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37)
아카데미가 망했다 137화
브레슬의 호들갑에 불안감과 분노가 먼저 솟구쳤지만, 아몬과 아나르엘은 앞선 정신개조 덕분에 가까스로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올 게 왔구나.’
‘우리가 그럼 그렇지.’
다가올 절망을 겸허한 마음으로 수용한 아몬이 푸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브레슬 부학교장님. 무슨 좋은 소식이기에 이렇게 급하십니까?”
“호호호, 맞아요. 우선 진정하시고 천천히 이야기해 보세요.”
두 사람의 부드러운 반응에 브레슬은 흠칫했다.
평소였더라면 일단 덮어 놓고 한숨부터 쉬고, 머리를 쥐어뜯었을 텐데. 이렇게 이질적인 반응이라니.
심상치 않은 현상에 브레슬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후후, 드디어 두 분이 내 깊은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시나 보군요.”
순간 아몬과 아나르엘에게서 ‘뿌득’하고 어금니 갈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죽일까? 아냐, 참자. 그래도 이야기는 들어 보고 죽이자.’
아몬이 눈가를 바들바들 떨면서 힘겹게 억지 미소를 머금었다.
“하하, 브레슬 부학교장님. 무슨 좋은 일인지 저희도 좀 알려 주십시오.”
“호호호, 맞아요. 너무 궁금한걸요.”
아몬과 아나르엘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말 한마디로 금화 천 개 빚을 갚는다고 했던가!
두 사람의 미소보다 말 한마디를 더 중요히 여기는 브레슬은 궁금하다는 둘의 반응에 기고만장한 태도를 고수했다.
“흐흥! 어쩔 수 없군요. 그렇게 간청하신다면 가르쳐드리는 수밖에.”
“…….”
“자, 그럼 들어오십시오!”
브레슬이 문밖을 향해 자랑스럽게 외치자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들어오는 누군가의 얼굴을 확인한 아몬이 호랑이처럼 몸을 날려 브레슬의 복부를 걷어찼다.
“마왕이 왜 여기 있어! 이 미친 다크엘프야!”
“푸크허에악!”
걷어차인 브레슬이 바닥을 구르고, 고개를 홱 돌린 아몬이 눈을 부라리며 마왕을 노려봤다.
아무리 봐도 마왕이 맞았다.
검은 눈.
머리에 달린 뿔.
심상치 않은 외견의 마왕은 뜻밖의 폭행에 바닥을 구르는 브레슬을 보고 바짝 얼어붙어 있었다.
그 사실을 재차 확인한 아몬이 쓰러진 채 경련한 브레슬의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며 절규했다.
“마왕 맞잖아! 마왕이 왜 여기 있냐고!”
“켁! 케헥!”
“갑자기 사라져서 더 이상 엮일 일 없을 줄 알았던 마왕이! 왜 우리 아카데미에 있냐고!”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아몬의 어투는 마치 떼를 쓰는 것만 같았다.
민트 어쩌고는 차치하고, 세간에서 세상의 악으로 평가받는 마왕!
그런 마왕이 부학교장과 밀접한 관계라는 걸 세상이 알면, 그렇지 않아도 마귀 소굴인 이곳 아카데미는 세상 사람에게 진짜배기 악의 소굴로 알려질 게 분명했다.
“대체, 왜, 마왕이 여기서 나오냐고…….”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반쯤 흐느끼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아몬에게 브레슬이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 우리 아카데미 지하실에 숨겨 주고 있었…….”
아몬이 경악으로 입을 쩍 벌렸다.
무슨 어린애가 강아지나 고양이를 주워 와서 숨기는 것도 아니고, 여태 마왕을 지하실에 숨기고 있었다고?
“밥도 내가 주고, 청소도 내가 하고, 산, 끄으윽…….”
브레슬은 정말로 마왕을 개나 고양이 정도로 인식하는 모양이었다.
마지막에 ‘산책’이라고 말하려다 가까스로 말을 삼킨 것이 그 증거였다.
“억…….”
뒷목이 아려 오는 감각에 아몬은 자신이 곧 정신을 잃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멀어지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은 아몬이 이를 악문 채 말했다.
“그, 그래. 그럴, 수도 있지요.”
올 게 왔구나!
우리가 그럼 그렇지!
앞선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안정시킨 아몬이 아나르엘을 돌아봤다.
“아, 안 그렇습니까? 학교장님?”
“…….”
아나르엘은 이미 마왕이 등장한 시점부터 거품을 물고 기절해 있었다!
이 막막한 현실에 아몬은 눈물을 글썽이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뻔뻔한 얼굴로 자신을 멀뚱멀뚱 바라보는 브레슬을 당장 목 졸라 죽이고 싶었지만, 일단 유언 정도는 들어 줄 아량은 있었다.
