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11)
아카데미가 망했다 111화
아몬은 무릎을 꿇은 채 라인벨트의 훈계를 듣고 있었다.
“젊은 녀석이 못된 것만 배워 가지고, 벌써부터 횡령에 비리를 저지르려 들고 있어? 내가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구나!”
솔직히 아몬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라인벨트의 지론인 ‘청빈과 검소’는 뒤로하고, 횡령과 비리는 누가 보더라도 저지르면 안 되는 범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할 말은 없어도 불만은 있었다.
‘아니, 공사비를 아껴서 남는 걸 내가 가지는 게 그리 잘못된 건가? 딱히 공사를 날림으로 하려는 것도 아닌데! 무려 드래곤이 공사를 해 주는 건데!’
하지만 아몬은 그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며 들이받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지금은 납작 엎드려 라인벨트의 비위를 살살 맞춰야 할 때였다.
“그럼요, 그럼요. 라인벨트 어르신 말이 다 맞습니다.”
“쯧! 내 엄히 지켜볼 것이야.”
“그러믄요, 그러믄요. 명심하겠습니다.”
라인벨트의 엄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아몬이 한숨을 쉬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비록 지금은 쇠락했지만 한때는 명문 중의 명문인 아모니스 아카데미이니만큼 무너진 건물의 공사비는 막대했다.
그중 3할, 아니 1할은 브레슬의 입을 막아야 하니 2할은 꿀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이렇게 날아가다니.
‘누가 나만 좋으라고 그러나? 다 잘되자고 이러는 건데.’
분하고 원통했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분명히 다시 기회가 올…….’
“이놈! 아직 괘씸한 생각을 품고 있는 눈빛이구나!”
“엇……!?”
“내 사사로운 물욕에 찌든 네놈을 엄히 훈계할 것이야!”
“아니, 듣자듣자 하니까 이 영감님이 진짜!”
아몬과 라인벨트가 뒤엉켜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와중이었다.
“흠, 그런데 네가 이 공사를 맡겠다고?”
아몬의 집요한 세뇌에서 빠져나온 롬멜은 미심쩍은 얼굴로 라스티아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라스티아넬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혹, 건축가 지망이더냐?”
“네? 아뇨, 그런 건 아닌데요.”
“허허허, 아이야. 건축은 장난이 아니란다. 자칫하면 수많은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단다.”
인자하게 말한 롬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공사는 내게 맡기거라. 그래, 내가 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네게 큰 공부가 될 거란다.”
“어…….”
“보아하니 건축에 조금은 뜻이 있는 모양인데, 마침 좋은 기회니 이것저것 가르쳐 주마.”
라스티아넬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어린 드래곤이라지만 라스티아넬은 아무리 못해도 수백 년을, 롬멜이 겪은 시간의 몇 배는 살아오며 건축학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게다가 골드 드래곤 일족의 신동, 떠오르는 건축계의 샛별, 건축의 마술사로서(전부 자칭이다) 롬멜의 발언을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우선 견적서를 한번 보시겠어요?”
“견적서?”
“네. 견적서는 진작 나왔거든요.”
“허허허…….”
롬멜이 어이가 없다는 듯 뺨을 긁적거리며 견적서를 받아 들었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무슨 견적을…… 어?’
롬멜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자재값, 인건비, 건축을 위한 자문 비용 등등 모든 견적이 꼼꼼히 작성되어 있었다.
건축업에 오래 몸담은 롬멜이 보기에도 완벽한 견적서였다.
‘이, 이 어린아이가 이렇게 확실한 견적을 짰다고?’
아니다! 견적은 브레슬이 짰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롬멜은 치를 떨었다.
‘끙, 대단하군.’
그 시각, 부학교장실에서 한창 업무를 보던 브레슬은 별안간 간지러워진 귀를 파닥거리며 투덜대고 있었다.
아무튼 한숨을 푹 내뱉은 롬멜이 말했다.
“크흠, 견적은 확실하구나. 하지만 견적만으론…….”
“아직 제 말 안 끝났어요. 자, 보세요.”
“응?”
펜을 꺼낸 라스티아넬이 줄을 쭉 그었다.
“자재값. 저는 이 비용을 완전히 뺄 수 있어요.”
“뭐? 아하, 아카데미에 비축해 둔 자재가 있는 거냐? 아니지, 네가 따로 동원할 수 있는 자재가 있는 것이냐?”
라스티아넬이 피식 웃었다.
“기존 자재를 활용할 거예요.”
그 말에 롬멜도 피식 웃었다.
“허허, 아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거라. 저 자재들은 못 써. 손상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재활용하기에는…….”
