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3)
아카데미가 망했다 13화
아모니스 제국의 수도, 아르지아.
그곳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유독 특별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아몬이 창밖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후후, 촌놈 아몬이 출세했구나. 수도 땅을 다 밟아 보고 말이야.’
대륙 끝자락, 아르마 산맥에 틀어박혀 있는 드레이크 영지에서 이곳까지 오려면 한 세월이다.
더군다나 올 일도 없었다.
‘영지에 오는 사람도 없고.’
아무튼, 경진대회 참가를 위해 어젯밤 늦게 이곳에 도착했다.
‘오는데도 우여곡절이 많았지.’
사실 제국의 길은 잘 닦여 있기에 오는 것 자체는 별일이 없었다.
문제는 출발하기까지의 일이었다.
‘아몬 선생님.’
‘예, 학교장님?’
‘아몬 선생님이 이번 경진대회의 인솔 교사죠?’
‘그렇죠? 제가 특별 수업을 맡았으니까요.’
‘그쵸? 나도 경진대회에 따라갈래요.’
사실 학교장과 동행하는 게 최선이었다.
운영중단 권고를 받은 시점.
학교장이 몸소 경진대회에 모습을 보인다면, 아아! 저 엘프가 그래도 아카데미를 살리려는 의지는 있구나! 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좋습니다, 학교장님! 다녀오십시오!’
갑자기 부학교장, 브레슬이 학교장을 부추기는 게 아닌가!
그런 부학교장의 눈이 번뜩이는 것을 본 아몬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
‘아닙니다! 부학교장님이 같이 가시죠!’
‘……어, 어째서!?’
‘혼자 남으면 식당 시설에 돈을 처박, 아니. 투자할 게 분명하니까요!’
속셈을 간파당한 부학교장이 귀를 파들파들 떨었다.
결국 부학교장이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간부로 동행이 결정됐다.
그리고 아몬을 제외한 다른 교사들은?
‘난 안 갈래. 귀찮아.’
‘같이 갈 생각도 없었습니다, 슬로스 선배님.’
‘흥!’
결국 남는 교사는 마리온뿐이니 그가 동행으로 결정됐다.
그리고 현재.
창밖을 바라보던 아몬은 슬슬 잠이 깨자 불안함을 느꼈다.
‘먹을 것에 미친 다크엘프에 술주정뱅이 교사…… 이 멤버로 괜찮을까?’
아몬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어어억! 푸우우우!”
간밤에 또 신나게 마셨는지 술병을 끌어안고 자고 있는 마리온!
슬쩍 여관 1층에 있는 식당으로 가니, 귀를 파닥대며 식사가 나오기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브레슬을 볼 수 있었다.
“하…….”
“응? 좋은 아침이군요, 아몬 선생.”
“흐으으…….”
머리가 아파 오자 낑낑대는 아몬을 본 브레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왜 그러시죠?”
“으늡느드…… 식사 맛있게 하십쇼…….”
마지막 한 줄기 희망.
학생들이 머무는 방으로 향했다.
“얘들아, 일어났니?”
“네, 선생님.”
“들어가도 될까?”
“네, 괜찮아요.”
이른 아침인데도 침대와 옷매무새를 깔끔하게 정리한 기특한 녀석들!
녀석들을 부둥켜안은 아몬이 눈물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정말 믿을 건 너희밖에 없구나…….”
이제 녀석들은 ‘갑자기 왜 이러냐’는 듯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또 무슨 일 있었구나, 하는 기색으로 등을 토닥여 줄 뿐이었다.
“그럼 얘들아, 내일부터 경진대회니까 오늘 하루는 푹 쉬렴. 쉬는 것도 중요하단다. 알겠지?”
“네, 선생님.”
“그래, 그래.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렴! 선생님이 사 줄게!”
“정말요?”
“그러엄! 그래, 말 나온 김에 거리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 선생님이 사 주마!”
* * *
홀쭉해진 지갑을 탈탈 흔들어 본 아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들 먹성이 이렇게 좋았나?’
하긴, 한창 자랄 시기니 많이 먹는 게 당연하긴 했다.
‘수도 물가가 더럽게 비싸서 돈을 너무 많이 써 버렸네.’
바가지 쓴 것 아닐까 싶긴 했지만, 바가지를 씌우면 씌웠지, 아몬이 어디 바가지 쓸 위인인가?
