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27)
아카데미가 망했다 127화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비어 있는 회의실 안.
아몬은 포승줄에 꽁꽁 묶여 있었다.
물론 힘으로 끊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신성왕국의 사제들이 차고 넘치는 명분을 가지고 포박한 것이기에 그랬다간 크나큰 외교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었다.
그 명분이란 다름 아닌 ‘여신 폭행죄’였다.
‘내가 살다 살다 여신을 때린 죄로 묶여 보는군.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시골 깡촌, 드레이크 영지에서 상경한 차남치고는 이것도 출세라면 출세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아몬은 신성왕국의 사제들이 심각한 얼굴로 논의하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 대역죄인을 당장 참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아모니스 제국의 귀족 신분입니다. 그러니 우선 제국의 황실에 보고한 후 참수하도록 하죠.”
“어허, 제국의 귀족에게 참수형이라니. 교수형으로 합시다.”
아몬은 사람 목숨을 세 치 혀로 가지고 노는 그들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확 그냥 엎어 버릴까?’
하지만 말했듯, 주먹으로 그들의 골통 내용물을 확인하는 일을 저질렀다가는 대륙 전역에 거대한 전란이 닥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앞선 사건들로 제국의 입장이 좋지만은 않은 실정인데, 신성왕국의 국교인 ‘질서신교’의 숭배 대상인 질서의 여신을 주먹으로 두들겨 팬 희대의 흉악범이 사제들까지 맨손으로 때려죽였다?
신성왕국이 당장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때다 싶어서 뭐 주워 먹을 거 없나 두리번거리던 똥개 같은 국가들이 연합군을 결성해 제국에 칼을 들이밀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나는 역사서에 한 줄 이름을 남기겠지. 여신을 주먹으로 후려친 희대의 악인, 아몬 드레이크에 의해 대륙 전쟁이 발발했다…… 라고.’
그러니만큼 지금 당장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내 목을 베려 한다면, 까짓것 대륙 전쟁 한번 일으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시골 깡촌 귀족가문의 차남이 역사서에 이름 한 줄 남길 기회가 다시 오지는 않을 테니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럽던 아몬이 옆을 슬그머니 바라봤다.
거기에는 의식을 잃은 마왕이 아몬처럼 묶인 채 쓰러져 있었다.
신성왕국이 공식적으로 적대하는 존재가 바로 마왕인지라, 아몬과 같은 신세가 되어 있는 것이다.
즉, 아몬은 마왕과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마왕한테 달아 둔 법구를 나한테도 잔뜩 달아 놨단 말이지. 같은 인간끼리 이렇게 극악무도한 처사라니.’
신성왕국의 인간미가 이렇게나 땅에 떨어졌단 말인가!
내심 투덜대는 와중, 아몬의 처우에 대한 사제들의 회의는 슬슬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그럼 제국의 황실에 보고한 후 처리하도록 하는 걸로 하지요.”
“예, 그게 좋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국 황실에서 처벌을 거절한다면 어떡합니까?”
“어허, 질서의 여신 바누민트 님을 해한 악적에게 아무 처벌도 하지 않을 정도로 제국의 법도가 땅에 떨어지진 않았을 겁니다.”
거기까지 들은 아몬은 의구심이 들었다.
‘근데 신성왕국이 날 처형하길 원한다는 말을 들으면, 황실에선 어떤 판단을 내릴까?’
만약 아모니스 18세가 이 사실을 안다면?
‘껄껄껄껄! 내 진작 그놈 목을 칠 명분만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생기다니! 신성왕국의 원정대에 내 친히 놈의 목을 칠 칼을 내려 준다 일러라!’
‘교수형이라고 하옵니다, 폐하!’
‘그럼 내 이름으로 친히 밧줄을 내리도록 하라!’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목이 달아나는 결과만이 눈에 선했다.
‘그렇군. 세상이 날 또 억지로 핍박하려 드는구나.’
그리고 아몬은 세상의 거친 핍박을 손 놓고 당해 줄 위인이 아니었다.