롬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라스티아넬이 손을 휘젓자 바닥을 뒹굴던 건물의 잔해들이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윽고 완성된 멋들어진 기둥을 본 롬멜이 입을 쩍 벌렸다.
“뭐, 뭣!? 이게 대체 무슨!?”
“모르셨나요? 저는 드래곤이에요.”
“드, 드래곤……?”
도무지 믿기 힘든 말이었다.
드래곤이 어째서 박살 난 아카데미를 복구하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유는 차치하고, 당장 눈앞의 라스티아넬이 손을 휘저을 때마다 만들어지는 기둥과 외벽을 보면 그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드래곤님께서 왜…….”
“님은 빼주세요. 아무튼 이유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
“그리고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작업하면 인건비도 뺄 수 있어요.”
침음을 흘린 롬멜이 빠른 속도로 만들어지고 있는 건물을 멍한 얼굴로 바라봤다.
라스티아넬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저는 건축에 대한 조예가 있다고 자부해요. 그러니까 건축가를 따로 고용할 필요가 없으니 자문 비용도 들지 않겠죠?”
“…….”
“그래서 견적서에 적힌 비용의 7할만 수고비로 받고 완공하기로 했어요.”
견적의 7할.
롬멜이 눈을 질끈 감았다.
라인벨트와의 친분 때문에 자문비는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이 작업한다면 인건비와 자재값 때문에 견적서에 적힌 비용만큼은 사용해야 한다.
아니, 건축의 특성상 그보다 많이 써야 할 가능성도 있었다.
‘내가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저 금액의 7할로는 공사에 들어갈 수 없다.’
라스티아넬이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롬멜을 빤히 바라봤다.
“자, 그럼 제가 이 공사를 맡아야 하는 이유는 충분히 설명했다고 봐요. 이제 그쪽이 이 공사를 맡아야 할 이유를 말해 주실래요?”
무려 드래곤이 착수한 공사다.
비용, 시간 면에서 자신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드래곤이라는 존재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가.
스스로의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 롬멜이 힘없이 말했다.
“없습니다.”
“후후, 그렇죠?”
승리감에 젖은 라스티아넬이 손을 삭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멀끔한 건물 한 채가 완공됐다.
“자, 이제 여섯 채 남았네요. 그럼 어디 계속해 볼까.”
드래곤이 인간을 이겼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인간 중에서 명성이 자자한 건축가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쾌감에 라스티아넬이 의기양양하게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응?”
돌연 들려온 롬멜의 의아한 목소리에 라스티아넬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 딱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만…….”
눈살을 찌푸린 채 완공된 건물을 살펴보던 롬멜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보아하니 500년 전쯤 유행했던 양식이로군요. 희대의 건축가인 지어드 리게스의 건축 양식 같은데…… 햐, 그립군요. 한창 공부할 때 많이 참고하곤 했었는데 말이죠.”
그 말에 라스티아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500년 전쯤이라고요?”
“예. 올린 기둥의 조형과 벽의 마감 형태…… 창문의 배치 형태를 보니 확실하군요. 지어드 리게스의 건축 양식 특징이, 창문을 저렇게 배치하는 것으로 채광량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라스티아넬은 롬멜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수천, 수만 년을 족히 살아가는 드래곤인 라스티아넬은 인간의 ‘최신’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건축계의 떠오르는 샛별, 건축의 이하 중략, 으로서 인간의 최신식 기술에 흥미를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럼 요즘 최신 양식은 어떤 건데요?”
“흐음, 어디 보자.”
쭈그려 앉은 롬멜이 흙바닥에 도면을 슥슥 그리기 시작했다.
“이 외벽 부분은 이렇게 하고…….”
“아하! 확실히 더 세련된 느낌이네요.”
“기둥은 조금 더 가늘게 잡죠.”
“네? 그럼 하중은요?”
“그만큼 기둥을 많이 필요로 하지만, 이렇게 배치하면 기둥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독자적으로 구상한 양식입니다만…….”
“우와! 정말 대단해요!”
라스티아넬은 롬멜의 설명을 들으며 놀랍다는 듯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라스티아넬의 모습에 롬멜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럴 수가! 드래곤이 내 건축 기술을 배우려 하고 있다니!’
감동에 휩싸인 롬멜은 신이 나서 말했다.
“또한 최근에는 말이죠, 이렇게 건물에 세공을 가미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건물에 세공을!”
“예! 거기에 금을 음각시켜 호화스러운 맛을 살리는 방법으로…….”
“금으로 음각을!”
두 건축가는 얼굴을 맞댄 채 희희낙락 떠들고 있었다.
* * *
“헉, 허억…….”
가쁜 숨을 몰아쉬던 아몬이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드디어 승리했다.”
