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28)
아카데미가 망했다 128화
당장은 여신 바누민트가 깨어나기까지 기다리기로 합의가 된 상황.
그리고 아몬이 포승줄과 법구를 푼 상황이었지만, 레이즌을 포함한 사제들은 마왕이 정신을 차렸다는 초유의 사태와 직면했기에 아몬에게 제재를 가하겠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마왕이 날뛰면 막을 만한 사람이 저자밖에 없으니…….’
‘같은 인간인데 우리가 죽는 걸 내버려 두진 않겠지.’
그런 계산이 있었기에 아몬이 포박을 풀고 있는 걸 내버려 두고 있었지만, 아몬은 달리 생각하고 있었다.
‘감히 날 묶어? 게다가 내가 무슨 악마도 아니고 법구까지 같이 묶어 놔? 인간 같지도 않은 인면수심의 타락한 성직자놈들 같으니라고. 마왕은 뭐 하나? 당장 저놈들을 찢어 죽이지 않고!’
아몬은 내심 마왕이 날뛰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만약 날뛴다면 ‘허허, 우리는 관계없는 사람들이니 물러나겠습니다.’라고 하며 아카데미 사람들을 데리고 피신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웬걸, 마왕은 아몬의 기대와는 달리 전혀 날뛸 생각을 않고 있었다.
‘또 나섰다가 맞을라. 이놈은 정면 승부로 이길 수 없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빈틈을 노리거나 해야지.’
‘마왕 녀석, 왜 날뛰지 않는 거지?’
‘아몬이라는 교사, 마왕을 힐끔힐끔 훔쳐보는 걸 보니 날뛰지 않나 감시하고 있는 모양이로군! 역시 같은 인간이라고 우릴 생각해 주긴 하는구나!’
세 개의 세력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나름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아카데미의 교사들은 작전 회의에 돌입해 있었다.
“일단 시간은 벌었는데, 어떡하는 게 좋을까요? 되도록이면 황실에서 이 사실을 모르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아나르엘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산드리오가 알면 한바탕 난리가 날 거예요. 우리끼리 수습해야 해요.”
황제가 손수 아몬의 목을 베기 위해 친히 이곳까지 올지도 모르니만큼 아나르엘의 말은 옳았다만, 마리온은 다소 난처한 기색이었다.
“일개 아카데미가 국가 간의 일이 될지도 모를 일을 덮는다고요? 우리 제국에 비할 바는 아니더라도, 신성왕국을 지지하는 국가도 꽤 됩니다만…….”
“그게 종교의 무서움이죠. 아, 인간들도 세계수를 믿으면 될 텐데.”
“은근슬쩍 엘프의 믿음을 끼워 넣지 마시죠.”
투덜거린 마리온이 슬로스를 힐끔 바라봤다.
“자네는 좋은 생각 없나? 나야 투박한 종군 마법사 출신이라 이쪽 바닥에는 어둡지만, 슬로스 자네는 명문가 출신이니 이래저래 좋은 수가 생각나는 게 있을 텐데.”
“글쎄? 생각나는 게 아예 없진 않지만…….”
게으른 성격 탓에 슬로스도 이런 상황에서의 해결책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명문가 출신이라 이래저래 주워들은 게 없지만은 않았다.
본격적으로 밖으로 나돌아 다녀야 하는 사교, 인맥 쌓기 등과는 달리 주워듣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는 것이다.
“일단 가장 좋은 건 당사자와의 원만한 해결이겠지.”
“원만한 해결.”
슬로스의 말을 재차 뇌까린 마리온이 슬그머니 슬로스의 허리춤을 바라봤다.
그녀는 어느새 검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검술 명가 출신인 그녀가 알고 있는 가장 좋은 원만한 해결법은 검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뿐이리라.
“망나, 피오라는 뭐 좋은 생각 없으신가? 펜도리안 가문 출신 아닌가?”
마리온의 물음에 피오라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우리 가문이 애초에 이런 상황에 처할 일이 없어서요.”
“……하긴.”
