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19)
아카데미가 망했다 119화
아몬은 창밖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감상에 젖어 있었다.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문화제의 날이 밝았구나.’
자신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오늘의 태양은 각별하리라.
심신 안정에 도움을 주는 캐모마일 차를 마시며, 오늘 단단히 한몫 잡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골드로드 상회도 홍보를 열심히 해 준 모양인지, 가끔씩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들도 문화제가 언제 열리는지 물어보곤 했었지.’
뜻밖인 것은 거래에 칼 같은 골드로드 상회가 선뜻 문화제의 홍보를 해 줬다는 사실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식재료의 발주를 넣으러 갔던 브레슬이 지부장을 향해 눈을 희번덕 빛내면서 부탁했기에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고 한다.
‘상인도 진짜 광기 앞에선 한 수 접어 주는군. 아무튼…….’
아몬이 창문 밖을 내다봤다.
오늘을 위해 꾸민 무대들은 정문에서 가까운 장소에 위치해 있었다.
애초에 운영하는 부스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 모아 뒀으니 밀도는 높아 보여. 게다가 나름 알차게 잘 준비했으니 괜찮겠지.’
마법 시연을 위한 무대, 수제 인형 제작을 위한 부스, 널찍하게 만든 울타리 안에서 클로에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는 동물들!
거기에다 브레슬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갖가지 먹거리 부스까지!
‘……근데 어떻게 된 게 먹거리 부스가 제일 크냐.’
음식 종류만 해도 수십 개에 달한다고 하니,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주방장은 오늘도 피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에 고이 간직해 둔 사직서를 매만지리라.
‘아무튼, 가장 중요한 건 라스티아넬의 금 먹기 무대.’
아몬은 가장 중심에 위치해 있는 탁자와 의자를 바라봤다.
저곳에서 라스티아넬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금화를 우걱우걱 먹어 치울 것이다.
그리고 남은 조각의 절반은 아몬의 차지가 되리라.
‘골드로드 상회의 지부장이 찾아왔을 때 금 먹기 무대를 특히 잘 홍보해 달라고 했으니…… 후후후.’
아무르에 머무는 수많은 귀족들은 구경거리에 목말라 있으니 성공은 당연한 수순이리라!
아몬은 서광이 드리우는 문화제장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차를 홀짝였다.
* * *
여유는 잠깐이었다.
‘미친. 이게 뭐야.’
아몬은 골드로드 상회의 저력을 조금은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돈을 잘 버는 건 둘째치고, 여태 그들이 신뢰감을 줄 행동은 딱히 않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생각을 수정해야 했다.
“저쪽에서 마법 시연을 한다는데?”
“당장 가 보자!”
수십 명의 남녀노소가 보리스와 마리온을 잡아먹을 기세로 우르르 달려간다.
“와! 저쪽에선 재료값만 받고 수제 인형을 만들어 준대!”
“당장 가 보자!”
어린 소녀들이 구르는 것처럼 레이몬드와 카이를 향해 달려갔다.
“말이다! 엄마, 나 말 타 보고 싶어!”
“당장 가 보자꾸나!”
클로에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져, 커다란 동물에 대한 동경이 있는 소년들은 부모님을 독촉해 동물 체험장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음식은 성별과 연령대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닭꼬치 냄새 엄청 좋다!”
“당장 먹자!”
아직 이른 오전임에도 아카데미는 수백 명의 남녀노소로 북적이고 있었다.
더구나 학생들이 꾸민 각 무대는 성황리에 영업 중!
동물만 지원해 주고 놀 생각이었던 슬로스도 예상 못 한 인파에 진땀을 뻘뻘 흘리며 손님들을 맞이해 주고 있었고, 담당하는 학생이 없으니 가끔씩 일을 도와주면 될 거라 생각했던 피오라도 눈썹을 휘날리면서 여기저기 도와주러 다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아몬이 꾸민 금 먹기 무대는!
“오빠.”
“……왜.”
“우리 망한 것 같아.”
아미의 지적에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놀랍게도,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어느 누구도 아몬의 금 먹기 무대에 한 톨의 관심도 주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다른 곳들은 사람들도 북적대고 있는데 금 먹기 부스만 다른 세상인 것처럼 한산했다.
“정말로 내가 불 고리라도 넘어야 하나……?”
“아미, 오빠는 널 믿는다.”
“오빠도 같이 넘으면 안 될까?”
“음…… 그럴까?”
아몬과 아미가 수군거리는 와중,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라스티아넬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아미 씨. 경거망동하지 마세요.”
“라스티아넬!”
