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29)
아카데미가 망했다 129화
“오오! 질서의 여신이시여!”
-나를 찬양하라.
“와와와! 여신님 너무 믓찌다!”
-에헴! 나를 경배하라!
신족에게 있어 찬양받고 경배받는 것은 그야말로 삶의 이유다.
그 때문인지, 신도들과 아카데미의 악귀들에게 추켜세워지고 있는 바누민트의 어깨는 거의 정수리까지 솟아 있었다.
‘다른 신들에게도 이 모습을 보여 주고 싶구나! 아니, 보고 있을 테지? 다들 부러워서 안달복달하고 있을 거야. 그놈들 신도라고 해 봐야 신전에 쪼그려 앉아서는 꿍얼꿍얼 기도문이나 읊는 게 전부일 테니까!’
하지만 보라!
직접 지상계에 내려온 자신은 신도들이 사방에서 달콤한 찬사를 선사해 주고 있었다.
그중 아몬은 한술 더떠 바누민트의 발까지 주물러 주고 있었다.
“여신님, 시원하십니까?”
-아아, 시원하구나.
“아이고, 뒤꿈치가 많이 거칠어지셨습니다! 슬로스 선배님, 자주 쓰시는 ‘그거’ 좀 빌려주십쇼!”
-응? 그거?
“네, 네. 슬로스 선배가 자주 쓰는 발 각…….”
“미친놈아! 말하지 마!”
“커헉! 내, 내 갈비뼈가…….”
바누민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그거’가 뭐기에?
‘모르겠군. 그나저나 이렇게 직접 찬양받으니 기분이 좋구나.’
세상에는 ‘세계의 규칙’이라는 것이 있다.
다른 계층의 존재가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것을 막기 위한 창조주의 안배.
그렇기에 신족도, 마족도, 지상계의 존재도 각기 다른 계층에 간섭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신족에게는 지상계로 내려올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바누민트의 경우처럼 자신의 힘을 담은 신물에 특정한 계기가 주어져 일시적으로 지상계에 현신할 수 있는 자격을 얻고 정식으로 현신하는 것.
그러나 ‘세계의 규칙’이라는 것 때문에 신물을 지상계에 하사하는 것 자체도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그 제한을 깨는 방법이 단 하나 존재한다.
‘자신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신이 타락하여 지상계에 속박돼야만 세계의 규칙을 깨고 지상계에 자신의 힘을 담은 신물을 내려줄 수 있다. 타락한 신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즉 신족이 지상계로 내려올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바누민트의 동생이자 적인 마왕처럼 원래 신족이었던 자가 타락해 지상계에 떨어지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가혹하다.
영원히 천상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신으로서의 권능과 명예를 잃게 된다.
남는 건 ‘마왕‘이라는 참혹하고 불명예스러운 이름뿐.
그렇기에 신족이 늘 선망하고 굽어보는 지상계로 내려올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일지언정 이 방법을 택했던 어리석은 신족은 기나긴 천상의 역사에서도 몇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중 하나가 내 동생이라니. 아아, 일이 어쩌다 이렇게…….’
바누민트가 안타까움 섞인 탄식을 흘리며 마왕을 바라봤다.
소외받고 바닥만 벅벅 긁고 있는 마왕을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비록 자신에게 대적하는 자일지언정, 드높은 천상을 함께 군림하던 존재가 저렇게 외면받은 채 바닥만 벅벅 긁는 궁상스러운 꼴을 보니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오오! 여신님!”
-……아, 그래. 나를 찬양할지어다.
“여신님! 어깨가 많이 뭉치셨습니다요.”
-음, 아아. 응, 거기. 거기.
물론 그 안쓰러움은 귀를 녹이는 것 같은 인간들의 찬사에 금세 녹아 사라졌다.
그리고 인간들에게 찬양받는 바누민트를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던 마왕이 문득 입을 열었다.
-흠흠, 맞다. 그러고 보니 용사는 어디 있지?
