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01)
아카데미가 망했다 101화
“아버지, 그런데 말이죠.”
얻어맞아 온통 욱신거리는 등짝을 부여잡은 아몬이 말했다.
“우리 영지에서 나는 감자가 이상한 것 같아요.”
“뭐? 감자가 이상하다고?”
대번에 아버지, 카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설마 지난번에 아카데미로 가져간 감자를 먹고 누가 탈이라도 난 게냐?”
“예?”
“그럼 큰일인데. 지금 저장해 둔 감자가 그 시기 때 거둔 것일 텐데, 먹고 탈이 났으면 한번 창고를 통째로 뒤집어엎어서 점검을…….”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
손사래를 친 아몬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우리 영지 감자는 마나가 충만하다!
먹은 사람들 하나같이 힘이 불끈불끈, 원기가 왕성해졌다!
그 설명을 들은 카임이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가져간 감자에 약이라도 탔느냐?”
“아들을 뭐로 보시고…… 아무튼 이상하다 싶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흠, 이상할 게 있나? 에덴에서 사 온 씨감자를 그대로 심은 건데.”
“그렇죠? 이상할 게 없긴 해요.”
문득 카임이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하고 운을 뗀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씨감자를 사 와 심었던 것도 네 덕분 아니더냐?”
“예? 뭐가 말입니까?”
“원래 우리 영지에선 주로 호밀을 재배했었다.”
호밀로 만든 검은 빵의 텁텁한 맛이 입에 감도는 것 같은 기분에 아몬이 떨떠름하게 웃었다.
“그런데 네가 책에서 봤다며, 감자를 심고 기르자고 하더구나.”
“제가요?”
“그래. 감자와 호밀을 함께 기르면 땅에 좋다던가? 감자는 땅을 뒤엎는 작물이고 호밀은 땅을 덮어 주는 작물이라며 같이 재배하자고 했었다.”
“……제가요?”
“기억 안 나느냐?”
“예…….”
실제로도 호밀과 감자라는 작물은 궁합이 잘 맞다.
토양 보존도 되고 노동력도 절감할 수 있다.
그렇기에 드레이크 영지에선 아직도 감자에 앞서 호밀을 재배하곤 했다.
“씨감자도 네가 골랐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또 말하는 거지만, 제가요?”
“워낙 어릴 때라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구나.”
어깨를 으쓱인 카임이 말했다.
“아무튼 에덴에서 사 온 감자인데, 특별할 게 뭐가 있을까? 착각이라도 한 것 아니겠느냐?”
“착각…….”
아몬은 애써 말을 삼켰다.
이럴 땐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기는 게 옳으리라.
하지만 아버지에게 당부는 받아야 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감자는 밖에 내보내지 마세요.”
“그건 장담할 수 있단다. 밖으로 내보낼 물량 자체가 없으니까.”
“다행이지만, 참으로 슬픈 이유군요.”
지금 당장 드레이크 영지에선 감자가 주식이다.
그것도 호밀과 섞어서 먹는 게 장려될 정도로 양이 모자란다.
이곳 사람들이 괜히 몬스터를 사냥해 배에 기름칠을 하는 게 아니었다.
“아무튼 에덴이 발전해서 사정이 좀 나아져도, 감자는 밖으로 내보내지 마세요. 앞서 말했듯 혹시 모르니까요.”
“에덴이 발전하면, 감자를 안 기르지 않을까……?”
“그, 그렇군요.”
* * *
당장 감자에 대한 의문을 푸는 건 힘들어 보였다.
때문에 아몬은 두 번째 안건을 해결하기 위해 아버지의 서재에 보관된 가문의 실록을 읽고 있었다.
‘전에 읽었을 땐 워낙 어처구니없는 내용이라 낯부끄러워서 훌훌 읽고 넘겼지만, 이번엔 달라. 조금이라도 선대의 악연에 대해 잘 알아 둬야지.’
때문에 아몬은 논문을 읽는 심정으로 실록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를 읽었을까.
[아모니스 4세께서 말씀하시길, 레드메인 공작의 걸출함에 빗대어 드레이크 대공의 미흡함을 지적하시니 드레이크 대공께서는 “저 X놈의 자식이 황태자 자식 땐 형님, 선배님 하며 따르더니 황제 되자마자 X같아졌다.”라고 하시니, 황제께서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붉어지시어 “누가 널 형님이라…….”]아몬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응? 선대랑 황제 가문이랑 황태자 시절에는 사이가 좋았던 거야?’
의문에 잠겨 있던 아몬이 다시 차근차근 실록을 읽기 시작했다.
[아모니스 8세께서 펜도리안 백작을 크게 치하하시며 말씀하시길 “저 어릴 때부터 상종 못할 자식인 드레이크 후작 저 XX 작위를 뺏어서 얘한테 줄까 보다.”하시니, 드레이크 후작이 말하기를 “까놓고 저 위로 가면 같은 배에서 나온 입장인데 내가 상종 못할 자식이면, 내가 너보단 나이가 많으니 필시 네가 어디서 주워 온 잡놈의 자식이겠구나.”하시니, 크게 분개하시어…….]아몬이 눈을 질끈 감은 채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다시 봐도 낯부끄럽기 짝이 없는 내용이다.