‘뭐, 부학교장도 여비를 따로 가지고 있으니 돈이 쪼들릴 일은 없겠지.’
게다가 이것도 다 투자다.
‘내 미래의 동아줄을 유지 보수하는 거지.’
아무튼 거리 구경도 신나게 했고, 배불리 먹이기도 했으니 보리스와 클로에를 숙소로 올려 보냈다.
그리고 내일 있을 경진대회 일정을 확인하던 와중.
“크아어억! 쿠우우!”
뒤편에서 들려온 마리온의 코고는 소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직도 술에 취해 자고 있다니.
“사람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더니…….”
그리 중얼대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일관성?’
몸을 일으켜 1층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왜 이런 불안감은 항상 적중하는 걸까?
“냠냠냠냠!”
“…….”
“우물우물, 꿀꺽! 응?”
그릇에 얼굴을 박다시피 하며 음식을 먹고 있는 브레슬.
그녀가 문득 이쪽을 바라봤다.
“아몬 선생도 식사하러 온 겁니까?”
“…….”
“응? 왜 말도 없이 엘프를 빤히 쳐다봅니까?”
귀를 갸웃거리는 브레슬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의 그릇들을 훑어봤다.
그릇이 아주 많진 않았다.
“……다행히 아주 많이 드시진 않았군요.”
그 말에 브레슬이 뿌듯한 얼굴로 귀를 쫑긋대며 말했다.
“식기를 벌써 다섯 번 치웠습니다.”
“……예?”
지금 보이는 그릇만 해도 여섯 개쯤인데, 다섯 번을 치웠다고?
그럼 그릇 서른 개분의 음식을 처먹었다고?
근데 왜 저렇게 자랑스러워하지? 한 대 때리고 싶게?
“부학교장님?”
“예, 말씀하시죠.”
“식사 계산은 개인 사비로 하는 거 아시죠?”
브레슬이 귀를 바짝 세웠다.
“치사하게 먹을 걸로 그러지 마시죠.”
“어, 음…… 그,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 말입니다. 여기 물가가 상당히 비싼 건 알고 계시죠? 그걸 감안해서 이렇게 원 없이 처먹, 아니지. 드시고 계시는 거 맞죠?”
브레슬이 귀를 갸웃거렸다.
“뭐 얼마나 비싸길래 그럽니까?”
“…….”
“꿀꺽, 벌써 다 먹었네.”
브레슬이 점원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 맛있는 걸로 아무거나 하나 더 주십시오.”
점원 대신 사장이 싱글벙글 웃으며 달려와 고개를 조아렸다.
“예, 손님! 금방 대령하겠습니다!”
매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는 듯 행복해하는 사장의 미소.
그 미소를 빤히 바라보던 아몬이 굳은 얼굴로 브레슬을 노려봤다.
“여태 이렇게 주문한 겁니까? 가격, 메뉴판도 안 보고요?”
“나 참,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다고 그러십니까?”
퉁명스러운 브레슬의 목소리.
몸을 일으킨 아몬이 분주히 음식을 준비하는 사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후.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영수증을 들고 온 아몬이 입을 열었다.
“4골드 89실버 나왔군요.”
한창 음식을 퍼먹던 브레슬이 흠칫 움직임을 멈췄다.
“……얼마라고요?”
“4골드 89실버요.”
“…….”
“사장이 음료값은 빼준다고, 4골드 70실버만 달라고 하는군요.”
“……….”
아몬이 뺨을 파르르 떨며 미소 지었다.
“여비는 얼마 가지고 오셨습니까?”
“……5골드.”
“하, 하하! 하하하하!”
“…….”
“하! 흐, 흐흐흑…….”
드디어 미쳤는지, 아몬이 웃다가 울기 시작했다.
* * *
아나르엘의 말이 떠올랐다.
‘다크엘프는 한 가지 욕망에 집착하는 자들이 많아요. 그런데 휴가 가서 굶고 왔나? 전보다 더 심해졌네요.’
심하다, 심하다 말로만 들었지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부학교장이 돌아온 이후부터 아카데미 식당 주방장이 비쩍 마른 것 같던데…….’
그게 설마 과로 때문이었나?
한숨을 쉰 아몬이 말했다.
“엉덩이 내리지 말고 똑바로 드세요.”
그 말에 땅에 머리를 박고 있던 부학교장이 도로 엉덩이를 치켜들었다.