느닷없는 마왕의 물음에 바누민트의 어깨를 주무르던 아몬의 손아귀에 힘이 꽉 들어갔다.
“마왕! 네 이놈, 아직도 우리 보리스를…….”
-아! 아! 어깨, 어깨!
“헉! 죄송합니다.
황급히 바누민트의 어깨에서 손을 떼어 낸 아몬이 마왕을 삿대질했다.
“아까부터 용사, 용사 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봐. 마왕이 용사를 찾는데 용사한테 안내해 줄 것 같아?”
마왕에게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용사다.
물론 마왕을 주먹으로 두들겨 팬 아몬이 나타남으로써 그 가치가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신검 누카엘의 선택을 받은 용사가 아니던가!
훗날의 일은 물론이고, 정치적인 명분, 용사가 다시 대륙에 재림했다는 것은 수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용사를 마왕 앞에 냉큼 대령한다고? 미친 짓이지. 나는 보리스를 품속의 자식처럼 애지중지 다룰 거다.’
학생을 사랑하는 교사의 마음!
본심의 3할 정도였다.
‘그래야 나중에 보리스가 출세하면 덕 좀 볼 거 아니야. 명색이 용사인데 어느 왕국 후계자나 고위 귀족 자리 같은 건 따 놓은 자리 아니겠어. 초대 용사는 아예 통 크게 왕국을 하나 건국했다고.’
나머지 7할은 보리스에게 빨대를 꽂고 빨아먹겠다는 흉측한 욕심!
그러니만큼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마왕이 보리스를 해치게 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결심하는 순간 바누민트가 손가락을 탁 튕겼다.
“예, 여신님!”
아몬이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하자 바누민트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쩜 이렇게 눈치 빠른 신도인지 모를 정도였다.
또한 마음까지 통하는 게 아닌가!
-당신 말대로, 저 역시 마왕이 용사를 만나는 것은 반대입니다.
“역시 여신님의 혜안! 감복했습니다!”
-마왕의 목적을 감안하면, 아직 미숙한 용사와 마왕이 대면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바누민트가 차가운 눈빛으로 마왕을 노려봤다.
-아직도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냐? 마왕이여.
싸늘한 바누민트의 말에 마왕이 피식 웃더니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마치 바누민트를 깔보는 것처럼 오만한 표정이었다.
-아직도 그 아집에 사로잡혀 큰 뜻을 볼 수 없나 보군.
-아집? 큰 뜻? 웃기지 마라. 네놈의 목적은 추악할 뿐이다. 이 세상에 엄청난 혼란을 줄 뿐이지.
-혼란이라……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는 것인가. 전대 용사와 똑같은 헛소리를 하는구나. 그렇다면 좋다. 다른 인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물어보는 게 어떻겠나?
바누민트가 침음을 흘렸다.
마왕의 목적은 질서의 여신, 바누민트에게 있어선 추악하기 그지없는 사악한 계획이다.
‘그러나 지금의 인간들에게는 과연 어떨까?’
과거, 마왕이 전대 용사와 대립할 때는 대륙의 모든 인간이 마왕의 뜻에 반해 마왕의 음모에 맞섰다.
그러나 가치관은 세월에 따라 변하는 법.
바누민트가 ‘음모’라 여기는 마왕의 뜻이 지금의 인간에게는 더없이 달콤한 제안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애초에 마왕은 인간의 멸종을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원대한 꿈과 뜻에 공감하고 따르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그 뜻은 우리 신족에게도, 인간들과도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에는 격렬한 싸움이 일어났던 것이지. 그리고 신족인 나는 아직 마왕의 가치관에 절대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신성왕국의 사제들은 오직 바누민트의 뜻을 따르겠다는 듯 메이스를 단단히 움켜쥔 채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면 아카데미의 인원들은 심각한 얼굴로 수군거리고 있었다.
“뭐, 단순히 들어 보기만 하는 거라면…….”
“게다가 어쩌면 마왕의 목적이 인간에게 득이 될지도 모르지요.”