‘그래, 탈출하자. 그리고 이렇게 된 김에 마왕도 업고 달아나자. 이 아카데미에서 썩느니 마왕의 측근이 되는 게 내 인생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마왕을 두들겨 패던 과거가 있긴 하나, 흘러간 과거는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떻겠는가!
마왕과도 주먹을 이용한 신사적인 대화로 과거의 앙금을 풀면 될 따름이다.
‘좋아. 그럼 끊는다. 하나, 둘, 세…….’
“아몬 선생님!!”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터뜨린 아나르엘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런 아나르엘의 뒤로 믿음직스럽기 짝이 없는 동료 교사들이 우르르 물밀듯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포승줄을 힘으로 끊고 달아날 준비를 마친 아몬을 본 아나르엘이 입을 틀어막은 채 경악했다.
“세, 세상에! 어찌 이런 처사가…….”
아몬이 사제들한테 개처럼 질질 끌려갔다는 피오라의 믿지 못할 말에 허겁지겁 찾아왔건만, 그 말이 사실이었다니!
진작 교무부장으로 내정된 능력 좋은 교사가, 자신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충성심 가득한 아몬이 비맞은 개꼴로 밧줄에 묶여 있는 것을 본 아나르엘은 기다란 귀를 퍼덕이며 분노했다.
“이봐욧! 당신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에요! 감히 우리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교무부장을 저렇게 묶어 두고 핍박하다니! 신성왕국에 이 무례를 정식으로 항의할 겁니다!”
격분해 펄펄 뛰는 아나르엘을 본 아몬은 가슴 한편이 따스해지는 걸 느꼈다.
그래도 학교장이라고 자신을 챙겨 주는 걸 보니 감격한 것이다.
그때 일등사제 레이즌이 아몬을 삿대질하며 외쳤다.
“이 교사가 여신님을 폭행했단 말입니다!”
그 말에 아나르엘이 펄쩍 뛰었다.
“네!? 그, 그럴 리가 없…… 진 않나?”
여태 아몬이 자신을 때린 횟수만 해도 아나르엘의 비밀 일기를 빼곡하게 채울 정도였기에, 아나르엘은 아몬이 여신을 때렸다는 레이즌의 폭로에 반박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물러났다.
‘그럼 그렇지.’
아나르엘을 향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을 느낀 아몬이 고개를 돌렸다.
마침 마리온이 사제들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아몬이 여신을 폭행했다니! 그 무슨 믿지 못할 말입니까!”
전쟁영웅답게 서슬 퍼런 목소리로 외친 마리온은 레이즌이 어디 한편을 가리키는 것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질서의 여신, 바누민트가 코피를 흘리며 기절해 있었다.
그 얼굴을 본 마리온은 흠칫했다.
“엇…… 교회에서 본 얼굴인데…….”
“여신 바누민트 님이십니다. 용사가 신검을 뽑아 지상계에 현신하셨습니다.”
“……딸꾹! 어, 취한다.”
갑자기 술기운이 확 오르는지 마리온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저 인간, 지금 술 취한 척하고 있구나.’
아몬은 배신감으로 치를 떨었다.
함께 술을 어지간히 마셔봤던 아몬은 마리온이 그냥 술에 취한 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지금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비열한 책략이 분명했다.
“음, 그나저나…….”
슬로스가 손을 들며 말했다.
“애초에 저 사람이 여신이 맞긴 한 건가요? 단순히 닮은 사람이거나 사칭범일지도…….”
레이즌이 테이블을 탕 치며 격노했다.
“신성모독입니다!”
“아. 네. 죄삼다아아.”
애초에 이 상황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슬로스는 상대가 반발하는 것과 동시에 물러났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지켜보던 브레슬이 입을 열려 하자 아몬이 줄에 묶인 채 발버둥 치며 말했다.
“학교장님, 저 다크엘프가 또 밥 먹으러 간다고 합니다!”
“밥…… 쳇.”
투덜거린 브레슬이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또 아나르엘이 박치기를 하려는 듯 고개를 앞뒤로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몬이 꽁꽁 묶였다니 제자의 옥체에 흠이라도 갈까 싶어 찾아온 라인벨트는 바누민트를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었다.
