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18)
아카데미가 망했다 118화
일과가 끝난 후, 아몬은 회의실에서 다른 교사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원하는 ‘문화제’의 내용을 검토받으려는 것이다.
“어, 음. 아몬.”
“예, 마리온 선배님.”
“다른 건 대충 이해하겠는데, 라스티아넬의 금 먹기? 이건 뭔가?”
아몬이 눈을 스르르 감았다.
이미 돈 냄새를 맡은 아몬은 라스티아넬의 금 먹기를 밀고 나갈 생각이었다.
“구경꾼은 확실하게 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기하긴 하겠군.”
“사람들은 걔가 드래곤이라는 걸 모를 테니 차력쇼로 보일지도 모르죠.”
“……우리가 생각하던 문화제와는 전혀 다르군.”
슬로스도 명단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작년까진 멀쩡했는데…….”
“작년에는 뭘 했습니까?”
“연극이나 검술, 마법 시연회랑 토론회 같은 거?”
아몬이 쯧쯧 혀를 찼다.
“뻔해요. 너무 뻔합니다. 명색이 상업 도시 한복판에 있는 아카데미인데, 그런 뻔한 것들로 도대체 무슨 경쟁력이 있겠습니까?”
아카데미의 근본을 부정하는 아몬의 발언에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아몬은 당당했다.
“우리도 돈은 벌어야 할 것 아닙니까!”
“……역시 돈이 목적이었나.”
뭐, 내용을 보면 돈 하나는 확실히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카데미의 문화제에 걸맞은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카이가 그 사실을 지적했다.
“문화제에는 문화제에 걸맞은 양식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건 문화제라기보단 서커스 같군요. 과연 제국 교육부에서 인정해 주겠습니까?”
“괜찮아. 이미 위에서 허가가 떨어졌으니까.”
“위에서…….”
애초에 이건 황제가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교육부의 재정을 통해서 지원금을 넘겨주려는 얄팍한 술수였다.
이미 문화제의 규모는 아카데미가 자체적으로 판단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상황 아니던가.
‘뭐라고 딴죽을 걸면 학생 수가 적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대면 돼. 어떻게든 볼거리를 풍성하게 만들어 보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하면, 자기들이 뭐 어쩔 건데?’
불만이면 교육부에서 학생 유치 좀 해 주던가!
“아무튼 우리 교사들이 명단에 있는 각 무대를 담당해야 합니다. 각자 어떤 무대를 맡고 싶으십니까?”
“저, 정말 이대로 가는 겁니까?”
카이의 딴죽에 아몬이 말했다.
“그럼 학생 다섯 명 데리고 연극이라도 할까? 네가 배경으로 나무 해.”
“……크흠! 전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딱히 불만은 없어 보였다.
‘어차피 우리가 하는 거 아니니까.’
‘학생들이 하고 싶다고 한 건데, 뭐 어때?’
아무튼 담당으로 맡을 무대를 정해야 한다는 아몬의 말에 카이는 그나마 가장 멀쩡한 것을 노렸다.
“흠흠, 그럼 제가 보리스의 마법 시연을 맡고 싶습니다.”
그 말에 마리온이 눈을 부라렸다.
“쓰으으읍! 카이!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일세. 애초에 내가 보리스를 업어 키우다시피 하며 가르쳤는데, 왜 자네가 홀랑 낚아채 가려 하느냐.”
“…….”
“보리스의 마법 시연 무대는 내가 맡도록 하겠네.”
“……예, 선배님.”
마리온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멀쩡한 거 걸렸다.’
연공서열과 명분에서 밀린 카이는 눈물을 머금고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
“그, 그럼 클로에의 동물 체험을 맡겠습니다.”
슬로스가 나른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아냐, 내가 할래. 우리 영지엔 군마도 많고 가축도 꽤 많아. 클로에가 원하는 동물들은 대부분 지원해 줄 수 있어.”
이번엔 실리에서 밀린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것쯤은 자신도 얼마든 지원해 줄 수 있었다.
“스, 슬로스 선배님, 제가 동물 체험을 맡으면 안 될까요?”
“싫은데. 불만이면 네가 내 선배 하던가.”
이번에도 슬로스가 연공서열을 내세우자 카이의 뺨이 부들부들 떨렸다.
“근데 생각해 보니, 너는 레이몬드랑 같이하면 되잖아? 레이몬드가 너를 잘 따른다며?”
아니다.
