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09)
아카데미가 망했다 109화
아몬과 아나르엘은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그러나 지부장, 델몬스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지 쾌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하하! 두 분 다 뭘 그렇게 걱정하십니까? 제가 책임지고 부학교장님을 설득할 테니 걱정 놓으십시오.”
자신만만한 델몬스의 태도에 아몬과 아나르엘은 한층 더 긴장했다.
‘말이 통하는 상대라면 걱정도 안 하겠지.’
‘지난번에 그 난리를 피웠던 걸 생각하면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는데…….’
불길한 예감에 아몬과 아나르엘의 얼굴은 더더욱 어두워졌다.
그리고 잠시 후, 학교장실에 도착한 그들은 자신이 왜 이곳에 앉아 있는지 고민하고 있는 브레슬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응? 오셨습니까?”
“부학교장님.”
“참 이상하군요. 저는 분명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눈을 뜨니 이곳에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참 이상한 일이죠. 혹시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습니까?”
그녀를 기절시켜 끌고 온 장본인인 아몬은 일단 잡아뗐다.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부학교장님.”
“네?”
“소개드리겠습니다. 이분은 골드로드 상회의 지부장인 델몬스 님입니다.”
뒤편에 서 있던 델몬스가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부학교장님. 예전에 킹 와이번 의뢰 건으로 한번 뵌 적이 있었지요.”
그러고 보니 브레슬은 예전에 킹 와이번 기름을 얻겠다는 기똥찬 계획을 위해 은장검 용병단에 의뢰를 내건 적이 있었다.
상회가 의뢰의 중개를 맡고 있으니만큼 아무래도 구면일 터.
‘오오, 아는 얼굴이라면 이야기가 잘 풀릴지도?’
하지만 아몬이 이 아카데미에서 일하며 깨달은 것은, 희망과 절망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사실이었다.
“골드로드 상회? 제 킹오브망고 지분을 가져간 곳이로군요?”
상회에 대한 적대심이 잔뜩 묻어 있는 브레슬의 말투!
아몬은 ‘그게 왜 당신 지분이냐.’고 딴죽을 걸고 싶었지만, 살기를 풀풀 피워 올리는 브레슬의 기세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그리고 영문 모를 브레슬의 적대감에 델몬스도 흠칫하고 말았다.
“지, 지분이 부학교장님 소유였습니까?”
“그렇습니다.”
당당한 브레슬의 대답을 들은 아몬이 델몬스에게 속닥거렸다.
“아닙니다.”
“근데 왜…….”
“저도 몰라요. 미친 다크엘프입니다.”
“…….”
“자, 그럼 이제 저걸 설득해야 하는데 가망이 있다고 보십니까?”
델몬스의 얼굴에 한 줄기 투쟁심이 떠올랐다.
상인의 재능을 판가름하는 지표는 그럴싸한 말로 상대를 현혹시켜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
물론 상대는 사납고 난폭하다, 타락한 엘프다, 그런 흉흉한 소문이 잔뜩 도는 다크엘프!
브레슬이 알았다면 ‘편견이고 차별이다.’라며 괘씸해했을 생각을 품은 델몬스는, 그래도 일단 대화가 통한다는 것을 깨닫고 승산이 있으리라 판단했다.
“맡겨 주십시오.”
“믿고 맡기겠습니다.”
아몬이 한 걸음 물러서고, 델몬스가 상인 특유의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 제가 이렇게 온 것은 좋은 제안을 드리…….”
“꺼지세요.”
“엇.”
들을 것도 없다는 듯, 거만한 태도로 다리를 꼬고 앉은 브레슬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눈도, 귀도,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까?”
‘생각은 없는 게 맞지.’
“예? 그, 그게 무슨 말씀……?”
브레슬이 테이블을 탕 후려치며 일갈했다.
“남아 있는 킹오브망고 지분 1할을 빼앗으려 하는 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 서슬에 놀란 델몬스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쳤다.
