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38)
아카데미가 망했다 138화
대제전의 개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아몬은 흡족한 미소를 드리운 채 대제전이 진행될 무대를 둘러보고 있었다.
예전에 불한당들의 폭파 사건으로 무너진 건물을 복구할 때도 알아봤다만, 자칭 건축계의 신동이라는 라스티아넬의 주장은 허튼 소리가 아니었다.
‘완벽하군. 라스티아넬 녀석, 이렇게 훌륭한 무대를 고작 몇 시간 만에 완성하다니…….’
그냥 손 몇 번 휘적휘적하면 자재가 만들어지고, 손가락 몇 번 까딱거리면 훌륭하게 손질된 자재들이 차곡차곡 쌓여 무대가 만들어지니, 건축에 뜻을 둔 자들이 봤다면 단숨에 자신의 진로를 바꿀 것이다.
그야말로 건축 판의 생태계 파괴자가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아카데미의 간판을 걸고 라스티아넬을 건축계에 종사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학생이 희망하는 진로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직업 실습 정도로 하면…….’
그야말로 떼돈을 벌 수 있을 터!
라스티아넬도 공사 대금으로 막대한 금화를 쓸어 담아 먹어치울 수 있을 테니 좋은 일이고, 아몬도 알선비로 ‘소정의 수고료’를 챙길 수 있을 테니 그야말로 오크 좋고 오거 좋은 일 아니겠는가!
처음에야 농담으로 생각했던 거지만, 의외로 정말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몬이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잠기려는 찰나였다.
“뒤통수를 보아하니 또 허튼 생각을 하는 모양이로군.”
“아! 선배님.”
동료 교사들이 다가오자 아몬은 머릿속에 떠오르던 괘씸한 생각을 서둘러 지웠다.
“허튼 생각이라뇨. 곧 있을 대제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껄껄껄! 갈수록 개소리가 느는군.”
마리온의 면박에 슬로스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누가 봐도 괘씸한 생각을 하는 뒤통수였어.”
“허 참, 슬로스 선배님까지…….”
“하하, 아몬 선배님. 저도 그렇게 생각…….”
“카이야! 아카데미의 법도가 거꾸로 돌아가는구나! 후배가 감히 선배를 놀리려 들어?”
“…….”
위계질서를 적극 내세워 카이의 잔망스러운 말문을 닫아버린 아몬이 피오라를 바라봤다.
다행히 망나니는 입을 꾹 닫고 있었으니 흡족할 따름이었다.
“뭘 봐.”
“망나니가 그럼 그렇지.”
자신의 투덜거림에 한층 더 볼멘소리로 투덜거리는 피오라의 저주를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 아몬이 말했다.
“근데 다들 어쩐 일로 이렇게 우르르 오셨습니까?”
설마 라스티아넬을 이용한 자신의 웅대한 계획을 눈치채고 어떻게 한 숟가락 든든히 얻어먹어 보려고?
“왜 왔기는? 우리 학생들도 대제전에 참가하잖나. 그러니 각자가 어떤 종목에 참가할지는 서둘러 정해 둬야지.”
“음…… 그렇겠군요.”
다행히 마리온을 위시한 동료 교사들이 그 정도로 양심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종목 선정이라.’
대제전을 준비하는 지금까지 다른 교사들이 몇 번이고 입에 올렸던 주제였다.
결국 큰 무대이니만큼 참가할 종목을 미리 정해 두고 철저하게 연습하는 게 최선이었다.
지금까지는 번드르르한 입 발린 소리로 ‘대제전은 이미 배운 것을 겨루는 숭고한 무대입니다. 그러니 어느 한 종목에 집중해서 대비하는 건 본말전도로, 그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일 아니겠습니까?’라고 둘러댔었다.
그 정설 중의 정설에 카이는 ‘역시 아몬 선배님!’이라며 감격에 겨워 눈물을 훔쳤지만, 다른 교사들은 ‘저 새끼 저거 그냥 둘러대는 거구나.’라는 싸늘한 눈빛만 보낼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둘러댈 수 없겠군.’
우르르 몰려온 동료 교사들의 눈동자에 살기가 그득한 걸 보니, 이번에도 둘러댔다간 자신의 팔다리가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질 것만 같았다.
‘근데 어떡하지? 딱히 생각해 둔 게 없는데. 여태 이번 대제전에서 우리 영지를 어떻게 확실하게 알릴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다고.’
아몬은 고심 끝에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대제전은 이미 배운 것을 겨루는 슬로스 선배님, 검 도로 집어넣으세요. 잘못했습니다.”
“그래.”
가까스로 슬로스의 살심을 억누른 아몬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뭐, 솔직히 대제전으로 영지를 홍보할 방법을 모색하느라 학생들의 출전 종목에 신경 쓸 수 없었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음…… 그런데 여러분.”
