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34)
아카데미가 망했다 134화
카이는 퀭한 얼굴로 아몬이 건넨 서류를 받아 들었다.
“어…… 이게 뭡니까?”
“이번에 우리 아카데미가 대제전을 주최해서 열려고 하거든. 그래서 일정을 좀 짜 보려고. 좀 도와줄 수 있어?”
“그야 도와드릴 수야 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뭘 도와드리면 되죠?”
아몬이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일정이랑, 초대장을 보낼 인물 선정이랑, 초대장 제작이랑, 인력 수배랑, 무대 조성이랑…… 기타 등등?”
전부 다.
그렇기에 아몬은 카이가 ‘아니, 전부 맡기려는 것 아닙니까!’라며 반발한다면 거대한 호의를 베풀어 초대장을 보낼 인물 선정과 무대 조성쯤은 맡아 줄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퀭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던 카이가 말했다.
“규모는요?”
“어? 규, 규모는 아카데미 부지 전부를 이용할 생각이야.”
“그럼 무대는 앞뜰을 이용하면 될 거고, 인원 대기는 빈 건물들을 사용하면 될 테니…… 대제전에 참가할 선수는 대략 300여 명, 선수를 따라올 인원들의 대기는 대략 그 인원의 다섯 여섯 배 정도로 잡으면 2천 명가량…… 거기에 관람객을 포함하면…….”
중얼중얼 셈을 하던 카이가 말했다.
“맞아, 대략적인 예산은요?”
“예산은…….”
아몬은 일단 낮게 불렀다.
아무리 가문에서 지원을 해 준다지만 그래도 자기네 집 살림이라고 가능한 한 아껴 보려는 것이다.
물론 카이가 모자란다고 말하면 조금씩 예산을 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 정도면 아슬아슬하게나마 가능하겠네요.”
“어? 가, 가능해……?”
“예산이 한정됐으니 안 되더라도 해야죠. 제가 아는 인맥을 최대한 동원해 보겠습니다.”
아몬이 침음을 흘렸다.
“내, 내가 도와줄 건 없을까?”
“뭘요. 이 정도면 금방 끝납니다. 선배님도 일이 많으실 텐데 괜찮습니다.”
없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리온과 술을 퍼마시다 오는 길이다.
“그, 그럼 예산을 좀 더 구해 본다거나…….”
“더 있으면 좋지만, 굳이 무리해서 예산을 끌어다 쓸 필요는 없습니다. 말씀드렸듯, 빠듯하긴 해도 이 정도면 가능하니까요.”
말이 거창해 대제전이지, 아카데미에서 치르는 것이니만큼 학생을 포함한 ‘경연 대회’ 같은 일종의 이벤트다.
결국 기대하는 요구치는 ‘학생 수준’에 불과하다.
초대받는 귀족도 아카데미의 관계자, 교육과 관련된 유력 귀족, 아카데미에 자제를 입학시키려는 귀족 등등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여태 어머니, 황후 빅토리아의 명령으로 호화스러운 사교계를 도맡아 계획했던 카이에게 있어 학생 수준의 대제전 무대를 꾸미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몬에게 무리하지 말라는 듯 푸근하게 웃는 카이를 본 아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러면 내가 뭐가 돼.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짬 때렸는데.’
누구도 모르는 놀라운 사실이지만, 아몬 역시 양심이 있는 인간이라 이토록 겸허하게 나오는 카이를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커허험! 카이야, 선배 좋다는 게 뭐냐. 이 선배가 도울 일이 있다면 기탄없이 말해 다오.”
“괜찮다니까요.”
“아니야, 너 표정이 퀭한 걸 보니까 내가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아…….”
그저 자신의 아픈 양심을 달래기 위해 도움을 주려는 아몬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카이는 선배의 대가 없는 호의에 마냥 감사함을 느꼈다.
“흠흠, 그러시다면…… 얼마 후 수도에 사교 대회가 열린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엉? 사교 대회? 몰랐는데.”
모르는 게 당연하다.
아직 초대장도 돌리기 전이니 말이다.
헛기침을 한 카이가 말했다.
