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26)
아카데미가 망했다 126화
어느새 마왕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몬에게 ‘숨겨 둔 한 수’가 있을지도 모르는 생각에 망설이고 있었으나, 여신 바누민트가 지상에 현신한 이상 자신에게 훼방을 놓은 아몬을 단죄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했다.
-죽어라.
싸늘한 목소리로 말한 마왕이 손을 휘두른 순간이었다.
쩌어어어억-!
손을 휘두르는 궤적을 따라 풍경이 짓이겨지고, 그 풍경에 자리 잡고 있던 건물과 담벼락이 사선으로 미끄러지는 것처럼 무너진다.
공간 그 자체를 베어 버리는 마왕의 일격!
여신 바누민트를 배알하기 위해 무릎 꿇고 있던 인파들은 바누민트 덕분에 때아닌 마왕의 일격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으나, 눈앞에 자신과 마주하고 있던 아몬은 피할 재간이 없었으리라.
마왕은 그렇게 생각했다.
상식적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뭣……!?’
아몬은 어느새 마치 엎드리는 것처럼 몸을 낮춘 채 마왕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광경에 마왕은 오싹 소름이 돋았다.
‘이 가증스러운 인간놈! 역시 숨겨 둔 한 수가 있었던 것인가!’
아니다.
딱히 숨기고 할 것도 없었던 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싶어서 얼른 몸을 낮춰 피했던 것뿐이다.
그리고 굉음과 함께 무너지는 건물의 모습에 아몬의 전신에서 식은땀이 콸콸 쏟아졌다.
‘이게 뭐야.’
뺨이나 한 대 올려붙이겠거니 싶어서 땅에 바짝 조아릴 생각이었다.
초면부터 뺨을 얻어맞고싶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만약 ‘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한 대 맞아 주자!’ 하는 생각으로 손 놓고 있었다간 그대로 이승에서 하직할 뻔했다.
때문에 먼저 찾아온 감정은 공포였다.
하지만 인간은 마주한 공포에 언제나 도망치지만은 않는 법이다.
‘저 건물, 라스티아넬이 새로 지은지 얼마 안 된 거 아닌가?’
공포 직후 따라온 감정은 분노였다.
“이게 뭔 개짓거리야!”
아몬이 웅크린 자세에서 용수철처럼 튕겨 오르며 마왕의 턱을 후려치고.
-키에에에엑!
흡사 고라니 같은 비명을 지르며 공중으로 붕 솟구친 마왕의 눈동자는 경악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자신은 다름 아닌 마왕이다.
또한 아몬에게 숨겨 둔 한 수가 있을지도 몰라 단단히 대비를 하고 있었는데도 속절없이 얻어맞고 나가떨어진 것이다.
‘분명 마나로 방벽을 세워 뒀는데? 그걸 뚫었다고? 그저 인간 나부랭이가?’
드래곤조차 감히 부수지 못하는 견고한 마나의 방벽.
아몬의 주먹은 아무런 제지도 없이 뚫고 들어와 턱을 후려친 것이다.
이윽고 털썩 바닥을 구른 마왕이 허겁지겁 몸을 일으켰다.
-가, 감히 이 무례한 것이……!
“무례? 무례에에?”
사람은 함께 지내면 닮는다 했던가?
슬로스 가문의 사람들처럼 말꼬리를 길게 잡아 늘린 아몬이 눈을 희번덕 부라리며 삿대질했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건물들을 아주 개박살을 내놓고 무례? 이게 미쳤나!”
공사 대금을 뒤로 빼돌리지 못했던 기억과 함께 끓어오르는 분노!
라스티아넬이 세공용 보석으로 치장한 건물이 폭삭 무너진 것에 대한 회한!
저걸 또 복구하려면 라스티아넬이 얼마나 탐욕으로 눈을 빛낼 것인가!
탁탁, 손바닥으로 주먹을 때린 아몬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나도 이젠 모르겠다. 드래곤 슬레이어는 못 되어도 마왕 슬레이어 한번 되어 보자.”
-이, 이놈이 정녕 미친 것이냐!?
