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23)
아카데미가 망했다 123화
수업을 진행하던 아몬은 학생들이 문제를 푸는 틈을 노려 슬그머니 창문 밖을 내다봤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었다.
모두 자신이 신검 누카엘에게 선택받은 용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모인 인파였다.
‘음, 역시 제국이 태평성대이긴 한가 보다. 할 짓 없는 한가한 놈들이 저렇게 많으니 말이야.’
끌끌 혀를 찬 아몬이 드르륵 커튼을 쳤다.
시끌벅적하게 신검 누카엘을 뽑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인파들을 바라본 아몬은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 * *
“아몬 선생님, 사람들이 모이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있을 테니, 한번 누카엘을 뽑아 보시는 게 어때요?”
신성왕국의 원정대를 몸소 맞이한 아나르엘이 넌지시 권했다.
그 권유에 아몬은 몸을 배배 꼬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제가 무슨 용사입니까. 어휴, 괜히 부담스럽기만 하죠.”
내심 기대하면서도 이 악물고 부정하는 아몬!
그 광경에 다른 교사들도 너도 나도 아몬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아몬, 한번 해 보게나. 혹시 모를 일 아닌가?”
마리온이 슬쩍 부추기자 슬로스도 뒤따라 아몬의 등을 떠밀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난 네가 용사가 되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하거든?”
“아휴우, 역시 슬로스 선배님이 사람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요.”
“빈말이 아니라, 너 정도면 용사로도 모자람이 없잖아. 힘도 여느 기사들보다 훨씬 세고 말이야.”
감자를 먹고 기른 어마어마한 완력!
슬로스가 간사하게 혀를 놀렸다.
“게다가 여태 아카데미를 위해 이룬 업적을 보면…… 암, 용사감이고말고.”
평소의 나태함을 벗어던지고 적극적으로 아몬을 밀어 주는 슬로스의 모습에 모두들 맹렬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슬로스의 간교한 혀에 의해 둥둥 떠다니는 아몬은 그 위화감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알아차릴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이다!
“아휴, 슬로스 선배님 말씀이 옳긴 합니다만! 그래도 제가 용사라뇨!”
그리 말하며 힐끔힐끔 다른 선생들을 눈짓하는 아몬!
더욱더 용기를 불어넣어 달라는 신호였다.
“흠흠, 아몬 선배님.”
“그래, 카이야!”
“뭐…… 한번 시도해 보시죠. 어차피 손해 보는 것도 아닌데요.”
슬로스의 전력을 다한 추켜세움을 받다가 카이의 담백한 응원을 들은 아몬은 기분이 팍 나빠졌다.
그만큼 카이에 대한 호감이 떨어졌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 없으리라.
“커흠…… 망나니, 네 생각은 어떠냐?”
“주접 그만 떨고,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마는 게 어떻겠슴까?”
“선배한테 그따위 싹수 노란 말을 지껄이는 입이 바로 이 입이렷다!”
“으브븝! 캭! 또 지랄임까!”
실랑이를 하는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던 원정대의 책임자, 신성왕국의 일등사제 레이즌이 헛기침을 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흠흠, 아몬 선생님이라 하셨습니까?”
“커헉! 명치를 맞았…… 헉! 예, 그렇습니다.”
“이리로 오시죠. 다른 분들의 의견을 감안해, 신검 누카엘을 한번 뽑아 보시죠.”
레이즌의 권유에 아몬은 머리를 긁적이며 짐짓 이기지 못해 따르는 척했다.
“아유,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뽑아 볼 수도 없고…….”
“……가, 가시죠.”
이윽고 마주한 것은 거대한 아다만티움 덩어리였다.
그리고 그 견고하기 그지없는 금속에 깊숙이 박혀 있는 새하얀 검.
놀랍게도 검이 파고든 흔적과 결합부를 찾아볼 수 없는, 애초부터 이런 모양새였다고 말하는 것처럼 아다만티움 덩어리와 완벽하게 일체화된 검.
‘대체 얼마나 예리한 검이기에…….’
신검 누카엘.
질서의 여신 바누민트가 내려 준, 인류가 마왕에 대적토록 해 주는 신검.
