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13)
아카데미가 망했다 113화
아몬으로선 피오라의 ‘내가 알아서 잘하겠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신뢰를 줄 행동을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믿겠는가?
‘물론 첫인상보다는 낫지만 말이지.’
예전에 바깥에서 디아나와 함께 만났을 때가 아니라, 아카데미에서 보여 줬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그때 보았던 피오라는 방약무인 망나니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채용이 결정됐을 때 얼마나 좌절하고 절망했던가.
‘하지만 그런 것치곤 행동하는 게 의외로 멀쩡해. 조심하고 있는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때문에 아몬은 그녀가 ‘망나니가 아니다.’라는 가설도 세울 수 있었다.
‘이 지옥 마굴 같은 아카데미의 진면목을 알아봤으니 기를 쓰고 이곳에 남지 않으려고 수작을 부렸을지도 모르지.’
제법 신빙성 있는 가설이었다.
말했듯 디아나와 함께 있을 때의 그녀는 멀쩡했다.
게다가 아나르엘도 그녀가 망나니라는 것은 거짓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가장 큰 증거로…….’
커리큘럼이 작성된 서류를 들고 부들부들 떠는 피오라를 힐끔 바라봤다.
그녀는 심각하게 갈등하고 있었다.
커리큘럼을 짜 준 것에 감사해야 할지, 아니면 이런 순간에도 성질을 박박 긁는 아몬을 향해 분노를 터뜨려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이거 봐! 진짜 망나니였다? 이렇게 성질을 긁은 시점에서 곧장 내 얼굴에다 찢은 서류를 흩뿌리고 가래침이라도 뱉었겠지!’
감사와 분노라는 감정을 저울질할 인성은 갖추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며 한참을 고민하던 피오라가 큰 결심을 하기 직전, 아몬이 찻잔 하나를 새로 꺼내며 말했다.
“이봐, 피오라.”
“……으드득! 뭠까.”
“일단 앉아 봐. 차나 한잔하자고.”
별안간 아몬이 잔에 차를 따라 주자 피오라의 눈이 의심으로 물들었다.
‘차에 독을 탄 건가?’
아몬이 자신은 무해하다는 듯 빙그레 웃는 것을 본 피오라는 확신했다.
‘독을 탔구나! 이 기회에 나를 없애려고!’
아몬은 피오라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독은 안 탔고, 마시기 싫으면 그냥 이야기만 들어.”
“……왜 독을 안 탔슴까?”
“누구랑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구나.”
자신의 잔에 따른 차를 홀짝거리던 아몬이 입을 열었다.
“내가 최근에 너를 보면서 느낀 건데, 솔직하게 말해 줬으면 좋겠다.”
“……?”
“너, 그냥 여기서 일하기 싫어서 망나니인 척했던 거지?”
피오라가 눈을 부릅떴다.
아몬이 자신의 속셈을 정확하게 꿰뚫은 것이다.
“어, 어떻게 그걸…….”
“그때 디아나 님 옆에 있을 때랑 전혀 달랐고, 아카데미에 와서도 첫인상이랑은 하는 짓이 너무 다르더라고.”
“…….”
“조금 전까진 그냥 추측이었는데, 반응을 보니 정말인 모양이네.”
드디어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나자 피오라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리고 어쩌면 아몬이 자신의 구세주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피오라가 눈물을 글썽이며 싹싹 빌기 시작했다.
“그, 그럼 선배님. 저 좀 도와주세요. 저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가고 싶다고?”
“네! 여기서 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요. 애초에 할머니가 면접만 잠깐 보고 오면 된다고 하신 건데…….”
“흐음…… 그래?”
아몬이 눈을 반짝이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아몬은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피오라를 여기서 내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어쩌면 아카데미의 유일한 정상인일지도 모른다. 내 유일한 동료가 돼 줄지도 모르지. 그런데 여기서 내보내 달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
백짓장도 함께 들면 가벼운 법이고, 지옥에서 굴러도 혼자 구르는 것보단 둘이서 구르는 게 낫지 않겠는가!
아몬이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얼굴로 말했다.
