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0)
아카데미가 망했다 10화
이른 아침.
아몬은 자신에게 온 편지를 발견했다.
‘응? 아버지가 보낸 편지네?’
서둘러 열어 봤다.
[아몬, 잘 지내느냐? 네가 아카데미로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구나.]평범하게 시작된 편지에는 다행히 영지에는 별일이 없다, 일에 적응되면 얼굴이나 한번 비추라는 등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편지 마지막에 적힌 날짜.
‘두 달 전? 우리 영지가 멀긴 멀구나. 편지가 오는데 두 달이 걸려?’
즉 아몬이 영지를 떠난 지 벌써 삼 개월이나 지났다는 뜻이다.
아니, 여기까지 오는데 이 주 정도 걸렸던 걸 감안하면 대충 100일쯤 될 것이다.
“100일…… 벌써 그렇게 됐나?”
경진대회가 머지않은 시점.
‘대회가 끝나면 휴가를 내서라도 영지에 한번 다녀와야겠네.’
오전 수업을 위해 연무장으로 향하던 아몬이 문득 회상에 잠겼다.
100일.
참으로 다사다난한 나날이었다.
‘학교장님, 투자의 첫 번째 분기 배당금이 왔다면서요? 얼마나 왔죠?’
‘……휴, 생각보다 적어요.’
‘서류 줘 보세요.’
아나르엘은 금세 진실을 고했다.
‘대체 왜 뻔히 들통날 거짓말을……!’
‘부, 부학교장이 어떻게든 식당 설비에 투자할 돈을 빼돌리라고 해서…….’
‘막는다면서요! 믿어 달라면서요!’
‘소, 솔직히 브레슬이 눈 돌아가면 너무 무섭다고요!’
아나르엘의 힘으로는 부학교장의 야욕을 막기엔 무리였나 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부학교장에게 따졌더니.
‘여유 자금이 있다면 식사 개선에 힘쓰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깟!’
‘지금 주방장이랑 잡일꾼 포함해도 총원이 10명밖에 안 됩니다! 지금 이곳 건물에 먼지만 쌓여 가고 있는데 무슨 식사 개선이냐고요!’
‘그럼 청소부도 추가로 고용하면 되겠습니깍!’
말이 안 통한다.
때문에 아몬은 인질을 꺼냈다.
‘보이십니까?’
‘키, 킹오브망고……!’
‘농장에서 배당금과 함께 보낸 겁니다. 학교장님이 몰래 숨겨 놨다더군요.’
‘그 망할 학교장이 감히……!’
킹오브망고를 인질로 삼고 부학교장의 원대한 꿈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동료 교사들!
‘슬로스 선배님, 한동안 좀 성실해지셨나 싶었는데 이러깁니까?’
‘내가 뭘 어쨌는데?’
‘일단 침낭에서 나오고 말씀하시죠?’
마리온의 경우.
‘거어억! 어, 술맛 좋탸! 그래서 파이어 볼은 말이지!’
슬로스가 ‘잠깐’ 성실해진 와중에도 술에 취해 강의를 하는 마리온!
강의 자체는 멀쩡하게 하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죽는다더니, 이 망할 인간들은 천년만년 살겠군.’
그야말로 최악의 교육 환경!
하지만 아몬은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놓지 않았다.
“……얘들아.”
수업 시간임에도, 늘 그렇듯 나타나지 않은 슬로스 때문에 아몬이 눈물을 흘리며 보리스와 클로에를 끌어안았다.
“믿을 건 너희밖에 없구나…….”
“우, 울지 마세요.”
“이 미친 마귀 소굴 속에서 우리들만이 정상이란다…….”
보리스와 클로에가 아몬의 등을 조용히 토닥거렸다.
이윽고 진정한 아몬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오늘 특별 수업은 기대하렴.”
보리스가 눈을 빛냈다.
“휴식인가요?”
클로에도 눈을 빛냈다.
“휴식이군요!”
아몬도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니! 투기장에 갈 거란다! 거기서 선수로 한번 뛰어 보자!”
“……선생님도 정상은 아니에요.”