“하, 하하. 부학교장님.”
“크윽…… 손 좀 놓고…….”
“예. 그럼 일단 들어나 봅시다. 마왕을 우리 아카데미 지하에 숨겨 주고 있던 이유가 뭡니까?”
그 물음에 브레슬이 무어라 답하려 했지만, 마왕 조아민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설명하겠다. 이 다크엘프에게 그간 입은 은혜가 있는데, 내 처지에 대해서는 내 입으로 말하는 게 도리에 맞겠지.
작게 숨을 몰아쉰 조아민트가 말했다.
-갈 곳이 없다.
“……응?”
-당잘 머물 곳이 없다고.
팔짱을 낀 채 조아민트의 말을 곱씹던 아몬이 조용히 고개를 기울였다.
잘못 들었나?
아니, 똑바로 두 번이나 말했으니 제대로 들은 게 맞을 것이다.
“그…… 마계로 가면 되는 거 아닌…… 아니, 생각해 보니 어렵겠군.”
신계에서 지상계로 내려오는 방법조차 극도로 한정되어 있다고 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지상계에서 마계로 가는 방법 역시 고작해야 몇 가지뿐일 것이다.
게다가 조아민트의 목적을 생각하면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턱대고 마계로 가진 않을 것이다.
“그럼 마족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지내면 안 되나? 지상계엔 마족이 없어?”
-전대 용사가 씨를 말려 놨더군, 독한 녀석.
“…….”
-물론 조만간 내 재림을 깨달은 마족들이 마계에서 올라오겠지만, 하루 이틀 걸리지는 않겠지. 못해도 수백 년 단위의 시간은 걸릴 것이다.
즉 수백 년이 지나면 마왕을 중심으로 한 마족 세력이 다시 스멀스멀 대륙에 나타날 거란 뜻인가.
‘근데 수백 년 뒤면 나도 없겠군.’
아몬은 관심을 끄기로 했다.
“뭐, 아무튼 사정은 알겠다. 하지만…….”
아몬이 마왕을 가리켰다.
“마왕이잖아. 무슨 개, 고양이도 아니고 지하실에 숨겨 두는 행동은 아카데미의 교사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세간의 평가도 평가지만, 무엇보다 학생들의 교육에 나빠.”
아몬의 지적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목적이고 뭐고 다 제쳐 두고, 조아민트는 ‘마왕’이다.
조아민트가 이곳에 숨어 지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단호하게 쳐 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조아민트가 쿡쿡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곳에 머물며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고 해도 말인가?
조아민트가 눈을 번쩍 빛내며 말했다.
-나는 마왕 조아민트. 네 마음속에 있는 검은 욕망은 얼마든 읽을 수 있다. 네 본성은 정의, 빛과는 거리가 멀지.
“아닌데. 나 완전 정의로운데. 빛 그 자첸데.”
-속이려 들지 말라.
피식 웃은 조아민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욕망을 우선시한다고 한들, 지나치게 기울어지는 것은 꺼리지. 정의, 빛과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만 어둠, 악과도 거리가 멀지. 그래, 그 둘 사이의 어딘가…… 그 중간 어림이려나.
미소를 지운 조아민트가 말했다.
-그러니만큼 제안한 것이다. 정당한 대가만 주어진다면, 내가 이곳의 어두컴컴한 지저에 머무는 것쯤은 용납해 줄 수 있을 테지. 내가 악행 따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야.
“……흠.”
아몬은 생각에 잠겼다.
말 그대로, 그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한다면?
남들 모르게 쥐 죽은 듯 숨어 지낸다면?
‘학생들도 마왕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걸 모른다면……?’
물론 쉽지 않을 사실쯤은 알고 있었지만, 마음속의 저울이 슬그머니 기울어지는 것을 느낀 아몬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흠. 올바른 교육자인 나로선 시꺼먼 사상을 가진 마왕이 이런 교육기관에 머문다는 걸 도무지 용납할 순 없군.”
-…….
“하지만 그래도 뭐, 요새 날씨도 부쩍 추워졌고, 겨울이고, 갈 곳도 없는 형편인데 무턱대고 쫓아낼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니…….”
-혀가 길구나.
“시끄러워. 아무튼 대가가 뭔데?”
그리 말하면서도 아몬은 그리 기대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민?트 초코 같은 거나 내놓겠지 뭐. 하지만 그건 이미 쓸모가 없다 이 말이야.’
초콜릿이야 슬로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면 얼마든 얻어먹을 수 있고, 민?트초코라는 것도 길가에 널린 민?트라는 풀을 잘 씻어서 초콜릿과 함께 먹으면 그만이다.
‘마왕이 만든 것처럼 완벽한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풀에 초코를 싸 먹으면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맛이 난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나는 민?트초코라는 걸 제시해도 흔들리지 않아.’