“자, 아몬 선생님. 한번 뽑아 보시죠. 당신이 신검 누카엘에게 선택받은 용사라면 신검 누카엘은 당연히 그대의 손에 호응할 것입니다.”
손을 모은 채 경건하게 말하는 레이즌을 본 아몬은 괜히 긴장됐다.
“……흠흠, 그럼 뽑겠습니다.”
“예. 부디.”
아몬이 신검 누카엘을 양손으로 움켜쥔 채 우렁차게 외쳤다.
“질서의 여신 바누민트시여! 신검 누카엘이여!”
아몬이 젖 먹던 힘까지 싹 다 끌어 올려 검을 뽑으며 고함을 내질렀다.
“내가 바로 용사……!”
우드득-!
“내가 용사……!”
콰드드드득-!
“…….”
아몬이 스르르 시선을 내려 신검 누카엘을 바라봤다.
검은 아다만티움 덩어리에서 빠져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크흠.”
검에서 손을 떼고 스르르 물러난 아몬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과는 반대로 담담히 말했다.
“뭐, 예상한 결과로군요.”
난 알고 있었다! 예상했다고 말하는 발언!
어떻게든 수치스러움 감추기 위한 필사적인 아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몬이 검을 뽑는 것을 구경하고 있던 브레슬이 팔을 휘적거리며 말했다.
“질셰의 예신 뱌누민뜨여~ 신겸 뉴카에리여~.”
“…….”
“녜가 바로 용…… 쿠에에엑!”
호랑이처럼 달려가 브레슬을 단죄하는 아몬!
그리고 아몬의 수치스러운 실패에 커다란 용기를 얻은 슬로스가 헛기침을 하며 신검 누카엘을 향해 다가갔다.
“흠흠, 뭐. 기왕이니 한번 시도나 해 볼까?”
난 기대도 안 한다, 어차피 실패할 게 뻔하다!
겸허한 태도로 다가가는 슬로스의 눈은 희망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애초에 슬로스가 혀를 휘둘러 아몬을 부추긴 이유는, 아몬의 수치스러운 실패를 방패 삼아 자신의 실패를 감추려던 간악한 술수였다!
‘안 그래도 지금 쓰는 검이 슬슬 질려 가는 참이었는데…… 어쩌면 새로 신검을 쓰게 될 거라는 징조가 아니었을까?’
슬로스는 가볍게 힘주는 척하며 전력을 다해 검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잠시 후, 슬로스는 아몬과 브레슬과 함께 셋이서 치고받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몬과 브레슬 둘이서 슬로스를 비웃은 것이다.
그리고 연이은 아몬과 슬로스의 실패에 마리온이 헛기침을 했다.
“커흐흐흠! 뭐, 나도 한번 시도나 해 볼…….”
“아, 질서의 여신께서 말씀하시길. 용사의 나이는 삼십 세 미만이라 하셨습니다.”
“…….”
마리온은 시도할 자격조차 없었다!
그 광경에 아몬과 브레슬, 슬로스가 배를 잡고 뒹굴고, 올해 269세의 엘프인 아나르엘은 귀를 축 늘어뜨린 채 슬퍼하고 있었다.
아나르엘도 은근히 자기가 용사는 아닐까 하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리고 카이가 뺨을 긁으며 신검 누카엘을 향해 다가갔다.
“뭐, 이렇게 됐으니 저도 한번 시도나 해 보겠습니다.”
“우우우, 쿨한 척하는 거 재수 없다.”
“…….”
“우우우, 실패해라.”
아몬의 야유는 진심이었다!
‘저놈이 성공하면 나는 배가 아파서 그대로 죽어 버리고 말 거야.’
다행스럽게도 아몬이 배가 아파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교사들이 연이어 실패하고 남은 사람은 단 한 명.
이미 실패한 패배자들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피오라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어…… 저, 저도 굳이 해야 합니까? 괜히 부담스러운데요.”
주춤주춤 물러나는 피오라를 본 아몬이 말했다.
“해야지. 다른 사람들도 다 했는데. 게다가 너 아까 내가 실패했을 때 비웃던 거 다 봤다.”
“…….”
슬로스도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피오라 아가씨, 한번 해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살면서 언제 또 신검을 뽑아볼 기회가 생기겠습니까?”