“뭐? 내가 왜?”
* * *
점심시간.
마리온이 펄쩍 뛰었다.
“애들을 투기장에서 선수로 뛰게 하자? 그게 뭔 미친 소린가?”
“아니, 들어 보세요.”
“그래, 무슨 미친 소리인지 한번 들어나 보세.”
설명을 시작했다.
“둘의 체력과 실력이 부쩍 늘어난 건 아시죠?”
“음, 좀 많이 늘긴 했지.”
애초에 보리스와 클로에는 근성도 좋고 노력파였다.
100일 동안 나름 필사적으로 단련했기에 연무장 수십 바퀴는 쉬지 않고 달릴 정도였다.
게다가 ‘잠깐’ 성실해진 슬로스가 꽤 열심히 가르쳤기에 검술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진 상황.
“그런데 문제는, 둘 다 자신감이 너무 없어요.”
“……음, 그건 그렇지.”
“보리스는 출세하겠다는 목표가 있어서 그나마 나은 편이죠. 하지만 클로에는 몇 개월간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3초 이상 눈을 못 마주치더라고요. 얼굴이 벌게져선 눈을 피하더라니까요?”
마리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음…… 그렇게 심했나?”
“예. 아무튼 보리스가 그나마 나은 편이라곤 했지만, 솔직히 제가 보기엔 녀석도 자신감이 없는 건 마찬가지예요.”
“하긴…… 사내 녀석치곤 숫기가 없긴 해!”
“제 말이요!”
몬스터를 감자밭과 울타리를 부수는 고라니, 멧돼지쯤으로 생각하는 아몬!
군인으로서 수많은 전투에 나선 배틀메이지인 마리온!
자신감에 대한 그들의 기준은 턱없이 높았다.
“사내라면 맨손으로 오크랑 개싸움 정도는 해 봤어야지!”
“그럼요! 오크, 그거 별것도 없더라고요!”
“……진짜 해 본건가?”
“안 해 봤어요?”
“…….”
느닷없이 냉정함이 돌아온 마리온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근데 잘 생각해 보니, 투기장은 좀 심한 것 같은데…….”
“아, 말이 투기장이지…… 거기 있잖아요? 거기.”
“거기? 설마 그 술집……?”
몇 개월간 둘은 조금 가까워졌다.
술을 좋아하는 마리온이고, 아몬도 술을 싫어하진 않으니 수업이 끝난 후 종종 둘이서 한잔하러 다녔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이 말하는 ‘술집’의 중앙엔 철창이 있고, 싸움꾼들이 그 안에서 혈투를 벌인다!
술손님들은 돈을 걸고 일확천금의 꿈을 꾼다!
즉 그곳은!
“……노름판이잖아.”
“하지만 투기장이죠?”
“그, 그렇긴 한데…….”
“우선 장점이 세 개 있어요. 거기 싸움꾼들 수준은 낮다.”
그곳의 단골인 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곳 수준이 낮긴 해.”
“예. 보리스와 클로에도 긴장만 안 하면 이길 수 있을 걸요? 즉 자신이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겠죠. 그리고 두 번째, 시선이 집중되는 곳이다.”
“……경진대회의 관객이 보내는 시선의 중압감에 대한 대비도 되겠군.”
아몬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마리온 선배님이 그곳의 단골이니 살살해 달라고 슬쩍 귀띔해 줄 수 있다.”
“호오, 그것도 그렇군.”
한때 군대에 속한 배틀메이지인 데다 전쟁 영웅인 마리온!
게다가 그 술집의 단골이라 마리온은 그곳 사람이라면 다 아는 명물이다.
즉 말이 귀띔이지, 살살 안 하면 화염 마법으로 구워 버리겠다는 ‘협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습니까? 제 계획이.”
“생각보다 멀쩡한 계획이로군! 그런데 단점은 없나?”
아몬이 피식 웃었다.
“사소하고 가능성이 낮은 단점이 딱 하나 있죠.”
“음? 뭔가?”
“여기서 트라우마가 생기면 그야말로 X된다는 거요.”