“방법은 많아요. 예를 들면…….”
라스티아넬이 품속에서 금화가 가득 든 주머니를 꺼냈다.
그 광경에 아몬의 눈이 탐욕으로 번쩍 빛났고, 그 사실을 깨달은 라스티아넬이 슬그머니 주머니를 감추며 말했다.
“물건을 팔 때도 견본을 보여 주고 파는 법이죠. 게다가 금 먹기라는 생소한 구경거리니만큼, 우리도 실제로 예시를 보여 줘야 할 필요가 있을 거예요.”
“화, 확실히…….”
사실 금 먹기 부스가 처음부터 사람 하나 없는 변경의 땅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관심을 가지고 다가온 손님들도 구경값이 금화 하나라는 말을 듣고는 질색을 하며 달아나곤 했던 것이다.
애초에 구경값으로 주는 금화를 먹어 치우는 쇼이니만큼 어쩔 수 없는 요금이었다.
“그러니 아미 씨, 호객을 부탁해요.”
“응. 맡겨 줘.”
아미가 당당하게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때 청과점에서 일했다는 게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짜아아아! 여러분! 주모오옥!”
아몬의 동생 아니랄까 봐 우렁찬 함성을 터뜨린 아미는 주변을 거닐던 손님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박수를 짝짝 치며 말을 이었다.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문화제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아! 다들 즐기고 계시나요!”
단숨에 시선을 모은 아미가 재빠르게 외쳤다.
“짜아아! 혹시 즐기지 못하고 계시는 분들을 위한 볼거리!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유명한 아르마 산맥에서 오신 연금술사 라스넬입니다! 모두 박수와 환성으로 맞이해 주세요옷!”
어느새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인파들을 향해 빙글빙글 돌며 박수를 유도하는 아미를 멍하니 바라보던 아몬이 생각에 잠겼다.
‘쟤 청과점에서 일했다더니, 무슨 서커스단이나 떠돌이 잡상인들하고 일했던 거 아니야……?’
수상한 물건을 파는 잡상인들이나 내뱉을 법한 멘트!
또한 은근슬쩍 라스티아넬을 ‘연금술사 라스넬’로 둔갑시켜 버렸다.
‘게다가 극한의 오지인 아르마 산맥을 언급하고, 연금술사라는 독특한 직업을 어필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아미, 너는 도대체……?’
동생에게는 사기꾼의 재능이라도 있단 말인가!
더구나 라스티아넬도 재빠르게 판단을 마친 모양인지, 아미의 말에 맞춰 연금술사스러운 행동을 시작했다.
슈르르르-!
순식간에 금화를 녹여 허공에 금색 액체를 둥실둥실 띄우는 묘기!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렇구나. 아미랑 라스티아넬이랑 미리 합을 맞춰 본 모양이…… 아니구나. 라스티아넬 저 녀석, 예상도 못 한 상황이라 식은땀을 흘리고 있잖아.’
아무튼 덕분에 관심과 흥미를 모으는 것은 성공이었다.
어느새 먹거리 부스에 있던 사람들도 이곳으로 기웃거리며 다가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라스티아넬의 묘기에 시선을 집중한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는 순간.
아미가 눈짓했다.
‘지금!’
그 시선을 깨달은 라스티아넬이 입을 딱 벌리자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던 녹은 금화가 마치 국수처럼 빨려 들어갔다.
“우왓! 뭐야! 저걸 먹었어!”
“방금 먹은 게 뭔데!?”
예상한 반응에 아미가 관중들을 둥글게 돌아보며 말했다.
“경지에 오른 연금술사 라스넬 님께선! 바로바로! 금을 먹습니다앗!”
관중 일동 충격! 경악!
“못 믿으시겠다고요? 라스넬 님!”
라스티아넬이 금화를 휙 던지더니 날름 받아먹었다.
그리고 오독오독 씹어 먹는 광경에 사람들이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
“우와악! 그, 금을 먹는다!”
“엄마! 쟤 금 먹어!”
아미가 박차를 가해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혹시 금박만 입힌 음식 아니냐고요? 아뇨, 아닙니다!”
아미가 금화 하나를 집어 들고 손가락을 탁 튕기자 금속 특유의 쨍한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곧이어 그것을 라스티아넬의 입에 넣어 주자 다시 와작와작 깨물어 먹는다!
“우와악! 저 아이 금을 먹고 있어!”
“엄마! 쟤 금 먹는다니까!”
아미가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분위기도 무르익었으니 슬슬 마무리 지을 시간이었다.
