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33)
아카데미가 망했다 133화
한바탕 시끄러운 일들을 가득 담은 폭풍이 아카데미를 덮치고 지나갔지만, 그것마저 지나간 일이 되어 버린 현재 시점.
신성왕국의 습격으로부터 시간이 제법 흐른 지금의 아카데미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그 평화 속에서, 아몬은 하품을 하고 있었다.
“하아암…… 쩝, 그러고 보니 요새는 지루하네요.”
나른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아몬을 본 마리온이 쯧쯧 혀를 찼다.
“그러게나 말일세. 최근에는 아카데미도 조용하니 수업, 퇴근, 수업, 퇴근만 줄곧 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 사이에 술은 왜 빼먹으십니까?”
마리온이 취기로 붉게 물든 얼굴로 히죽 웃었다.
“술이야 일상이니까.”
“음…… 누군가에게는 일상이군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들어 올린 아몬이 말했다.
“그래도 지루하다는 게 가장 좋은 거죠. 무슨 사달이 나서 정신없이 마구 휘둘리는 것보다야 이렇게 평온한 게 좋지 않습니까?”
“젊은 녀석이 무슨 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는군.”
“곱게 늙는 게 작은 소망이거든요.”
후, 하고 알콜향을 입으로 내뱉은 아몬이 문득 주변을 둘러봤다.
아카데미의 정원은 늘 그렇듯 시들어 있었다.
최근에 고용한 정원사의 손길이 적잖이 닿고 있음에도 이렇다는 건, 슬슬 겨울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아닌 게 아니라, 마침 불어오는 겨울바람에 외투를 여민 아몬이 투덜거렸다.
“그런데 이 추운 날에 우리는 왜 여기서 마시고 있는 겁니까? 주점에라도 가면 안 됩니까?”
“돈이 다 떨어졌네.”
“아…….”
마리온의 빈곤한 주머니 사정에 아몬이 침음을 흘렸다.
하긴, 그렇다고 아카데미의 식당 같은 곳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마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주방장의 눈치가 보이는 것도 문제지만, 학생들의 교육에 좋지 않을 테니까.
‘술 먹고 수업에 들어가는 교사라는 시점에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지만, 그래도 대놓고 마시는 걸 보여 주는 건 지양하는 편이 좋을 테니까.’
하여간 적당히 올라오는 취기에 아몬이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겨울의 밤하늘은 보석이 박힌 것처럼 아름다웠다.
“그나저나, 저도 벌써 여기에 온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네요.”
“음? 아직 좀 남긴 했지만 그렇지. 근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그러게나 말입니다.”
아몬은 자신이 이곳에 온 1년간 무엇을 이뤘는지를 생각해 봤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지 한참이 흐른 후, 아몬이 중얼거렸다.
“없네…….”
“음? 뭐가 말인가?”
“아뇨. 그냥 혼잣말입니다.”
홧김에 술을 쭉 들이켠 아몬이 숨을 훅 내뱉으며 말했다.
“그럼 슬슬 겨울방학이고, 겨울방학이 끝나면 학생들도 2학년이 될 거고, 신학기에 들어가면 그때는 진짜 신입생들도 새로 들어올 거고…… 그렇겠죠.”
“그럴 테지.”
“내년에도 이렇게만 평화롭게 흘러갔으면 좋겠네요.”
“이 1년간이 평화로웠던 건가……?”
“아뇨, 아뇨. 최근처럼 지루하게 흘러갔으면 좋겠다고요.”
“흠.”
피식 웃은 마리온이 잔을 내밀며 말했다.
“그래, 평화로운 게 최고지.”
빙그레 웃은 아몬이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내년에도 이렇게 평화롭기를 기원하며.”
* * *
어두운 학교장실.
아나르엘은 촛불 하나만 켜놓은 어두컴컴한 학교장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한참 촛불의 일렁이는 불꽃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가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후후, 드디어 올게…….”
“학교장님!”
“왔, 꺄아악!?”
아몬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자 소스라치게 놀란 아나르엘이 쿵쾅거리는 가슴을 붙잡은 채 떠듬거렸다.