“빼, 빼앗다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정당한 거래를 위해 방문한 겁니다!”
“이미 멋대로 지분을 빼앗아 간 악당들의 말을 믿을 것 같습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정당한 계약이었습니다!”
“듣기 싫습니다! 제 동의가 없는 한 불공정한 계약이었습니다! 감히 제 지분을 멋대로 빼앗아 간 죄! 조만간 정식으로 소송을 걸겠습니다!”
소송 이야기가 나오자 델몬스의 얼굴이 굳었다.
이윽고 아몬은 델몬스가 저게 무슨 말이냐는 듯 자신을 바라보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분은 아카데미 자체 소유라서 저 괴물에게는 소유권이 없어요.”
“그, 그런데 왜 저러는 겁니까?”
“말했잖습니까.”
아몬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미친 다크엘프라니까요.”
“…….”
“저거, 저거 눈 뱅글뱅글 돌아가는 속도 좀 봐요.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닙니다.”
킹오브망고에 대한 탐욕으로 눈을 팽팽 돌리고 있는 브레슬의 모습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침음을 흘린 델몬스가 흠칫거리며 브레슬을 향해 다가갔다.
“부학교장님, 우선 제 이야기를 좀 들어 보…….”
“듣기 싫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일단 들어 보…….”
“사람 불러서 쫓아내기 전에 얼른 꺼지십시오!”
이 대목에서 아몬이 눈을 스르르 감았다.
부를 사람도 없으면서 무슨 허세를 부리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학교장님.”
“……네.”
“어떡하죠? 저 지금 너무 부끄러워요.”
아나르엘도 귀와 얼굴을 붉힌 채 중얼거렸다.
“저도 그래요.”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평판을 위한다면, 저 미친 괴물을 먼저 쫓아내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 싶군요.”
“…….”
한숨을 쉰 아몬이 말했다.
“일단 아카데미 복구를 해야 하니, 계약서에 몰래 도장 찍는 게 어떨까요?”
아몬의 음흉한 발언에 아나르엘이 두렵다는 듯 파르르 떨었다.
“그럼 이번에는 정말 죽을 각오로 난리를 칠걸요?”
“……음.”
하긴, 지난번에 빚을 청산하기 위해 킹오브망고 농장의 지분을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브레슬의 분노는 무서울 정도였다.
이번에도 무작정 일을 진행하면, 아카데미가 파괴되거나 브레슬이 죽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그럼 그냥 죽일까……?’
스산한 얼굴로 브레슬을 흘겨보던 와중이었다.
슬슬 머리가 아파오는지 델몬스가 미간을 짚은 채 다가왔다.
“휴우, 무슨 말이 통하질 않는군요. 아니, 말이 안 통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 볼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쉽지 않을 거라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짜증스레 한숨을 푹 내뱉은 델몬스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한데, 아카데미 홍보 전단 배포 건은 킹오브망고 농장 지분 양도를 조건으로 성사시킨 일이 아니었습니까?”
“…….”
“일이 이렇게 되면…….”
말끝은 흐려도 뒷말이 무슨 말인지는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이미 전단을 배포한 마당이니 우리가 배 째라고 하면 골드로드 상회도 이번에는 똥 밟았다 치고 넘어가겠지. 하지만 똥 싼 놈을 잡아 죽이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지금 당장이야 물러서겠지만, 언젠가는 골드로드 상회 차원에서의 보복이 있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아카데미로 들어오는 물자 자체를 막아 버릴지도 모를 일!
아몬이 팔짱을 낀 채 심각한 얼굴로 브레슬을 노려봤다.
브레슬도 팔짱을 낀 채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좋아. 부학교장을 죽이자.’
오랜 기간 품어 온 숙원을 이룰 좋을 기회!
허겁지겁 아다만티움 검을 가지러 방으로 향하려던 찰나였다.
