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08)
아카데미가 망했다 108화
다행히 폭발 소리를 듣고 출동한 기사단 덕분에 아카데미의 피해는 커지지 않고 잘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그래, 내가 잘못한 건 사실이지.’
‘아닙니다, 어르신.’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너무 심한 것 아니더냐?’
‘아닙니, 예. 심했죠. 심했습니다.’
본심을 말하려던 아몬이 급하게 말을 주워 담고, 한숨을 푹 내뱉은 라인벨트가 고개를 돌렸다.
‘내 너를 제자로 들이는 걸 고민해 봐야겠구나.’
‘어르신!’
감사의 의미를 담은 외침에 라인벨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내 잘못은 사실이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구나.’
‘어르신!’
비통한 외침에 라인벨트가 호탕하게 웃었다.
‘껄껄껄! 녀석, 그렇게 내 제자가 되길 원하더냐!’
결국 화를 참다못한 아몬은 라인벨트에게 달려들고 말았다.
그리고 현재, 라인벨트와의 사투로 인한 결과로 눈에 큼지막한 멍을 달고 있는 아몬은 얼음으로 눈가를 문지르고 있었다.
‘수치스럽군. 그랜드소드 마스터라지만, 다 늙은 영감에게 호되게 얻어맞다니. 드레이크 영지의 얼큰 주먹 아몬이라는 이름이 울고 있구나.’
물론 라인벨트 또한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르고 앓아누운 상태지만, 우리의 아몬은 자신이 당한 것만 기억한다!
‘자, 그럼 슬슬 가 볼까.’
얼음으로 열심히 냉찜질을 하던 아몬은 통증이 조금 가라앉은 것을 확인 후 학교장실로 향했다.
비록 안 쓰던 건물이라지만, 아카데미의 부지 절반가량이 날아간 참이니 그에 대한 뒤처리를 위해 아나르엘이 ‘간부진’ 소집을 내린 것이다.
물론 당장 아몬의 입장은 평교사였지만, 자격증만 취득하면 곧바로 교무부장 자리에 오를 테니 사실상 간부 취급인 것이다.
이른바 교무부장(진)인 것이다.
‘근데 생각해 보면, 봉급은 평교사 그대로인데 내가 왜 이따위 회의에 참가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나르엘와 브레슬에게 회의를 온전히 맡겨 놨다간 가뜩이나 휘청이는 아카데미가 그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를 일.
아몬은 서둘러 학교장실로 향했다.
“오셨군요, 아몬 선생님.”
“예. 학교장님. 근데 브레슬 부학교장님과 라인벨트 어르신은요?”
분명 간부진 전원이 참석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때문에 부학교장 브레슬의 참석은 당연하고, 경비부장으로 승진해 봉급이 무려 3실버나 오른 라인벨트도 일단은 부장이니 참석해야 할 자리였다.
“아카데미를 파괴한 불한당들을 기사단에 인계하고, 아카데미를 복구할 인력을 수배하러 자리를 비우셨어요. 가장 급한 안건이니만큼, 건축 관련 인맥이 있다고 하셔서 급하게 떠나셨죠. 그리고 브레슬 부학교장님은…….”
“부학교장은?”
아나르엘이 우수에 젖은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밥 먹고 있을 테니 회의 끝나면 말해 달래요.”
잠시 후, 아몬은 한창 식사를 즐기다 뒤통수를 얻어맞고 기절한 브레슬을 질질 끌고 학교장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기절한 그녀를 의자에 대충 걸쳐 두며 투덜거렸다.
“어떻게 된 사람이, 아니지, 다크엘프가 이렇게 일관성이 있을까요. 좀 적당히 해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어요.”
“휴…… 아무튼 라인벨트 어르신은 인력 수배로 자리를 비웠으니, 일단 저희끼리 회의를 하고 나중에 알리도록 해야겠군요. 그럼 학교장님?”
“네, 아몬 선생님.”
아몬이 깍지 낀 손을 탁자 위로 올리며, 심각하게 음영 진 얼굴로 말했다.
“일단 무너진 건물 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죠.”
아나르엘도 깍지 낀 손 너머로 보이는 음영진 얼굴을 진지하게 물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면 좋을까요?”
“우선 제 의견을 말씀드리죠.”