‘펜도리안 공작가도 실록 비슷한 게 있을 거 아냐. 그럼 이런 내용이 적혀 있을 텐데…… 나 너무 부끄러워. 이러면 내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아.’
하여튼 조상인 드레이크 후작이 말하는 내용은, 형들이 어린 동생을 놀릴 때 으레 써먹는 내용과 닮아 있었다.
[……황제께서 드레이크 후작 부인의 뺨을 때리시니, 드레이크 후작 부인의 매서운 반격에 황제가 앓아누우시어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이런 뜻인가 하며 사관들이 쑥덕거리더라.]아니, 이제 보니 형도 아니라 누나셨다.
‘드레이크 후작 부인께선 입이 참 험하셨군. 그나저나 눈치를 보아하니 이번에도 젊은 시절엔 서로 친했던 것 같은데……?’
젊을 때 친하지 않았다면 어릴 때를 운운할 이유가 없었다.
하여간 그 이후로도 젊은 시절엔 나름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중 화룡점정은 아몬의 할아버지 대의 내용이었다.
[드레이크 자작의 후계자인 벨리알 드레이크가 산드리오 황태자께서 아껴 드시던 소시지를 뺏어 먹었다. 황태자께서 어찌나 서럽게 우시는지, 만찬회에 참석한 뭇 귀족들이 한탄을 금치 못하더라.] [그럼에도 워낙 깊은 우애로 인해 둘은 화해를 하였으나, 황제께서 드레이크 자작의 오만한 꼴을 두 눈 뜨고 좌시하지 못하시어…….]결국 당사자인 둘은 화해를 하였으나, 자식 싸움이 부모 싸움으로 크게 번져 버려 현재의 드레이크 가문은 ‘남작 가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근데 이건 아무리 봐도 할아버지가 잘못했네. 소시지를 뺏어 먹어?’
쯧쯧 혀를 찬 아몬이 고개를 흔들었다.
‘소시지는 못 참지! 할아버지, 이건 당신께서 크게 잘못하신 겁니다!’
곧이어 실록을 덮은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낱같은 희망의 햇살이 비추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실록을 보면, 대대로 황태자와는 나쁘지 않은 관계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황제로 즉위한 후로 조상님들과 개처럼 싸우기 시작한 거고. 보나마나 황제라는 만인지상의 자리가 사람을 타락하게 만든 거겠지.’
그렇다면 아직까진 되돌릴 여지가 있지 않을까?
‘드레이크 가문과 아모니스 가문 간의 악연을 이번 대에서 끊을 수 있을지도 몰라.’
자신은 조상들과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으리라.
지금부터라도 황태자와 깊은 우애를 나누고, 그가 황위에 오를 때까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갑자기 어느 누구 하나가 미치지 않는 이상, 관계가 뒤틀릴 일은 없겠지.’
아몬은 굳게 다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황태자와 친하게 지내자.”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근데 황태자를 어디서 찾지……?”
* * *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게 이런 뜻이었군.’
카이가 쓴 미소를 머금었다.
‘여태 아몬 선배를 돕고 싶었지만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는데, 영지 바로 아래에 그런 도시가 있었다니.’
이후로도 여유가 되면 이따금 에덴에 투자할 작정이었으니, 앞으로는 참전을 다짐할 때 보았던 슬픔에 젖은 아몬을 볼일은 없으리라.
후련한 얼굴로 기지개를 켠 카이가 문득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그가 눈살을 찌푸린 채 귀를 후비적거렸다.
“갑자기 귀가 왜 이리 가렵지?”
* * *
“아버지, 혹시 황태자 전하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밥숟가락을 뜨다 말고 던져진 질문에 카임이 눈을 가늘게 떴다.
“황태자 전하? 웬 난데없는 질문이냐?”
“예전에 뵌 적 없으신가 해서요.”
선조께선 대대로 황태자와는 관계를 돈독히 했다는데 말입니다.
“내 예전에 말하지 않았더냐. 내 아버지, 그러니까 네 할아버지께서 황제 폐하와 완전히 척을 진 상황이셨다고. 그리고 내가 얼렁뚱땅 작위를 승계한 감이 있어서 황제 폐하는 물론이고, 황태자 전하를 뵌 적도 없다. 이곳 영지민을 먹여 살리는데도 벅찼으니 말이지. 대답이 되었느냐?”
“예. 죄송합니다.”
귀족에게 있어 황제를 알현해 본 적조차 없고, 수도를 밟아 본 적 없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명예로운 일이라 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조금은 날 선 아버지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전에도 같은 질문을 한 적 있었으니까.
‘오히려 아버지가 망할 황제 놈을 안 뵌 걸 다행이라 여겨야지. 아버진 좀 유약하셔서 황제 놈이 눈앞에서 그 개지X를 떠는 걸 보시면…….’
와들와들 떠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절로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이윽고 금세 안색을 편 카임이 말했다.
“한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느냐?”
“황태자 전하와 친하게 지낼 순 없을까 싶어서요.”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끌끌 혀를 찬 카임이 으깬 감자를 한 숟갈 뜨며 말했다.