‘아니, 잠깐.’
돌연 걸음을 멈춰 선 아몬은 자신이 뭔가 판단을 잘못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근본적으로 전제 자체가 잘못됐던 거야.’
팔짱을 낀 채 볼을 부풀리고 있는 브레슬을 뚫어져라 노려보던 아몬이 델몬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델몬스 님.”
“뭡니까?”
이미 일을 망쳤다고 생각하는지, 짜증스레 아몬의 말을 받은 델몬스는 귀 좀 가져다 대라는 듯 손을 휘젓고 있는 아몬을 향해 귀를 들이밀었다.
“그러니까…… 쑥덕쑥덕.”
“엉? 뭐, 뭐라고요?”
“제 생각엔, 수군수군.”
“으으음…….”
미심쩍다는 얼굴로 아몬의 해결방안을 듣던 델몬스가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말해 보죠.”
“이게 아마 마지막 방법일 겁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크게 심호흡을 한 델몬스가 브레슬을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브레슬 부학교장님!”
“흥! 꺼지라고 말했…….”
“매달 킹오브망고를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브레슬의 귀가 힘차게 푸드덕거렸다.
“……뭐, 뭐라고요?”
“매월 첫날 아침에는 킹오브망고 세 개, 저녁에는 킹오브망고 네 개를 드리겠습니다!”
“뭐, 뭣……!?”
“잘 생각해 보십시오! 킹오브망고 농장 지분 1할을 가지고 있는 걸로 농장에서 감사의 표시로 보내 주는 킹오브망고가 몇 개입니까? 감사의 표시로 보내 주는 것이니만큼, 한 해에 몇 개 보내 주지도 않을 겁니다!”
“그, 그렇…….”
“하지만! 우리 상회에 지분을 양도해 주시면, 매월 첫날 아침에는 킹오브망고 세 개! 저녁에는 네 개를 드리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브레슬는 눈을 부릅뜬 채 귀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흔들리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델몬스의 얼굴은 썩어 있었다.
‘아몬 선생의 말이 사실이었나?’
아몬의 ‘전제 조건’이 잘못되었다는 추측은 사실이었다.
브레슬은 킹오브망고 농장의 지분 자체에 애착이 있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그냥 단순히 ‘킹오브망고를 먹고 싶은 것’뿐이다.
상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상식을 완전히 깨 버리는 수준 낮은 협상!
‘이게 왜 통하지? 대체 왜?’
아무튼 상회가 매달 유통하는 킹오브망고의 수는 수천 개 이상이다.
그중 몇 개쯤 브레슬에게 나눠 주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튼 아몬 선생의 말대로, 이대로 협상이 끝나면…….’
그때였다.
“아, 안 됩니다!”
소리를 빽 지른 브레슬이 고개를 흔들었다.
“누굴 바보로 아는 겁니까! 안 됩니다!”
언뜻 강경한 태도였지만, 브레슬의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델몬스의 눈에 경악이 떠올랐다.
‘이럴 수가! 아몬 선생이 말한 대로 정말로 한 번 튕기다니……!’
아몬의 예상 답안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에 델몬스는 허겁지겁 다음 답변을 내뱉었다.
“그럼 매월 첫날의 아침에 4개, 저녁에는 3개를 드리죠!”
브레슬이 벌떡 일어나더니 외쳤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콜록.”
어처구니가 없는 나머지 사레가 들린 델몬스가 썩은 미소를 지은 채 손을 뻗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맞잡고 방방 뛰는 브레슬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조,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물론이죠! 물론이죠!”
아무튼 일을 성사시켰다는 기쁨에 델몬스가 고개를 돌려 아몬과 아나르엘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흠칫한 델몬스는 숙연한 얼굴을 하고 말았다.
두 사람은 브레슬이 부학교장이라는 사실에 엄청난 수치심을 느끼는지,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 델몬스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 * *
“브레슬 부학교장님.”