결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아몬의 발밑에는 라인벨트가 쓰러진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그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지만, 롬멜을 데리러 가느라 쉬지 않고 움직인지라 잔뜩 지쳐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오거와도 맨주먹으로 개싸움을 하는 아몬을 상대로 맨손으로는 불공평한 승부였다.
“공평하고 정정당당한 승부였습니다, 라인벨트 어르신.”
물론 아몬도 멀쩡하진 않았다.
한쪽 눈은 뜨지도 못하게 퉁퉁 부어 있지, 코는 코주부원숭이가 형님 할 정도로 퉁퉁 부어 있었다.
하지만 승리는 승리였다.
“이제 공사비 2할은 내 거다!”
아몬이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라인벨트가 쓰러졌으니 정정당당하게 공사비를 착복할 생각이었다.
“자, 그럼 라스티아넬!”
라스티아넬을 부르며 고개를 돌린 순간.
콰르르르릉-!
새로 완공된 건물 한 채가 호쾌하게 무너져 내리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엑?”
“아몬 선생님, 부르셨어요?”
총총 다가오는 라스티아넬을 본 아몬이 와들와들 떨며 말했다.
“다, 다 지은 건물은 왜 무너뜨렸니?”
그 물음에 라스티아넬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500년 전의 구닥다리 양식이래서 허물고 새로 지으려고요!”
“그, 그래? 그렇구나.”
그래, 기왕이면 최신 양식으로 짓는 게 좋겠지.
때문에 아몬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순간이었다.
라스티아넬이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선생님. 최근에 유행하는 양식은 건물에 세공한 귀금속을 장식하는 거래요!”
“……뭐?”
아몬의 뺨이 파르르 떨렸다.
들고 다닐 것도 아닌 건물 따위에 무슨 귀금속으로 장식을 한단 말인가!
“그래서 말인데요, 견적서에 나온 비용을 모두 사용해야 할 것 같아요.”
“뭣!? 그게 무슨 드래곤 소리니!”
“인건비, 자재 값은안 드니까 아슬아슬하게 될 것 같아요. 그만큼 제 수고비는 없어지겠지만, 그래도 기왕 하는 작업이니 최선을 다하려고요.”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아몬이 당장 무릎을 꿇을 기세로 라스티아넬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라, 라스티아넬? 무슨 끔찍한 소리를 하는 거니?”
“왜요? 어차피 견적에 나온 비용만큼은 전부 써도 되는 거 아니었어요?”
“내, 내가 2할을 가져야…….”
“선생님이 그걸 왜 가져야 하는데요?”
거래에 냉정한 골드 드래곤은 아몬의 횡령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무튼 공사는 저한테 맡겨 주세요! 제가 최대한 빨리 완공할 게요! 롬멜 선생님도 도와준다고 하셨으니 금방 끝낼 수 있을 거예요!”
롬멜 선생님!
아몬이 눈을 부라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미친 영감의 친구 아니랄까 봐. 저 영감이 모든 일의 원흉이었구나!’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린 아몬이 롬멜을 향해 호통 치려는 찰나였다.
“우와! 여기가 아모니스 아카데미구나!”
돌연 뒤편에서 들려온 웅성거리는 소리에 아몬이 흠칫하며 뒤를 돌아봤다.
정문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저, 저 사람들은 누구지?’
당황한 나머지 굳어 있는 와중.
그들도 당황한 기색으로 수군거리고 있었다.
“뭐야? 아카데미 상태가 왜 이래?”
“건물은 무너져 있고, 안쪽은 잿더미가 되어 있는데?”
그들 중 하나가 탄식했다.
“아모니스 아카데미가 망했다더니, 정말 망했나 보네.”
“그러게 말이야. 골드로드 상회에서 입학 전단을 뿌리더니만, 어디서 착오가 있었나 봐.”
그들의 수군거림을 들은 아몬은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홍보 전단을 보고 찾아온 입학생들이구나!’
아몬은 라인벨트와의 사투로 입은 부상 때문에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우, 우리 아카데미 안 망했어요!”
“어라? 안 망했…… 으아악!”
아몬의 몰골을 본 그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달아났다.
한쪽 눈은 퉁퉁 부어 뜨지도 못하지, 코주부원숭이를 뛰어넘는 코를 가진 아몬이 절뚝거리며 다가오는데 어느 누가 감히 달아나지 않고 배기겠는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는 그들을 본 아몬이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휴우.”
한숨을 쉬며 풀썩 주저앉은 아몬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이 뿌연 걸 보니 비가 오려는 모양이야…….”
중얼거리는 아몬의 뺨을 타고 맑은 물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