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07)
아카데미가 망했다 107화
평소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진지한 척’이라도 하면 꽤 무게 있어 보이기라도 했건만, 시커멓게 그을린 채 엉엉 우는 지금의 모습은 영락없는 피난민의 모습!
반올림하면 300세인 269세의 엘프가 어린 피난민 아이처럼 목을 놓아 우는 광경에 모두가 아연실색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두 눈 멀쩡히 뜨고 보기엔 너무나도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아몬은! 두 눈을 부라리며 학교장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야! 이! 미친 엘프야!”
“엉엉엉엉!”
“또 이번엔 무슨 개 같은 짓거리를 벌인 거야앗!”
“흐어어어어엉!”
아몬에게 멱살을 잡혀 붕붕 휘둘리던 아나르엘이 울며 말했다.
“과, 관과아앙…….”
“관과앙? 뭔 소리야! 똑바로 말해!”
“관광객, 관광객이 왔는데에…….”
관광객? 아몬이 입을 쩍 벌렸다.
“이, 이 시국에!? 스파이가 잠입한 데다 전쟁도 막 끝났는데 무슨 정신머리로 관광객을 아카데미 안에 들여보낸 거냐고!”
호통을 치며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대는 아몬의 행동에 마리온이 대경실색하며 달려들었다.
“아, 아몬, 자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학교장님께 이 무슨 무례한 짓인가!”
“크르르르! 선배님! 하지만…….”
“일단 진정하게! 화나는 건 이해하지만 이러면 안 되는, 안 되는…….”
마리온도 차마 ‘안 된다’고 쐐기를 박을 순 없었는지 말끝을 흐렸다.
만약 마리온도 뒤가 무서울 게 없는 상황이었다면, 멱살은 잡지 않더라도 엘프 눈에서 눈물이 쏙 빠지도록 욕을 박았을 테니까.
슬로스는 아몬의 심정을 이해하는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아몬 말도 틀린 건 아니지. 이 시국에 무슨 관광객이야?”
“으허어엉!”
피오라와 카이도 적극적으로 동감의 뜻을 내보이지는 않았지만,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아몬의 분노에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그때 부학교장 브레슬이 외쳤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소란스러운 장내를 단숨에 휘어잡는 부학교장의 매서운 일갈에 아몬조차 흠칫하고 말았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부학교장은 학교장의 편이란 말인가!
장내가 진정되자 브레슬이 재차 외쳤다.
“식당은 멀쩡……!”
“부학교장은 좀 닥치십쇼!”
또 헛소리를 시작하는 브레슬의 입을 다물게 한 아몬이 이글이글 타는 듯한 눈으로 아나르엘을 노려보더니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말했다.
“학교장님, 이번만큼은 제가 도저히 참질 못하겠습니다.”
“흐흑…….”
“저도 사람이란 말입니다, 사람! 무슨 놈의 아카데미가 조금만 한눈을 팔면 일이 터지냐고요!”
그 말대로, 자신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일이 터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수시로 일이 터지고 있었다.
그런 극한의 환경에서 쌓일 대로 쌓인 스트레스는, 아몬의 브레이크를 망가뜨리고 말았다.
이제는 심신 진정에 큰 효능이 있는 캐모마일 차를 마시더라도 유의미한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황!
“이러다 정말 사람 하나 잡겠습니다. 퇴직 계약서를 준비해 주시죠.”
아몬은 기어코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사표를 꺼내 들었다.
그 발언에 아나르엘이 엉엉 울다 눈을 부릅떴다.
“아, 아몬 선생님! 그, 그게 무슨……!”
“못 들으셨습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죠! 퇴직 계약서를 준비해 주시죠!”
“아몬 선생님! 부디 다시 한번만 더 생각해 주세요!”
“열 번, 백 번, 수백 번도 더 생각했습니다!”
“아이고! 아몬 선생님!”
아나르엘이 아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불바다가 되어 재가 흩날리는 아카데미 속에서 비통하게 울부짖는 엘프의 모습은, 멀리서 보기에는 한 편의 비극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고 있는 당사자들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아몬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 자식, 웃고 있어……?”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마리온의 중얼거림에 카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완벽하게 우위를 점했군요.”
“…….”
“이제 학교장님께선 아몬 선배님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마, 맙소사…….”
하지만 마리온도 아몬에게는 저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 번이고 기둥부터 와르르 무너질 뻔했던 아카데미의 명줄을 붙잡아 기사회생시킨 것이 다름 아닌 아몬이었으니까.
