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04)
아카데미가 망했다 104화
왜? 어째서 자신의 용모 변환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것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서, 선배님이 어째서 여기에 계시는……?”
시간을 벌자. 화제를 돌리자.
그런 일념하에 던져진 무의미한 질문에 아몬이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일 때문에 학교장님 따라왔는데, 그러는 너는 왜 여기 있냐?”
“그, 그게…….”
카이야스가 억지 미소를 머금은 채 아몬을 바라봤다.
아몬은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채 카이야스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는 카이야스가 걸치고 있는 ‘황실의 문양이 찍혀 있는 예복’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너, 설마…….”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은 아몬의 목소리에 카이의 얼굴이 심각해지고, 아몬도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설마 스트로 가문이 황가를 직속으로 모시는 가문이었어?”
“……예?”
예상치 못한 물음에 카이는 일순 정신이 멍해졌다.
하지만 곧 아몬이 어째서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황실의 문양이 찍힌 예복.
그것을 걸치고 있다는 말은 황실의 일원, 즉 황족이거나 황실을 섬기는 측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몬은 카이가 ‘황족’이라는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생각하기 싫은 것이다!
알고 지내던 후배가 사실은 황족? 그럼 지금까지 해 왔던 무례한 행동들은? 그렇기에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편, 아몬의 오해는 카이에게 있어선 기회였다.
‘아직은 내가 황태자라는 사실을 밝혀선 안 된다. 조금 더 서로를 신뢰할 수 있을 때, 그때 밝혀야만 가문의 기나긴 악연을 우리 대에서 끊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결심한 카이가 당차게 외쳤다.
“맞습니다! 우리 스트로 가문은 황실을 모시고 있습니다!”
“허어억!”
아몬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 그럼 나는 그런 대단한 가문인줄도 모르고 황태자 전하를 알 리가 없네 뭐네 했던 거야?’
자신의 지독한 무례를 어찌 사죄해야 할까!
아몬은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허리를 45도 각도로 굽혔다.
“서, 선배님? 갑자기 왜 허리를?”
“내 허리 원래 이런데?”
“…….”
그나마 선배로서의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말투만은 그대로인 아몬!
그 사실을 깨달은 카이는 재차 다짐했다.
‘당분간은 황태자라는 사실을 절대 들키지 말자.’
만약 아몬이 진실을 알게 되면 그대로 까무러칠 게 분명했다.
아무튼, 일단 아몬을 속여 넘긴 카이는 당장 봉착한 문제점을 깨달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거지? 어머니께서 날 불렀는데, 황태자 입장으로 별궁에 들어가야 하는 거잖아? 그럼 아몬 선배님을 속여 넘긴 건 또 어떻게 하고?’
꼬여 버린 상황!
침음을 흘리던 카이가 슬쩍 아몬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저기, 아몬 선배님?”
“예, 아니. 왜?”
용모 변환 마법이 확실히 걸린 것을 확인한 카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 얼굴, 오늘따라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 네 얼굴?”
“예에…… 평소랑 다르다거나 말이죠.”
“음? 어어, 음.”
이래저래 카이의 얼굴을 살펴보던 아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랑 다른 건 없는데?”
“그, 그래요?”
“아니, 아니다. 살 빠졌구나?”
“…….”
천연덕스러운 아몬의 반응에 카이가 슬쩍 뒤를 돌아보며 마법을 사용했다.
다시 자신의 얼굴에 용모 변환 마법이 걸렸다는 것을 확인한 카이가 다시금 아몬에게 말했다.
“지금은요?”
“뭐가? 설마 방금 얼굴에 뭐 발랐냐?”
“…….”
카이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용모 변환 마법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그야말로 충격적인 상황에 카이가 몇 가지를 확인하려던 와중, 아몬이 이럴 때가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야, 그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곧 있으면 황태자 전하 오신대.”
그 황태자 전하를 눈앞에 두고 있는 아몬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러니 너도 괜히 황태자 전하 마주치지 말고 얼른 갈 길 가라. 막 수행원들 따라오고 그래서 정신 사나울 텐데 말이지.”
“……아.”
비로소 충격에서 헤어 나온 카이가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크, 크흠! 그래서 제가 온 겁니다.”
“뭐? 무슨 소리야?”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설명하겠습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카이는 앞장서 별궁 안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별궁의 뒤뜰, 아나르엘과 마주 앉아 있던 빅토리아는 멀찍이서 두 명의 청년이 다가오자 고개를 돌렸다.
