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32)
아카데미가 망했다 132화
이번 신검 원정대의 총책임자인 일등사제는 아몬의 간교한 설득에 당해 버렸다.
“으음…… 민?트 초코에 대한 평가는 둘째치더라도 틀린 말은 아니군요. 애초에 마왕의 목적이 민?트 초코를 인간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라니,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어찌 될지…….”
말하고 보니 ‘이게 마왕이 맞긴 한 건가?’싶은 의문이 레이즌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이름만 마왕이지, 자신이 만든 새로운 음식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요리사와 사업가에 가깝지 않은가.
물론 그것이 사람들의 입에 맞지는 않는 것 같지만, 어쨌든 간에 신성왕국이 그토록 경계하던 ‘마왕’으로서의 위험성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마왕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는 없습니다.”
“암요. 그야 당연한 말씀이죠.”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질서의 여신 바누민트는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대충 입장의 정리를 끝낸 레이즌이 바누민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신님.”
-왜, 왜 그러느냐?
“저희 신성왕국은 단연 여신님을 섬기고 모시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레이즌이 참담한 심정을 담은 얼굴로 말했다.
“마왕의 목적이 이렇다는 걸 알아 버린 이상…… 무작정 마왕을 적대할 수는 없는 입장이 되어 버립니다.”
-……뭐, 뭣!?
“신성왕국은 마왕이 세계를 멸하려 한다면 국가의 명운을 걸고 총력전을 벌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거금을 들여 각종 성물을 끌어모으고 다른 교단에도 유사시에 협력받기 위해 막대한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오직 마왕과의 전면전을 위해서지요.”
-어…….
여신을 모시는 사제의 입장 탓에 최대한 돌려 말하느라 말은 길었지만, 결국 요약하자면 이 뜻이다.
‘세상의 운명이 걸린 것도 아닌 이따위 어처구니없는 일 때문에 마왕이랑 죽자 살자 싸워야 할 이유가 있을까……?’
마왕도 바보가 아닌 이상 왕국 차원에서 자신을 적대하며 달려들면 손 놓고 맞아 죽을 리가 없다.
저항하고, 마족을 비롯한 세력을 끌어모아 격렬한 전쟁을 벌일 것이다.
무엇 때문에? 고작 음식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여신을 섬기는 종교 집단이라지만, 그들 역시 인간이다.
이따위 일로 지나친 피가 흐르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그러니만큼 여신님께서도 저희의 입장을 고려해 주시어, 당분간 사태를 관망하는 쪽으로 생각해 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레이즌이 정중하게 고개 숙이며 간청했다.
그러나 바누민트는 자신을 모시는 신도들의 열정을 믿어 보기로 했다.
-마왕의 숙원을 저지하는 것은 내 오랜 숙원이…….
여신이 그리 말한 순간.
쑥-!
자신을 향한 신도들이 신앙심이 쫙 떨어지는 것을 느낀 바누민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얼토당토않은 것에 구질구질하게 집착하는 추한 모습!
눈앞의 사제들은 그런 여신의 모습에 신앙이 흔들리며 환멸을 느낀 것이다!
신앙을 먹고 사는 신족에게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일이었기에, 바누민트는 물 흐르는 것처럼 말을 이어 나갔다.
-……지만, 신도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으면 그것이 어찌 신이겠느냐!
“오오오! 여신이시여!”
-그렇지만 마왕에게 또 다른 속셈이 있을지도 모르니 경계를 늦추지 말지어다. 알겠느냐?
“명심하겠나이다, 여신이시여!”
여신으로서의 최소한의 체통을 지킨 바누민트가 썩은 미소를 지은 채 마왕, 조아민트를 바라봤다.
어쨌건 조아민트가 ‘무해한 마왕’이라는 인식이 박힌 이상 자유로이 ‘민트 초코’라는 것을 대륙에 전파할 수 있으리라.
바누민트에게 있어선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인간들의 반응을 보면 그게 널리 퍼지기는 힘들겠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누민트는 마음 놓고 자신의 걸작을 인간들에게 전파할 수 있으리란 희망에 기뻐 방방 뛰고 있었다.
이윽고 바누민트가 고개를 돌렸다.
‘……저 인간.’
아몬 드레이크라 했던가?
시선을 느꼈는지, 자신을 바라보는 아몬을 본 바누민트가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눈을 가리키더니 곧바로 아몬에게 겨눴다.
‘내, 너를 엄히 지켜보겠다.’