“아, 아몬 선생……!”
“뭐요.”
“이, 이거, 하극상, 아닙니까?”
아몬이 서늘한 눈빛으로 부학교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맞는데, 뭐 어쩔 건데요.”
“…….”
“당신이 한 끼 식사로 여비 다 털어먹어서 경진대회 내내 학생들이 밥도 못 먹고 손가락이나 빨게 생겼는데, 하극상이 안 일어나길 바란 겁니까?”
“…….”
“명심하십시오. X같이 행동하던 장군들은 전쟁 나면 하나같이 부하 손에 칼 맞고 죽었습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죠.”
브레슬은 ‘말이 좀 심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적할 순 없었다.
아까 식당에서, 웃다가 울던 아몬이 갑자기 울음을 뚝 그치더니 맨손으로 식탁을 쪼개 버린 것이다.
‘덕분에 식탁 값으로 10실버를 또 물어 줬지.’
그리고 브레슬은 자신의 머리가 식탁처럼 쪼개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원래 미친놈 말은 네, 네 하고 들어 주는 거랬다.’
게다가 아몬의 눈이 돌아간 각도를 보니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었다.
이마를 짚은 채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아몬이 말했다.
“부학교장님, 일어나십시오.”
“……윽!”
휙 일어나는 부학교장을 본 아몬이 뭔가를 내밀었다.
“이건…….”
“돌입니다.”
“이걸 왜…….”
“이마에 대고 땅에 머리 박으십시오.”
점점 심해지는 가혹 행위!
이 불합리한 처사에 브레슬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찰나였다.
“으응, 웬 소란인가?”
술에서 덜 깬 마리온이 웅얼대자 아몬이 말했다.
“별일 아닙니다, 선배님. 계속 주무십시오.”
“으음, 별일인 것 같은데…….”
“부학교장이 가져온 여비를 한 끼 식사에 전부 날렸을 뿐입니다.”
“……어?”
술이 확 깨는지 마리온이 벌떡 일어났다.
“여비? 5골드쯤 될 텐데?”
“예. 그걸 한 끼 식사로 다 쓰고 달랑 10실버 남았습니다.”
어이가 없다는 듯 브레슬을 바라보던 마리온이 한숨을 푹 쉬었다.
“에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부학교장님께 무슨 짓을 하는 겐가?”
그 말에 브레슬이 말했다.
“맞습니다, 그래도 그렇…….”
“부학교장님도 잘한 것 없습니다.”
“…….”
마리온이 다가와 자신의 주머니를 내밀었다.
“에휴, 일단 여비로 이거라도 쓰게. 경진대회 동안 술은 자제하지 뭐.”
“서, 선배님……!”
“대충 4골드쯤 될 게야. 그러니 자네도 진정하게.”
감격어린 얼굴로 주머니를 받아 든 아몬이 돌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집어 보니.
딸그랑-!
은화 두개가 툭 떨어졌다.
“4골드요?”
“……어?”
“2실버인데요?”
“어…….”
마리온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어제 너무 많이 마셨나 보이.”
“…….”
* * *
대망의 경진대회 당일.
보리스와 클로에는 ‘검술’ 부문에 참가한다.
아몬이 긴장한 듯 떨고 있는 학생들의 손을 꼭 잡아 주며 말했다.
“얘들아, 긴장하지 마렴.”
“……선생님.”
“그간 노력해 온 너희들을 믿으렴. 너희들은 할 수 있어.”
“……네, 선생님!”
“그래! 선생님도 너희를 믿는다!”
아몬의 격려에 둘은 주먹을 꼭 움켜쥐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둘이 대기실로 향하는 것을 확인한 아몬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보리스, 클로에.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래. 절대 지면 안 된다.
왜냐하면.
‘만약에 너희가 지면, 우리 전부 경진대회 내내 밥도 못 먹어.’
현재 교사 셋의 보유 금액.
12실버.
‘아카데미로 돌아갈 때도, 마차는커녕 두 발로 걸어가야 하거든?’
그럴 순 없다.
그러니까.
“어서 옵쇼!”
아몬이 반갑게 자신을 맞아 주는 사내에게,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주머니를 내밀며 말했다.
“보리스와 클로에, 1회전 통과에 각각 6실버씩 걸겠습니다…….”
“예! 여기 확인증 받으십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