“설마 지금 네 눈앞에 있는 게 제정신으로 보였냐?”
마왕이 흠칫거리며 으르렁거렸지만 눈이 돌아간 아몬의 귀엔 들리진 않았다.
게다가 내심 ‘어라? 이 정도면 생각보단 해볼 만하겠는데?’하는 계산도 저변에 깔려 있었다.
‘마왕도 때리면 나가떨어진다. 게다가 때렸을 때 손맛이 나쁘지 않았다.’
그 증거로 마왕이 얼얼한 턱을 감싸 쥔 채 낑낑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군. 엘더 드레이크 같은 놈들은 덩치가 워낙 크다. 내 주먹으로는 때려도 체급 차이 때문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마왕은?’
마왕은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아몬보다 덩치가 꽤 작다!
그렇다고 여인의 형태를 한 마왕을 때리는데 죄책감 같은 것은 없느냐?
그딴 게 아몬에게 있었으면 슬로스와 피오라, 아나르엘과 브레슬은 왜 아몬에게 얻어맞았겠는가!
상대를 흠씬 두들겨 패 줄 생각으로 열심히 스텝을 밟고 있는 아몬의 모습에 마왕의 눈동자에 공포라는 감정이 은근슬쩍 떠올랐다.
‘대체 왜 마나 방벽이 통하지 않는 거지? 원래라면 드래곤조차 감히 마나 방벽을 뚫지 못하고 나가떨어져야 하거늘.’
물론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당장에라도 눈앞에서 아몬이 주먹을 냅다 휘두르고 있었으니까.
부와아아아앙-!
가까스로 피하긴 했는데, 공기를 찢어발기면서 터져 나오는 파공성에 마왕의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정녕 이게 인간이 휘두른 주먹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리란 말인가?
“어어? 피해? 더 피해 봐. 또 피해 봐.”
상대는 공공의 적인 마왕이었다.
때려죽이는 것이 장려되는 상대를 만난 아몬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제 마왕 슬레이어까지 단 한 걸음 남았다.’
그럼 그렇지!
보리스가 용사라면, 그 용사의 선생인 아몬은 얼마나 대단한 존재겠는가!
‘여태 내 인생이 시궁창이었던 건 마왕을 토벌한 영웅이 되기 위해서였구나!’
고난과 역경 끝에 쟁취해 낸 업적은 그야말로 영웅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눈이 돌아간 채 주먹을 붕붕 휘두르는 아몬의 흉흉한 기세에 마왕은 머리를 산발을 한 채 공격을 피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 이 망할 인간 놈이 조금의 틈만 보이면 당장 찢어 죽이리라! 조금만 틈이, 틈이…….’
그러나 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호랑이도 오줌을 지릴 맹렬한 기세로 주먹을 마구 휘둘러 대는데, 조금 전에 턱을 맞고 바닥을 굴렀던 기억이 생생한 마왕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나 이대로 맞아 죽는 거 아닌가?’
반격할 틈은 도저히 찾지 못하는 상황.
마나 방벽이 통하지 않는 상대.
다름 아닌 마왕이, 6666년 만에 부활해 큰 뜻을 펼치려는 자신이 한낱 인간에게 맨손으로 맞아 죽는다는 말인가?
그 사실을 깨달은 마왕은 자지러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언니이이이이! 이 새끼 좀 말려 봐!
마왕은 자신의 언니인 동시에 숙적, 여신 바누민트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 * *
여신 바누민트는 모처럼 기분이 좋았다.
지상계에 도착하자마자 동생이며 숙적인 마왕이 눈에 들어왔기에 기분이 조금 언짢았지만, 그 짜증은 금세 눈 녹듯이 사라졌다.
-나를 경배하라.
“오오오! 질서의 여신이시여!”
-나를 찬양하라.
“오오오! 바누민트 여신님을 배알하옵니다!”
발밑으로 펼쳐진 수많은 인간들이 자신을 섬기는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짜릿함!
‘아유, 이게 얼마만의 지상계야.’
신계에 머물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지상계만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마침 신검을 뽑은 용사가 나타나다니.
