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
아카데미가 망했다 1화
아몬이 탄성을 질렀다.
“저곳이 아모니스 아카데미!”
통일 황제, 아모니스 대제가 설립한 종합 교육기관.
수많은 귀족 자제가 입학하길 원하는 유서 깊은 아카데미다.
‘시골 귀족 가문의 차남인 내가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교사가 되다니…….’
둘도 없는 기회였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인 드레이크 남작이 없는 인맥을 쥐어짜 마련한 일자리.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헛되이 날릴 생각은 없었다.
‘귀족 자제들을 열심히 가르쳐 인정받고, 인맥도 착실하게 쌓아서 내 손으로 가문을 일으키겠어!’
굳게 결심한 아몬이 아카데미를 향해 달렸다.
여기까지 며칠을 걷고 달렸건만, 코앞에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없던 힘도 치솟았다.
‘내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열정을 품고 한달음에 정문까지 달려간 아몬은 곧 멈춰 서고 말았다.
‘그런데 아카데미가 왜 이리 어수선하지?’
아카데미의 본관과 별관에서 책상 등 온갖 집기가 실려 나오고 있었다.
때문에 마침 옆을 지나던 인부를 붙잡았다.
“아카데미에 무슨 일 있습니까?”
“응? 소식 못 들었소?”
“예? 소식이요?”
인부가 퉁명스레 말했다.
“이 아카데미, 학교장이 투자에 실패해서 돈을 몽땅 날리고 파산했소!”
털썩-!
아몬은 주저앉고 말았다.
부임 첫날부터 아카데미가 망해 버렸다.
* * *
마침 지나가던 동료 교사가 학교장실로 데려다주며 말했다.
“운영 중단 통보를 못 봤나요?”
“통보요?”
“네, 며칠 전쯤? 워프 게이트와 전령을 통해서 귀족 자제분들과 교사들에게 아카데미의 운영 중단을 연락드렸습니다.”
시골 영지에 워프 게이트가 있을 리 없었다.
‘전령과도 길이 엇갈린 건가.’
하기야 여기까지 오는 데 거의 보름은 걸렸다.
‘그렇다고 연락을 받은 아버지도 나를 부를 사람을 따로 보낼 수는 없으셨겠지. 의전용으로 두어 필 있던 말도 내 제복과 검을 사느라 파셨으니…….’
드레이크 남작가는 가난하다.
말만 ‘남작가’에 ‘영지’다.
아버지인 드레이크 남작부터 농사를 짓고, 영지라 해도 작은 마을과 험한 땅이 전부다.
그렇기에 아카데미의 부임이 결정됐을 때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날듯이 기뻐했건만.
‘……부임 첫날부터 아카데미가 망했다고?’
때문에 마음이 천근만근인데, 학교장실로 안내하는 교사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 설마 농담인가?’
이윽고 걸음을 멈춘 교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여기가 학교장실입니다.”
그럼 슬슬 농담이라고 해 주세요.
“전 이만 가 볼 테니 수고해요.”
“예? 어, 어디 가십니까?”
“저는 오늘 퇴직하거든요.”
동료, 아니지. 동료였던 것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라지고,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퇴직자였구나.’
어쩐지 표정이 이상할 정도로 밝다 했다.
“휴우우…….”
묵직한 한숨을 토한 아몬이 학교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곧이어 들려온 맑은 목소리.
“들어오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문을 연 아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엘프?’
초록빛 눈동자의 아름다운 엘프가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명문, 아모니스 아카데미.
그런 곳에 급하게 취직이 결정돼서 학교장이 누구인지 등, 이것저것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학교장이 엘프였구나.’
턱을 괸 채 싱긋 웃은 엘프가 말했다.
“혹시, 오늘 부임하기로 한 아몬 선생님?”
“아, 예. 그렇습니다.”
“역시. 자, 자. 얼른 와서 앉아요.”
얼떨떨한 얼굴로 맞은편 자리에 앉자 엘프가 말했다.
“반가워요. 학교장인 아나르엘이에요.”
“……드레이크 남작가의 아몬입니다.”
“네, 네. 그보다 잠시만요. 급하게 보던 것만 마저 볼게요.”
학교장이 웬 잡지를 펼치더니 귀를 쫑긋거리며 읽기 시작했다.
‘……잡지? 문자가 공용어는 아니고, 엘프의 언어인가?’
펜을 끄적거리며 잡지를 읽던 학교장이 말했다.
“아몬 선생님?”
“예?”