“아직 소문이 돌진 않았나 보군요. 아무튼 조만간 수도에서 사교 대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참가할 만한 귀족의 명단을 준비해 뒀는데, 이걸 한번 검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옆에 이력 등도 있으니 결격 사유를 체크하고 추려 주시면 됩니다.”
“음…… 그래, 이 정도는 얼마든 도와줄 수 있지.”
비로소 아몬의 마음이 편해졌다.
카이는 자신의 일을 도와주고, 자신은 카이의 일을 도와준다!
상부상조 그 자체 아니던가!
‘나는 그냥 조금 거드는 수준이고 카이는 아예 맨바닥부터 시작하는 수준이지만 서로 돕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닐까?’
필사적인 정신승리로 양심의 가책을 던 아몬이 명단을 죽죽 훑어봤다.
‘다이스포르 백작, 군터 군도 연합과의 전쟁에서 자금 원조 거절…… 탈락! 벤도 후작, 결격 사유 없음. 합격! 그리고 또…….’
명단은 상당히 길었다.
그러나 역사학 교재를 달달 외우다시피 하며 살아온 아몬에게 있어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양.
얼마 지나지 않아 명단을 모조리 체크한 아몬이 입을 열었다.
“근데 카이야.”
“예, 선배님.”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아몬이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 사교 대회에 우리 가문도 초대할 순 없을까?”
“……예?”
“아, 오해는 마. 나는 갈 생각 없으니까. 그냥 우리 부모님만 참가하시는 건 안 될까 해서.”
사교 대회는 초대받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명예로운 일이다.
게다가 황실에서 주최하는 사교 대회이니만큼 참가하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황실에게 초대받았다는 것은 황실이 그만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 곳에 부모님이 초대받으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어.’
아몬 나름대로의 효도였다.
하지만 카이는 난처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 죄송하지만, 제게는 이렇다 할 선택권이 없어서요.”
거짓말이다.
이 명단은 카이가 직접 짠 것이다.
하지만 카이가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황실이 주관하는 사교 대회이니만큼 어느 정도 입지가 있는 귀족만 부른단 말이지. 재력도 봐야 하고.’
결국 초대받는 기준은 ‘황실에 도움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였다.
그런 면에서 궁핍한 드레이크 남작가는 황실의 초대를 받기에는 조금 애로사항이 있었다.
대대로 벌어진 황가와의 비화는 차치하더라도, 현실적인 사정 때문에라도 말이다.
아몬도 대충 눈치를 챘는지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쯧, 그러냐. 어쩔 수 없지 뭐.”
“하하……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너도 고생하는 입장인데.”
팔락, 하고 괜히 명단을 뒤집어 보던 아몬이 중얼거렸다.
“우리 가문도 이제 돈 좀 벌었다고 생각했는데, 안 되나 보네.”
그 말에 카이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돈 좀 벌었다는 게 자신이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덕이었으니까.
“하, 하하하…… 영지에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봐요?”
“응. 어느 상단의 부호가 우리 영지 근처의 도시에 거금을 투자했다더라. 그래서 우리 영지도 덩달아 덕 좀 봤고, 이번에 살림도 펴서 이번 대제전을 지원해 주기로 했거든. 근데 그 정도로 사교 대회는 어림도 없나 보네.”
“하하, 그렇뭐라고요?”
“응? 뭐가?”
카이가 떠듬거리며 물었다.
“이번 대제전을 아몬 선배님의 영지에서 지원해 주기로 했다고요?”
“정확히는 영지에 복속된 도시에서 해 주는 거지.”
카이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얼마를 투자했더라? 설마 실수로 수표에 0을 하나 더 써넣었나?’
물론 거금을 투자하긴 했다.
하지만 대제전에 투입하기로 결정된 예산만 해도 그것의 두 배는 족히 되는 수준이다.
‘근데 이 단기간에 이만한 예산을 쾌척할 정도로 부흥했다고? 어떻게?’
다른 경로로 자금이 추가로 유입됐나? 아니면 자신이 모르는 추가 투자자가 있는 건가?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던 카이가 입을 열었다.
“우선 제가 한번 알아보고 다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어…… 그, 그래. 그렇게 심각할 것까진 없는데.”
