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36)
아카데미가 망했다 136화
사교장이 좋은 분위기로 무르익어가는 와중, 황제와 카임의 대화를 들은 중년인 중 하나가 와인을 홀짝이며 생각했다.
‘흐음, 드레이크 가문이라.’
생소한 이름의 가문이었다.
그는 재무대신으로서 어지간한 가문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지금껏 들어본 적 없다는 것은 그만큼 멀리 떨어진 변경의 귀족 혹은 영세한 귀족이란 뜻이다.
‘수도와 멀면 멀수록 납부해야 하는 세금의 빈도는 낮아진다. 물론 그만큼 한 번에 몰아서 납부하지만 말이야. 아무튼, 몰아서 납부하는 만큼 만만치 않은 세금을 납부할 텐데…… 그만한 세금을 내는 가문이라면 내가 모를 리 없을 텐데?’
아무리 영지가 변방에 있다고 한들, 그들도 먹고살아야 하느니만큼 나름 생업에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농업, 공학, 상업 등 영지 차원에서 주력으로 삼는 활동이 있을 터.
‘그런데도 내가 모를 만큼 세금의 납부가 적다는 뜻은 둘 중 하나겠지. 영지를 방치하고 있거나, 혹은 횡령하고 있거나.’
물론 세 번째,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쓰레기 같은 땅이라는 가능성도 있었지만, 재무대신은 애써 그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재무대신답게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한 것이다.
‘돌아가는 대로 드레이크 가문에 대해 조사해 봐야겠군.’
한편, 카임을 주시하고 있는 재무대신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카이가 어렴풋한 미소를 머금었다.
‘후후, 역시 이렇게 되는군.’
재무대신이라면 생소한 가문에 당연히 관심을 기울일 거라 생각했다.
말했듯, 가문 하나하나가 황실 입장에서는 징세의 대상이니까.
‘곧 재무대신이 조사관을 보내겠군. 그럼 드레이크 영지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부흥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겠지.’
무려 단기간에 8배의 성장세!
다행스럽게도 그 과정에서 횡령 및 비리가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영지에 복속된 도시인 에덴에 잠입한 황태자 직속 정보원에 의하면, 당장 에덴을 관리하는 아몬의 형인 ‘아임’이 그런 부정부패를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다고 했으니까.
‘애초에 당장 눈앞의 이득이 아닌 먼 미래의 가능성에 집중해 달라고 휘하 관리들에게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고 했지. 그런 사람이니,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몰라도 당장은 걸릴 게 없겠군.’
조사관이 긍정적인 보고를 올리게 되면 일은 일사천리다.
변경의 땅, 높은 성장세, 긍정적으로 보겠다는 황제의 언급.
‘당연히 작위의 승작 대상으로 고려되겠지. 그리고 8배의 성장률, 또한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보면 고작 한 단계 승작으로 끝날 리 없다. 아몬 선배님의 아버지가 남작위라는 걸 감안하면, 한 번에 승작 가능한 최대치인 두 단계 승작으로 백작위까지도 이야기가 나올 거다.’
그렇게 되면 이야기의 끝은 정해져 있다.
‘드레이크 영지가 있는 아르마 산맥은 수도와 지나치게 거리가 멀다. 그만큼 관리와 감독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지. 그리고 백작의 작위, 험준한 땅에 거주하고 있다는 특수성, 그리고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감안하면…….’
여느 영지의 영주와 달리 영지에서 사법, 행정, 군사 등의 최고 권력자를 황실로부터 위임받은 귀족.
막강한 권력을 넘겨받은 만큼 변경백으로서 외적들의 침입을 막아야 한다는 의무가 주어지긴 하지만, 이미 아르마 산맥은 명백한 제국의 영토였기에 몬스터가 그곳을 점거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명분은 차고 넘친다.
그러니만큼.
‘변경백(邊境伯).’
황태자, 카이의 식견에 의하면 곧 드레이크 가문이 받게 될 칭호였다.
‘물론 막강한 권한을 넘겨주는 것이기에 황실에서도 예의주시하겠지만, 황실 역시 바라던 바겠지. 이미 폐하께서 지켜보겠노라 공언하셨으니.’
