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24)
아카데미가 망했다 124화
견학 기간이 끝난 피오라는 정식으로 과학 과목을 맡고 있었다.
펜도리안 가문의 영애로서 여러 학문을 폭 넓게 두루 섭렵한 그녀였기에, 또한 아몬이 줬던 수업 커리큘럼이 있었기에 수업을 진행하는데 딱히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 본인이 스스로가 교사에 적합한 인물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고, 오늘따라 영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딴 곳으로 가 있는 학생들 때문에 그 의문은 더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내 수업이 재미가 없나?’
피오라 본인이 판단하기엔 카이의 수업보다는 재밌으리라 자신하고 있었다!
적어도 견학 때 본 것처럼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썩은 동태눈을 하고 있진 않으니 말이다.
“자, 오늘은 이걸로 수업을 마칠게.”
“네! 고생하셨습니다, 선생님!”
수업을 끝내자마자 허겁지겁 교재를 챙겨 일어나는 학생들을 본 피오라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끝나자마자 달아나는 것처럼 일어날 정도로 자신의 수업이 재미없단 말인가!
“맞다, 피오라 선생님도 같이 가요!”
“으, 응? 어딜 말이니?”
클로에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아몬 선생님이 오늘 수업 끝나면 같이 신검 구경하러 가기로 했거든요.”
신검이라는 말을 들은 피오라의 눈가가 흠칫 떨렸다.
아까 이른 아침, 신검을 뽑으려다 붕 날아가 나가떨어졌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학생들한테는 비밀로 하자.’
피오라가 거짓 감탄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 그랬구나.”
“선생님도 같이 가요.”
“어……?”
그런 꼴을 당했으니 앞으로는 신검이 있는 방향으론 고개조차 돌리고 싶지도 않은 게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니, 덮어 놓고 싫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
“그, 그래. 얘들아.”
피오라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 *
피오라와 함께 우르르 몰려온 학생들을 본 아몬은 황당했다.
“어, 얘들아? 오늘 저녁 늦게 사람들이 다 나가면 가자고 분명히 말했잖니?”
“앗…….”
“그리고 피오라, 너는 그 꼴을 당하고도 신검을…….”
“캬아악!”
“아이고, 정강이야!”
정강이를 잡고 콩콩 뛰던 아몬은 실망한 아이들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하긴, 아직 어린아이들이니 기대되는 일이 있으면 조급해서 시간 약속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 법이다.
‘근데 아미랑 라스티아넬, 너희들은 왜 그렇게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는 거니?’
아미도 다른 아이들보단 나이를 몇 살 더 먹었으니 조금은 성숙한 모습을 보여 줘야 할 텐데 어림도 없었다.
게다가 라스티아넬도 어린 드래곤이라지만 몇백 살은 먹었을 텐데 왜 저렇게 기대하고 있는 걸까?
“우선 아미야.”
“응. 아니지. 네, 선생님, 저는 용사가 될 준비가 됐어요.”
“그렇구나. 우선 미리 말해 두지만, 힘으로는 절대 안 뽑히니 그걸 명심하도록 하거라.”
아미의 얼굴이 충격으로 굳었다.
신검이라지만, 힘으로 강제로 뽑으면 될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리고 라스티아넬.”
“네. 용사 드래곤이 될 준비가 됐어요.”
“나는 용사 드래곤의 선생님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단다. 게다가 미안하지만 미리 말해 둘게. 신검은 30세 미만만 뽑을 자격이 있대.”
라스티아넬의 얼굴이 경악으로 굳었다.
30세의 열배인 300세 미만이라 하더라도 라스티아넬에게는 자격이 없는 것이다!
‘아무튼…….’
아몬이 학생들을 바라봤다.
안전과 사람들의 이목을 생각하면 아까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후에 신검을 만져 보러 가는 게 옳다.
하지만 더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저토록 실망하는 걸 보니 기다리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음…… 그럼 조금 이르지만 한번 나가 볼까?”
“네! 선생님!”
* * *
인맥, 지연, 학연.
아몬이 참 좋아하는 단어다.
학생들을 훌륭하게 성장시켜 덕을 보려는 아몬이니만큼 어느 무엇보다 신봉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믿는 자에게 복이 온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래. 인맥은 항상 옳지.’