‘응? 카이야스가 드레이크 가문의 청년과 만나서 같이 들어오는 길인가?’
그리 생각한 빅토리아가 카이야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왔느냐, 황태…….”
흠칫 입을 다문 빅토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카이야스의 얼굴에 용모 변화 마법이 덧씌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라인벨트도 알아봤던 것을 황제의 스승인 그녀가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뭐지? 카이야스가 왜 저러고 온 거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시녀단을 이끌고 군터 군도 연합이 섬기는 어머니 크라켄을 푸짐한 문어숙회로 만들었던 황후조차 당황하고 말았다.
때문에 그녀가 말을 삼킨 채 머뭇거리고 있을 때, 즉각 반응한 것은 빅토리아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나르엘이었다.
“카이 선생님? 카이 선생님이 여긴 왜……?”
그 반응을 본 카이는 확신했다.
‘역시 아몬 선배님을 제외한 사람에겐 변화 마법이 제대로 통하는구나. 어머니도 표정을 보니 마법 자체는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고.’
변화 마법의 기미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아몬에 대한 불가사의만 깊어진 순간이었다.
아무튼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니라 행동할 때였다.
정중하게 예를 취한 카이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트로 자작가의 장남, 카이가 황후마마를 배알하옵니다!”
“……어?”
느닷없는 카이의 외침에 황후가 멍한 표정을 짓고, 카이는 황후를 향해 필사적인 눈빛을 보냈다.
‘어머니!’
‘카, 카이야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더냐?’
‘지금은 부디 제게 맞춰 주십시오!’
카이의 애절한 눈빛에 황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가더니 이상한 것만 배워 왔구나!’
마음 같아선 과거의 악연이고 뭐고 때려치우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토록 총명하던 황태자가 저렇게까지 행동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터.
한숨을 푹 내뱉은 황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온 걸 보아하니, 황태자가 오지 못할 일이라도 생겼나 보구나?”
황후에게는 맞춰 주는 것을 뛰어넘어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 나갈 능력도 있었다.
순간 식은땀 한 줄기를 흘린 카이가 황급히 빅토리아의 말에 올라탔다.
“그, 그렇사옵니다.”
“역시 그렇구나. 하여간 황태자도 참, 그놈의 벌레를 주물럭거리는 게 뭐 그리 재미있다고 정신이 팔려 있는지 원.”
“……예?”
카이의 눈가가 당혹으로 물들었다.
‘어, 어머니? 제가 무슨 벌레를 주물럭거린단 말입니까?’
그 순간, 장난기로 번쩍이고 있는 빅토리아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카이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빅토리아가 재빠르게 말을 이어 붙였다.
“스트로 가문의 아이야, 너도 황태자를 모시고 있는데 옆에서 간언이라도 해 주려무나. 하루가 멀다 하고 벌레를 주물럭대며 시시덕거리는데, 네가 봤을 땐 그것이 황태자로서 온당한 행동이라 생각하느냐?”
그 말에 아나르엘이 질색했다.
“으, 황태자 전하는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나 보네요?”
“어휴, 말도 마세요. 이상한 애벌레랑 독충들 꿈틀거리는 걸 좋다고 주물럭대고 그러는데, 어미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히익! 독충까지……?”
아몬도 눈살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와, 그건 좀…….”
아르마 산맥에서 몬스터와 뒹굴고 살던 아몬도 벌레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몬은 측은한 눈빛으로 카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황태자를 모시고 살다니, 너도 이래저래 고생이 참 많구나.’
카이의 뒤통수에 박히는 측은함 어린 눈빛!
실시간으로 자신에 대한 인상이 나빠지는 것을 느낀 카이가 다급히 말했다.
“화, 황후마마. 황태자 전하께 그런 취미는 없으십니다.”
“너도 같이 벌레 주물럭거리는 사이라고 그렇게 변호를 하고 싶으냐?”
아몬과 아나르엘이 경악했다.
“카, 카이 선생님까지!”
“세상에! 저 녀석,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었을 줄은!”
충격으로 몸을 떠는 두 사람을 본 카이의 눈이 홱 뒤집혔다.
“황후마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농담이란다. 황태자와 네가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을 리 없지.”
“휴…….”
“둘 다 최근엔 벌레를 먹는 쪽으로 취미를 바꿨으니까!”