그러니만큼 바누민트는 질서의 여신이라는 이름 답게, 자신을 숭상하는 신도들만의 의견을 따를 생각은 없었다.
공정하게, 또한 질서롭게.
그러니만큼 신도가 아닌 인간들의 뜻도 존중할 따름이었다.
결정을 내린 바누민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 좋다. 다른 인간들의 뜻도 들어 보는 게 좋겠지.
바누민트의 허락이 떨어지자 마왕이 스르르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의 시선을 받은 인간들이 경계하면서 뒷걸음치는 것을 알아차린 마왕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과거, 끝없이 보아 왔던 표정이었다.
또한 자신의 뜻을 밝힌다면, 저 표정은 이번 시대에도 공포와 혐오로 바뀔지도.
그렇기에 두려웠지만, 마왕은 입을 열었다.
-듣거라. 인간들이여.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마왕의 입에서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제안이 나올 것인가.
-자, 어디 한번 보거라.
마왕이 천천히 손가락을 흔든 순간.
후우욱-!
돌연 회의실 안을 가득 채우는 무성한 녹색 빛.
좌우를 막론하고, 사방팔방을 가득 채운 녹색의 풀잎을 본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건 대체……?”
녹색의 풀로 회의실 안을 가득 채운 마왕의 저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와중, 바누민트는 치가 떨린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코를 틀어막고 있었다.
-끄으응, 역시 차므로 추악칸 냄섀로구낭…….
바누민트의 코맹맹이 소리에 모두들 황급히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설마 마계의 사악한 식물이란 말인가! 역시 마왕은 여기 있는 인간을 죽일 작정이었던 것인가!
그 사실에 사람들이 모두 놀라 굳어 있는 와중, 사방에 깔린 풀들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아몬이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잠깐만…… 이 풀은?’
슬그머니 풀을 향해 다가간 아몬이 그것을 찬찬히 훑어봤다.
이윽고 그 풀들이 익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풀…… 요즘 갑자기 아카데미에 잡초처럼 자라고 있는 그 풀 같은데요?”
그 말을 들은 바누민트가 화들짝 놀라 펄쩍 뛰었다.
-뭣! 이미 마왕의 사악한 계획이 지상계에 도래하고 있었단 말인가?
“글쎄요…… 하지만 확실합니다. 갑자기 이 풀들이 너무 많이 자라서 정원사를 새로 고용했거든요. 가끔 제초 작업할 때 도와줘서 확신할 수 있어요.”
내친김에 풀을 뜯어서 냄새를 맡아본 아몬이 인상을 확 찡그렸다.
코가 타들어 가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여간 정원사도 생전 처음 보는 풀이라던데…… 아무튼 마왕. 이 풀이 네놈의 계획과 무슨 상관이지?”
-잠자코 보거라.
마왕이 손가락을 탁 튕긴 순간.
돌연 마왕의 눈앞으로 칠흑의 존재처럼 어두운 무언가가 나타났다.
마치 마계의 정수처럼, 탁하고 끈적한 그것이 조그만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마왕의 눈앞으로 회전하고.
스르르-
사방에 돋아난 풀잎이 날아올라 암흑의 정수에 뒤섞이고, 잠시 후 그것은 하나의 구체가 되어 마왕의 앞에 둥둥 떠 있었다.
바누민트는 그 구체를 혐오스럽다는 듯 질색하고 있었고, 마왕은 황홀한 얼굴로 구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과거, 6666년 전의 용사와 인간들은 이 아름다운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
광기에 사로잡힌 마왕이 뿜어내는 위압감에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린 채 뒷걸음치고 있었다.
저 검은 구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윽고 황홀한 미소를 머금은 마왕이 손 위에 구체를 올려놨다.
-자, 소개하마. 이것은 내가 인간들에게 주는 선물…….
마왕이 구체를 내밀며 미소 지었다.
-민트 초코다.
질서의 여신, 바누민트의 동생이며 타락한 존재.
마왕 ‘조아민트’가 기나긴 세월에서 돌아와 자신의 흉계를 드러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