뻑거렸다.
이에 테오도르가 고개를 갸웃하며 아이를 불렀다.
“리아?”
그 순간 내내 테오도르를 올려다보던 아이의 얼굴이 험상궂게 변했다.
“조리 가, 지지야!”
오딜리아는 테오도르에게 손을 휘휘 저으며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기 드래곤처럼 험상궂게 올라간 눈꼬리와 다람쥐 용사처럼 앙다문 역삼각형 형태의 입매가 귀엽기 그지없었다.
“잘샌긴 아조씨 지지. 드러워.”
“지지?”
“웅, 지지. 쓰레기. 드러워요.”
“…….”
테오도르는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몸을 쭈그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런 나쁜 말은 누가 알려 줬지?”
“이거 나뿐 말이야?”
오딜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적에 오딜리아의 고개 각도는 조금 전 테오도르가 고개를 갸웃했을 때와 한 치의 차이도 없이 일치했다.
비록 두 사람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몬니가 알려 준 건데…….”
“네 어머니? 이브?”
“어몬니가 아조씨 지지랬어. 아조씨 드럽댔어.”
“아……!”
나직한 탄성과 함께 테오도르의 얼굴 위로 기쁜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브가 내 이야기를 했다고?”
“웅, 드럽고 지지라고 했어.”
“이브가…… 날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
황홀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테오도르를, 오딜리아는 이상한 사람 보듯 보았다.
“……아조씨 쫌 이상한 사람 같아.”
“이브가, 날 계속…….”
오딜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쨔 이상한 사람이야…….”
테오도르는 한참 동안 자신의 감정에 취해 있었다.
오딜리아는 그를 내버려 두고서 흙바닥 위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죽죽 그렸다.
커다란 동그라미 밑에 팔다리처럼 생긴 것이 달려 있었다.
“이건 누구지?”
어느새 오딜리아의 옆에 나란히 앉은 테오도르가 아이의 낙서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고 어몬니, 에르, 리아야.”
오딜리아는 커다란 동그라미 세 개를 하나씩 짚으며 말했다.
그 옆에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네모난 무언가가 하나 더 그려져 있었다.
테오도르가 이번엔 네모난 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이건? 난가?”
“……?”
오딜리아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눈으로 테오도르를 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거 다람찌 욘싼데…….”
“흠?”
테오도르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자세히 보니 네모난 형체 뒤로 구불구불한 선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이 다람쥐의 꼬리인가 보다.
피식.
테오도르는 짧게 웃으며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그렇게 앉으면 바지가 더러워질 테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대신 이제는 익숙해진 공간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바빠서 거울에 대해 조사하지 못했군.’
본래 황궁으로 돌아오면 제일 먼저 그 수상쩍은 검은 거울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이브가 제 앞에 나타나며 온 정신을 빼앗기는 바람에, 거울에 대한 조사를 잠시 멈춘 터였다.
테오도르는 오딜리아를 힐끔 쳐다보았다.
저를 이 공간으로 끌어들인 매개는 그 저주받은 흉물처럼 생긴 검은 거울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오딜리아는 어떻게 된 거지?
“넌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된 거지?”
“몬라(몰라). 리아 에르랑 다람찌 연습하고 있었는데 여기로 왔어.”
“다람쥐 연습?”
“웅, 리아는 불 뿜는 다람찌니까.”
“그렇군.”
테오도르는 직전에 오딜리아와 이곳에서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오딜리아는 스스로가 불도 뿜고 하늘도 나는 다람쥐라고 했었다.
“구론데 리아가 실수로 정원을 태워 버려써.”
‘불장난이라도 한 건가?’
테오도르가 그 말뜻을 이해하려고 콧잔등을 찌푸리는 찰나, 오딜리아가 침울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어몬니가 오시면 화내실 거야. 리아가 정원 망가뜨려서.”
“오시면? 이브가 저택에 돌아오지 않았나?”
마물 토벌은 한참 전에 끝마쳤다. 지금쯤이면 저택에 돌아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어몬니 개물(괴물) 때려잡꾸 친구 만나러 가셨어.”
“친구……?”
이브에게는 친구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몇 안 되는 친구들은 모두 그가 죽이고 싶은 자들이었다.
“웅, 삼쫀. 베냐민 삼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테오도르의 얼굴이 험상궂게 변했다.
“벤야민 페르디난트……. 그자가 왜 네 삼촌이지?”
테오도르가 따지듯이 묻자, 오딜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삼쫀 맞눈데?”
오딜리아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설명했다.
“리아 삼쫀 세 명 있어. 베냐민 삼쫀, 에룽쑤뚜 삼쫀, 브리앙 삼쫀.”
“삼촌은 네 부모의 형제들에게나 쓰는 말이야. 에른스트와 브리안은 삼촌이라 불러도 좋지만, 벤야민 그자는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
“우웅? 베냐민 아조씨?”
“……아니. 아저씨라는 칭호도 아깝군. 그냥 부르지 마.”
“구롬 베냐민 삼쫀이랑 말하구 싶을 땐 어캐(어떡해)?”
“그놈이랑 말을 섞을 이유가 뭐지?”
“리아는 베냐민 삼쫀 조은데…….”
오딜리아가 입술을 삐죽였다. 이에 테오도르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럼, 나는?”
“아조씨? 으음…….”