“조우지조우, 스틸슬러그. 뭐가 더 좋아요?”
“……그게 뭔데요?”
“그냥 어감만으로, 뭐가 더 좋은지만 말해 봐요.”
눈살을 찌푸린 아몬이 툭 내뱉었다.
“스틸슬러그?”
“그럼 스틸슬러그에 금화 10개.”
그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설마 그거 경마 잡지입니까!?”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아나르엘이 분노한 듯 귀를 꼿꼿이 세웠다.
“경마라뇨! 고귀한 엘프가 어찌 그런 야만스러운 일을 하겠어요?”
“그, 그렇죠? 아니죠?”
“그럼요!”
아나르엘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경주 달팽이에요!”
“예? 뭐요?”
“몰라요? 거대 달팽이들이 세계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경기인데, 요즘 엘프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거든요!”
그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에 ‘투자를 실패해 아카데미가 망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투, 투자 실패로 아카데미가 망했다는 말이 있던데요? 밖에서 짐도 다 빼고 있더라고요.”
“일단은 그렇죠.”
일단은, 이라는 말에 욕이 목젖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누르며 말했다.
“……지금 상황이 정확히 어떤데요?”
“음, 일단 황실에서 운영 중단을 권고했어요. 그 때문에 학생들과 교사 대부분이 이탈했어요.”
“대부분? 전부가 아니라요?”
“네, 아카데미의 특성상 황실의 권고를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할 필요는 없거든요. 때문에 남아 있는 교사와 학생이 있죠. 그러니까 운영 중단이라곤 해도 아카데미의 활동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그래서 ‘일단은’이라는 거구나.
“그럼 교사와 학생이 얼마나 남았죠?”
“교사는 셋이요.”
“저를 포함하면 넷이군요.”
“선생님을 포함해서 셋이에요.”
갑자기 왜 뒷목이 아프지?
“그, 그럼 학생은요?”
“둘이요.”
못 참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일단이 아니라 망한 거 맞잖아요! 뭔 학생이 교사보다 적어요!?”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러요?”
“소리 안 지르게 생겼어요!?”
미간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그, 그래. 운영 중단 권고를 내렸다니 황실에서 더 이상 지원금을 하사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운영비가 조금은 남아 있겠죠?”
그 말에 학교장이 슬그머니 경주 달팽이 잡지를 뒤로 감췄다.
“……설마.”
“……따서 갚으면 돼요.”
냅다 잡지를 뺏었다.
“무, 무슨 짓이에요!”
“그러는 당신은 무슨 짓입니까! 아카데미 운영비를 빼서 노름을 해!? 그러고도 당신이 학교장이야!?”
“스틸슬러그! 스틸슬러그가 이기면 50배는 불릴 수 있다고요!”
“이길 가능성이 낮다는 거잖아요!”
잡지를 찢어 버리자 학교장이 울부짖었다.
“안 돼애애!”
오열하는 학교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포기하십쇼. 그따위 노름에 운영비를 쓰는 건 용납 못합니다.”
“아흐흑! 그 잡지 가져가야 사은품 받을 수 있는데…….”
미쳤구나. 단단히 미쳤어.
“그, 그리고 그거 따야 투자할 수 있는데…….”
“투자? 그건 또 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아카데미, 학교장이 투자를 실패해서 돈 날리고 파산했소!’
인부가 했던 말.
그래, 아카데미는 노름 때문에 망한 게 아니었다.
“무, 무슨 투자요?”
그래, 투자. 잘만 하면 좋지.
학교장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되물었다.
“무슨 투자요? 뭘 투자하려 했어요?”
“훌쩍! 딴 돈으로 드래곤바나나 과수원에 투자하려 했는데…….”
“……드래곤바나나?”
그거 싹 피는 데 3년, 열매 맺히는 데 12년이 걸리는 최고급 작물 아닌가?
아나르엘이 훌쩍거리며 외쳤다.
“겨우 15년만 기다리면 아카데미 운영금을 열 배는 불릴 수 있다고요!”
엘프의 15년.
인간의 15년.
“이 빡통아!”
비로소 아카데미가 투자로 망한 이유를 깨달은 아몬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참아 왔던 비명을 내질렀다.
* * *
‘이대론 안 돼.’
혼자선 도무지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도 동료 교사가 둘이 있으니까, 이 난관을 헤쳐 나갈 해결책을 함께 찾아보자.’
교사끼리 작당해 권력을 탈취하건,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교직원실. 여기 다른 교사들이 있다고 했지?’
얼른 문을 열며 말했다.