후련하다는 듯 웃은 카이가 아카데미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몬 선배님, 이걸로 제가 드릴 수 있는 도움은 모두 드린 것 같습니다. 부디 조금이나마 마음의 상처가 가셨으면 좋겠군요.’
그 시각, 아몬은 눈에 쌍심지를 켠 채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카이가 이번 사교 대회를 관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모든 업무를 자신에게 맡기고 수도로 떠난 것이다.
“카이 이 새끼, 나한테 업무를 짬 때리고 튀어? 황실 보좌 가문이라 이거지? 돌아오면 두고 보자.”
이렇게 또 아몬의 카이에 대한 내적 친밀감이 하락했다.
* * *
‘음? 이게 뭐야?’
한 통의 서신을 펼쳐 본 중년의 여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모니스 아카데미에서 대제전을 개최한다고? 거기 망했다고 들었는데?’
분명 이런저런 일이 겹치고 겹쳐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대제전의 개최라니.
“아하, 몰락한 아카데미의 인지도를 어떻게든 올려 보려고 무리해서 대제전을 개최하려는 모양이군.”
그러나 이미 박살 난 인지도를 이깟 대제전으로 만회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제대로 된 대제전이라면 몰라도, 이런 경우처럼 있는 빚 없는 빚 죄다 끌어모아서 무리하게 감행하는 대제전이라면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몰락을 다른 이들에게 한층 더 확실하게 각인시킬 뿐이리라.
“어떡하시겠습니까, 학교장님?”
보좌관의 물음에 피닉스 아카데미의 학교장, 안나 옴니다스는 서신을 구석에 대충 던져 버리며 말했다.
“다 망해 가는 아카데미의 발버둥에 어울려 줄 필요는 없습니다. 적당하게 거절해요.”
“예, 학교장님.”
이런 식으로, 제국 내부의 여러 아카데미는 물론이고 제국과 우호적인 관계의 타국 아카데미에도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이름으로 초청장을 보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반응이 피닉스 아카데미와 다르지 않았다.
“거기 다 망했잖아? 거길 왜 가?”
“응? 여기 아직 운영해?”
“야, 우리도 마침 경진대회 여는데 오히려 초대장이나 보내 둬.”
아나르엘이 알았다면 피눈물을 흘리며 슬퍼했을 정도로 냉담한 반응들!
그러나 놀랍게도, 냉담한 반응을 보인 아카데미는 대부분 중소 규모의 아카데미들뿐이었다.
제국 내부와 외국의 아카데미 중에서 규모가 크고 명망 높은 곳들은 그들과는 전혀 다른 입장이었다.
“호오, 아모니스 아카데미라. 창천검왕 어르신이 정문 경비로 있는 아카데미라지? 들려오는 소식은 썩 좋지 않지만, 숨겨 둔 한 수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적당히 참가 인원을 추려서 보고하도록.”
제국 내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평가의 명문 아카데미, 존홉스킨 아카데미가 이번 대제전에 참가하기로 확정!
“엘프 공주가 운영하는 아카데미라…… 그녀가 과거, 황제 폐하와 오랜 동료 사이였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 이번 대제전에 황실이 개입했을지도 모른다. 답장으로 초청에 감사를 표하도록.”
황실의 직접적인 후원과 투자를 받는 명문 아카데미, 로열 아카데미 역시 참전 결정!
그리고.
“크, 크크크…….”
대륙 최강, 최고를 자랑하는 베스트릭 아카데미의 학교장 벤자민이 음산하기 그지없는 웃음을 흘리며 외쳤다.
“이번에야말로 아모니스 아카데미를 박살 내고 말겠다! 참가 의사를 보내라!”
“예! 벤자민 학교장님!”
“크하하! 기대하시오, 아나르엘 학교장! 그리고…….”
웃음을 뚝 멈춘 벤자민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아몬 드레이크, 이번 기회에 네놈을 철저하게 짓밟아 주마.”
* * *
신성왕국 그레고리안.
그곳의 최고 사제와 국왕은 진지한 얼굴로 마주 앉아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사이에는 한 통의 서신이 들려 있었다.
“아모니스 아카데미에서 개최하는 대제전의 초청장이라…….”