즉 명분이 충분하기에, 이대로라면 아몬이 아카데미의 숨은 지배자가 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마리온과 슬로스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사표 미리 준비해 두자.’
아몬이 지배자가 되면 느슨했던 아카데미에 긴장감을 주게 되리라!
피오라는 발만 동동 굴렀다.
‘난 어떡하지?’
그녀는 아버지의 불호령 때문에 가문으로 돌아가지도 못한다!
아무튼 아몬은 아나르엘의 세뇌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제가사표를쓰는꼴을보기싫으면앞으로는말을잘들으시고.”
“으으으…….”
“제말에죽는시늉이라도하시고복종은당연하며.”
“아아아악…….”
솔직히 아몬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이 아무런 타격이 되지 못했다.
빛과 소금 정도로 소중하게 여기는 학생들은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았고, 건물들이 터져 나간 것은 쓰지도 않는 건물들이었기에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유지비를 줄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아몬은 ‘진정으로 아카데미를 생각하는 참교사’의 가면을 쓴 채 아나르엘의 죄책감을 공격하며 세뇌하고 있었다.
‘이렇게 단단히 정신교육을 해 두면 앞으로 허튼 짓은 할 생각 안 하겠지!’
눈을 번쩍이며 아나르엘을 세뇌하고 있는 아몬의 본심이었다.
“자, 그럼 학교장님. 잘 아시겠습니까?”
“네에에…….”
“제가 진정으로 아카데미를 위하고 있기에 이렇게 모질게 말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아시겠죠?”
“물론이죠오…….”
“후후, 좋습니다. 앞으로 잘하면 되죠. 그럼 오늘부터…….”
성공적으로 세뇌를 마쳤다고 생각한 아몬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는 순간이었다.
쿵-!
굉음과 함께 지면에 내려선 한 명의 노인.
라인벨트, 그는 열세 명에 달하는 침입자들을 꽁꽁 묶은 채 분하다는 얼굴로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젠장……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얼마나 분한지, 거의 울상을 지은 채 이를 갈던 라인벨트가 문득 아나르엘을 바라보더니 털썩 무릎을 꿇었다.
“학교장님!”
“으, 어어어…….”
거의 세뇌가 완료된 아나르엘은 갑자기 라인벨트가 무릎을 꿇자 멍한 얼굴로 귀를 갸웃거렸다.
곧이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인 라인벨트가 벼락같은 고함을 질렀다.
“제국 4대 기사라는 허명을 지닌 본인이 있었음에도 아카데미에 이런 불상사가 일어난 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으어으?”
“이 불상사는 제 모든 것을 걸고 수습할 테니, 부디 기회를 주십시오!”
진심으로 분하다는 듯, 어깨를 파들파들 떨고 있는 라인벨트의 모습에 아몬이 혀를 끌끌 찼다.
‘하긴, 따지고 보면 학교장한테 무슨 잘못이 있어? 이게 다 경비부장인 라인벨트 영감 탓이지.’
물론 ‘책임자’인 아나르엘도 잘못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만약에 라인벨트가 침입자들의 몸수색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관광객으로 위장한 그들의 행동거지를 조금이라도 유심히 살펴봤다면?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몬은 라인벨트를 한심하다는 듯 흘겨보며 학교장에게 간언을 속삭였다.
“학교장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아모니스 아카데미가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불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한 거죠. 하지만 한 번 새는 바가지가 두 번 새지 않겠습니까?”
아몬이 손으로 자신의 목을 죽 그었다.
“잘라 버립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경비부장 새로 바꿉시다, 학교장님.”
틈만 나면 자신을 거지 신세로 만들려는 괘씸한 영감을 쫓아낼 절호의 기회!
그리고 아몬의 정신지배에 단단히 걸린 아나르엘은 아몬의 말이 그럴싸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바들바들 떨던 아나르엘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흠흠, 저는 반대입니다.”
“……뭣!”
마리온이 눈을 감은 채 한 손을 들고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실수는 실수일 뿐. 라인벨트 어르신께서도 이번 실수를 발판 삼는다면,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더구나 라인벨트 어르신만큼 대단한 실력의 경비부장을 세상천지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마리온의 정론에 아몬이 입을 딱 벌렸다.
아몬이 권력을 쥘까 두려운 마리온이 온 정신력을 쥐어짜 던진 의견이었다.