아몬은 미리 준비해 온 서류를 주섬주섬 꺼냈다.
급하게 만들었지만, 자신의 생각과 자료를 꼼꼼하게 정리해놓은 무기였다.
“우선 이 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표를 훑어본 아나르엘이 알쏭달쏭한 얼굴로 귀를 갸웃거렸지만, 일단 안다고 치고 말을 이었다.
“이번에 무너진 건물은 총 일곱 채. 이 조감도를 보시면 아겠지만,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다소 외곽 지역에 위치한 건물들입니다.”
“네.”
“각 건물의 용도는 2번 학생기숙사, 학군단, 실습동, 학생회관, 공연장, 3번 학생기숙사, 아카데미 동문 회관이죠.”
“그렇죠.”
아나르엘이 직접 관광객을 가장한 테러범들을 데리고 안내했던 장소니 모르래야 모를 수 없었다.
‘여긴 2번 학생 기숙사예요!’
‘예? 어…… 예.’
‘여긴 3번 학생 기숙사랍니다!’
‘……이 아카데미에는 기숙사밖에 없습니까?’
‘여긴 전망대고요!’
‘보면 압니다! 더 중요한 곳은 없는 겁니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관광객들이 초조해한 이유가 테러를 위해서였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 아나르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중요한 곳부터 안내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네.’
그때 아몬의 말이 이어졌다.
“학교장님, 앞서 말씀드린 건물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네? 공통점이요?”
“예. 이 건물 전부.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서 방치된 건물들이라는 겁니다.”
아몬이 조감도를 손등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2번, 3번 기숙사. 지금 학생 총원이 다섯입니다, 다섯. 쓸 리가 없죠.”
“…….”
“학군단? 우리 아카데미에 장교 희망 학생이 있긴 합니까? 없지요?”
“…….”
“실습동? 제가 알기론, 실습 장비는 진즉에 다 팔아치우고 지금은 텅 비어 있는 건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곳은 레이몬드가 ‘인형의 집’으로 꾸몄던 건물이었다.
안이 텅 비어 있는,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건물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학생회관, 공연장, 아카데미 동문 회관…….”
아몬이 조감도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쓸 일이 없겠군요. 결국 언급된 모든 시설의 공통점은, 한동안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쓸 일이 없을 거라 판단되는 건물들입니다.”
아나르엘은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아몬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학교장님.”
“…….”
“제 의견은, 어차피 안 쓰는 건물들이 무너진 참이니 잔해만 수습하고 복구 작업은 하지 말자는 겁니다. 여기, 이 표를 보면 아시겠지만 안 쓰는 건물들을 내버려 두는 것만으로도 유지비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고 있…….”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린 채 우두커니 앉아 있던 아나르엘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아몬을 응시하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됩니다. 복구해야 해요.”
“……음.”
일찍이 예상한 반응이었기에 아몬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유가 굳이 필요한가요?”
“필요하죠?”
“아몬 선생님, 우리 아모니스 아카데미는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아카데미예요.”
“예, 예. 압니다, 알아요.”
아나르엘이 촉촉해진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 아카데미를 제 대에서 망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그 말씀은 즉, 남들 보기 부끄럽다?”
“네. 맞아요.”
아몬은 꿀밤을 맞고 울상 짓고 있는 아나르엘을 매섭게 꾸짖었다.
“그깟 남들 시선이 뭐가 중요합니까! 실제로 안 쓰는 건물들이고, 그냥 유지비만 먹는 빈 건물들 아닙니까? 그 건물들 외벽을 칠하고, 수리하고, 유지 보수하는 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답니까?”
아몬이 테이블을 탕 내려치며 말했다.
“이건 기회입니다. 쓸데없는 자금 소모를 막기 위한 기회죠.”
“하, 하지만…….”
“하지만 뭐요.”
아나르엘이 귀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황실에서 내려오는 지원금이 아카데미 규모에 따라 책정되는 건 아시죠?”
아몬의 얼굴이 굳었다.
“모르는데요.”
“가뜩이나 학생 수도 적은데, 아카데미 부지 면적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그 건물들을 전부 철거하면 지원금이 여기서 반 토막이 날 거예요.”
“사실 저는 처음부터 건물 복구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학교장님의 진심을 떠보기 위해서 철거를 강경하게 주장했던 것뿐입니다.”