한참 고민하던 오딜리아는 이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조씨는 잘샌겨써. 구래서 조아. 어몬니가 잘샌긴 아조씨 지지라구 했는데. 구래도 조아. 지지지만 리아가 조아해 주께.”
“…….”
두 눈을 사르르 휘며 웃는 오딜리아는 그가 기억하는 이브의 웃는 얼굴과 참 많이 닮아 있었다.
그래서 테오도르는 오딜리아의 웃는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그럼, 나도 그려 줘.”
“웅?”
“그림. 여기에.”
테오도르가 낙서가 죽죽 그려진 흙바닥을 툭툭 치며 말했다.
“구래!”
오딜리아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그마한 손이 꾸물꾸물 움직이며 흙바닥 위로 그림을 그렸다.
유독 큰 동그라미 밑에 팔과 다리처럼 생긴 것을 죽죽 그렸다.
“요기! 리아가 그렸어! 지지 아조씨!”
그 옆에서 턱을 괸 채 잠잠히 지켜보던 테오도르가 굴러다니는 나뭇가지 하나를 들었다.
그러고는 오딜리아가 그린 자신과 이보네, 오딜리아, 에르빈을 커다란 하트 모양으로 묶었다.
“흠, 이렇게 하니 한결 보기 좋군.”
“이게 뭐야?”
“우리가 가족이라는 증거.”
“가족?”
오딜리아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했다.
“지지 아조씨 왜 리아랑 가족이야?”
그러나 테오도르는 자세한 설명 대신 그저 흐뭇하게 웃을 뿐이었다.
* * *
페르디난트 저택에는 모처럼 손님이 찾아왔다.
3대 가문의 새 가주가 되었다는 여자, 이보네 체르니시아였다.
‘어머, 저 여자는……!’
몇몇 눈썰미 좋은 사용인들은 그녀가 4년 전 벤야민이 데려왔던 손님과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러니까 만삭인 채로 페르디난트 저택에 돌아와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가, 얼마 뒤 다시 저택을 떠났던 그 의문의 여인 말이다.
‘세상에, 그때 그 여자가 체르니시아의…….’
‘그럼 체르니시아의 가주와 우리 주인님이…….’
사용인들은 저희끼리 이보네와 벤야민의 관계를 추측하며 숙덕거렸다.
한편 벤야민은 그런 사용인들을 단속할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마음이 조급하다.
이브가 돌아와 버렸다.
빼도 박도 못하게 알브레히트로, 체르니시아의 가주가 되어.
그녀가 저와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기쁜 일이었으나, 그녀가 본래의 이름을 되찾은 것은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벤야민은 그녀가 제게 의지하길 바랐다.
그래서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제가 쌓아 올린 성탑 안에 가두고자 하였으나, 그녀를 제게서 앗아 간 황제 때문에 모두 망가지고 말았다.
간신히 황제와 그녀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지만 그녀는 이제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으며, 그녀의 주위에는 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생겼다.
벤야민은 그 사실이 끔찍하리만치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건…….
‘테오도르 황제.’
그 남자가 쌍둥이의 생부라는 사실이었다.
카타리나, 그 멍청한 여자의 술식이 깨지면서 황제의 기억이 모두 돌아와 버렸다.
그리고 아마 지금쯤 황제는 이브의 두 아이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제 아이라는 걸 알아봤을까?’
이브는 아이들을 체르니시아의 아이로 키우겠다고 했다.
그러나 황제가 조금만 생각을 더듬으면, 제 아이일 가능성을 발견할 것이다.
물론 이브가 황제를 맹렬히 거부하고 있으니 쉽게 어쩌지 못하겠지만…….
‘황제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잖아.’
벤야민은 그간 제가 보아 온 황제의 기행을 떠올리며 입 안의 여린 살을 꾸욱 깨물었다.
그간 황제가 벌인 정상적이지 않은 일들이 하나씩 생각이 났다.
5년 전 이브를 제게서 뺏어 가기 위해 카타리나의 목에 칼을 들이밀어 협박했던 것.
이브가 죽은 뒤 저택에 난입해서 저질렀던 미친 짓들.
그것들을 떠올릴 때마다 불안함은 커져만 갔다.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데.’
그러나 그의 불안과 달리, 정작 이브는 태평한 표정으로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벤야민을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불쑥 말했다.
“나, 이제 알아. 다람쥐 용사 젤리코.”
“젤리코가 아니라 제리코야.”
이브는 여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무튼.”
벤야민이 막 이제 나도 아이들의 아버지가 될 자격이 생긴 게 아니냐고 물으려던 때였다.
“가주님! 가주님!”
저택의 하인 하나가 헐레벌떡 벤야민에게 뛰어와 외쳤다.
“카, 카타리나 아가씨께서 돌아오셨습니다!”
“……?”
“4년 전에 실종되셨다는 카타리나 아가씨 말입니다! 본인이 카타리나 아가씨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저택을 찾아왔습니다!”
“그게 무슨…….”
갑작스러운 소식에 벤야민은 허락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하인을 탓할 생각도 못 한 채 멍하니 되물었다.
그러나 하인이 들고 온 놀라운 소식은 그뿐이 아니었다.
“그, 그리고……! 그리고……!”
하인은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쩌렁쩌렁 소리쳤다.
“테오도르 황제의 아이와 함께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