‘저렇게 어리고 귀여운 꼬마가 새로운 용사라니. 앞으로 재밌겠는데?’
게다가 신도들의 찬양을 받으며 곁눈질로 살펴보니, 자신의 동생이자 숙적인 마왕이 웬 인간과 함께 한바탕 춤사위를 추고 있는 게 아닌가?
‘아는 사이인가? 왜 같이 춤을 추고 있지?’
6666년 만의 부활이라 아는 인간이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
“오오오! 여신 바누민트 님이시여!”
-아, 그래. 나를 찬양하라.
“오오오오오!”
동생에 대한 건 집어치우고, 일단 인간들의 찬양이나 즐기기로 했다.
어차피 자신이 지상계에 현신한 이상 마왕도 섣부르게 인간들을 해코지하지는 못할 테니까.
때문에 바누민트가 생각하기론 가장 경건한 자세를 취한 채 인간들의 찬사를 즐기는 와중이었다.
-언니이이이이! 이 새끼 좀 말려 봐!
“……응?”
돌연 귀청을 때린 찢어지는 비명에 바누민트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뒤늦게 마왕을 살펴본 바누민트가 흠칫 놀랐다.
웬 인간과 춤을 추는 줄로만 알았더니, 마왕은 산발을 한 채 인간이 휘두르는 주먹을 피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쟤 뭐 한다니? 한낱 인간이 휘두르는 주먹질을 왜 저렇게 피하는 거야?’
그리 생각한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마왕의 미간에 아몬의 주먹이 처박히자 바위가 박살 나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날아간 마왕이 속절없이 바닥을 구른다.
그 광경에 바누민트가 흠칫 굳었다.
-……어?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마왕과 신을 비롯한 신적인 존재는 세상을 이루고 있는 ‘마나’ 그 자체가 의사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들이 작정하고 방어를 취하면 세상의 모든 마나가 방벽이 되어 위협을 차단해 준다.
‘그렇기에 마왕을 토벌하는 용사에게는 내 힘을 담은 신검 누카엘으로 그 마나를 일시적으로 벨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건만…… 저건 대체 무슨……?’
드래곤조차 쉽사리 뚫을 수 없는 것이 신들의 마나 방벽이 아닌가?
‘아아, 그렇군. 마왕 저 녀석, 아직 봉인에서 풀린 지 얼마 안 돼서 힘을 제대로 못 쓰는 모양이구나?’
그러니 수만 년간 입에 담지도 않던 ‘언니’를 외치며 도움을 청했겠지.
피식 웃은 바누민트는 소란도 진정시킬 겸, 이번 한 번만 마왕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스르르-
하늘에서 인간들의 찬양을 즐기던 바누민트가 지상에 내려왔다.
그리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고 있는 마왕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는 아몬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마나 방벽으로 아몬의 주먹을 막으며 말했다.
-자, 인간이여. 진정하…….
콰아아앙-!
마나 방벽 따위는 어림도 없다는 듯, 아몬의 주먹에 인중을 강타당한 여신이 붕 날아가 비틀거리는 마왕을 쿠션 삼아 지면을 나뒹굴었다.
그 바람에 기절한 여신이 함께 기절한 마왕과 포개져 꿈틀대고, 엉겁결에 여신과 마왕을 쌍으로 기절시켜 버린 아몬이 입을 쩍 벌렸다.
“이, 이게 뭔…….”
그리고 놀란 아몬은 아몬이고, 더 크게 경악하는 이들이 있었다.
“여, 여신이시여어어어!”
신검 원정대의 책임자, 일등사제 레이즌을 필두로 사제들이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레이즌은 아까 전 아몬이 학생들에게 신검을 먼저 뽑을 기회를 주기 위해 ‘정’을 설파하던 것에 대한 악감정을 가득 담아 외쳤다.
“신에게 불경을 저지른 저 불경한 자를 당장 포박하라!”
“예! 일등사제님!”
사제의 무기인 메이스를 휘두르며 달려오는 사제들을 본 아몬은 깨달았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X됐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