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21)
아카데미가 망했다 121화
학생들이 손수 계획하고 진행한 문화제는 참 많은 것을 남겼다.
첫 번째로는 오랫동안 남을 아카데미에서의 추억.
수많은 손님을 받으면서도, 비록 힘들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학생들의 안색은 밝았다.
아몬은 학생들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보며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 고삐는 조금 더 살살 잡으세요!’
‘엇, 어어억! 높다! 높다!’
‘선생님, 말 탈 줄 모르셨구나…….’
동물 체험을 맡은 클로에의 말대로, 시골 깡촌인 드레이크 영지에 살면서 말을 탈 일이 없었다.
그리고 레이몬드의 인형 제작 경우에는, 아몬이 봐도 대단한 품질을 자랑했기에 기념품으로 몇 개는 챙기고 싶었다.
‘레이몬드, 어머니와 아버지 것도 하나만 만들어다오.’
‘저기 선생님, 그런데 재료비는요?’
‘어허! 우리 사이 아니니?’
‘벌써 여섯 개째 만들어 드리고 있는데…….’
‘어린나이에벌써돈을밝히면안된다고누누이말했는데.’
보리스의 마법 시연 역시 마리온이 직접 감독했기에 제대로 된 무대를 선보일 수 있었다.
아버지가 마법사이긴 하지만, 직접 보여 주기에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딱히 시연하는 걸 보여 주지 않고 이론만을 가그쳐 줬다.
그렇기에 순박한 시골 청년, 아몬에게는 보리스의 마법 시연 무대가 아주 각별하게 느껴졌다.
‘불이다! 우와! 물이다!’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며 박수를 짝짝 치는 아몬을 마리온이 조금은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그리고 오늘도 시간이 흘러, 늦은 밤이 되어 문화제의 폐막이 다가왔다.
“……읏차!”
자리를 깔고 앉은 아몬이 먹거리 부스에서 팔다 남은 음식들(브레슬이 저항했지만 그녀를 물리치고 뺏어 왔다)을 늘어놓으며 옆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라스티아넬이 멍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도 먹으렴.
“아, 감사합니다.”
아몬이 건넨 수저를 뒤늦게 받아 든 라스티아넬이 생각에서 깨어났다.
아직 따뜻한 고기볶음을 입에 밀어 넣은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확실히 브레슬이 직접 감독한 음식답게 맛이 상당하군.’
이렇게 뛰어난 음식 감각을 가지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아카데미의 부학교장을 때려치우고 음식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게 어떨까 싶었다.
‘그 길이 대륙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그렇게 된 마당에 내가 부학교장 직함도 달아 보고.’
게다가 사실상 이게 이틀간의 제대로 된 첫 끼였다.
‘금 먹기는 한가했지만, 이후로는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나를 포함해서 다른 학생들과 선생님들도 식사할 시간이 거의 없었지. 아무래도 학생들이 첫 문화제라 의욕이 넘치고 시간 배분도 미흡했던 게 원인 같지만.’
대신 아몬은 문화제 내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저저, 어른이 되어 가지고.’라거나 ‘어린애 등골이나 호로록 빼먹는.’이라는 험담은 배 터지게 들어먹었다.
그렇기에 입에 넣은 고기볶음은 더없이 각별했다.
‘음, 맛있군.’
정신없이 고기볶음을 입에 밀어 넣던 아몬이 문득 옆을 바라봤다.
라스티아넬은 음식과 수저를 든 채 여전히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라스티아넬, 배 안 고프니?”
“네? 아아, 드래곤은 딱히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어요.”
“그건 알지만, 그래도 맛있으니까 좀 먹어 둬.”
“네, 선생님.”
“근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그냥…….”
라스티아넬이 빙그레 웃었다.
“좋다, 싶어서요.”
“음?”
“인간에게는 이런 삶도 있었구나. 우리 드래곤과는 다르구나. 그걸 새삼스럽게 느꼈거든요.”
라스티아넬은 인간 세상에 관심이 많기에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카셀라그 어르신한테 받아먹은 금덩어리값을 했으려나 모르겠네.’
뭐, 일단 라스티아넬 본인은 만족하고 있는 모양이니 괜찮으려나.
그때 억지로 어른 아몬을 밀어 넣은 교사 아몬이 말했다.
“앞으로 더 재밌는 일도 있을 거야.”
“네? 정말요?”
“그럼. 내년이면 너희도 2학년이 될 거고, 그럼 1학년들도 잔뜩 들어올 테니까 말이지. 그만큼 지금보다 훨씬 북적북적해지겠지.”
아몬의 말에 라스티아넬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아몬은 새삼스럽게 신입생을 유치하려던 자신의 노력이 몇 번이고 좌절됐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뭐야? 설마 비웃은 거야?”
“후후후, 아뇨. 아니에요. 그보다 선생님 말대로 내년에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아카데미 생활이 더 재밌어지겠네요.”
“그렇겠지?”
“근데 어떻게 신입생을 새로 들이려고요?”
“……정말 비웃은 거 아니니?”
“아니라니까요.”
어깨를 으쓱인 아몬이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는 신입생이라곤 해도, 편입이나 특별 입학 같은 경우를 말한 거였어. 근데 다른 아카데미를 멀쩡히 다니던 2학년, 3학년들이 굳이 우리 아카데미에 오려고 하겠니?”
“……안 오겠죠?”
고기볶음을 삼킨 아몬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희가 2학년이 되면 그때부터는 정식으로 1학년 신입생을 받을 수 있겠지. 지금까지와는 달리.”
