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25)
아카데미가 망했다 125화
보리스는 신검을 든 채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사방에서 우레처럼 쏟아져 나오는 환호와 웅성거림.
얼마 전 문화제에서 마법 시연을 했을 때도 수많을 인파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받았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마법에 대한 감탄, 신기한 것을 보고 흘러나오는 탄성이 아니라.
‘나를 향한 시선이 다르다.’
보리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예전의 클로에가 왜 자신을 향한 시선을 두려워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것처럼 집요한 시선은 무거웠다.
무섭다가 아닌, 무겁다.
덜덜덜-
보리스의 다리는 금세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신검 누카엘이 뿜어낸 새하얀 빛이 보리스를 뒤덮었고, 여명이 밤을 밝히는 것처럼 보리스를 뒤덮은 공포가 물러난다.
“내가…….”
신검을 높게 들어 올린 보리스가 외쳤다.
“용사다!”
그 함성이 사방을 때린 순간, 우레와도 같은 환성이 보리스를 뒤덮었다.
새로운 용사의 탄생!
그를 위한 열렬한 축하와 박수가 날아들고, 아몬도 죽은 눈으로 메마른 박수를 치고 있었다.
‘보리스, 네가 용사라니. 참 대, 대, 대견…….’
문화제의 마법 시연 때 관중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것처럼, 신검을 들고 인파들을 향해 깨방정을 떠는 보리스를 본 아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저 자리가 내 자리였어야 하거늘…….’
추하게도 제자를 질투하는 아몬!
분한 마음에 이까지 악물고 보리스를 향해 건조한 박수를 치는 와중.
옆에 서 있던 라스티아넬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을 발견한 아몬이 말했다.
“라스티아넬, 너도 분한 모양이구나.”
“…….”
“하긴, 너는 도전 자격조차 얻지 못했지. 나중에 같이 보리스를 혼내 주…….”
“아니에요.”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라스티아넬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아몬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위로 올렸다.
“오고 있어요.”
“응? 오다니, 무슨?”
“문화제 때 말씀드렸죠.”
의미심장한 라스티아넬의 말에 아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뭘 말이니?”
“…….”
문화제도 벌써 한 달 전의 일!
어른은 지나간 일은 빨리빨리 잊는 법이다!
“휴…… 인간에게는 인간의 일이 있고, 드래곤에게는 드래곤의 일이 있다 말했던 거요.”
“아. 그랬었지. 곧 말해 줄 때가 올 거라고 했었지.”
당시에는 더 이상 캐묻지 말라는 듯 선을 그어 버렸기에 재차 물을 수 없었건만, 지금은 라스티아넬이 먼저 말을 꺼낸 상황이었다.
“무슨 일이길래? 그리고 오고 있다니? 누가?”
라스티아넬은 대답 대신 신검을 들고 펄쩍펄쩍 뛰며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있는 보리스를 가리켰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아몬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래. 새로 탄생한 용사는 상당히 얄밉구나. 보리스가 용사라니, 세상이 참…….”
“……아니, 그게 아니라요.”
“알아, 알아.”
손사래를 친 아몬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조금 전 라스티아넬이 올려다보던 하늘은 어느새 검게 물들어 있었다.
마왕이 부활했다는 뜻은 새로운 용사가 탄생한다는 의미이고, 새로운 용사가 탄생했다는 것은 마왕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때가 왔다는 뜻이다.
쏴아아아아-!
마왕은 검게 물든 하늘 아래로, 돌연 쏟아지는 폭우와 함께 우뚝 서 있었다.
‘마왕.’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마왕임을 알 수 있었다.
등골을 타고 느껴지는 오싹함.
때 아닌 폭우에 놀란 사람들이 허둥지둥 흩어지는 것을 발아래의 개미들을 굽어보듯 여유로이 내려다보던 마왕이 천천히 허공에 걸음을 내민 순간이었다.