“말해 보게.”
“마리온 선배님, 마법은 좀 집어넣고…… 흠흠, 사실 제가 생각을 좀 해 봤는데요.”
뺨을 긁적거린 아몬이 말했다.
“굳이 그걸 우리가 정해야 할까요?”
“응? 하지만 지난번 교류전 때는 우리가 학생들이 출전할 종목을 정했잖나.”
“그땐 그때고요.”
아몬이 말을 이었다.
“그때야 갑작스럽게 정해진 교류전이었고, 아이들도 지금보다 미숙했었죠. 게다가 그때는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어떻게든 이길 수 있도록 아이들을 상황에 맞게 출전시켰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
“대제전에 참가할 거라는 이야기는 아이들 모두가 알고 있고, 각자가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왔어요. 그러니만큼 이번 대제전은 학생들에게 오롯이 맡기고 싶어요. 이기든 지든, 과정과 결과 모두 아이들의 앞길에 도움이 될 겁니다.”
말했듯 영지의 홍보 때문에 학생들의 출전 종목을 생각하는 게 소홀해졌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것도 진심이었다.
즉 학생들의 판단을 믿었기에 구태여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이번 대제전의 투자처인 영지와의 ‘어른의 사정‘에 오롯이 신경을 기울일 수 있게 됐던 것이다.
“그러니만큼 중도 탈락하면 자신의 모자람을 알 테고, 좋은 성적을 거두면 자신감을 얻겠죠. 물론 자신감이 과해지지 않도록 잘 바로잡아 줘야겠지만요.”
“……훗, 하긴.”
슬로스는 검사로서 스스로를 숱하게 깎아 왔기에 학생들이 자기 자신에게 기울여 온 노력의 값어치를 안다.
스스로에게 그런 값을 투자했다면, 스스로 선택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여태 애들도 많이 배웠어. 이런 것도 경험해 봐야지.”
“역시 슬로스 슨배임. 말이 통하시는군요.”
카이도 헛기침을 했다.
“아몬 선배님의 말이 옳습니다. 스스로의 선택하는 것은 중요한 법이죠.”
어찌 보면 제왕학의 기초적인 뿌리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 판단하고 그것에 전력을 다하는 것.
“카이야, 내 후배답게 구구절절 옳은 소리만 하는구나.”
“하하. 별말씀을요.”
피오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몬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설적인 말이었다.
‘참…… 학생만 엮이면 사람이 바뀌는 것 같다는 말이지.’
그 사실에 피식 웃는 와중, 피오라가 문득 옆을 바라봤다.
마리온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던 것이다.
“응? 마리온 선배님, 왜 그러시는…….”
“……돼.”
“예?”
“절대…… 안 돼.”
“뭐라고요?”
마리온이 빽 고함을 질렀다.
“라스티아넬은 절대 마법 종목에 참가하면 안 돼!”
“헉! 왜, 왜요?”
“그럼 우리 보리스가 우승 못하잖아!”
“…….”
학생들에게 판단을 맡기겠다는 멋진 취지의 말을 듣고도 저따위 말을 하는 보리스 애호가의 행태에 모두들 할 말을 잊고 말았다.
* * *
참가 종목을 너희끼리 정하라는 교사들의 뜻을 전달 받은 학생들은 태연했다.
애초에 자신의 선택에 두려워하고 후회할 아이들이 아니었다.
“나는 검술 종목에 참가할래.”
지금껏 필사적으로 검을 수련해 온 클로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참가 종목을 정해 버렸다.
그리고 창천검왕, 라인벨트의 손자이자 이미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레이몬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 나랑 붙겠네? 괜찮겠어, 클로에?”
“후후…… 돼지가.”
“…….”
이미 검사의 길을 걷겠노라 다짐한 클로에와 레이몬드가 불똥이 튀는 것 같은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아미가 말했다.
“음, 나는 과학으로 할래.”
“……엥?”
아미의 뜻밖의 선언에 불똥 튀는 시선을 교환하던 클로에와 레이몬드가 펄쩍 뛰었다.
이미 아미가 심상치 않은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애초에 아몬 선생님의 동생이니까!’
그렇기에 아미가 검술 대회의 가장 큰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리라 생각하고 있었건만, 갑자기 웬 과학 종목에 참가한다는 말인가!
갑자기 시선이 모이자 아미가 못한 말이라도 했냐는 듯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왜 그래?”
“아뇨, 뜻밖이라서요.”
“……그렇게 의외야?”
“조금…… 아뇨, 솔직히 많이요.”
“음, 왜냐면…….”
말하려던 아미가 피식 웃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난번에 오빠가 말하는 걸 듣고 한번 열심히 해 보려고 하는 거지.’