“……분명 아까 브레슬 부학교장님더러 일관성 운운하지 않으셨던가요?”
“융통성이라고 해 두죠.”
어렵게 준비한 자료(10분 만에 준비함)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아몬이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그럼 회의 끝이죠?”
“아뇨.”
“엥.”
깍지 낀 손 너머로 보이는 아나르엘의 얼굴은 조금 전보다 훨씬 심각해져 있었다.
“복구한다면, 더 큰 문제가 생겨 버려요.”
“그럼. 철거하죠.”
“……저기요, 아몬 선생님?”
“아, 예. 더 큰 문제가 뭡니까?”
“결국 자금 문제죠.”
결국 만악의 근원이 등장해 버렸다.
“무너진 건물들의 복구에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요. 그런데 아시겠지만, 현재 우리 아카데미의 자금 상태는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죠.”
아몬도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킹오브망고 농장의 지분을 골드로드 상회에 팔아넘겨 당장 진 빚은 지웠지만, 황실에서 내려 주는 지원금을 받기에는 아직도 시일이 꽤 남았다.
게다가 사업에 투자할 것을 강력하게 종용한 황제가 앓아누운 상황이라, 따로 배상금을 받을 여력도 되지 않는다.
“그럼 뭐, 복구는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해결법을 찾아내고 싶어요.”
“자금 문제 해결이라니…….”
간절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나르엘을 흘겨보던 아몬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저더러 돈 벌어 오라는 건 아닐 테고요.”
“…….”
“설마 맞습니까?”
“아, 아뇨. 아니에요.”
“귀 떨리는 것 좀 어떻게 하고 말씀하시죠.”
“앗!”
다급히 귀를 부여잡는 아나르엘을 한심하다는 듯 째려본 아몬이 문득 중얼거렸다.
“어라? 잠깐만…….”
“네?”
“학교장님, 그럴싸한 방법이 떠오르긴 했습니다만…….”
아나르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럴싸한 방법이요?”
“예. 그러니까…….”
아몬은 이전에 있었던 골드로드 상회와의 거래를 털어놨다.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 킹오브망고 농장 지분의 1할을 골드로드 상회에 넘겨주는 것으로 향후 10년간 순이익의 2할을 분배해 주겠다는 것.
“어차피 받을 순이익이니, 그걸 아카데미 복구 자금으로 선지급해 달라고 하면 그쪽도 손해를 볼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 그럴까요?”
“자세한 건 그쪽에 문의해서 협상해야겠죠. 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주억거리던 아몬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일을 진행한다고 가정하면…….”
“네?”
“우리는 더욱더 커다란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군요.”
“더 커다란 문제라뇨?”
아몬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시선이 닿은 곳에는, 여전히 기절한 상태인 브레슬이 의자에 삐딱하게 앉은 채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
“브레슬 부학교장이 킹오브망고 농장 지분을 넘겨주는 것에 동의할까요?”
“…….”
아나르엘은 조심스레 예전에 벌어졌던 일을 떠올렸다.
사업 실패 건으로 생긴 아카데미의 빚을 탕감하기 위해 킹오브망고 농장 지분의 1할을 상회에 넘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브레슬은 그야말로 폭주했다.
‘밤의 대공 그믐밤이여!’
‘막아! 막아앗!’
‘감히 내 킹오브망고 농장 지분을 멋대로 팔아넘겨어어엇!?’
‘그게 왜 부학교장 당신 지분이야!’
그런 난리가 있었으니, 아몬과 아나르엘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음, 우선…… 여기서 나갈까요?”
“일단 상회 사람한테 가능한지부터 물어보고 오죠.”
아몬과 아나르엘은 살금살금 학교장실을 나갔다.
잠시 후, 골드로드 상회의 아무르 지부장, 델몬스는 아몬의 설명에 ‘그야 당연히 되죠! 지분만 넘겨주시면 뭐든 안 되겠습니까! 예?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부학교장의 설득이요? 하하하! 맡겨 주시죠! 지금 당장이라도 설득해 드리겠습니다!’라며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그 시각.
“으으응……? 밥 먹고 있었는데, 내가 왜 여기 있지?”
기절한 채 학교장실에 홀로 남아 있던 ‘악마’가 눈을 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