카이 혼자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게다가 문제는, 라인벨트가 수업이 끝난 레이몬드의 하소연을 듣다못해 카이에게 ‘우리 레이 좀 그만 괴롭히게.’라며 한 소리 한 적 있었다.
때문에 레이몬드를 담당하는 것이 망설여졌다.
‘그렇다고 금 먹기? 저건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아. 명색이 제국의 황태자인데 금 먹기? 저런 걸 어떻게 하겠냐고.’
진퇴양난의 상황!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카이를 바라본 슬로스가 말했다.
“아무튼 나는 동물 체험을 맡을게.”
“엇……!”
슬로스는 카이의 혼란을 틈타 자신이 원하는 무대를 쟁취했다.
‘휴, 편한 거 걸렸다. 동물들만 지원해 주면 클로에가 알아서 하겠지?’
이제 남은 것은 레이몬드의 인형 제작과 라스티아넬의 금 먹기뿐.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한 카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아, 아몬 선배님은 뭘 맡으시려고요?”
카이의 물음에 아몬이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금 먹기.”
돈 냄새 나는 건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없었다.
그리고 아몬의 말에 카이의 얼굴에 한 줄기 희망이 떠올랐다.
‘다행이다! 그나마 금 먹기는 피했구나!’
이로써 남은 건 레이몬드의 인형 제작뿐.
레이몬드를 그만 괴롭히라며 라인벨트에게 한 소리 듣기는 했지만, 필시 어디에서 중대한 오해가 있었던 것이리라.
‘그래, 오해야 풀면 그만이지. 그리고 최악보다는 차악이 나은 법.’
체념한 카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제가 레이몬드를 맡겠습니다.”
“그래라. 그럼 피오라가 남네? 넌 그냥 쉬어. 그냥 여기저기 일손 필요할 때 한번씩 도와주면 돼.”
“네. 알겠습니다.”
카이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달았다.
* * *
아몬은 정리된 회의 내용을 가지고 학교장실로 향했다.
“이렇게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아몬 선생님.”
“고생은요. 그리고 회의 도중 나온 이야기인데, 클로에의 동물 체험을 학교장님께서 같이 진행하면 어떨까 싶은데요.”
아나르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그건 무슨……?”
“엘프랑 동물. 모양새가 살잖아요.”
“…….”
“설마 문화제 때 놀고만 계실 건 아니죠?”
아나르엘이 침음을 흘렸다.
사실 놀 생각으로 충만해서 이미 계획까지 짜 두었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당연히 도우려 했죠.”
“역시 학교장님, 믿고 있었습니다.”
전혀 안 믿고 있었다.
‘아무튼 덕분에 볼거리가 충분해지겠군. 엘프와 동물이 잘 어울리긴 해.’
흡족하게 웃는 순간이었다.
“맞아, 그러고 보니 브레슬 부학교장님이 먹거리 부스를 운영하자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몬의 얼굴에 걸려 있던 흐뭇한 미소가 지워졌다.
만약 최초 발안자가 다른 인물이었다면 ‘맞아, 축제에서 그걸 빼먹을 뻔했군요!’라며 무릎을 탁! 쳤겠지만, 브레슬이 제안했다니 불안감만 치솟았다.
“……불안한데요.”
“……아몬 선생님 생각도 그렇죠?”
“그런데 학생 수가 이렇게 모자란 마당에 그걸 꼭 해야 합니까.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아나르엘이 체념한 듯 말했다.
“브레슬 부학교장이 자기가 책임지고 하겠대요.”
“……더더욱 불안하군요.”
“게다가 필요한 식재료를 구하러 가겠다고 이미 출발했어요.”
“애초에 제안이 아닌 통보였군요.”
지독한 불안감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하지만 아무리 브레슬이라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팔려고 만든 음식을 먹어 치우지는 않겠지. 그래, 아무리 다크엘프라도 그 정도 염치는 있을 거야.’
말했듯 문화제는 모두가 주역이 되는 축제가 아닌가.
그러니만큼 브레슬이 음식을 조금 훔쳐 먹는 정도는 드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기로 했다.
‘어차피 중요한 건 내가 진행할 금 먹기니까.’
솔직히 말하면 거기서 한탕 제대로 벌 수만 있다면 다른 건 망해도…….
‘아니, 망하면 안 되지. 학생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줘야지.’
가까스로 ‘교사 아몬’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문화제까지 남은 기간은 고작해야 몇 주.”
아나르엘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학교장님, 우리 한번 있는 힘껏 열심히 해 보죠.”
“물론이에요, 아몬 선생님.”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이번 문화제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기를 기원했다.
* * *
모든 게 순조로웠다.