아몬은 아미에게 ‘나도 공부 못한다, 그냥 될 때까지 한 거다.’라며 자신의 노력을 말했던 적 있었다.
그 말에 감화받았기에 아미 역시 나름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근데 잘 안 됐지.’
검술? 그녀는 예전에 ‘검이 가볍다, 헛돈다.’고 느꼈던 이유를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영지에서 몬스터를 상대로 두 자루의 단검을 다뤄 왔던 그녀다.
‘단검은 그냥 손과 딱 붙어 있는 느낌이지. 헛돈다, 가볍다는 느낌을 받기에는 너무 짧아.’
하지만 검은 상당히 길다.
검은 손의 연장선상이다, 라는 말도 있지만 아미에게는 썩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검의 그 무게감에 다소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지금껏 개인적으로 연구한 단검술에 상당한 애착이 있는 그녀였기에 이제 와서 검술에 깊게 파고들기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그리고 마법은…….’
그냥 까놓고 재능이 없는 모양이었다.
백날 써 봐도 마법이 발동이 안 되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오빠도 이론은 빠삭한데 정작 마법은 못 쓴단 말이지. 아버지는 잘 쓰시는데.’
그런 이유로 마법도 기각.
‘오빠 과목인 역사학은…….’
이건 아미의 직감인데, 만약 역사학 종목에 참가하리라 선언하면 아몬의 온갖 구박과 등쌀에 시달릴 것 같았다.
‘너 내 동생 맞니!’
‘대체 왜 이것도 모르니!’
‘내가 지금껏 너를 헛 가르쳤구나!’
‘아아악! 어디 가서 내 동생이란 말 하지 마라!’
어렵사리 상상할 수 있는 모진 핍박과 멸시에 아미는 간단히 역사학 종목을 포기했다.
‘그리고 카이 선생님의 과목인 수학은…….’
그냥 싫다!
그렇기에 남은 과목은 자연히 피오라의 과목인 과학뿐인데, 아미는 개인적으로 피오라의 수업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결국 피오라의 담당 과목인 과학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가게 된 것이다.
절대로 대 명문가인 펜도리안 가문인 피오라의 마음에 쏙 들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일찌감치 줄을 타 둬야…… 아니지. 절대 아부 떨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그냥 과학에 관심이 생긴 것뿐이야.’
아미가 피식 웃었다.
‘뭐, 오빠 말마따나 나도 오빠 동생이 맞긴 한 건가 보네. 결국 진로가 학자 쪽인 걸 보면.’
생각에 잠겨 있던 아미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다 말고 혼자 피식피식 웃는 아미의 모습은 다른 학생들이 ‘혹시 미쳤나?’라며 걱정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히히, 그냥. 이유가 뭐가 있겠어.”
“아…… 네. 그냥이군요.”
솔직히 ‘오빠가 말하는 걸 듣고 열심히 해 보기로 했다.’고 말할 순 없으니 그냥 대충 둘러댔다.
그리고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던 라스티아넬이 말했다.
“그럼 전 마법 종목에 참가할게요.”
“……뭐!?”
“건축 종목이 있었으면 참가했을 텐데 그런 건 없나 보네요. 그러니 그나마 자신 있는 마법 종목에 참가하려고요.”
“…….”
스스로를 드래곤이라고 주장하는 괴상한 친구였지만, 적어도 라스티아넬의 마법 실력이 진짜배기라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여태 손만 휘저으면 뚝딱뚝딱 건물이 세워지는 것을 보아 왔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실력이 보리스와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 역시 눈치채고 있었다.
‘어떡해, 보리스.’
보나마나 보리스도 마법 종목에 참가하려 할 텐데, 라스티아넬이 마법 종목에 참가하면 보리스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노력한다고 해도 우승은 물 건너가게 된다.
때문에 클로에와 레이몬드가 초조한 얼굴로 보리스를 바라봤다.
심약한 보리스가 라스티아넬의 선언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어떡할래, 용사님.’
‘용사님, 뭐라고 말 좀 해 봐.’
우리의 용사, 보리스는 고개를 떨어트린 채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없이 라스티아넬을 바라봤다.
그리고 시선이 마주치자 라스티아넬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보리스 씨.”
“…….”
“어떡할래요? 아, 혹시 걱정되시면 그냥 제가 다른 종목으로…….”
“아니.”
보리스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그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마저 어려 있었다.
“우리 서로 최선을 다하자, 라스티아넬.”
“……후후. 물론이에요, 보리스 씨.”
다행이라는 듯 포근한 미소를 지은 라스티아넬이 보리스의 손을 마주잡았다.
“근데 조금만 살살해 줄 수는 없을까……?”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