“계십니…… 이게 뭔 냄새야.”
교직원실을 가득 채운 술 냄새.
그 중심에 웬 중년인이 배를 북북 긁으며 졸고 있었다.
‘……저게 내 선배 교사?’
아닐 거다. 아니여야 한다.
그저 웬 주정뱅이가 여기까지 기어 들어와서 자고 있는 것뿐이다.
손을 떨며 그를 흔들어 깨웠다.
“어, 딸꾹! 뭐요?”
“아저씨, 여기서 자면 안 돼요. 집 가서 자세요.”
“흠냐, 뭔 소리요? 나 여기 선생이야.”
“아, 이런 씨…….”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발’소리를 참아 낸 아몬은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황실이 운영 중단 권고를 내렸는데 꾸역꾸역 남은 교사가 제정신일 리 없었다.
‘그, 그럼 나머지 한 명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이곳엔 다른 사람이 없다.
즉 나머지 한 명이 유일한 희망!
얼른 문을 박차고 나갔다.
‘누구 없나? 인기척이…… 찾았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제3 강의실.
그곳으로 들어간 아몬은 그대로 허물어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교사로 보이는 여인이 교탁에 누워 이불까지 덮은 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학교장도, 교사들도 하나같이 미친것들뿐이야.’
명문,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취직이 결정됐을 때 얼마나 기뻐했던가.
‘기뻐했던 나를 한 대 쥐어박고 싶군.’
그러고 보니 책장 뒤에서 가지 마, 가지 마 하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남은 건 학생뿐인가?’
행복 회로를 힘껏 불태웠다.
‘유력 귀족의 자제가 혹시 모를 사정 때문에 남아 있는 걸지도 몰라.’
정말 그렇다면, 학생을 잘 가르쳐 두면 연줄을 만들 수 있으리라.
‘그래, 그게 유일한 희망이다. 이 지옥 같은 낭떠러지에서 날 끌어 올려 줄 유일한 희망이야.’
물론 자기 세뇌를 하면서도 아몬은 큰 기대를 않았다.
그리고 학생 두 명이 모여 있다는 기숙사로 들어간 아몬이 활짝 웃었다.
‘그럼 그렇지!’
초라한 행색의 소년과 소녀, 두 학생이 이쪽을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내 인생이 그렇게 잘 풀릴 리가 없지!’
하지만 운명의 여신님, 여태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뒤통수를 쳤으면 이번 한 번만큼은 제게 희망을 줘도 되지 않았을까요?
허탈감으로 미쳐버린 아몬이 부드럽게 웃으며 학생들을 바라봤다.
“오늘 새로 부임한 아몬 드레이크란다. 너희들이 남은 학생들이니?”
“……네, 선생님.”
불안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두 학생.
아이들을 보며 물었다.
“이름이 뭐니?”
“저는 보리스예요.”
“저, 저는 클로에예요.”
“그렇구나. 둘은 왜 돌아가지 않았니?”
보리스가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돌아갈 곳이 없어요. 마을이 재작년에 사라졌거든요.”
“저런.”
평민의 아이였구나. 코가 시큰해졌다.
“클로에는 왜 돌아가지 않았니?”
“저, 저는 아란 왕국에서 유학을 왔는데요…….”
“아아아…….”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아란 왕국은 작년쯤 전쟁에 패배해 사라졌다.
이로써 학생을 통해 이 절망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졌다.
“그렇구나. 이리로 오렴.”
쭈뼛거리며 다가온 녀석들을 품에 끌어안은 아몬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 걱정할 필요 없단다.”
“…….”
“선생님이 왔으니까.”
“흑!”
여태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 녀석들의 등을 토닥여 주며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나도 비슷한 처지란다.’
마음 같아선 다 집어치우고 영지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취직 의사를 보낼 때 ‘3년’ 동안 성실하게 교사의 직무를 수행하겠다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반하면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그러니까…….’
아몬이 눈을 번쩍 빛냈다.
“너희들은 아무 걱정 마렴.”
“흐흑, 으아앙!”
우리 영지로 같이 데려가 줄게.
‘그리 풍족한 곳은 아니지만, 미친 학교장과 미친 교사들이 있는 여기보다는 나을 거란다!’
이윽고 학생들이 진정하자 아몬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미친 학교장이 있는 집무실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이 방법밖에 없다.”
계약서고 뭐고 다 해결할 방법은 단 하나.
그래, 유일한 구원.
아몬이 눈을 희번덕 빛내며 웃었다.
‘아카데미를 망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