얼마 전,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속해 있는 한 명의 교사가 신성왕국에게 큰 무례를 저질렀다.
물론 신도들의 혼란을 우려해 외부에는 공표하지는 않았고, 최고 사제, 국왕 등 몇몇 수뇌부만이 알고 있는 정보였다.
“전하, 어찌하시겠습니까?”
최고사제의 물음에 국왕이 쿡쿡 웃으며 말했다.
“그 무례를 저질러 놓고 이렇게 초청장을 보내다니…… 뻔뻔하군.”
“…….”
“이렇게 명백하게 도발하는데, 받아 주지 않을 수는 없지.”
아니다.
그냥 유명한 나라, 귀족, 아카데미에 일괄적으로 초청장을 싹 다 뿌린 것뿐이다.
하지만 신성왕국 입장에서는 도발도 이런 도발이 없었다.
지상에 현신한 여신을 두들겨 패고, 마왕을 옹호하는 신성모독적인 대죄를 저질렀는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신들의 행사에 초대한다?
“확실하게 격의 차이를 알려 주는 게 좋겠군. 힘의 차이에 대한 경고가 되도록, 성기사 중 실력 좋은 이들을 추려서 참가시키시오.”
“예, 전하.”
* * *
이번 대제전의 예감이 좋았기 때문인지, 아몬과 아나르엘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몬 선생님!”
“네! 학교장님!”
아나르엘이 무더기로 쌓인 편지를 마구 헤집으며 실실 웃었다.
“이번 대제전에 참가하기로 한 귀족들이랑 아카데미, 왕국이 이렇게나 많아요!”
“그렇군요!”
“게다가 참가하기로 한 곳들이 대부분 내로라하는 곳들이에요!”
아몬이 이번 대제전의 후원 도시이자 가문 산하의 도시인 ‘에덴’에 대한 현수막과 전단지를 정리하며 흡족하게 웃었다.
그런 대단한 양반들에게 에덴 도시를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참으로 잘된 일이지 않습니까!”
“그러게요! 역시 아몬 선생님에게 맡기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니까요!”
“하하! 그렇, 잠깐만요.”
“네?”
아몬이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좋아라 하면서 기대했을 때, 일이 잘 풀린 적이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한 번이라도 있겠지.
아니, 그래도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인데 일이 잘 풀린 적이 한 번이라도 없었을까?
그렇게 깊게 생각에 잠겨 있던 와중, 아몬이 탄성을 질렀다.
“아! 학교장님!”
“네? 왜, 왜 그러세요?”
“우리 아무래도 X된 것 같습니다.”
“네!? 그, 그게 무슨…….”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설레발쳤을 때 일이 잘 풀린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아나르엘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곧 떠오른 해답은 하나였다.
“……없네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좋다고 난리 칠 때가 아닙니다.”
아몬이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러니 우리는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진중하게.”
“음. 진중하게.”
“예, 혹시 무슨 일이 터지더라도 ‘아, 올 게 왔구나.’ 하고 넘기는 거죠.”
“아. 드디어 올 게 왔구나.”
“맞아요. 그 말은 이럴 때 쓰는 겁니다.”
깊은 깨달음을 얻덨다는 듯 아나르엘이 귀를 곧추세웠다.
배움이 빠른 학교장을 보며 푸근하게 웃은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이번에는 무슨 흉악한 일이 터지더라도?”
“아, 올 게 왔구나.”
“그렇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럼 그렇지, 우리가 그럼 그렇지. 그런 마음으로 이번 행사에 임하는 것이죠.”
사람은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야 일이 실패하더라도 가슴이 덜 아프기 때문이다!
“잘 들으세요! 애초에 믿기 때문에 배신당하는 것이다!”
“아아! 그럼 안 믿으면 되겠군요!”
“바로 그겁니다!”
아몬이 아나르엘에게 정신 개조를 가하는 와중.
문을 박차고 들어온 브레슬이 외쳤다.
“학교장님! 좋은 소식입니다! 오, 아몬 선생도 있었군요!”
호들갑을 떠는 브레슬을 본 아몬과 아나르엘은 직감했다.
‘올 게 왔구나.’
‘우리가 그럼 그렇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