스르르-
어느새 마왕은 원래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듯 인파 속에 섞여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폭우로 인한 혼란 속에서 마왕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마왕은 새로운 용사를 향해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마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마왕을 피하는 것처럼, 무수한 인파 속을 흡사 산책하듯이 걸어가던 마왕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웬 남자가 가로막듯 눈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대는?
마왕을 가로막은 남자, 아몬이 말했다.
“저 용사의 선생이다.”
-호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용사한테 볼일이라도 있는 건가?”
용사를 찾아온 마왕.
마왕에게 좋은 뜻이 있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보리스가 용사건 아니건 자신의 학생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마왕을 막아선 아몬은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늘 차고 다니던 아다만티움 검을…….
‘아, 맞다. 요새는 풀고 다니지.’
졸지에 맨손으로 마왕과 마주해 버린 상황!
‘X됐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아몬을 본 마왕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인간이여, 안색이 좋지 않다만.
“아니?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란 말인가. 척 봐도 안색이 안 좋은데.
비웃는 것처럼 말한 마왕이 손을 휘저었다.
-선생으로서 제자를 아끼는 마음은 갸륵하지만, 비키게. 새로 탄생한 용사에게 볼일이 있으니.
역시 마왕은 보리스를 찾아왔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아몬이 검 대신 주먹을 불끈 움켜쥔 채 한걸음 내밀었다.
“무슨 용건인지부터 말해라.”
-그대가 용사가 아닌데 그대와 말할 이유가 무엇인가?
“말했잖아. 내가 저 아이의 선생이다.”
-그 말은, 그대가 용사의 보호자라 말하는 것인가?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은 마왕이 아몬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왕은 아몬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로운 용사의 탄생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한데 그 해후를 방해받고 있었으니, 마왕의 불편한 심기는 중압감이 되어 아몬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흔들림 없이 서서 나를 응시하고 있단 말인가. 용사가 아닌 인간 중에서도 이런 인물이 있었다니.’
마왕이 내심 감탄하는 와중.
아몬은 떨리는 다리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다.
‘와, 미치겠네.’
역시 마왕이 괜히 마왕이 아니었구나!
예전에 마왕이 부활한 후 아무것도 안 하길래 ‘마왕이니 뭐니’하며 비웃었던 과거의 자신을 찾아가 한 대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젠장…… 역시 마왕이라는 이름값을 하는군.’
영지를 찾아온 카셀라그가 아버지와 토론을 하던 와중, 자기 이론이 박살 나자 나잇값도 못하고 길길이 날뛰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봤던 카셀라그 어르신보다 훨씬 무섭군. 하긴, 그분은 늙고 병든 드래곤이니 마왕이랑 비교할 수 있을 리가 없지만 말이지.’
아무튼, 황제의 면전에서 ‘눈 딱 감고 한 대만 때리자.’라고 다짐하던 아몬조차 마왕 앞에서는 떨리는 다리를 가까스로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마왕은 그런 속마음까지는 알지 못했기에 겉으로는 당당하게 서 있는 아몬을 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인간, 내 시선에 버티다니…… 혹시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인가?’
‘음, 이 정도면 버틸 만큼 버틴 것 같은데 그냥 비켜 줄까? 아니지, 그럼 마왕이 보리스를 산 채로 홀랑 잡아먹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가볍게 숨을 몰아쉰 아몬이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아주 깍듯하지도 않고, 아주 무례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각도였다.
“우선 소개가 늦었군요. 저 아이의 보호자인 아몬입니다. 마왕님 되십니까?”
갑자기 아몬이 정중하게 나오자 마왕은 눈을 가늘게 떴다.
‘……조금 전만 해도 적의로 가득 차 있더니, 갑자기 무슨 속셈이지?’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마왕과 마주쳐 보니 대충 견적이 나온 것이다.
‘혀 한번 잘못 놀렸다간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죽겠구나.’
