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12)
아카데미가 망했다 112화
“안녕하세요, 선생님!”
“응, 다들 점심은 맛있게 먹었니?”
해맑게 학생들의 인사를 받아 준 피오라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평소였다면 ‘망나니가 착한 척을 하는구나!’라거나 ‘망나니도 아이들에겐 따뜻하구나!’라며 시비를 걸었을 아몬은 교탁에 드러누운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아몬이 저렇게 무기력한 이유는 하나였다.
‘아카데미가 테러를 당한 게 그렇게나 상처가 됐다니…….’
진실은 공사를 통한 부의 축적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교사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최근 벌어진 사건은 테러밖에 없었기에 그렇게 추측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물론 다들 무작정 그렇게 믿지만은 않았다.
‘아몬 그놈이라면 그 건물들 중 하나에 비싼 술을 숨겨 놨을 거다. 그러니까 저렇게 낙담하는 것 아니겠나?’
마리온의 추리에 슬로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내 생각엔 건물 중 하나에 비상금을 숨겨 놨을 거야. 근데 그 돈이 깡그리 날아간 거지.’
카이는 존경하는 아몬을 향한 억측에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에이, 듣자 하니 선배님이 최근에 홍보 전단을 열심히 배포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지금 아카데미 꼴이 이래서 신입생을 받을 수 없으니 저렇게 낙담하시는 거겠죠.’
‘허허허, 카이 너는 머릿속이 꽃밭이구나.’
‘맞아. 아몬을 뭐로 보고. 그런데 너 벌레를 먹는다며?’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그렇게 교사들은 아몬의 낙담을 제각기의 이유를 붙여 추측했다.
놀라운 것은 그 추측이 전부 들어맞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여태 아몬이 그들에게 보여 준 모습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설명하는 증거였다.
아무튼 설왕설래하는 추측 중 유일한 공통점은 아몬이 낙담했다는 것.
실제로 아몬은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대체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되묻던 질문이지만, 오늘 아침에 봤던 광경 덕분에 그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는 듯했다.
혹시 또 새로운 신입생이 오진 않을까 싶어 교문 근처를 기웃거리는데, 멀리서 웬 청년이 탄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저곳이 아모니스 아카데미! 시골 귀족 가문의 삼남인 내가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교사가 되다니!’
감격 어린 목소리로 달려온 청년은 호기롭게 외쳤다.
‘귀족 자제들을 열심히 가르쳐 인정받고, 인맥도 착실하게 쌓아서 내 손으로 가문을 일으키겠어! 내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다짐을 하며 달려온 청년은 아카데미의 정문을 향해 달려오더니 안쪽을 둘러보자마자 ‘아모니스 아카데미는 망했구나!’ 하고 외친 후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 버리는 게 아닌가!
많은 깨달음을 주는 모습이었다.
‘나도 그때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면 다른 삶을 살고 있겠지?’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눈물을 글썽이는 찰나였다.
“……어디 사는 망나니가 하늘 같은 선배의 다리를 툭툭 치느냐.”
“수업 시간임다.”
아몬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입니다’라는 존대는 쓰기 싫었던 피오라는 말끝을 뭉개 ‘임다’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몬의 선입견을 한층 더 깊어지게 하고 있었다.
‘누가 망나니 아니랄까 봐, 말투도 껄렁껄렁하긴.’
한숨을 푹 내뱉은 아몬이 촉촉해진 눈가를 손등으로 훔치며 몸을 일으켰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망나니, 교재.”
피오라가 휙 집어 던진 교재를 익숙하다는 듯 낚아챈 아몬이 이미 자리에 착석하고 있는 학생들을 향해 다가갔다.
“자, 그럼 얘들아. 수업 시작하자.”
낙담은 낙담이고, 수업은 제대로 해야 했다.
* * *
역사학 수업이 끝난 후, 아몬이 교재를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야, 망나니.”
“뭠까.”
“너 오늘로 견학 끝 아니냐?”
피오라가 눈살을 찌푸린 채 아몬을 흘겨봤다.
“그건 어떻게 알았슴까?”
“뭘 어떻게 알아? 끝날 때가 됐으니까 아는 거지.”
“…….”
“수업 준비는 잘하고 있냐? 내일부터는 정식으로 과목 맡으니까, 너 혼자서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피오라가 수거한 학생들의 교재를 교탁에 올리며 퉁명스레 말했다.
“신경 끄십쇼. 알아서 잘하겠슴다.”
“어휴, 누가 망나니 아니랄까 봐 반항기가 오래도 간다. 오래도 가. 알겠으니까 알아서 잘해라. 먼저 간다.”
아몬이 휙 강의실을 나가고, 홀로 남은 채 애꿎은 교재를 만지작거리던 피오라의 뺨을 타고 한 줄기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떡하지. 안 했는데.’
인생 계획에 있지도 않던 교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첫 주는 거의 시름에 잠겨 살았고, 그 이후로는 흥청망청 노는 날의 연속이었다.
‘거어억! 이봐, 피오라! 오늘도 한잔해야지!’
‘좋습니다!’