‘저 술주정뱅이가 이럴 때는 술기운도 없으면서 말을 잘하네? 수업이나 잘할 것이지. 하지만 괜찮아. 아직은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
“저도 동감입니다.”
‘망나니!?’
먼저 나선 마리온에게 큰 용기를 얻은 피오라가 술술 나오는 대로 말했다.
“라인벨트 어르신처럼 대단한 분께서 책임을 지겠다고 말씀하셨다면, 아카데미에 득이면 득이지 실이 되진 않을 겁니다. 게다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괜히 교직원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일을 벌일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집에 돌아갈 수 없는 피오라도 아몬이 권력을 쥐게 되면 찾아올 횡포를 염려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한 표를 던졌다.
‘이, 이럴 수가. 벌써 두 명의 교사가 미친 영감을 지지해 버리다니…….’
“저도 찬성이요.”
‘게으름뱅이! 너마저!’
“…….”
“……?”
“아, 이유는 없고. 그냥.”
이유를 말하라는 듯 시선이 집중되자 ‘그냥’을 선언하는 슬로스!
슬로스 역시 마리온과 같은 맥락으로, 아몬이 권력을 쥐는 것을 막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순 없었고, 이유를 만들어 내는 것도 귀찮으니 ‘그냥’을 입에 담은 것이다!
‘이런 젠장! 낭패다. 대세가 바뀌고 있다.’
사실 대세랄 것도 없었지만, 아몬은 그만큼 당황하고 있었다.
“부, 부학교장님! 부학교장님의 의견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브레슬은 눈을 희번덕 빛내더니 무릎 꿇고 있는 라인벨트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라인벨트 어르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브레슬은 조금 전에 아몬이 닥치라고 호통쳤던 것을 잊지 않았다!
이로써 자신을 제외한 모든 교사들이 라인벨트를 지지하게 된 상황.
하지만 아몬은 마지막 희망, 자신의 충실한 꼭두각시가 되어 버린 아나르엘을 간절한 얼굴로 바라봤다.
“하, 학교장님.”
“…….”
“제가 했던 말 명심하시고, 부디 올바른 결단을…….”
아몬의 목소리는 절실했다.
그러나 하나로 화합된 의견은, 일개 꼭두각시 신세가 되어 버린 가련한 엘프의 정신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이번 일은 불미스러운 사고일 뿐이에요.”
‘뭣……!?’
“물론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오늘 일을 뼛속 깊이 새기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저도, 라인벨트 님도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라인벨트 님, 이만 고개를 드세요.”
‘아, 아아아……!’
자신의 웅대한 계획이 완전히 박살 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몬이 와들와들 떨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브레슬에게 부축받은 채로 여태 고개를 떨어트리고 있던 라인벨트가 스르르 고개를 들어 아몬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마주한 아몬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고 말았다.
차가웠다.
전력을 다해 라인벨트를 해고시키려던 아몬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진득하게 배어 있는, 바닷속 밑바닥처럼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이었다.
굳은 채 그 시선을 한참 바라보던 아몬이 헛기침을 한 후 말을 이었다.
“흠흠, 역시 모두의 뜻이 그렇군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
“저 역시 라인벨트 어르신 같이 걸출한 경비부장은 다시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죠.”
“…….”
“하지만 결국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대로 가다간 라인벨트 어르신이 분노의 대상이 되리라 생각했기에 제가 악역을 자처해 어르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진심 어린 생각을 이끌어 낸 것이죠!”
“…….”
“캬! 얼마나 보기 좋던지요? 모두의 하나 된 의견이란!”
아몬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눈동자를 굴렸다.
브레슬이 라인벨트와 자신을 제외한 다른 교사들과 학생들을 데리고 ‘자, 자. 일단 뒷수습은 밥이나 먹고 하죠. 뭘 하려면 배가 불러야죠!’ 하며 이끌고 자리를 떠나 버렸다.
이윽고 모두가 떠난 후, 아몬은 라인벨트와 단둘이 마주하게 되었다.
“…….”
“…….”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라인벨트.
그 시선을 묵묵히 받던 아몬은 자신이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였다.
동방대륙의 가장 큰 예법인 ‘그랜드 절’을 한 아몬이 말했다.
“어르신.”
“…….”
“한 번만 용서해 주십쇼.”
“…….”
최대한의 사죄인 ‘그랜드 절’을 한 채 용서를 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인벨트는 여전히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아몬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