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35)
아카데미가 망했다 135화
“이, 이럴 수가…….”
아몬의 아버지이자 드레이크 가문의 현 가주, 카임 에덴 드레이크는 한 통의 편지를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편지에는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황실에서 온 편지.
‘아버지 대부터 황실과는 완전히 연이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러운 편지라니…….’
처음에는 ‘드디어 우릴 잡아 족치려고 하는 건가?’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과거, 대대로 쌓여 온 가문의 비화를 감안하면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열어 보니,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편지도 아닌 황실이 주최하는 사교 대회에 초대하는 초청장이었다!
“이, 이런 영예가 있을 수 있나…….”
얼마나 감격했는지 카임은 눈물마저 글썽이고 있었다.
하지만 기쁜 한편, 불안감도 들었다.
‘아버지 때부터 우리 가문은 황실과 완전히 연이 끊겼다. 예전에는 악연조차 인연이라고 간간이 왕래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아버지 대부터 현 황제 폐하와 척을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런데 초대를 받았다고 한들, 옳다구나 하고 찾아가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저잣거리에 매달아 버리려는 흉악한 계획일지도?
‘현 황제 폐하께선 성군 중의 성군이라 평가받고 계시지만, 아버지 당신께서 황제 폐하의 모진 면을 너무나도 많이 말씀하셨기에 나로선 이래저래 혼란스러울 따름이니…….’
때문에 망설여졌다.
‘근데 아버지가 내게 하던 짓을 감안하면 또 모르겠군.’
자식인 자신에게도 부렸던 인성질을 감안하면, 차라리 황제를 믿는 게 좋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이래저래 고민이었기에 카임이 끙끙거리는 와중이었다.
“카임, 가 보는 게 어때요?”
아내의 목소리에 카임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율리아, 하지만…….”
“망설여질 때는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한번 부딪쳐 봐야 후회가 남지 않는 법이에요.”
“으음…….”
“게다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던 율리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한 번쯤은 당당하게 수도에 가 보고 싶다고 말했었잖아요. 초청장을 받고 가는 거라면 충분히 당당한 일이라고 봐요.”
“……율리아.”
오랜 꿈이었다.
이 외딴 드레이크 영지에 갇혀 지내는 시골 귀족의 작은 소망.
물론 멀다고 하나 한 번쯤이라면 얼마든지 수도에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과거일지언정, 명색이 드레이크 대공가의 후손이 아니던가.
마치 숨어 들어가는 것처럼, 아무도 모르게 쥐새끼처럼 살금살금 수도에 다녀오고 싶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당당하게, 명분을 가지고 수도 땅을 밟고 싶었다.
“……좋소.”
결심한 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 카임이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당신 말대로, 오트밀이 되든 빵이 되든 해 보는 게 좋겠지! 갑시다, 율리아!”
* * *
카임은 후회하고 있었다.
‘아, 오지 말걸.’
황실에서 주최하는 사교 대회이니만큼 카임과 율리아는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들을 해결했다.
여태 곤궁하게 살았다는 걸 티 내고 싶진 않았기에 너무 화려하거나 튀지 않게, 정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정장을 준비했다.
게다가 귀족들의 대화에 걸맞게 유행하는 화제도 며칠에 걸쳐 준비했다.
근데 그럼 뭐 하나.
“크르르…….”
홱-!
“그르르릉…….”
확-!
자신의 눈앞에서 으르렁거리며 마치 관찰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훑어보는 황제가 있는데!
무슨 짐승이 먹잇감을 관찰하는 것 같은 사나운 기세에 다른 귀족들은 언감생심 가까이 다가올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고, 멀찍이서 그 광경을 보는 황후는 금세라도 달려들어 황제의 뒷목을 후려칠 것처럼 움찔움찔하고 있었다.
그리고 황실이 주최하는 행사이니만큼 당연히 참석한 카이가 황후의 옆에서 낭패라는 듯 안색을 창백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럴 수가, 아버지의 상태가 저토록 심각할 줄은…….’