수업은 수업대로 진행하면서 문화제를 준비해야 했기에 힘들 법도 했건만, 학생들의 안색은 밝았다.
하기야 처음으로 치르는 아카데미의 공식 행사가 아닌가!
아, 물론 먼젓번의 교류전도 행사라면 행사였지만 그것은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행사는 아니었다.
때문에 학생들은 고단함을 느끼는 한편, 문화제의 준비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며 최선을 다했다.
“쫑아! 엎드려!”
-헥헥헥!
“나비! 굴러!”
-애옹.
슬로스가 구해다 준 개와 고양이를 능숙하게 조련하고 있는 클로에!
그런 클로에의 뒤로는 수십 마리에 달하는 동물들이 부동자세를 취한 채 클로에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동물들을 어떻게 조련한 걸까?’
아몬은 그 사실이 궁금했다.
하지만 클로에한테 물어봐도 ‘비밀이에요.’라며 웃어넘길 뿐이었고, 보리스와 다른 학생들도 ‘클로에가 비밀이라고 말해 주지 말랬어요.’라며 대답을 회피하곤 했다.
‘동물들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지.’
머리를 긁적거린 아몬이 고개를 돌렸다.
“클로에, 준비는 순조롭니?”
그 물음에 클로에가 해맑게 웃었다.
“네, 잘되고 있어요. 동물 체험으로 탈 수 있는 애들은 이제 사람을 태우는데 저항감이 없고, 재주를 부릴 애들도 배우는 게 빠르게 늘고 있어요.”
“이 짧은 시간에 참 대단하구나. 그런데 슬로스 선배님은?”
“저기서 한숨 자고 있겠대요.”
“내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딱히 타박할 생각은 없었다.
‘동물들을 구해 준 덕분에 문화제 준비도 순조롭고 말이지.’
아몬은 다음 학생에게 향했다.
“보리스, 여기선 마법을 조금 더 넓게!”
“넵!”
“좋아! 화려하고 좋구나!”
보리스는 마리온과 함께 한창 마법 시연에서 펼칠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몬도 종종 구경해 봤는데 하루가 갈수록 능숙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마나가 모자랄까 봐, 우리 영지의 감자도 푸짐하게 먹이고 있지.’
또한 당일에 먹을 감자도 넉넉하게 준비해 뒀으니 마법 시연을 하다가 마나가 모자랄 일도 없으리라!
아몬은 다음 학생인 레이몬드가 만들어 둔 인형 제작대로 향했다.
거기에는 당일 손님들에게 보여 줄 견본으로 만든 아카데미의 모든 사람들을 본떠 만든 인형들이 있었다.
사람의 특징을 기가 막히게 잘 잡아서 만든 인형들이었다.
‘즉석으로 빠르게 만들어야 하니만큼 봉제 인형 수준 크기지만, 참 잘 만들었단 말이지. 눈썰미도 소드 마스터인 건가?’
재료도 넉넉하게 준비해 뒀으니 안심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학생인 라스티아넬의 금 먹기 코너는…….
‘……준비할 게 없지 뭐.’
아몬이 괜히 다른 학생들의 무대를 둘러보러 다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정말 뜻밖인 건, 브레슬이 준비하는 먹거리 부스가 생각보다 제대로 됐단 말이지. 싸고 푸짐하고 질도 괜찮고.’
브레슬은 다른 건 몰라도 먹을 것 하나에는 진심이었다.
자기 입에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 입에 들어가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하긴, 생각해 보면 브레슬이 남들 것을 뺏어 먹고 다닌 적은 없었다.
자기 몫이 굉장히 많고 소유권이 애매한 걸 자기 것이라 주장할 뿐이지.
‘혹시 손님이 없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브레슬이 골드로드 상회에 식재료를 발주하러 가면서 일찌감치 손님들을 유치시켜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니…….’
우두커니 선 채 생각에 잠겨 있던 아몬이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왜 이렇게 순조롭지? 불안하게?’
하지만 아몬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잘되겠지. 여태 그렇게 많이 말아먹었으니, 이번 한 번만은 잘 돼야지.”
아몬은 애써 불안감을 잠재우며 걸음을 옮겼다.
* * *
대망의 문화제 당일.
라인벨트는 명상에 빠져 있었다.
‘지난번의 침입자로 인한 사고는 오롯이 내 잘못이다. 그러니…….’
눈을 뜬 라인벨트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번만큼은, 제국 4대 기사의 명예를 걸고 단 한 명의 침입자도 허용치 않으리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