펜도리안 가문 이름만 내밀어도 상대가 오줌을 지리면서 복종의 자세를 취할 테니, 피오라가 이런 트러블에 휘말릴 일 자체가 있을 리가 없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이가 한숨을 쉬었다.
“결국 딱히 해결법이 없겠군요.”
“뭐…… 교사들이 이런 사건을 덮을 방법을 어찌 알겠나? 더구나 이 사실을 알리기 싫은 대상이 황실인데.”
카이가 마리온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황태자인 카이는 황실의 정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과장 조금 보태서, 지금쯤이면 이 상황을 진작 알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
애초에 아몬이 여신을 기절시킬 때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다고 했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이에 관한 흉흉한 소문이 이미 산 넘고 물 건너 수도까지 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카이가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내 정보단을 통해서 최대한 소문이 안 나도록 틀어막기는 했지만, 결국 신성왕국의 사제들과 제대로 합의를 보지 못한다면 황실이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러니만큼 안팎으로 소문이 안 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카이가 사제들을 힐끔 훑어봤다.
문제는 그들은 신앙 집단이라는 점이었다.
곧이어 신앙의 대상인 여신을 훔쳐 본 카이가 아몬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왜.”
“선배님, 여신님께서 깨어나시면 최대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도 알아.”
아몬도 자신의 실수를 부정하진 않았다.
‘마왕을 쓰러트리기 위한 숭고한 일이었다곤 하더라도 여신은 명백한 피해자다. 그러니만큼 나도 반성하고 있어. 그래. 반성하고 있는데…….’
만약 정신을 차린 여신이 자신을 삿대질하며 저놈의 목을 베라 외친다면, 아몬의 반성하는 마음은 바람에 날아간 종이처럼 덧없는 것이 되리라.
결국 최초의 계획인 마왕의 편에 붙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이다.
‘……오, 여신도 슬슬 정신을 차리려나 보다.’
그 생각대로 여신, 바누민트는 미간을 찡그린 채 옅은 신음과 함께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으으으…….
“여, 여신님! 정신이 드십니까!”
-여긴 어디…… 아!
뒤늦게 자신에게 무슨 재난이 닥쳤는지 떠올린 바누민트가 발딱 몸을 일으켰다.
-마, 마왕의 수하는 어디 있죠!?
마왕의 수하!
과분하기 그지없는 칭호를 얻은 아몬이 최초의 계획을 위해 주먹을 슬슬 꺾는 순간이었다.
-아니, 수하가 아닐지도…… 아무튼 그 인간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누민트가 즉시 발언을 정정하자 아몬이 꺾던 주먹을 스르르 뒤로 감췄다.
‘역시 여신답게 최소한의 생각머리는 있군.’
곧이어 좌중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여 있다는 것을 깨달은 아몬이 입을 열었다.
“여기 있습니다, 여신님.”
-아아…… 그렇군요. 마왕도 바로 옆에 있었군요.
“그리고 말씀드리지만, 저는 마왕의 수하가 아닙니다. 애초에 수하였다면 제가 마왕을 그렇게 공격하지도 않았겠지요.”
-……그도 그렇군요. 미안합니다. 저를 공격하기에 수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누민트가 솔직하게 사과하자 아몬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이 오해했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를 한다고?’
역시 신은 달리 신이 아닌 모양이다.
만약 아몬이었다면, 또한 아몬의 주변인이었다면 일단 뚝 잡아떼고 변명부터 늘어놨을 텐데!
헛기침을 한 아몬이 말했다.
“커흐흠! 괜찮습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지요.”
사제 중 하나가 발끈했다.
“여신님께서 실수를 하셨을 리가…….”
-조용히 하십시오. 제가 오해를 한 건 사실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덮어 놓고 옹호하는 신도를 엄하게 꾸짖는 바누민트의 모습에 아몬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진짜 신이 맞구나!’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자애로움과 공정함에 깊은 감명을 느낀 아몬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신을 때려죽이리라 마음먹었던 것과 달리 이참에 질서신교에 입교할지를 고민했다.
“흠흠, 그나저나 여신님. 저 또한 미천한 인간이기에 실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신님께 저지른 무례는 단순한 사고입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아아, 괜찮습니다. 그다지 아프지도 않았으니까요.