엄중한 여신의 경고!
그러나 애초에 아몬은 질서신교가 아니고, 앞으로도 질서신교와 엮일 생각은 일절 없었다!
경고를 마친 여신의 몸에 새하얀 빛이 드리워졌다.
슬슬 신계로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이다.
-……신도들아.
“예, 여신이시여.”
-앞으로는 공물로 초콜릿을 좀 올려다오.
“……아, 예. 알겠나이다.”
자신을 향한 신앙이 조금 떨어지는 것을 느낀 바누민트가 울상을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콜릿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윽고 여신이 사라진 후.
허탈함에 10년은 늙은 것 같은 인상의 일등사제 레이즌이 말했다.
“……그럼 학교장님,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아나르엘이 황망한 얼굴로 그 인사를 받았다.
곧이어 레이즌은 조아민트를 바라봤다.
“그리고 마왕.”
-뭐냐?
“우리와 동행할 생각이 있나? 적어도 그대가 무해하다는 사실을 신성왕국에 납득시키는 편이 그대에게도 이로울 텐데.”
레이즌의 말은 일종의 경고이자 제안이었다.
납득시키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민 어쩌고’의 전파는 어려울 것이고, 동행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무해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마왕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위험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담력은 있는 것이냐? 필시 네놈들이 먼저 제 풀에 두려워 내게 칼을 들이밀 것 같다만.
“그럴 일은…….”
-애송이, 말은 가려서 해라. 네 눈앞에 있는 게 누구인지 아느냐?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이 아무리 얼빠졌다고 한들 눈앞의 존재가 마왕이라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이를 드러낸다면 신성왕국과 전 대륙이 총력을 기울여야 할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
그런 마왕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놈의 위에는 이렇게 전해라. 마왕은 현재로선 인간을 적대할 생각이 없다고. 그러니 곱게 먹은 생각을 깨트릴 짓은 부디 저지르지 말라고.
“……그러지.”
결국 이 상황에서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그 사실을 아는 레이즌은 얌전히 몸을 돌렸다.
“복귀한다.”
“예, 일등사제님.”
이윽고 아카데미에서 나온 사제들은 신성왕국으로 복귀하기 위한 여로에 올랐다.
그리고 도시 아무르에서 얼마나 멀어졌을까.
문득 걸음을 멈춘 레이즌은 고개를 돌려 아카데미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아몬 드레이크라고 했던가.’
아카데미의 교사. 그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니다.
‘용사 이외에도 마왕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존재. 더구나 여신께도 해를 끼칠 수 있는 존재.’
레이즌의 가슴에 턱 걸리는 것 같은 사실이었다.
또한, 그것을 예전에 성서에서 본 것만 같은 기억이 있었다.
워낙 허무맹랑한 내용이라 잊어버린 것 같긴 하지만.
‘복귀하면 한번 시간을 들여서 찾아 봐야겠…… 하아, 복귀라.’
이번 원정이 신성왕국에 얼마나 큰 파란을 몰고 올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기에 레이즌의 얼굴은 마냥 어둡기만 했다.
* * *
이튿날.
‘후후, 신성왕국의 사람들이 언제 날 데리러 올까? 용사는 마음의 준비를 이미 끝냈는데 말이지.’
그로부터 이틀 후.
‘왜 이렇게 늦기? 용사 임명식을 준비하는 게 오래 걸리는 건가?’
또 그로부터 일주일 후.
‘오다 죽었나?’
그 생각으로부터 다음 날. 보리스는 비로소 체념할 수 있었다.
‘망했구나.’
그럼 그렇지! 시골 깡촌 출신 평민 아이의 인생이 잘 풀릴 리 없지!
보리스는 울적한 마음에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배부른 소리였다.
보리스는 아카데미의 다른 학생들보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가장 확실했다.
‘보리스, 쟤 황실 마법사로 내정되지 않았던가……?’
‘슬로스 선생님이 말하길, 오빠인 골리앗 기사단의 단장님도 보리스를 눈독 들인다고 하시던데. 평민인데 그 정도 자질이 있으면 뭐가 되더라도 크게 될 거라면서…….’
‘지난번에 아무르 시장도 마법 시연을 아무르 명물로 만드는 건 어떠냐고 수군거리고 했었는데…….’
보리스는 알게 모르게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허무맹랑한 ‘용사’에 목매단단 말인가!
“쯧쯧, 이해가 안 되네.”