“응? 뭡니까?”
아몬은 부학교장실의 천장에 붙여 둔 바나나를 가리켰다.
바나나는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이 붙어 있었다.
“저 바나나를 한번 드셔 보시겠습니까?”
“네?”
“부학교장실에 있는 도구는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습니다.”
“아니, 갑자기 무슨…….”
“의자를 써도 좋고요.”
큰맘 먹고 힌트까지 줬건만, 브레슬은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듯 걸음을 옮기더니 펄쩍 뛰어 바나나를 낚아챘다.
“됐죠?”
“…….”
“감사히 먹죠.”
바나나를 오물오물 맛나게도 먹는 브레슬을 본 아몬은 절망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다크엘프, 신체능력 자체가 높아서 도구를 쓸 필요 자체가 없는 건가? 힘이 좋으니 머리를 쓸 필요가 없어서 지능 수준이 원숭이 수준인 건가?’
지난번에 문명과 잠시 떨어져 지냈다고 간석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었던 걸 감안하면, 제법 그럴싸한 추측이었다.
“아무튼, 제 지분을 상회에 넘겨준 덕분에 자금 상황이 원활해졌군요.”
“그러니까 그게 왜 부학교장님 지분…… 하아, 예. 그래요.”
“그럼 복구 작업에 자금을 한번 분배해 보죠.”
브레슬이 깃펜으로 서류에 척척 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윽고 완성된 서류를 아몬에게 내밀었다.
“한번 확인해 보시죠.”
“…….”
원숭이가 애써 봤자지!
그리 생각하며 표를 확인한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완벽하잖아.’
아무래도 식당 증축이라는 야망을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다 보니, 시설에 관련된 금액에 대해선 꿰고 있는 모양이었다.
‘왜 이럴 땐 유능해? 먹을 것 앞에서만 지능이 원숭이 수준으로 떨어지는 건가?’
한숨을 푹 내뱉은 아몬이 말했다.
“……대단하군요. 흠 잡을 곳이 없네요.”
칭찬은 브레슬도 춤추게 만드는지, 브레슬이 깃펜을 빙글빙글 돌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흐흥, 칭찬해도 킹오브망고는 나눠 주지 않을 겁니다.”
“필요 없어요.”
머리를 긁적거리던 아몬이 말했다.
“그럼 라인벨트 어르신이 기술자를 데리고 오시면 이대로 견적을 한번 문의해 보죠.”
“네, 그럼 될 겁니다.”
“그럼 이만.”
부학교장실을 나온 아몬은 뜻밖의 인물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응? 라스티아넬 님?”
“님은 좀 빼주세요.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드래곤님이시니까요.”
“선생님이시니 말 편하게 해 주셔도 돼요.”
“그래…… 아무튼 여긴 웬일이니?”
학생인 라스티아넬이 부학교장실까지 올 일이 있던가?
그 의문에 라스티아넬이 대답했다.
“학교장님께 여쭤보니, 아카데미 복구 작업을 진행 중이라면서요?”
“계획 단계지만…… 일단은 그렇지?”
그 대답을 들은 라스티아넬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저한테 복구 작업을 맡겨 보실래요?”
“……뭐?”
“골드 드래곤은 축성, 구조물 건설에 일가견이 있거든요.”
언뜻 그런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골드 드래곤은 다른 드래곤보다 금은보화를 모으는 것에 관심이 많아, 모은 보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레어를 호화스럽게 건설한다나 뭐라나.
그러니만큼 건축에 관해선 일가견이 있을 수밖에.
아몬이 슬그머니 견적서를 바라봤다.
‘……이거 잘하면, 내 주머니가 조금 두툼해질지도?’
자고로 공사라는 것은 책임자의 배를 기름지게 해 주는 것 아니겠는가!
아몬이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라스티아넬, 우리 자세히 좀 이야기해 볼까?”
“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