알고 보니 피오라는 술을 꽤 잘 마시는 편이었다.
처음 마리온이 권해 마셨을 땐 정말로 처음 마셨던 것인 데다 도수가 상당히 센 술이라 그랬던 것뿐이고, 적당히 즐기는 술자리에선 ‘못 마신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펜도리안 가문의 어른들도 술을 꽤 즐기곤 했으니, 그 유전자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피오라 님, 저기 낮잠 자기 참 좋아요. 수업하는 동안 한숨 주무세요.’
‘좋습니다!’
이제 적응도 좀 됐겠다, 피오라는 슬로스의 아부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슬로스는 여전히 펜도리안 공작가문의 피오라에게 잘 보이려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카이의 수업에서는.
‘지금 수업이 지루하다고 하품을 하신 겁니까?’
‘…….’
‘명문 펜도리안 가문의 피오라 님께서 수업이 지루하다고 하품이나 하시다니, 견학하는 태도가 엉망이군요!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
견학 태도가 좋지 않다고 카이에게는 혼나기만 했으니, 피오라는 카이에 대한 감정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아무튼 그 결과, 피오라는 술을 즐기고 수업시간에는 낮잠을 자며 수업 견학 태도도 썩 좋지 않은,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망나니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 수업 준비가 되어 있을 리가!
‘으, 어떡하지? 하지만 교사 경험도 없단 말이야. 애초에 교사를 해 보겠다는 생각 자체도 없었고, 교원 자격증도 없는데…….’
그런 이들을 배려해 수업 견학 기간을 주는 것이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리는 상황이었지만, 피오라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편했지. 아버지는 엄하셔서 집에 있는 게 편하지는 않았으니까.’
자상할 땐 자상하신 아버지지만, 엄할 때는 칼 같으시기에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가문에 있을 때 어리광을 받아 주던 사람은 할머니인 디아나뿐.
때문에 그녀가 여기 있는 동안 맛본 나태함은 무척이나 달콤했다.
그 나태함의 대가가 탄탄했던 그녀의 허리둘레를 든든하게 늘려 주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럴 때가 아니지.’
당장 내일부터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 피오라는 다른 선배 교사들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일단 마리온 선배님한테 가 보자.’
술만 안마시면 가장 인간적이고 자상한 선배가 아닌가!
피오라는 곧바로 마리온이 있는 교무실로 향했다.
“딸꾹! 수업 커리큘럼?”
“네. 죄송하지만 조언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껄껄껄! 그래, 그래. 어디 보자아~ 내가 쓰던 커리큘럼 양식이이~.”
한참 서랍을 뒤적거리던 마리온이 빈손을 꺼내며 낄낄 웃었다.
“없네!”
“엣.”
“까르륵! 버렸나 보이.”
“…….”
“애초에 커리큘럼이라는 왜 필요한가. 교과서에는 답이 없는 법일세.”
마리온은 술에 취해 즉흥적으로 수업을 하는 타입이었다.
물론 커리큘럼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마리온의 몸에 익어 있는 거라 당장 피오라에게 도움이 되진 않으리라.
“딸꾹! 여태 보고 배운 게 있으니, 그대로 수업을 하면 되지 않겠나?”
“자, 잘할 자신은 없어서 그럽니다.”
“하긴, 보는 걸로 다 배울 수 있으면 경험이 왜 필요하겠나.”
텅 빈 술병을 괜히 기울이던 마리온이 말했다.
“미안한데 나는 도움이 못 돼 주겠군. 아니면 말로라도 듣겠나?”
“네, 넵.”
“거어억! 그래, 그럼 수업을 시작할 땐 딸꾹, 어어. 근데 술은 더 없나?”
말했듯 술만 안마시면 가장 인간적이고 자상한 게 마리온이었지만, 그 말은 술을 마시면 개가 된다는 뜻!
피오라는 얼른 달아났다.
‘그, 그럼 슬로스 선배님한테……!’
허겁지겁 슬로스를 찾아 나선 피오라는 연병장의 구석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거대 송충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침낭에 싸인 슬로스였다.
“스, 슬로스 선배님?”
“코오오오…….”
“슬로스 선배님!”
“냠…… 우웅, 피이이…….”
딱 좋게 햇볕이 내리쬐는 연병장에서 단잠을 자고 있는 슬로스는 누가 업어 가도 깨지 않을 정도로 숙면을 취하는 중이었다.
최근 피오라에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아부를 떠는 슬로스였지만, 천성이 게으른 그녀는 잘 때는 아부고 뭐고 없었다!
사실 깨어 있어도 슬로스가 커리큘럼을 짜는데 도움이 될까 싶지만 말이다.
‘……망했다.’
직감적으로 그 사실을 깨달은 피오라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럼 카이 선배랑 아몬 그 인간한테 도와 달라고 해야 하는 거야?’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아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아몬이라는 인간이 거슬린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조금 전에 기세 좋게 ‘신경 끄십쇼. 알아서 잘하겠슴다.’라고 말했었는데 어떻게 도움을 청하러 슬금슬금 가겠는가!