드레이크 가문에 대한 악감정이 심하다, 심하다 말로만 들었지 저 정도일 줄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다른 귀족들 눈도 있고, 나름 성대한 사교 대회니 당연히 자중하실 줄로 알았건만 이름을 듣자마자 저렇게 눈이 돌아갈 정도라고?’
카이에게도 나름의 계획이 있었건만, 대륙에 군림하는 제국의 황제다운 배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카이야.”
“……예, 어머니.”
카이의 옆에 서 있던 황후가 서슬 퍼런 음성으로 말했다.
“드레이크 가문의 가주를 네가 불렀느냐?”
“……그렇습니다.”
“왜? 어째서? 네 아비가 미치는 꼴을 그렇게나 보고 싶었느냐?”
황후 앞에서는 ‘나도 계획이 있었다’라거나 ‘이럴 줄은 몰랐다’는 변명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그랬다간 나중에 ‘반성의 시간, 아들 편’이나 보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 카이는 일단 머리부터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 일에 대한 책임은 지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오늘 파티를 성대하게 망쳤으니까.”
진한 결심이 묻어 있는 황후의 말에 카이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대, 대체 무슨 짓을 하시려고?’
정확히는 몰라도, 결심한 것 같은 목소리를 듣자 하니 황후가 직접 깽판을 치려는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허겁지겁 황후를 붙잡은 카이가 말했다.
“어, 어머니! 부디 자중하십시오.”
“에잇! 놓아라! 저 인간이 또 개지랄을 떠는 꼴을 다른 귀족들에게 보이느니 내가 시원하게 저질러 버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
“낫지 않습니다!”
필사적으로 어머니를 붙잡고 말리는 카이였지만, 그랜드소드마스터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인 황후를 말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때문에 카이가 속절없이 황후를 부둥켜안은 채 질질 끌려가는 와중이었다.
“크르르…… 킁, 킁킁…….”
광증이 정점에 올랐는지 이제는 카임에게 찰싹 달라붙어 코를 킁킁대고 있는 황제의 추하디추한 모습!
그 광경에 일개 먹잇감에 불과한 카임은 식은땀을 흘리며 와들와들 떨고만 있고, 율리아는 대역죄인이 되는 걸 감안하고 황제의 턱을 후려쳐야 하나 고민하고, 황후는 더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황제의 뒷목을 걷어차려는 순간이었다.
“음……!? 그대는……!”
별안간 눈을 부릅뜨며 탄성을 내지른 황제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자네, 분명 드레이크 가문의 현 가주인 카임 남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예? 예!?”
갑자기 정신이 돌아온 황제의 모습에 카임은 당황했다.
하지만 하늘 같은 황제의 질문이었다.
“그, 그렇사옵니다. 폐하.”
“그런…… 그렇다면 자네 아비가 분명 벨리알 드레이크가 맞는가?”
“예? 그, 그렇사옵니다. 제 부친이 벨리알 드레이크 되십니다.”
“그렇단 말인가…… 한데 도대체 어찌…….”
황제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카임을 찬찬히 훑어봤다.
조금 전의 짐승 같은 꼬락서니와는 달리 지성이 깃들어 있는, 윗사람이 흥미를 가지고 윗사람을 살펴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왜 드레이크 가문 특유의 추악한 냄새가 안 나지? 벨리알 그 역겨운 놈의 아들이라기엔 너무 똘똘해 보이는 친구인데?’
때문에 여러 가지 의심이 피어올랐다.
사칭인가? 하지만 무슨 자신감으로 드레이크 가문을 사칭하겠는가?
사생아인가? 하지만 드레이크 가문은 대대로 그런 쪽으로는 흠잡을 게 하나도 없지 않던가? 그 망나니인 벨리알 드레이크조차 그러했다.
그렇기에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황제는 결론을 내렸다.
“껄껄껄껄! 드디어 드레이크 가문에 인물이 났구나!”
“예, 예!?”