“바보도 아니고 말이야. 아직 어리다, 어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용사 한번 되어 보겠다고 기를 쓰고 신검을 뽑으려던 학생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오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무튼 학생들이 타박할 정도로 보리스는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있는 상태였다.
‘중증이군. 내 수업에서도 졸다니.’
아나르엘의 마법, 브레슬의 탕약 때문에 싫든 좋든 수업에서는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자랑하던 보리스는 아몬의 수업에서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저러다가 예전처럼 또 배운 걸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마법, 탕약의 사소하고 앙증맞은 부작용이 걱정된 아몬이 졸고 있는 보리스에게 다가가 녀석의 어깨를 슬슬 쓰다듬었다.
“보리스.”
“…….”
“보리스, 일어나렴.”
“코오오…….”
흠, 하고 턱을 쓰다듬은 아몬이 보리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일어나세요, 용사님.”
“으, 헉! 네! 네!”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는 보리스를 본 다른 학생들은 즐겁다며 웃었지만, 아몬은 쓴 미소를 지었다.
‘용사가 되는 걸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던 거야?’
하긴, 용사라는 단어가 소년에게 주는 울림이 각별하긴 하지.
아직 동심을 간직하고 있는 아몬조차도 혹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보리스, 많이 피곤하니?”
“……아뇨.”
“음. 수업 끝나고 잠시 이야기 좀 할까?”
“……네.”
보리스는 혼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보리스는 교재정리를 하고 있는 아몬에게 다가갔다.
“저, 선생님.”
“응, 보리스. 앉으렴.”
보리스가 자리에 앉자 아몬은 교재를 정리하며 말했다.
“용사가 되는 걸 많이 기대했니?”
“네? 그야…… 네.”
고개를 끄덕이는 보리스를 본 아몬이 입을 열었다.
“그럼 선생님이 너한테 먼저 사과부터 해야겠구나.”
“네? 선생님이 왜…….”
아몬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네가 용사가 되는 걸 선생님이 막은 상황이거든. 미안하구나.”
“……네? 뭐, 뭐라고요?”
보리스가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놀람 뒤에 따라온 감정은 단연 분노였다.
“왜, 왜…….”
“보리스.”
아몬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사가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니?”
“…….”
“목숨을 걸고 마왕과 싸워야 한다는 거야.”
그 말에 분노로 흔들리던 보리스의 떨림이 멎고, 아몬이 계속 말을 이었다.
“이 아카데미를 떠나서, 신성왕국에 가서 마왕과 싸우기 위해 매일매일 훈련을 해야겠지. 신검 누카엘을 써야 하니까 매일매일 연병장을 구르면서 체력 단련, 검술 연습도 해야 할 거고.”
“…….”
“그렇다고 마법 연습도 소홀히 할 수는 없겠지. 용사니까.”
“…….”
“공부도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해야겠지. 용사니까.”
“…….”
“모험하면서 식량도 구해야 할 테니까 사냥하는 법도 배워야 할 거고, 산나물 캐 먹는 법도 배워야 할 거고, 용사파티한테 도적이 달려들고…….”
보리스는 어느새 신검 누카엘을 풀어 옆에 내려놓고 있었다.
“보리스.”
“네.”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다.”
“그렇군요.”
“그리고…….”
아몬이 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쓰게 웃었다.
“결국 언젠가는 마왕과 마족이랑 처절하게 싸워야 할 텐데…… 선생님은 네가 그러는 걸 바라지 않거든.”
멋쩍게 웃은 아몬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뭐, 그런 거란다. 아무튼 다시 한번 미안하다. 용사가 되는 걸 엄청 기대하고 있었을 텐데.”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졌어요. 선생님 말마따나 집 떠나면 고생이잖아요. 여기가 제 집인데요 뭘.”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구나.”
빙그레 웃은 아몬이 말했다.
“자, 자. 그럼 얼른 가서 쉬렴. 곧 피오라 선생님 수업도 있으니까.”
“네! 선생님.”
보리스가 나간 후.
후련한 미소를 지은 채 교재를 정리하던 아몬이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마왕은 어디 갔지?’
어느새 쥐도 새도 모르게 종적을 감춘 것이다.
* * *
아카데미의 어느 지하실.
-크크큭! 이걸로 궁극의 ‘맛’이 완성되느니라!
“후후후…… 참으로 감격스럽군요.”
-이 맛에 전율하라!
두 개의 그림자가 음산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의 기다란 귀는 기쁨으로 파닥거리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