“아, 그렇겠네요. 그때라면 아카데미의 입학을 고려하는 진짜 1학년 신입생들이 잔뜩 있을 테니까요.”
“맞아. 내 입으로 말하긴 가슴 아프지만, 이딴 아카데미도 고려해 보는 신입생들이 있을지도 모르지.”
아까 라스티아넬에게 말한 것처럼 ‘신입생이 잔뜩, 북적북적’이라는 말은 지킬 수 없을지도 몰라도 아예 허탕을 치는 일은 없을 게 분명했다.
절호의 기회, 시류를 잘 타다, 그런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는 법이니까.
‘그러니만큼 정식으로 1학년 신입생들이 아카데미에 입학할 시기가 오면 우리 아카데미에도 기회가 오겠지.’
이번만큼은 아몬만의 희망사항이 아니었다.
명백한 ‘팩트’였다.
“그러니까 내년을 기대해. 그땐 더 재밌는 일이 많을 거야.”
“내년인가요…….”
중얼거린 라스티아넬이 다시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빤히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내년…… 그렇군요.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비꼬는 거 아니지?”
“아뇨. 진심이에요.”
라스티아넬의 목소리에는 묘한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그 사실에 의문을 품은 아몬은 자신도 모르게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아까부터 라스티아넬이 계속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기에 뭔가 있는가 싶어 올려다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려봐도 보이는 건 새카만 밤하늘과 그것을 장식하고 있는 반짝이는 별들뿐이었다.
“혹시 하늘에서 뭐라도 보이는 거니?”
“네…… 네!? 아, 아뇨.”
아몬은 다급히 고개를 흔드는 라스티아넬을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봤다.
‘뭐야? 방금 엉겁결에 네라고 했다가 아니라고 말을 바꿨어?’
그 사실에 위화감을 느낀 아몬이 말했다.
“라스티아넬.”
“네?”
“오늘따라 조금 이상한데, 혹시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걱정이 물씬 묻어나오는 아몬의 물음에 라스티아넬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잠시 후.
녀석이 이쪽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선생님.”
“……그래.”
“인간에게는 인간의 일이 있듯, 드래곤에겐 드래곤의 일이 있는 법이에요.”
더 이상 캐묻지 말라는 듯 선을 그어 버리는 라스티아넬의 말투에 아몬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종족까지 들먹이며 선을 그으니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래. 알겠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아냐, 기분 나쁠 게 뭐가 있겠어. 틀린 말도 아닌데.”
같은 인간끼리도 가치관은 다른 법이다.
드래곤과 인간의 가치관을 비교하자면, 아니,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아몬이 어느새 텅 비어 버린 고기볶음 접시를 옆으로 밀며 쌓여 있는 닭꼬치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뭐, 말해 줄 때가 오면 어련히 말해 주겠지.”
“…….”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닭꼬치를 베어 물며 뱉어진 말에 라스티아넬은 재차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렇게 한참 밤하늘을 응시하던 라스티아넬이 입을 열었다.
“곧 말씀드릴 수 있을 거예요.”
“어? 음, 그래. 그보다 얼른 먹어. 식겠다.”
“네, 선생님.”
라스티아넬이 국수 볶음이 든 접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국수를 후루룩 먹는 녀석을 보며 피식 웃은 아몬이 문득 엉덩이 아래를 바라봤다.
몰랐는데, 웬 풀 같은 것을 깔고 앉아 있었다.
‘아까 앉을 땐 없었던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린 아몬은 엉덩이를 조금 옆으로 당겨 앉았다.
* * *
신성왕국 그레고리안.
수천 년 전 마족의 군세를 이끌고 대륙을 공격했던 마왕을 무찌른 용사 그레고리가 건국한 국가로, 두 명의 통치자가 존재하는 독특한 나라였다.
현존하는 국가의 틀을 가지고 법률과 군사력으로 나라를 통치하는 국왕, 그리고 용사가 남긴 종교적 교리로 나라를 보듬는 최고 사제.
하지만 마왕의 침략과 용사의 출현이 벌써 수천 년이 흐른 예전의 이야기이니만큼, 종교적인 색채는 거의 사라지고 명맥만이 간신히 이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늦은 밤.
신검 누카엘의 앞에 무릎 꿇은 채 하루 일과의 마무리로 기도하던 최고 사제가 숨을 힘껏 들이켰다.
“허어어억!”
“최, 최고 사제님!?”
돌연 뒤로 벌렁 나동그라지는 최고 사제의 모습에 일등사제, 레이즌이 황급히 최고 사제를 부축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쓰러질 것처럼 휘청이는 최고 사제를 부축한 레이즌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부축하고 있는 최고 사제의 전신은 심상치 않게 떨리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최고 사제님?”
“……레, 레이즌.”
“예, 최고 사제님. 말씀하십시오.”
“저, 전하께 알리거라! 그녀가 깨어났다고!”
그녀.
두 음절에 불과한 단어에 레이즌이라 불린 청년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새카만 밤하늘.
그 위에는 흑요석처럼 음산하게 빛을 발하는 흑색의 구슬이 있었다.
마치 맥동하는 것처럼 조그만 일렁임을 끝없이 자아내던 그것의 두근거림은 서서히 커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맥동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
-때가 왔다.
흘러나온 목소리와 함께 흑색의 구슬이 검은 막이 걷히는 것처럼 사라지고.
그 안에서 한 명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음미한다는 듯,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여인이 발아래를 굽어 봤다.
맛보는 공기처럼 오랜만에 눈에 들이는 중간계의 풍경.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여인의 붉은 입술이 열리며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6666년 동안의 평화는 끝났다. 중간계는 이제 내 발밑에 굴복할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