“피오라, 정말 유감이지만, 평교사인 나한테 그럴 권한이 있을 리 없잖아.”
“아…….”
그 말에 피오라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한순간 절박함에 목매어 매달리긴 했지만, 그녀 본인도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가주인 아버지가 불호령을 내렸는데, 그걸 무시하고 돌아갔다간 어떤 끔찍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역시…… 그렇겠죠.”
체념한 듯 고개를 떨어트리는 피오라를 본 아몬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 자. 우선 앉아 봐.”
“…….”
“옳지. 차도 마시렴. 심신 안정에 큰 도움을 주는 캐모마일 차란다.”
슬픈 얼굴로 조심스레 차를 마시는 그녀를 본 아몬이 말했다.
“우선 물어보자. 왜 여기서 일하기 싫어?”
“…….”
“솔직하게 말해도 돼. 교사 선배, 후배를 떠나서 사람 대 사람으로 궁금해서 그러는 거야.”
아몬의 간교한 설득에 피오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유야 많죠. 거의 망한 아카데미잖아요.”
아몬은 가슴이 아팠다.
부정할 수 없었다.
“그, 그리고 또?”
“솔직히 선배들이 좀…….”
아몬은 아픈 가슴을 움켜쥐었다.
이번에도 반박할 수 없었다.
“그, 그렇구나. 또 이유가 있니?”
“그리고…….”
순간 피오라가 말문을 닫았다.
앞선 이유는 차치하고, 그녀가 여기서 일하고 싶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는 할머니인 디아나가 ‘아몬과 친해져라.’는 부탁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머릿속에 저변에 깔려 있어, 그녀는 아몬과 마주하는 것 자체가 거북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말할 순 없었기에 둘러 대기로 했다.
“교사직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음, 그렇구나.”
아몬은 팔짱을 낀 채 전부 이해한다는 듯 자애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을 둔 후 아몬이 진지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말했다.
“우선 교사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건 조금만 시간을 두고 판단했으면 좋겠어.”
“……네?”
“아직 이곳에 온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잖아. 게다가 지금까지는 견학만 해서 혼자서 수업을 해 보지도 않았으니, 교사로서의 적성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기엔 조금 이르다고 생각해. 아, 적성이 없다는 네 생각을 절대 부정하는 건 아니야. 그냥 조금만 더 지켜봤으면 좋겠다는 거지.”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면서도 상대의 생각을 긍정해 주는 더러운 화법!
피오라는 얼굴을 떨어트린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솔직히 나도 내가 교사가 적성에 맞진 않는다고 생각해.”
“네? 선배님이요?”
피오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업을 하는 걸 보면 굉장히 능숙하던데?
“노력하는 거지. 지난번에 내 사정은 대충 들었지?”
“아…… 네.”
군터 군도 연합과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 아몬은 참전의 의지를 말하며 자신의 사정을 대략적으로 털어 놨었다.
“그러니만큼, 노력하는 거지. 적성에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피오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새삼 아몬이 굉장히 어른스럽게 보였다.
‘어, 거짓말이야.’
아몬은 스스로가 교사가 아닌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적성에 맞다고 생각한다!
천생 교사! 교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인간!
스스로를 그리 규정하고 있는 아몬이 부드럽게 말했다.
“뭐, 이건 내 사정이고 너는 다를 테지. 그래도 시간을 조금 두고 지켜봤으면 좋겠다는 건 진심이야.”
“……네, 선배님.”
이로써 피오라는 ‘교사가 적성에 안 맞는 아몬도 아등바등 노력하는구나!’라고 인식하게 됨으로써 이곳에서 달아나려 할 때 조금은 망설이게 되리라!
아몬이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선배들이, 동료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지.”
“그, 그건…….”
“괜찮아, 괜찮아.”
아몬이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처럼 말했다.
“사실 나도 그래.”
“네, 네에?”
“넌 내가 그 인간들이랑 그렇게 사이가 좋아 보였니?”
“……아뇨.”
피식 웃은 아몬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래도 친해지려고 노력해 봐라.’라거나 ‘직장에서 사람을 어떻게 가리냐.’는 말은 안 할 거야.”