“아, 아몬 선생님! 노, 노크도 없이 이게 무슨…….”
“죄송합니다. 급하게 드릴 서류가 생겨서요.”
“급한 서류요? 이 늦은 시간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몬이 내민 서류를 받은 아나르엘이 인상을 찡그렸다.
서류를 건네주는 아몬에게서 자욱한 술 냄새가 풍겼기 때문이다.
“아몬 선생님, 술 드셨어요?”
“예? 아, 마리온 선배님이랑 가볍게 한잔했습니다.”
“술 냄새가 한 잔 마신 정도가 아닌데요…….”
“……냄새가 심합니까?”
당황한 듯 옷깃을 킁킁거리는 아몬을 흘겨보던 아나르엘은 일단 아몬이 내민 급한 서류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급한 일이 생겼…… 어라?’
촛불 하나로만 방을 밝히고 있어서 잘못 보고 있는 건가?
아나르엘이 황급히 방의 불을 켠 후 아몬이 준 서류를 재차 읽어 봤다.
그리고 차근차근 서류를 읽어 본 아나르엘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아, 아몬 선생님. 이건……?”
“제 생각에는 시기상 지금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 오오…….”
아나르엘이 감격했다는 듯 눈물을 글썽거렸다.
“역시 아몬 선생님…… 저와 뜻이 통했군요.”
“예? 뜻이 통했다고요?”
“저도 아카데미에 신입생을 대거 끌어들일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 말에 아몬은 비로소 처음 들어왔을 때 방이 어두웠던 이유를 깨달았다.
‘또 혼자서 분위기 잔뜩 잡고 올 게 왔군요. 하고 있었나 보군.’
아무튼 아나르엘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처음 생각했던 건 교류전을 또 치러 볼까 했던 게 고작이었는데…… 역시 아몬 선생님은 제 기대를 아득하니 뛰어넘으시는군요!”
아몬이 내민 서류에는 ‘아모니스 아카데미배 대제전’이라는 성대하기 그지없는 안건이 적혀 있었다.
아카데미끼리 조촐하게 모여 투덕거리는 교류전 따위도 아니고, 남이 차려 준 밥상에서 눈치 보며 한 숟가락 떠먹는 것도 아닌, 아예 아모니스 아카데미가 주체가 되어 성대한 대회를 개최하자는 야심만만한 계획!
귀를 퍼덕이며 기뻐하는 아나르엘의 모습에 아몬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아카데미의 부흥을 위한 일이니까요.”
“아아! 역시 아몬 선생님이셔!”
아몬은 아나르엘의 찬사를 즐기며 썩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리온과 술을 마시며 ‘평화가 최고, 조용한 거 너무 좋아’라던 아몬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집에서 온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아몬아, 잘 지내느냐. 최근 영지는 산하 도시인 에덴 덕분에 유래 없는 풍족함을 누리는 중이란다. 영지의 살림도 나아졌고, 에덴도 최근에는 여느 도시가 부럽지 않게 발전 중이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단다.]문제라는 대목에서 아몬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다행히 이어진 내용은 그리 심각한 건 아니었다.
[여느 도시 못지않게 발전했다만, 워낙 외딴 곳에 위치한 도시라 그런지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단다. 결국 인지도의 문제인 거지. 그러니만큼 너에게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우리 에덴과 네가 일하는 아카데미가 협력해서 할 일은 없겠니? 자금은 우리가 가능한 지원하도록 하마.]아몬에게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이유였다.
‘평화? 안정? 그딴 것보단 좀 소란스럽더라도 돈이 최고지.’
아모니스 아카데미를 후원하여 대제전을 열게 되면 이토록 거금을 쾌척해 준 에덴에 관심이 쏠릴 것은 당연한 일.
그리되면 상단도, 관광객도, 그 이외에 투자를 하려는 이들도 생겨날 터.
여느 도시 못지않게 발전한 에덴이 한층 더 성장을 거듭하리라.
‘게다가 그런 도시가 투자해 주는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겠지. 내년 신학기에 신입생을 받으려면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
그로 인해 학생들의 출세 역시 순풍에 돛 단 듯 나아갈 것이며, 아미의 취직 길에도 꽃이 수놓일 것이며, 라스티아넬의 입학을 적극 추천한 카셀라그에게도 면목이 서지 않겠는가!