“아닙니다. 제 조사가 모자랐던 것이니 새로 알아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 그래.”
아무튼 명단을 추리는 것도 끝났고 하니 아몬은 카이의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후.
생각에 잠겨 있던 카이가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자 밖에 매달려 있던 황태자 직속 정보원이 두루마리를 넘겨줬다.
곧이어 그것을 읽어 본 카이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 *
드레이크 가문의 장남, 아임은 심각한 얼굴로 도시 에덴을 둘러보고 있었다.
어느 대부호가 이 도시에 투자를 함으로써 찾아온,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절호의 기회.
그 자산을 바탕으로 최대한 이 도시를 부흥시키려 노력하고 있었으나, 그는 자신의 능력 부족을 통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몬스터 부산물의 부패 때문에 영지에서, 멀어 봐야 이곳 에덴에서 소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에덴의 규모 자체가 작았었고, 공급이 소비를 따라가지 못했었다.
때문에 몬스터 부산물의 가치는 턱없이 낮게 책정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외부로 수출하는 것도 불가능했던 것이, 몬스터의 부산물이라지만 ‘사체의 조각’이니만큼 부패가 빠른 편이다.
그나마 보관 기간이 가장 긴 뼈조차 변색과 부식이 이뤄지면 강도가 턱없이 낮아지곤 했다.
‘하지만 도시에 투자된 금액으로 에덴에 대규모 제련소와 공방을 건설했다. 덕분에 지금까지는 힘겹게 이뤄지던 몬스터의 부산물 가공이 수월해졌고, 부산물의 상품화에 성공했지.’
덕분에 상품을 장기간 보관할 수 있게 되었고.
‘남은 자금으로는 에덴에 자체적인 상단을 조직함으로써 외부에 상품을 수출할 기반도 마련됐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에덴이 대륙의 끝에 위치한 변방 중의 변방이라 제대로 된 상회가 있는 도시까지 가려면 무수한 위협을 헤쳐 나가야만 했다.
도적, 몬스터, 짐승들의 습격까지!
그 무수한 위험이 에덴의 고립에 결정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적 수십 명 따위는 우리 영지에서 가장 연로하신 알톤 영감님 한 분으로도 사지를 분리시키는 게 가능하지.’
결국 그 위협은 할 일 없는 영지민들이 소일거리, 관광 삼아 상행에 동행하는 걸로 해결됐다.
덕분에 에덴은 제법 먼 거리의, 제법 큰 규모의 상회와 거래를 트게 되어 막대한 이익을 축적하는 중이었다.
아무런 기반이 없었을 때는 불가능했던 일.
‘그 결과, 에덴은 투자를 받기 전보다 자금 융통이 족히 8배는 늘어난 상황…….’
생각에 잠겨 있던 아임이 분하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젠장! 고작 8배인가……!”
아임이 스스로의 능력 부족이 한스럽다는 듯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흐흑…… 10배는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고작 8배밖에 성장하지 못하다니! 이런 수치가 있나! 이런 절망이 있나!”
얼마나 슬픈지 첨탑에서 방방 뛰는 아임 때문에 건물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었다.
“아! 통탄할 노릇이구나…… 내년 초까지는 이곳을 어지간한 상업 도시 못지않은 규모까지 성장시키고 싶었는데, 이렇게 일이 늦어지면 내년 중순까지는 되어야 어지간한 상업 도시 수준이 될 텐데! 아아! 내 미흡함이 너무나도 한스럽구나!!”
아임의 원통한 울음이 에덴에 울려 퍼졌다.
* * *
보고서를 훑어본 카이가 눈을 비비적거렸다.
도시 경제 성장률이 8배.
‘3배를 잘못 썼나?’
아니, 명확하게 기입된 수치를 비교해 보면 8배가 맞았다.
‘게다가 상행을 다녀오면서 부모를 잃은 고아, 고향을 잃은 실향민 등을 데려다가 드레이크 영지로 편입시켜 영지민으로 삼고 있다. 그 덕분에 인구 증가 추세도 심상치 않고…….’
눈두덩을 꾹꾹 누르던 카이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변경의 영지이니만큼 변경백으로의 승작도 노려 볼 만하지 않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