황제가 카임의 어깨에 손을 두른 채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아는지는 모르겠으나, 짐은 자네의 부친인 벨리알 드레이크와 긴 악연이 있었다네. 그러나…….”
황제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자네의 부친과의 악연일 뿐이지. 자식인 자네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 아니겠는가.”
“폐, 폐하……!”
“허허허! 마침내 기나긴 악연에 종지부를 끊을 때가 왔군. 벨리알 그놈이 이토록 똘똘한 자식을 뒀을 줄 누가 알았겠나?”
카임이 감격으로 눈물을 글썽이고, 그런 카임을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던 황제가 다른 귀족들이 들으라는 듯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따지고 보면 드레이크 가문은 우리 아모니스 가문의 가까운 친척뻘이지. 또한 먼 과거에는 대공위를 지낸 명예 높은 가문이 아니던가. 그러니만큼 자네도 그 명예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야. 알겠는가?”
과거의 명예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
그 말은 열심히 노력한다면 출세할 수 있다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카임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명심하겠나이다! 폐하!”
“껄껄껄! 그래그래! 내 자네를 지켜보도록 하겠네.”
황제가 호탕하게 웃으며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그럼에도 카임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며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여보…….”
율리아가 카임의 어깨를 감싸 안고, 카임은 떨리는 손으로 아내의 손을 맞잡았다.
그 다정한 모습에 황태자 카이야스는 시큰해 오는 코를 훌쩍거렸다.
‘아몬 선배님, 참으로 잘됐습니다.’
감동하는 한편으로는,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어머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글쎄다…….”
황후조차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당혹스러운 기색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귀족이 모인 자리에서 황제에게 물리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고도 일이 무사히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었다.
“근데…… 확실히 이상하구나.”
“예? 뭐가 말입니까?”
황후가 어느새 울음을 그친 카임을 가리켰다.
“내 예전에 말했듯, 나도 저자의 아비인 벨리알 드레이크를 만나 본 적 있었다. 고작 두어 번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아, 그랬었지요.”
어느새 황제의 외침 때문에 ‘황제가 눈여겨 보는 귀족’이라는 인식이 박힌 탓인지 여러 귀족들이 카임과 친분을 쌓기 위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 상황에 카임은 난데없는 관심에 수줍어하면서도 예의 바르게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데, 저자가 그 인간의 아들이라고……? 내가 아는 벨리알 드레이크였다면 저렇게 이목이 쏠린 시점에서 자기가 왕이라도 된 것처럼 온갖 유세를 부리고 난리를 피웠을 텐데?”
“……대체 얼마나 심했기에요?”
“말도 말거라. 자신의 입장이 위라고 판단하면 그 어떤 인간보다 무서워지던 인간이었다.”
확실히 그리 들으니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고 싶진 않은 인물상이었다.
그 순간 카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근데 잠깐만.’
뭇 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겸손하면서도 기품 있게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는 아몬의 아버지를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게 아몬 선배였다면……?’
그리 가정한 카이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케케케! 그래요, 내가 바로 아몬입니다!’
‘예!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게 바로 저입니다!’
‘낄낄낄! 뭐? 예의를 차려? 너나 차리시지!’
상상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설마…… 아버지, 폐하께서 아몬 선배는 질색하면서도 선배의 아버님에게는 호의적인 이유가 그런 부분 때문인 건가?’
인간성 자체에 대한 혐오!
벨리알 드레이크에게 워낙 데인 게 많다 보니, 그런 인간을 첫 대면부터 파악하고 거르는 게 아닐까?
즉 카임의 경우에는 드레이크 가문의 역대 가주와 달리 ‘돌연변이’로 겸손하고 온화한 성격을 지녔기에 황제도 그걸 알고 ‘성군’으로 대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의심은 들지만, 확실히는 모르겠군. 게다가 아몬 선배님은 그리 심하지 않은데 아버지가 유난을 떠시는 걸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애석하게도 카이는 이미 아몬에 대해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