‘그것도 그거고, 내가 이직할 때도 좋은 이력이 되겠지!’
대제전을 성황리에 성공시킨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교사!
이력서에 적어 넣기에는 나쁘지 않은 글귀였다.
그렇게 아몬이 장밋빛 미래에 대해 싱글벙글 웃는 와중, 아나르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아몬 선생님.”
“예, 학교장님.”
“염려되는 게…… 결국 대제전을 열려면 어지간한 자금으로는 개최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텐데요.”
그 말대로 아카데미의 자금줄은 먹고 자는,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킹오브망고 지분을 골드로드 상회에 넘겨준 것도 아카데미의 건물을 수리하느라 당겨쓴 지 오래였다.
거기에다 마왕이 건물을 한 번 더 작살냈으니, 아카데미의 식구들이 따뜻한 밥을 먹는 것조차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상황!
“그…… 제가 빅토리아나 산드리오한테 한번 부탁해 볼까요?”
애처롭게 타개책을 내미는 아나르엘을 본 아몬이 든든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돈 걱정은 하실 필요 없습니다.”
“네?”
“우리 영지의 산하 도시에서 자금을 대 주기로 했거든요! 그러니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남들 부끄럽지 않게 해 봅시다!”
“아아아!”
감동! 감격! 기쁨! 그리고 감사!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아나르엘은 눈물까지 글썽거리고 있었다.
도시 차원의 후원이라는 든든한 주머니가 생긴 상황!
“그럼 악단도 부르고…….”
“그럼요!”
“재주꾼들도 잔뜩 부르고…….”
“그…… 그럼요.”
중간중간 비는 시간에 사람들의 눈요깃거리는 되겠지.
“폭죽도 터뜨리고!”
“그, 그럼요.”
“코끼리도 불러오고!”
“……무슨 서커스라도 열 생각입니까?”
아몬의 타박에 아나르엘이 생긋 웃었다.
“농담이에요. 그만큼 기쁘다는 거죠.”
“……농담 맞죠?”
잠시 침묵을 지키던 아나르엘이 말했다.
“농담이죠. 아무튼 대제전이라…… 예전에 아카데미가 주체가 되어서 대회를 열었던 것도 고작 한 번인데, 이렇게 기회가 생기다니. 너무 기쁘네요.”
“기쁘시다니 다행입니다.”
“후후, 그나저나 아몬 선생님께서 또 고생하시겠네요. 일정도 짜야 할 거고, 초대장도 만들어야 하고, 이래저래 준비할 게 많을 테니까요.”
아나르엘의 우려에 아몬이 말했다.
“하하, 그 걱정은 마시죠.”
“네?”
“이런 일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거든요.”
“네? 누구요?”
아몬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욕심 그득한 탐관오리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런 종류의 행사는 빠삭하게 꿰고 있을 녀석이 있어요. 녀석에게 맡겨 두면 대제전 준비 따위는 어렵지 않게 해낼 겁니다.”
“욕심 그득한 탐관오리 옆에서요……? 누, 누군데 그런 사람을 알아요?”
아몬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카이요. 그 녀석, 탐욕스러운 황제를 보필하는 최측근 가문 출신이잖아요. 그 타락한 황제라면 매일매일 주지육림에 빠져 살 텐데, 그런 황제를 모시는 가문 녀석이니 이런 호화스러운 행사를 계획하는 건 일도 아니겠죠.”
“…….”
그리고 그 시각.
“……귀가 왜 이리 가렵지?”
귀를 후비적대던 카이가 한숨을 푹 쉬었다.
마침 황실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카이야, 이번 사교 대회의 일정은 네가 짜다오. 초대장도 만들고. 이번 사교 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호화스럽게 열어야 한단다.] [황후 빅토리아]카이가 퀭한 얼굴로 한숨을 푹푹 뱉었다.
“휴, 얼른 어머니가 맡긴 일이나 처리해야지……. 어디 보자, 지금까지 다른 귀족들이 좋아하던 것들이…….”
아몬이 했던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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