“……사소하고 가능성이 낮은 것 확실한가?”
“……그러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계획에는 위험요소가 있는 법!
두 사람은 희희낙락하며 슬로스에게 계획을 검토받으러 향했다.
그리고 정강이를 걷어차였다.
* * *
슬로스는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이곳 아무르가 작은 곳은 아니니만큼 경비를 위해 주둔하는 병력만 해도 백여 명에 달한다.
게다가 일류는 아니지만 기사단도 하나 머무르고 있다.
“그런 뒷골목 싸움꾼들과 싸우게 하느니, 공인된 병사들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게 모양새가 더 좋지 않겠어? 아카데미인 이상 남들에게 보이는 것도 중요하잖아.”
구구절절 옳은 말.
물론 병사들이 한가한 것도 아닐 텐데 도움을 주겠냐는 의문이 있지만, 슬로스는 ‘피드 후작가의 증표’를 보여 주는 걸로 대답을 마쳤다.
아카데미의 교사이자 후작가의 자제분께서 까라면 까야지 뭐 어쩌겠는가.
“음, 이런 좋은 방법이…….”
마리온이 감탄하고, 아몬도 납득했다.
“이러면 제 계획의 사소하고 앙증맞은 단점이 싹 해소되는군요.”
도시를 지키는 병사들!
뒷골목 싸움꾼보단 친숙한 존재들이니 트라우마가 생길 가능성도 낮으리라!
“둘 다 교사 맞아? 학생을 노름판에 밀어 넣으려고 하고.”
“으음, 면목 없군.”
아무튼, 하고 어깨를 으쓱인 슬로스가 후작가의 증표를 던져 주며 말했다.
“그럼 다녀와. 나는 쉬고 있을 테니까.”
“만날 쉬시면서 뭘…… 그런데 이거 막 빌려줘도 되는 겁니까?”
“응, 가지고 도망쳐도 돼.”
“호오…….”
출세 길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도?
“다만 피드 후작가의 이름을 멋대로 쓰거나 사칭하고 다니면, 그 죄는 알아서 감당하고.”
“……에이, 안 그럽니다.”
증표를 챙기며 넌지시 물어봤다.
“정말 같이 안 가요? 좀 같이 가 주시지.”
“증표 빌려준 걸로 내 할일은 다 한 것 같은데?”
“하지만…….”
그때 마리온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됐네, 아몬. 우리끼리 가지.”
“음…… 알겠습니다.”
하여간 게을러 빠져 가지고.
잠시 후, 투기장에 간다는 말을 듣고 와들와들 떨고 있는 보리스와 클로에를 소를 도살장에 밀어 넣듯 아카데미 밖으로 끌고 갔다.
* * *
경비 초소에 도착한 보리스와 클로에의 얼굴은 썩어 있었다.
“대체 왜 투기장에 간다는 거짓말을…….”
심사숙고 끝에 대답했다.
“그야…… 재밌으니까?”
“선생님!”
“농담이다, 농담. 사실 거짓말이라기보단 도중에 계획이 바뀐 거야.”
“……그럼 원래는 투기장에 가는 게 진짜였어요?”
“응.”
차라리 거짓말이었던 게 훨씬 인간적인 진실이었다.
곧이어 아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하여간 병사들과 대련해 보면 실력이 부쩍 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거다. 자신감도 붙겠지.”
“…….”
“만약 못할 것 같다면, 지금 말하렴.”
둘 다 머뭇거리자 아몬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못할 것 같다고 탓하진 않을 거란다. 다만 확실한 건, 현재로썬 이 방법만이 유일하단다.”
“…….”
“너희 둘만의 대련으론 자신감이 붙을 수 없을 거고, 슬로스 선생님과 대련하는 걸로도 자신감이 붙긴 어렵겠지. 내가 상대방을 이겼다고 확신할 수 있는 ‘승리’는 없을 테니까.”
“…….”
“어떡하겠니?”
한참의 침묵.
먼저 그 침묵을 깬 것은 클로에였다.
“서, 선생님 말씀이 그렇다면 한번 해 볼게요.”