그리 말하는 슬로스의 눈빛을 본 피오라는 깨달았다.
‘이 사람, 나도 자기와 같은 패배자로 만들려고…….’
같은 바닥으로 끌어내리려는 못된 마음씨!
그때 카이가 퉁명스레 말했다.
“선배들이 다 해 봤는데, 후배가 돼서 안 할 생각은 아니겠지?”
“…….”
쭈그려 앉아 술병을 기울이던 마리온이 슬픈 얼굴로 말했다.
“자네가 싫어하는 계절은 누군가에겐 바라 마지않던 계절일세. 난 시도도 못해 봤는데, 배부른 소리 말고 얼른 뽑아 보게.”
짙은 설움이 묻어 있는 마리온의 결정타에 피오라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한번 해 보죠.”
체념한 얼굴로 중얼거린 피오라가 마지못해 신검에 다가갔다.
그리고 신검을 움켜쥔 순간이었다.
펑-!
폭발과 함께 붕 날아간 피오라가 땅을 뒹굴고.
그 광경에 레이즌이 탄식했다.
“아! 절실하지 않은 마음으로 신검을 만지면 화를 입을 뿐입니다!”
“커헉…….”
바닥을 구르느라 흙먼지에 뒤덮인 피오라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그, 그걸 왜 미리 말씀 안 해 준…….”
레이즌이 어깨를 으쓱였다.
“괜히 기대 안 하는 척하면서 신검을 뽑으려는 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런 경우신 줄 알았죠.”
“…….”
“진심으로 기대 안 했다는 게 오히려 놀랍네요.”
곧이어 레이즌이 고개를 돌려 앞서 실패한 교사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 이해한다는 듯, 성직자 특유의 자애로운 미소를 지은 레이즌이 말했다.
“다른 분들은 말은 그렇게 해도 다~ 내심 절실하셨던 거죠.”
촌철살인. 레이즌의 말에 앞서 실패한 패배자들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벌겋게 물들었다.
* * *
회상 끝.
신검 누카엘을 뽑겠다고 소란을 떨고 있는 인파들을 노려보던 아몬이 다시 커튼을 드르륵 쳤다.
‘어리석은 놈들, 용사 같은 건 전부 허상이야. 없는 존재라고. 동화나 환상에서 나오는 거지.’
아몬의 추측으로는, 신성왕국에서 온 원정대라는 놈들은 필시 사기꾼 집단임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용사가 아닐 리가 없잖은가!
‘휴,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는지…….’
“선생님, 문제 다 풀었어요.”
아몬이 황급히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래! 얘들아, 다 풀었니?”
“네. 여기요.”
문제지를 모아 온 클로에에게 빙긋 웃어 준 아몬이 말했다.
“고맙다, 클로에.”
“뭘요. 그런데 선생님.”
“응?”
클로에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밖에 용사를 찾는 원정대가 왔다고 들었는데요.”
“아, 그렇지.”
아몬이 씩 웃었다.
“혹시 클로에 너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거니?”
“네! 해 보고 싶어요.”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저녁쯤 되면 사람들을 모두 물리기로 했단다.”
신검이야 아다만티움 덩어리에 꽂혀 있으니 도난당할 일은 없다.
하지만 아카데미의 배려로 장소를 빌리고 있는 경우기에 저녁이 되면 문을 걸어 잠그고 출입자를 제한하기로 이야기를 마친 상황이었다.
“그러니 오늘 수업 다 끝나면 다들 같이 가 보자꾸나.”
“네! 선생님!”
다른 학생들도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지 힘차게 대답했다.
* * *
형언할 수 없는 존재, 시대의 거역자, 흉악의 근원, 상실한 자.
그 수많은 별칭이 붙은 자.
마왕.
-……용사여, 비로소 나타났는가.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마왕이 스르르 눈을 뜨며 말을 이었다.
-비록 지난번의 용사는 내 뜻을 이해치 못하였으나.
마왕이 걸음을 옮기자, 새하얀 발아래로 걸음걸음 따라 푸름이 펼쳐졌다.
-이번은 다르리라, 나 소망하며.
순간 뿜어진 푸른빛이 마왕을 휘감았다.
-그대를 만나러 가리라.
용사의 탄생과 동시에 마왕은 용사를 향해 나아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