“흐음…… 마리온 말대로 교회에서 본 얼굴이로군. 게다가 나조차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는군.”
중얼거리던 라인벨트가 문득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근데 그런 여신께서 왜 아몬 주먹에 맞고 쓰러졌단 말인가?”
중요하기 짝이 없는 지적!
여신이 맞았다는 사실에 눈이 먼저 돌아가 앞뒤 제쳐 두고 아몬을 포박했던 사제들도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당황한 듯 술렁거렸다.
“그, 그러고 보니…… 하지만 여신님이 확실합니다.”
“누가 아니라나? 왜 아몬의 주먹에 맞고 쓰러지셨냐 이거지.”
“그, 그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쭈뼛거리는 사제들을 본 카이가 라인벨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듯한 카이의 행동에 라인벨트가 어깨를 으쓱이며 뒤로 물러났다.
하긴, 평생 검만 휘둘러 온 자신보다는 황태자 신분으로서 수많은 이들과 교섭해 온 카이가 이번 상황을 해결하기에 적격이리라.
“사제 여러분들, 조금 진정하시고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시죠.”
“음…….”
“우선 지금 상황에서 당장 아몬 선배님의 처분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당사자인 질서의 여신 바누민트 님께서 정신을 차린 후 이야기를 진행해도 늦을 것 없지 않겠습니까?”
우선 상황을 지켜보자는 카이의 제안.
그 말에 사제들이 대답하기도 전에 카이가 말을 쏟아 냈다.
“또한 아몬 선배님은 제국의 귀족 신분입니다. 여러분께서 황실에 아몬 선배님의 처우를 의논하는 서신을 보내겠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이것 하나만은 명심해 주십시오. 신성왕국의 국교인 질서신교는 우리 제국의 국교가 아니라는 사실을요. 그러니만큼 아몬 선배를 처벌하겠다는 신성왕국의 입장은 자칫 외교적인 실례, 자칫하면 내정간섭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냉정한 카이의 말에 사제들은 발끈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일등사제인 레이즌은 흥분한 와중임에도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질서신교가 신성왕국에서나 유일한 국교고, 여신인 바누민트가 신성왕국에서나 절대적인 숭배의 대상이지 수많은 종교가 있는 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우리 종교가 숭배하는 여신을 당신네 나라 귀족이 때렸다.’고 고자질한들 제국 황실이 신통찮은 반응을 보여 주지는 않으리라.
‘오히려 여신이 인간한테 맞고 사네? 여신 맞긴 하냐? 그런 비아냥이나 들어먹을지도 모르지. 그건 곧바로 신성왕국의 정통성에 직결된다.’
때문에 일등사제는 화가 났지만 억지로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그 침착함이 그가 일등사제의 위치에 있는 이유였다.
“……확실히 그렇군요. 자칫 큰 결례를 범할 뻔했습니다.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빙그레 웃은 카이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아몬 선배의 목이 날아갈 뻔했군.’
카이 역시 이 사실을 황실에서 알게 되면, 아버지인 황제가 직접 칼춤을 추며 이곳까지 행차해 아몬의 목을 벨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 급한 불은 껐고, 시간도 벌었으니 여신이 정신을 차린 이후가 중요한데…… 어떻게 되려나?’
카이가 기절한 바누민트를 걱정스럽게 들여다보는 와중이었다.
-으…….
“……!”
-여긴…… 아!
옅은 신음과 함께 눈을 뜬 여인!
먼저 정신을 차린 마왕이 포승줄과 법구를 냅다 풀어헤치며 고함을 질렀다.
-아까 나 때린 새끼 어디 있…….
“네 옆에.”
언제 풀었는지, 마왕의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아몬은 뜯겨나간 포승줄과 법구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딸꾹!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호기롭게 찾기는 했는데, 바로 옆에서 주먹을 휘두를 준비를 마치고 있는 아몬을 본 마왕은 재빠르게 꼬리를 말았다.
-아니, 그냥 어디 있나 해서.
“어. 그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