“오오! 클로에!”
클로에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 난 네가 자랑스럽단다!”
“…….”
“좋아! 그럼 보리스는?”
한 발짝 먼저 용기를 낸 클로에의 모습에 보리스도 결국 대답했다.
“네, 해 볼게요.”
“아주 좋아! 내 자랑스러운 제자들아!”
잠시 후, 용건의 전달이 끝났는지 마리온이 근무가 아닌 병사들과 경비대장을 데리고 왔다.
“이야기가 잘됐나 보군요?”
“슬로스의 요청도 있거니와, 학생의 교육 차원이라니 흔쾌히 들어주더군. 애초에 우리 아카데미는 도시 아무르의 명물이잖나.”
“그 명물은 망한 지 오래지만요.”
“하하! 자네는 항상 한마디가 많아! 그 괘씸한 입이 이건가?”
“즈승흠느드, 슨브늠.”
이윽고 사전에 누가 나설지 이야기가 끝난 모양인지, 병사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듬직한 체격에 위압적인 외모!
병사 중에서도 힘 좀 쓰는 듯했다.
“자, 보리스. 클로에. 누가 먼저 해 볼래?”
먼저 용기를 냈던 클로에에게 질 수 없다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보리스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제가 먼저 할게요.”
“좋아! 열심히 하렴!”
아몬이 병사를 바라봤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브래드입니다, 선생님.”
“예, 브래드 님. 조심 좀 부탁드립니다.”
병사가 껄껄 웃었다.
“하하! 걱정 마십시오. 적당히 힘 조절을 할 테니까요.”
“하하하! 아뇨, 조심하시라는 뜻인데요?”
“……예?”
빙그레 웃은 아몬이 손을 휙 흔들었다.
“그럼 시작!”
신호가 떨어진 순간.
타앙-!
지면을 박찬 보리스가 화살처럼 병사를 향해 쏘아졌다.
‘……빠, 빠르다!?’
연무장을 쉼 없이 수십 바퀴를 달리는 하체가 만들어 낸 가속!
재빠르게 날아든 보리스의 검에 브래드가 황급히 목검을 휘둘렀지만, 별안간 보리스의 검이 공중에서 그 궤적을 날렵하게 바꾼다.
‘뭐, 뭣!?’
슬로스가 가르친 피드 후작가의 검술.
물론 핵심, 비전은 모두 빠져 있다.
그러나 눈속임과 공격 수법 등은 꽤 열심히 가르친 모양이었다.
빡-!
브래드의 가슴팍에 적중한 보리스의 공격.
아몬이 손가락을 하나 폈다.
“한 번. 정확하게 심장입니다.”
“……큭!”
브래드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 이제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진작 그러시라니깐.”
곧 다시 시작된 대련.
빡-!
“두 번.”
빡-!
“세 번.”
빠바박-!
“오, 연속 공격!”
그리고 아몬의 양손이 다 펴졌을 때쯤, 브래드가 냅다 주저앉았다.
“그, 그만! 졌습니다!”
브래드가 패배를 인정하자 대련을 지켜보던 병사들이 환성을 질렀다.
“와! 도련님, 멋지다!”
“브래드! 나가 죽어라!”
보리스를 향한 감탄과 브래드를 향한 욕설!
그 중심에 선 채 헐떡이며 숨을 고르던 보리스가 몸을 떨었다.
“내, 내가 어른을 상대로, 그것도 병사를 상대로 이겼어……?”
첫 대련. 첫 승리.
그 흥분을 곱씹는 와중 아몬이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어때? 자신감이 좀 생길 것 같아?”
입술을 꼭 깨문 보리스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 번의 승리가 사람을 바꾸는 법이지.’
승리에 대한 흥분으로 다리를 덜덜 떠는 보리스를 보며 빙그레 웃은 아몬이 고개를 돌렸다.
“클로에! 이번엔 네 차례다!”
아몬의 외침과 동시에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클로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무수한 시선을 받은 클로에는.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그 광경을 본 아몬은 직감했다.
‘X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