그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아몬은 원정대의 책임자인 일등사제 레이즌에게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우리 학생들에게 먼저 신검을 뽑을 기회를 줄 수 없겠냐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물론 레이즌은 ‘하지만 순서가 있는데…….’라며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지만, 아몬은 ‘아, 그럼 아카데미에서 나가십쇼.’라고 말하는 것으로 레이즌과의 우애를 굳건하게 다질 수 있었다.
‘원래 다~ 서로서로 돕고 사는 거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잖아.’
덕분에 학생들에게 먼저 신검을 뽑을 기회를 주게 된 아몬은 뒤통수에 꽂히는 레이즌의 사나운 시선과, 덕분에 신검을 뽑을 기회가 뒤로 밀려난 참가자의 매서운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말했다.
“자, 그럼 누구부터 해 볼래?”
“저요! 저요!”
소드 마스터답게 검에 대한 관심도 각별한 레이몬드가 자신의 인형과 함께 방방 뛰기 시작했다.
“레이몬드, 알겠으니까 인형은 놓고…….”
“아, 네.”
레이몬드도 주변의 인파를 의식한 모양인지 인형을 차곡차곡 접어 품 안에 넣었다.
‘뭐지? 저 인형, 접히는 거였어? 대체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
“선생님, 바로 뽑으면 되나요?”
“으, 응? 그래. 레이즌 사제님, 바로 뽑으면 됩니까?”
레이즌이 퉁명스레 말했다.
“맘대로 하십쇼.”
“감사합니다. 자, 레이몬드. 가서 뽑아 보렴.”
레이몬드가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신검 누카엘을 향해 다가갔다.
마치 새로운 용사의 재림을 만천하게 각인시키겠다는 것처럼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레이몬드는 새로운 용사의 탄생을 지켜볼 관중이 되기 위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돌아왔다.
“실패했어요…….”
“그래. 말 안 해도 모두가 봤단다.”
“흐흑…….”
아몬이 다른 학생들을 둘러봤다.
“자, 다음은 누구?”
“저욧!”
아미가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사실 검을 수련하는 클로에가 먼저 나서려고 했지만, 아미가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구르는 걸 보고 조용히 물러선 것이다.
‘언니에게 예쁜 동생이 되고 싶으니까!’
아미가 알았다면 부담스럽다며 질색했을 생각을 품은 클로에가 빙그레 웃었다.
“언니, 화이팅.”
“어……? 어, 응. 그래.”
아미가 어색하게 웃으며 신검을 향해 다가갔다.
‘부담스럽게 왜 저래 진짜…….’
아무튼, 아미가 신검에 다가가 움켜쥐는 것을 본 아몬이 양손을 스르르 맞잡은 채 오빠의 마음으로 기도했다.
‘제발 실패해라.’
여동생의 실패를 간절하게 기원하는 오빠로서의 마음!
반면 가족으로서의 마음도 함께 담았다.
‘아니지, 네가 용사가 돼서 성공하고 우리 가문을 일으켜다오.’
아몬은 두근두근한 마음을 간직한 채 아미가 신검에 도전하는 것을 지켜봤다.
“이이이익!”
“…….”
“끼요오오오옷!”
“…….”
“끼잇! 끅, 꾸웨야아아압!”
신검을 붙잡고 발광하며 퍼덕거리는 아미를 본 아몬은 조용히 고개를 떨어트렸다.
인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와 아미가 발광하는 소리가 뒤섞여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어느 집 자식인지는 모르겠다만, 쟤 오빠는 참 부끄럽겠다.’
곧이어 아미가 멋쩍게 웃으며 돌아왔다.
“와, 진짜 힘으로 안 되네. 요.”
“누구세요?”
“…….”
아몬이 마지막으로 남은 두 학생을 바라봤다.
“자, 그럼 클로에랑 보리스 둘 중 누가 먼저 해 볼래?”
“제가 해 볼게요.”
클로에가 당당하게 앞으로 나왔다.
그 바람에 손을 들려던 보리스가 슬그머니 손을 감췄고, 아몬은 그 광경을 놓치지 않았다.
‘……보리스는 아직도 자신감이 부족하구나.’
물론 클로에한테 보리스를 무시한다거나 하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설렘, 의욕이 앞서서 미처 보리스를 생각하지 못한 것뿐이다.