“자! 그럼에도 믿지 못하는 분들은, 가지고 계신 금화를 직접 라스넬 님의 입에 넣어 보세요! 단, 다들 아시겠지만, 그 금화는 라스넬 님이 먹을 테니 돌려받을 순 없습니다!”
* * *
사람이 없는 불모의 땅인 라스티아넬의 금 먹기 코너.
아미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왜 사람이 없지? 내가 호객을 잘못했나?”
아몬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조금 약장수 같긴 했지만, 사람들 반응은 나쁘지 않았어.”
“……그럼 진짜 불 고리라도 넘어야 하나?”
사람들은 금화를 먹는 라스티아넬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기는 했지만 자기 주머니에서 꺼내 주진 않았다.
결국 라스티아넬이 먹은 금화는 자기 것뿐이었다.
게다가 호객을 위해 금화를 제법 먹어 치웠기에, 라스티아넬은 다소 홀쭉해진 자신의 주머니를 슬픈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제국의 인심이 땅에 떨어졌군. 드래곤이라지만 겉으로는 어린아이로 보이는 라스티아넬이 저렇게 배고파하는데 어느 한 사람도 금화를 줄 생각을 않다니! 세상이 어쩜 이렇게 각박할 수 있단 말인가!’
탄식을 금치 못하던 아몬이 주변을 둘러봤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전혀 이쪽으로는 다가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종종 ‘여기 뭐 하는 곳이에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어 ‘이분은 금을 먹는답니다!’라고 대답해 주면, 신기하다는 반응만 보여 줄뿐 어느 누구도 금화를 꺼내 주진 않았다.
‘이상하다, 이상해. 어떻게 된 일이지?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돈 있는 사람들이, 귀족이 한 사람도 없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때문에 아몬이 정문으로 향해 입장을 기다리는 손님들을 직접 확인하려는 순간이었다.
“아, 아몬 선배!”
구르는 것처럼 달려온 피오라가 퀭한 얼굴로 말했다.
“한가하심까! 저쪽 동물 체험에 사람이 너무 심하게 몰렸는데 도와주십쇼!”
그때 마리온도 헐떡이며 달려왔다.
“아몬! 사람이 너무 많아서 통제가 안 된다! 좀 도와다오!”
카이는 손님이 너무 많아 아예 자기도 직접 인형 제작에 나서는지 온통 바늘에 찔린 손을 앞세운 채 달려왔다.
“선배님! 저희 좀 도와주십시오!”
“카이 이놈! 찬물도 위아래가 있거늘! 우리 마법 시연 무대가 먼저다!”
“동물 체험이 먼점다! 학교장님이 아몬 선배 데려오라 했슴다!”
“제 손 구멍투성이 된 거 안 보이십니까! 저 한번만 좀 살려 주십시오!”
자신을 데려가려 아옹다옹 싸우는 그들을 본 아몬이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때 브레슬은 음식을 먹으며 지나가는 길에 삿대질을 했다.
“으휴, 다들 바쁜데 혼자 노는군.”
먹먹해져 오는 가슴에 아몬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 * *
라인벨트는 입장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줄을 보며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단 한 명의 침입자도 들여보내지 않으리라!’
그런 마음가짐 탓에, 라인벨트의 기세는 은연중에 아카데미 주변을 철옹성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그 흉흉한 기세는 마나를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으나, 마나를 조금이라도 익힌 기사나 마법사들에겐 달랐다.
‘오늘 저기서 문화제 한다던데, 심상치 않은 기세가 흐르는 걸 보니 가면 안 되겠다.’
‘우와, 기세 봐라. 저기 가면 숨도 못 쉬겠다.’
마침 오늘이 월급날이었던 기사단의 기사들은 몸을 돌려 아카데미 방향으론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부유한 귀족이나 상인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그들을 호위하는 기사와 용병들이 극구 뜯어말렸기 때문이다.
“바튼 경, 문화제에 가지 말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저곳에 심상치 않은 기세가 흐르고 있습니다. 저로선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기운입니다. 솔직히 지금도 다리가 떨려 혼날 지경입니다.”
“소드 익스퍼트의 기사인 자네가 그리 말할 정도라면…… 알겠네.”
그런 이유로 아카데미에 입장하고 있는 이들은 평민들뿐!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볼거리를 염두에 둔 ‘금 먹기’가 잘 풀릴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아몬은 동물 체험 무대를 도와주며 희망을 품었다.
‘그래, 돈 많은 귀족들은 저녁이 되면 찾아올 거다! 그때부터 진짜로 우리의 무대가 시작되는 거야!’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