그러니만큼, 일단 마왕은 대화가 통하는 모양이니 정중한 태도를 갖춰서 나쁠 건 없겠다는 판단이었다.
‘이 정도로 허리를 숙였으면 대뜸 찢어 죽이지는 않겠지?’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그냥 죽일까?’
‘말이 없는 걸 보니 내 계산이 맞았구나!’
속내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아무튼, 하며 손사래를 친 마왕이 말했다.
-그래. 내가 너희들이 일컫는 마왕이라는 자다. 대답이 되었느냐?
“충분합니다. 그럼 용건을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잘 정리해서 보리…… 용사에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정중하게 말하는 아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마왕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자는 용사의 스승이라지.’
그렇다면 만약 자신의 뜻과 용사의 뜻이 부딪칠 경우 스승이라는 입장을 이용해 용사의 생각을 바꿔 줄 수도 있을 터.
그러니만큼 마왕도 이 상황을 좋게 해석하기로 했다.
-우선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확실히 말해 두지. 이 몸은 용사에게 해코지할 생각은 딱히 없다.
“그, 그렇습니까?”
-그저 용사에게 한 가지를 제안하고자 할 뿐이다. 먼 옛날, 선대 용사는 내 제안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현재의 용사라면 다를지도 모르지.
씁쓸한 마왕의 목소리에 아몬은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보리스를 해코지할 생각은 없나 보군.’
긴장이 탁 풀린 아몬이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용사에게 무어라 전해 주면 될지 말씀해 주실 수 있…….”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돌연 하늘에서 울려 퍼진 벽력음과 함께 하늘에 드리워진 적구름이 찢어지는 것처럼 흩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새하얀 광망에 휩싸인 여인.
요란한 벽력음 탓에 폭우에 우왕좌왕하던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하늘에 우뚝 선 채 빛에 휩싸인 여인을 본 모두가 아연실색한 얼굴로 입을 다문다.
하지만 그들 중 몇몇은 달랐다.
“시, 신이시여……!”
신성왕국에서 온 신검 원정대의 책임자, 일등사제 레이즌을 위시한 사제들이 일제히 제자리에서 무릎 꿇더니 양손을 경건하게 모았다.
“질서의 여신, 바누민트 여신님을 뵈옵니다.”
“아아, 여신이시여…….”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읊조리는 그들의 모습에 인파들은 충격으로 굳었다.
‘여신.’
하늘에 떠 있는 여인이 ‘질서의 여신, 바누민트’란 말인가?
여신이 어째서 이곳에?
신검을 뽑은 용사가 나타났기 때문인가?
머릿속에서 지리멸렬한 생각이 감도는 와중에도,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둘 무릎 꿇으며 여신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굽어보던 여신이 어느 한곳을 노려보며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동생아.
동생? 웬 동생?
인파들은 어리둥절한 기색이었으나, 신성왕국의 사제들은 깨달은 바가 있다는 듯 충격으로 몸을 떨었다.
질서의 여신 바누민트의 동생이며, 반쪽이며, 거역하는 자.
‘마, 마왕이 이곳에 있단 말인가……?’
그러나 사제들은 감히 고개를 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신을 뵈었다는 전율, 그리고 마왕이 지척에 있다는 공포.
그 탓에 사제들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아몬도 사제들의 떨림에 동참하는 것처럼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마왕이 당장에라도 자신을 찢어 죽이려는 것처럼 사나운 눈빛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흐흐흐…… 이 가증스러운 인간 놈, 바누민트가 올 때까지 시간을 끌었던 게로구나.
마왕의 살기 어린 목소리에 아몬이 입을 쩍 벌렸다.
‘그런 거 아닌데!’
마왕과 대화로 원만한 해결을 하는가 싶었더니, 또 이렇게 상황이 논두렁으로 굴러떨어져 처박힌다는 말인가!
아몬이 울상을 지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