“뭐라고욧!?”
이번엔 카이와 아몬과 아나르엘 셋이 동시에 경악했다.
“버, 벌레를 먹는다고요?”
“설마 살아 있는 걸 먹진 않겠죠?”
“생으로 먹는단다!”
“히이익!”
카이를 바라보는 아몬과 아나르엘의 시선에 공포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쯤 되니 카이는 싸늘하게 정색하고 있었다.
“어머…… 황후마마, 농이 과하신 것 같습니다.”
아들의 정색에 빅토리아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 농담은 이쯤 하자꾸나. 황태자가 못 온다니 괜히 섭섭한 마음에 농을 과하게 했구나.”
“……또 오겠, 오실 겁니다.”
“후후, 그래. 알았다. 이만 물러가 보거라.”
카이가 다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을긌습느드. 이만 물러가긌습느드.”
“후후후, 그래. 그래.”
홱 몸을 돌린 카이가 별궁을 나가 버리고, 벌레를 먹는 카이가 사라지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아나르엘이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휴…… 황태자 전하와 카이 선생님이 벌레를 나눠 먹는 사이라는 게 정말인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후후, 아나르엘은 여전히 순진하네요.”
“빅토리아도 여전해요. 안 그럴 것 같으면서 틈만 나면 거짓말을…….”
순박한 엘프는 한창 빅토리아와 여행할 때 숱한 장난에 시달리곤 했었다.
“하여간 아쉽게 됐군요. 이렇게 온 차에 황태자와 만나게 해 주고 싶었는데.”
“음…….”
아나르엘이 아몬의 안색을 살폈다.
황태자와의 만남이 수포로 돌아갔기에 실망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아몬은 벌레 먹는 황태자와 만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얼굴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린 아나르엘이 말했다.
“어쩔 수 없죠. 다음에 좋은 기회가 또 있겠죠.”
“후후후, 그래요.”
“그럼 빅토리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어요. 조만간 한번 또 봐요.”
“조만간…… 엘프의 시간관념으로 말하는 건가요?”
“아하하. 아뇨, 인간의 시간관념으로 조만간요.”
빙그레 웃은 빅토리아가 몸을 일으켰다.
“그래요, 그럼. 슬슬 나가 볼…….”
순간 말문을 멈춘 빅토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낯익은 인기척이 느껴진 탓이었다.
“그, 그르르르!”
거기엔 어찌 알았는지, 아나르엘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황제가 아몬을 노려보며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아나르엘.”
“……네.”
“내가 막을 테니 얼른 도망쳐요.”
“네, 빅토리아.”
아몬과 아나르엘은 뒤편에서 들려오는 ‘크아악! 부인! 내 오늘은 저놈을 기필코 찢어 죽일……!’이라 절규하는 황제의 비명을 들으며 황급히 도망쳤다.
* * *
학교장실로 돌아온 아나르엘이 힘없이 말했다.
“휴, 갈 때마다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네요.”
아몬도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저러시는지 모르겠군요.”
“전혀 감이 잡히는 게 없나요?”
물론 선대부터 쌓인 무수한 악연들이 있다는 걸 알지만 애써 모른 체하며 말했다.
“억울할 따름입니다.”
“……그나저나 아쉽게 됐네요. 황태자 전하를 뵐 기회였는데.”
“아뇨, 산 벌레를 우적우적 먹는 황태자 전하를 뵙고 싶은 생각은 없군요.”
“빅토리아가 농담이라고 했잖아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요? 비슷한 짓을 하니까 그런 농담도 나올…….”
“그럴까요? 하긴, 빅토리아가 이유 없는 농담을 한 적은 없…….”
그 시각, 카이는 학교장실 밖에서 그 대화를 들으며 입에 주먹을 넣고 오열하고 있었다.
“아무튼 아몬 선생님.”
“예, 학교장님.”
“후후후! 드디어 올 게 왔어요.”
“또또 올 게 왔군요. 그런데 대체 언제까지 오기만 하는 거죠?”
아몬의 면박에도 불구하고, 아나르엘은 꿋꿋하게 뒤편에 산처럼 쌓인 아카데미 홍보용 전단을 가리키며 외쳤다.
“드디어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아카데미 홍보를 할 수 있어요!”
그 말에 아몬이 탄성을 내질렀다.
“아! 또 망하겠군요!”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