클로에 역시 검을 수련하는 검사이므로, 신검 누카엘이라는 전설 속의 물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있을 테니까.
‘그러니만큼 보리스더러 먼저 해 보라고 편들 수도 없는 일이니…….’
아몬이 쓴웃음을 감춘 채 말했다.
“그래, 클로에. 해 보자.”
“네!”
신검 누카엘을 향해 호기롭게 다가간 클로에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전 용사가 아니었나 봐요…….”
“걱정 마렴, 클로에. 우리 모두 용사가 아니니까.”
“……참 위로가 되네요.”
피식 웃은 아몬이 마지막으로 남은 보리스를 바라봤다.
“자, 보리스. 이제 네 차례야.”
“…….”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던 보리스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전 안 할래요.”
“……뭐?”
괜히 툭툭 발밑을 차던 보리스가 말했다.
“애초에 전 검사도 아니잖아요? 제가 용사일 리 없어요.”
“음…….”
“게다가 평민이고요.”
또 평민 이야기인가.
잠시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보던 아몬이 생각했다.
‘음…… 이걸 어떻게 말해 줘야 하나.’
그때 아미가 나섰다.
“보리스, 신분이랑은 관계없잖아?”
“……네? 하지만 누나.”
“그치만 초대 용사인 그레고리도 내가 알기론 평민이었거든. 안 그래요, 선생님?”
아몬이 흠칫했다.
‘뭔 개소리야.’
용사 그레고리는 망국의 왕족이다.
애초에 태생부터 왕족이니 마왕 토벌 업적을 계기로 신성왕국을 새로 건국한 것이다.
‘자, 잠깐. 아미 저 녀석 설마…….’
번들거리는 아미의 눈빛을 본 아몬은 소름이 돋았다.
‘저놈 저거, 슬로스 선배랑 똑같은 짓을……!’
자신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사람까지 패배자로 끌어내리려는 고약하고 악랄한 심보!
하지만 여기서 아미의 말을 반박할 순 없었다.
그랬다가는 보리스는 자기 비하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것에 박차를 가할 테니까.
‘게다가 의도가 어떻든, 저게 보리스한테 용기는 줄 수 있을 테지. 이번만은 저 녀석의 거짓말에 어울려 주자. 그래도 나중에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내 줘야지.’
아몬이 어색하게 헛기침을했다.
“크, 흐흐흠. 아미 말이 맞…… 단다. 문헌에는 왕족이라 적혀 있지만 최근에는 펴, 평민이라는 학설도 있지.
역사학 교사로서 거짓 정보를 퍼뜨린다는 죄책감에 말까지 더듬는 아몬!
그 거짓 정보에 보리스의 눈이 반짝거렸다.
“저, 정말요?”
“그, 그럼. 정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리스는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제가 뽑을 수 있을 리가…….”
괜찮다.
아무도 뽑을 거라 기대 안 한다.
그냥 해 보는 거지 뭐.
그렇게 말할 순 없으니 아몬이 잠시 망설이는 찰나.
“거 더럽게 징징거리네? 빨리 가서 해 보기나 해.”
“어어어!?”
아미가 억지로 보리스를 신검으로 밀어붙였다.
덕분에 보리스는 난처한 얼굴로 신검 앞에서 허둥거리고, 신검까지 보리스의 인계를 마친 아미가 손을 탁탁 털며 다가왔다.
“잘했다, 아미.”
“뭘 잘해. 요.”
“아까 그레고리가 평민 출신이었다느니 뭐니 한 거. 일부러 보리스한테 용기를 주려고 한 말이지?”
아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민 아니었어요?”
“……너 다음 주까지 역사학 교재 깜지 20장 제출해라.”
느닷없는 재앙에 펄펄 뛰는 아미와 아몬이 실랑이를 하는 와중이었다.
“우, 우와아아악!”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인파에서 터져 나온 우레 같은 고함에 아몬이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뭣……!”
보리스는 신검을 뽑은 채 얼떨떨한 얼굴로 서 있었다.
‘우리 보리스가 해냈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기쁨이었다.
교사로서의 선한 마음.
자신이 가르치는 애제자가 대성했을 때 느껴지는 충실감.
그리고 따라오는 감정.
‘보리스가 용사가 됐다고……?’
앞서 나가는 자에 대한 질투!
아몬의 얼굴이 파르르 경련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