“됐으니 식사나 해라.”
“옙.”
으깬 감자를 우물거리던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로 돌아가서 알 만한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군.’
* * *
가족과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아미의 학업은 어떠하며, 동료 교사들을 혼신의 힘을 다해 흉보다 보니 하루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또한 슬쩍 에덴에 들러 형이 잘하고 있는지도 살펴봤기에 복귀 시간은 금세 찾아왔다.
“그럼 어머니, 아버지. 조만간 또 뵙겠습니다.”
“그래, 또 오거라. 학교장님, 저희 아몬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손한 카임의 인사에 아몬을 데리러 온 아나르엘이 활짝 웃었다.
“오히려 제가 부탁드려야죠! 걱정 마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잠시 후, 학교장실로 돌아온 아몬은 혹시 싶은 마음에 말했다.
“제가 외박 간 사이에 별일 없었죠?”
불안감이 잔뜩 깃들어 있는 물음!
아나르엘이 빙그레 웃었다.
“하루 잠깐 외박하셨으면서 웬 걱정이세요?”
“하긴, 그렇죠.”
“하여간 아카데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시다니깐!”
깔깔 웃는 아나르엘을 본 아몬이 썩은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말하는 아나르엘은 좀 제대로 된 애정을 가져 줬으면 싶었다.
“없다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학교장님.”
“네?”
“혹시 황태자 전하를 뵌 적 있으십니까?”
“황태자 전하…… 산드리오의 맏아들 말인가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아나르엘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산드리오랑 빅토리아한테 듣기만 했지, 실제로 본 적은 없네요.”
“음. 역시 그렇군요.”
“왜 역시예요?”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 실망도 없었다.
‘하지만 괜찮아. 아직 물어볼 사람은 많으니까.’
참 놀랍게도 이곳 아카데미에는 쟁쟁한 사람들이 많았다.
전쟁영웅 마리온!
검술 명가, 피드 후작 가문의 슬로스!
제국 4대 기사, 창천검왕 라인벨트!
펜도리안 공작 가문의 망나니!
‘늘어놓고 보니 참 대단한 사람들밖에 없단 말이지…….’
내용물이 영 아닌 게 문제라면 문제다.
아무튼 그들을 붙잡고 물어보면 그럴싸한 정보 하나는 얻을 수 있을 터.
아몬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 * *
“이, 이보게.”
“응? 라인벨트 어르신?”
카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르신이 왜 이리 급하게 저를 찾으십니까?”
그 물음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라인벨트가 목소리를 낮춘 채 말했다.
“지금 아몬이 자네를 찾고 있네.”
“선배님이요? 근데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아니, 아니. 교사 카이를 찾는 게 아니라, 황태자 카이야스를 찾고 있다네.”
카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 갑자기 황태자는 왜 찾는답니까?”
“그러게 말일세.”
카이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설마 상단을 통해 에덴에 투자한 걸 눈치채신 건가?’
하지만 그럴 리 없었다.
정보 은폐를 철저하게 해 뒀기에, 아버지인 황제 폐하의 직속 정보 부대라 하더라도 진실에 도달하기까진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이다.
즉 고작 하루 만에 아몬이 진실을 깨달았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뭐, 찾는다 해도 수소문하는 것뿐이지만 말이야.”
“황태자, 저에 대해서요?”
“그래. 어디서 뵐 수 있는지, 좋아하는 게 뭔지, 뭐 그런 것들.”
떨떠름한 얼굴로 웃은 카이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기분이 참 묘하군요.”
“웃을 때가 아니네, 이 사람아. 나한테 대뜸 찾아와선 묻기에 얼마나 식은땀을 흘렸는지 원.”
“대답은 어찌하셨습니까?”
“산나물만 캐먹던 노인네가 황태자 전하를 어찌 알겠느냐 말해 줬지.”
“하, 하하하…….”
라인벨트가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뭐, 하여튼 난 말해 줬네. 보아하니, 나를 포함해서 여러 사람들한테 찾아가서 묻는 듯했으니, 자네한테도 곧 올 걸세. 대답할 말을 생각해 두게.”
“예. 감사합니다. 어르신.”
라인벨트가 사라진 후.
카이가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흠, 뭐라고 답해 드려야 하나?’
이참에 정체를 밝혀?
아니, 아직은 아몬과 황태자로서 대면할 때는 아니었다.
과거 해묵은 악연을 끊기 위해선 좀 더 긴밀한 관계가 될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는 대충 둘러대야겠군.’
아무튼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자신을 찾고, 취향을 묻는 것을 보면 아몬도 황태자인 자신에게 나쁘지 않은 감정이 있는 듯했으니까.
‘아몬 선배님도 그런 마음이라면, 과거의 악연을 털어 내는 건 그만큼 쉬워질지도.’
흡족한 마음에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선배님은 언제 오시려나.’
카이는 아몬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아몬은 그날이 가도록 카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현재 카이의 신분은 스트로 자작가 출신!
들어 본 적도 없는 가문이었기에, 당연하게도 황태자를 모르리라 생각한 아몬은 카이에게 황태자에 대해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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