“네? 그럼…….”
“참으라는 말도 안 할 거고.”
아몬이 차를 홀짝이며 피오라를 가리켰다.
“그 사람들이 별로인 건, 너를 망나니라 오해하고 있어서 그러는 거잖아? 오해는 풀면 돼. 내가 도와줄게.”
“서, 선배님…….”
“그럼 너를 대하는 그 인간들의 태도도 바뀌겠지.”
피오라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여태껏 보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지금의 아몬은 무척이나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감격에 겨워 있는 피오라를 본 아몬이 찻잔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섬뜩한 미소를 머금었다.
‘크큭, 반쯤 넘어왔군.’
그렇다면 이제 쐐기를 박아야 할 때.
차를 원샷한 아몬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아카데미가 망해간다는 거. 이것도 부정하진 않아. 사실이니까.”
“…….”
“기왕 일할 거라면 잘나가는 곳에서 일하고 싶겠지. 당연한 거야.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아몬이 눈을 이글이글 불태우며 말했다.
“나는 내 힘으로 이곳, 아모니스 아카데미를 다시 예전처럼 부흥시키고 싶어.”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그러나 그 속마음은 피오라에게 닿지 않았다.
“아아……!”
오직 열정만이 닿았을 뿐!
아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기 위해 내 모자란 힘이나마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
왜 모르겠는가.
채용이 결정된 후 아나르엘은 입이 닳도록 아몬에 대해 칭찬했었다.
아카데미를 위하는 그의 헌신! 노력! 땀의 결정!
물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았다.
자신을 향해 밉살스럽게 구는 아몬의 태도에서는, 아나르엘이 말하던 훌륭하고 멋진 교사에 대한 편린조차 찾기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얼마 보지 않았더라도 아카데미와 학생들을 진심으로 위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은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어.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때문에 피오라는 아몬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다.
실제로도 진심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아카데미를 부흥시키고 학생들을 잘 가르쳐 출세하고 싶었으니까!
“그러니까 피오라.”
아몬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말대로 모두들 초라하고 망해 가는 아카데미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그 생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겠어?”
아몬은 그리 말하며 긴장했다.
‘나였으면 홀랑 넘어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착하고 순수하지 않다는 게 문제지.’
그렇기에 피오라가 ‘싫은데요.’라고 말할 것을 염두에 뒀다.
‘자, 그럼 이후론 어떻게 설득해야…….’
“기다릴게요.”
“……어?”
서슴없는 대답에 아몬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피오라를 바라봤다.
“방금 뭐라고……?”
피오라가 얼굴을 떨어트린 채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기다릴게요.”
“어어…….”
이렇게 단번에 넘어올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설마 피오라도 자신처럼 착하고 순수한 인간이란 말인가!
헛기침을 한 아몬은 내친김에 조금 더 욕심을 내 보기로 했다.
“크흠! 그래, 그럼 나를 도와줄 수는 없을까?”
구렁이 담 넘어가는 것처럼 정상인을 동료로 끌어다 쓰려는 간교한 속셈!
그 속내를 알지도 못하는지 피오라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열심히 해 볼게요.”
피오라가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꿔서 협조적으로 나오자 아몬은 도리어 꺼림칙했다.
‘갑자기 무슨 속셈이지?’
잘 풀리는 척하다가 일을 호되게 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아몬의 얼굴에 진한 불안감이 떠올랐다.
‘하지만 뭐, 이번에는 괜찮겠지! 피오라는 정상인이니까!’
빙그레 웃은 아몬이 손을 뻗었다.
“고맙다! 앞으로 잘 부탁하마, 내 후배야!”
* * *
펜도리안 공작 가문의 가주, 로이스 발드 펜도리안은 자신의 딸이 잘 지내고 있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엄하지만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큰 문제야 없겠다만…….’
펜도리안 공작이 창문 밖을 바라봤다.
별이 깔린 밤하늘 사이로 사랑하는 딸의 웃는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그래, 괜찮겠지. 그 아이의 나쁜 버릇만 나오지 않는다면 말이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