‘……그러니까 카이 선배한테 가 보자. 그 사람도 싫지만, 아몬 그 인간보다는 낫겠지. 아아, 이번에도 엄청 혼나겠네.’
걱정하며 카이에게 향한 피오라는 예상대로 크게 혼났다.
“그러게내가수업견학할때좀제대로들으라고그렇게나말했는데.”
“으으으윽……!”
귀에서 피를 쏟게 만들려는 듯이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던 카이가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이, 이건 뭡니까?”
“뭐긴? 커리큘럼 제작 지도 책자.”
“……네?”
피오라는 카이가 내민 책자를 집어 들었다.
그건 책이라기엔 너무나 크고, 두껍고, 무거웠다.
‘……이걸로 사람 때리면 죽겠는데?’
멍하니 책을 들여다보던 피오라가 흠칫 몸을 떨었다.
책의 겉면에는 ‘원숭이도 짤 수 있는 아카데미 커리큘럼 기초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말은 즉…….
쿵, 쿵쿵쿵-!
카이가 몇 권의 책을 추가로 꺼냈다.
초급편, 중급편, 상급편, 심화응용편까지 줄줄이 등장했다.
“읽고 스스로 짜 봐.”
“…….”
“뭐 하고 서 있어? 안 나가? 시간 많아? 커리큘럼짤시간이넘치나보네그럼왜도와달라고한거지이해가안가네.”
피오라는 책을 끌어안고 훌쩍훌쩍 울며 카이의 방에서 나왔다.
‘난 끝이야. 난 실패자야.’
사실 당장 커리큘럼 없이 수업에 들어가도 아주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엉성하고 허둥댈 것이 분명했다.
‘기왕 하는 수업이니까 잘하고 싶은데…… 진작 커리큘럼 짜둘걸! 처음 밖에서 지내는 거라고 게으름 피우지 말걸!’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는 법!
스스로의 나태를 질책한 피오라가 ‘원숭이도 짤 수 있는 아카데미 커리큘럼 기초편!’의 첫 페이지를 읽어 봤다.
‘나는 원숭이보다 못했구나!’
피오라가 왈칵 눈물을 쏟는 순간이었다.
“복도 한가운데 서서 뭐 하냐?”
“……헉!”
돌연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피오라가 고개를 돌렸다.
아몬이 캐모마일 차를 홀짝거리며 서 있었다.
“뭐, 뭠까?”
“신기하네. 뭐 하냐고 먼저 물어봤는데 뭐냐는 질문이 돌아오고.”
“…….”
“응? 뭐야, 그거.”
아몬이 피오라가 안고 있는 책을 들여다보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어휴, 원숭이 시리즈네.”
“……아는 검까?”
“알지. 나도 이거 가지고 있거든.”
“이, 이걸 가지고 있다고요?”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커리큘럼 짤 때 도움은 되거든. 쓸데없는 내용이 많아서 그렇지.”
“…….”
“근데 그거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 말고 처음 보네.”
피오라 물건이 아니라 카이 것이지만, 아몬은 그 사실을 모른다.
심신 안정에 큰 도움을 주는 캐모마일 차를 꿀꺽 삼킨 아몬이 말했다.
“커리큘럼은 다 짰냐?”
“……덜 짰슴다.”
덜이 아니라 하나도 안 짰다!
피오라의 말에 아몬이 피식 웃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하긴, 다 짰으면 그걸 읽고 있을 리가 없지.”
빈정거림이 섞인 아몬의 말에 피오라는 왈칵 짜증이 났다.
이럴 때도 사람을 놀린단 말인가.
때문에 피오라가 짜증스레 쏘아붙이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따라와 봐.”
“……네?”
대뜸 그리 말한 아몬이 터벅터벅 걸어가자 피오라는 영문도 모르고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자신의 방에 도착한 아몬이 몇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받아. 네 수업 커리큘럼이다.”
“네? 제 커리큘럼이요?”
피오라가 멍하니 눈을 깜빡거리고, 아몬이 차를 홀짝 마시며 말했다.
“혹시 몰라서 만들어 뒀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네.”
“…….”
“나도 과학은 겉핥기로만 배워 둬서 자세히는 모르니까, 세부 내용은 네가 알아서 수정해라? 수업 진도는 교재 찬찬히 훑어보고 학생들이 이해했는지 확인하면서 그때그때 정하면 될 거고.”
아몬이 넘겨준 커리큘럼을 멍하니 읽어 보던 피오라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모르는 자신이 봐도 꼼꼼하게 잘 만든 커리큘럼이었다.
“……저, 저기.”
“왜? 모르겠는 부분 있냐?”
“이, 이걸 왜 만들어 준 검…… 겁니까?”
단순한 호의?
후배를 향한 걱정?
확실히는 알 수 없었으나, 확실한 자신을 향한 배려에 스르르 감동이라는 감정이 고개를 드는 순간.
“망나니가 커리큘럼을 짤 리가 없으니까 혹시 몰라서 만들어 뒀다. 왜.”
호의가 아닌 불신!
고개를 들던 감동이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