그렇기에 아몬은 어찌하면 조아민트를 잘 쫓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이 추운 겨울에 쫓아내긴 좀 그렇다, 어떻다 말은 했지만 조아민트가 길거리에서 행복한 꿈을 꾸며 얼어 죽는 건 아몬으로선 알 바가 아니었다.
이윽고 조아민트가 말을 이었다.
-조만간 이곳 아카데미에서 ‘대제전’이라는 것을 개최한다고 들었다.
“……응? 어어, 그렇긴 하지.”
-그리고 얼마 전, 이곳에서 ‘문화제’라는 것을 열었다고도 들었지. 그리고 그곳에서 먹거리 부스라는 것도 운영했다고 하더군.
조아민트의 말에 아몬의 안색이 굳었다.
“잠깐…… 설마?”
-그렇다. 이 다크엘프에게 듣기론, 그때 먹거리 부스는 다른 무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고 하더군.
“……!”
그 말대로였다.
수익 순위를 비교하면, 꼴찌는 단연 아몬의 금 먹기 부스!
바로 위는 재료비와 아주 약간의 수고비만 받고 인형을 만들어 주는 레이몬드의 수제인형 부스!
그 바로 위로는 고객층이 약간 갈리던 클로에의 동물체험 코너고, 바로 위로는 대중성을 꽉 잡은 보리스의 마법 시연 무대였다.
그리고 명실상부한 1위, 부동의 수익 1위는 브레슬이 중심이 되어 운영했던 ‘먹거리 부스’였다.
그렇기에 아몬은 상상해 봤다.
‘이번 대제전엔 명망 높은 귀족들이 대거 참가한다. 그런 상황에서 먹거리 부스를 운영한다면……?’
그야말로 수익 대폭발!
아카데미의 재정은 가파른 각도로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이며, 아카데미의 낡고 오래된 금고를 번쩍번쩍한 새것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금고를 몇 개 더 추가로 사야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런 화려한 무대에서 먹거리 부스를 성공시켰다면, 아예 이곳 아무르의 명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을 터!
문화제에서 돈을 벌려면 밥장사를 해야 한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던 아몬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수익이 크게 나오면 보너스로 꽤 짭짤하게 떨어질지도……?’
턱을 매만지며 고심에 잠겨 있던 아몬이 브레슬과 조아민트를 힐끔 바라봤다.
둘은 ‘반쯤 넘어왔군.’ 이라거나 ‘돈 앞에선 한없이 약해지는 놈이죠.’라며 아몬의 눈치를 보면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음…… 반박할 수 없군.’
헛기침을 한 아몬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말했다.
“험험, 그런데 말입니다.”
-아직 할 말이 남았나.
“들어 보세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우선 이번 대제전의 고객층은 지난번과 다릅니다. 지난번 문화제는 평민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번에는 귀족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브레슬이 침음을 흘렸다.
“흠, 확실히 그렇겠군요. 입맛이 다를 것을 고려해야 하려나.”
“맞습니다. 싸고 양 많다, 이것만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힘들 겁니다. 귀족의 입맛에 맞는 고급스러움이 필요할 거라고요.”
“……날카로운 지적이군요.”
그 순간이었다.
-고급스러운 맛을 추구하면 되는 것인가?
“응?”
-간단하군.
자신만만한 조아민트의 말에 아몬과 브레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곧이어 조아민트의 손 위로 흑색의 빛이 일렁이고, 둥그런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본 아몬과 브레슬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에이, 이걸로는 안 될…….”
-아직 끝이 아니다.
“엥?”
조아민트가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다시금 허공에 나타난 무언가를 조심스럽고 경건한 손길로 음식 위에 올려놓았다.
-자아, 이걸로 완성이다.
“허, 허억! 이건……!”
“세상에! 어찌 이런 음식이……!”
한편, 조아민트의 등장에 기절했던 아나르엘이 힘겹게 눈을 떴다.
“으윽, 머리야…… 나, 나 또 기절했었나…….”
곧이어 눈을 뜬 아나르엘이 흠칫 굳었다.
“갸아악! 너무 맛있어!”
“구와아악! 이런 맛이 있었다니!”
웬 음식을 걸신들린 것처럼 뜯어먹고 있는 아몬과 브레슬!
그런 두 사람을 팔짱을 낀 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며 코밑을 쓱 훔치는 조아민트!
-후후, 많이들 먹도록 해라.
마왕의 윤허에 두 마리 아귀들이 탄성을 지르고, 조아민트가 흐뭇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아직 ‘피자’와 ‘파인애플’은 많이 남았으니 말이다.
“갸아악!”
“구와아악!”
아나르엘은 도로 기절하고 말았다.
그들의 광란의 연회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