기절해 있던 바누민트가 이따금 코를 잡고 뒤척거리며 ‘으윽, 아파.’라거나 ‘내 코 어떡해.’라며 낑낑대던 것을 똑똑히 들었던 아몬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여간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잠시만 실례.
바누민트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제 손을 한번 잡아보시겠습니까?
“예? 어, 알겠습니다.”
아몬이 바누민트의 손을 텁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바누민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럴 수가…….
“예? 왜요?”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바누민트는 아몬이 자신의 손을 잡지 못하도록 마나 방벽을 세워뒀다.
그런데 아몬의 손은 마나 방벽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그대로 통과해 손을 움켜쥔 것이 아닌가.
‘이 인간의 정체는 도대체……?’
아몬의 옆에 앉아 있던 마왕도 ‘그럼 그렇지, 역시 내가 괜히 두들겨 맞은 게 아니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이 사실에 당황한 듯 굳어 있던 바누민트가 아몬의 손을 놓았다.
아몬에게는 마나 방벽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굳이 털어놓을 필요는 없었다.
‘또 때릴라.’
헛기침을 한 바누민트가 말했다.
-흠흠, 손을 타고 느껴지는 기운을 보니 굉장히 심성이 곱고 선하신 분 같군요. 안심입니다.
“아! 제가 좀 선하긴 합니다!”
아몬은 기뻐했고, 아몬을 잘 아는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여신이 그렇다는데 딴죽을 걸 수는 없는 노릇!
그러나 여신과 대적하는 존재이며 선하다는 아몬에게 두들겨 맞은 장본인인 마왕은 다른 견해를 지녔는지 투덜거렸다.
-선하긴 개뿔이 선해. 무슨 미친 개장수 같더만.
“입 닫아라.”
-…….
한마디로 마왕의 불만을 잠재운 아몬이 바누민트를 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교무부, 교사이며 이번에 성검 누카엘의 선택을 받은 용사인 보리스의 ‘스승’인 아몬 드레이크입니다.”
아몬은 자신이 보리스의 스승이라는 대목에 특히 힘을 줘 말했다.
그래도 용사를 가르친 사람인데 여신이 좋게 봐 주진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때 다른 이들도 우르르 나섰다.
“커허험! 저도 보리스의 스승입니다. 보리스는 제가 업어 키웠다고 할 수 있지요. 암, 그렇고말고요.”
“뭣! 마리온 선배님, 왜 끼어들고…….”
“여신님, 저도 보리스 엄청 열심히 가르쳤어요.”
“아니! 슬로스 선배님은 보리스가 본격적으로 마법 배우니까 손 놓으셨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하하, 보리스가 특히 절 많이 따르고 형처럼 여기죠.”
“카이야, 헛소리 말자.”
“예.”
여신 덕 좀 보겠다고 달려드는 기회주의자 승냥이들을 물리친 아몬이 다른 이들을 힐끔 바라봤다.
‘그래도 피오라는 보리스와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됐다고 나서지 않는…….’
“여신님, 보리스는 제 수제자로서 가장 많은 가르침을…….”
“이 망나니가 미쳤나!”
지상계에 현신한 진짜 신을 만난 시점에서 그들은 체면 차릴 것 없이 여신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여신님! 제가 아니었으면 보리스는 아카데미에 남아 있지도 못했어요!”
“학교장님은 저리 가서 세계수 줄기나 핥으십쇼!”
“뭐, 뭐라고요……!?”
어느새 여신을 둘러싸고 자신의 존재감을 필사적으로 드러내는 그들의 모습에 사제들도 질 수 없다는 듯 나서 자신의 믿음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편.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에 기뻐하는 여신과 달리 마왕은 홀로 쓸쓸하게 바닥을 긁고 있었다.
그때 마왕에게 다가간 검은 그림자가 입을 열었다.
“마족은 주로 뭘 먹고 삽니까?”
-어? 마, 마족은 딱히 식사를 하지 않는다.
그 실망스러운 대답에 브레슬은 혀를 차며 마왕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