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39)
아카데미가 망했다 139화
건장한 체격, 순박한 인상의 청년이 초조한 얼굴로 도시를 둘러보고 있었다.
“으음…… 여기가 말로만 듣던 아무르구나.”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커다란 도시였기에 청년의 고질병인 울렁증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막고 있던 청년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나저나 아모니스 아카데미가 어디지?’
애초에 상업도시 아무르는 아모니스 아카데미를 유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계획도시에 가까웠다.
그러니만큼 도시의 중앙에 위치해 있을 터.
허겁지겁 걸음을 옮긴 청년은 곧 아모니스 아카데미를 마주할 수 있었다.
“아! 저곳이 아모니스 아카데미!”
통일 황제, 아모니스 대제가 설립한 종합 교육기관!
‘시골 귀족 가문의 장남인 내게 이런 기회가 찾아오다니…….’
감격에 찬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청년의 모습에 정문에서 빗자루를 휘적거리고 있던 노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노인은 다름 아닌 라인벨트였다.
‘뭐야, 저놈 저거.’
자주 보는 얼굴과 닮은 청년이었다.
게다가 주접을 떠는 꼴도 어디서 자주 본 것 같았다.
때문에 생각에 잠겨 있던 라인벨트가 탄성을 지르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조만간 오기로 한 손님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실례하겠소. 혹시 드레이크 가문의 장자 되시는가?”
“예? 아, 그렇습니다, 어르신.”
청년은 다름 아닌 드레이크 가문의 장남이자 아몬의 형인 ‘아임’이었다.
그는 현재 도시 에덴의 시장직을 맡고 있었고, 투자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아카데미까지 직접 찾아온 것이다.
“허허,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소. 그럼 학교장님께 안내해 드리지.”
“감사합니다, 어르신. 저는 이곳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아몬의 형인 아임 드레이크라고 합니다. 소개가 늦어 죄송했습니다.”
“어? 아, 허허허! 반갑네. 나는 라인벨트 나마크라고 함세.”
“아아! 명성 높은 창천검왕 어르신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학교장실로 안내받으면서 심심치 않게 말을 건네는 아임의 행동에 앞장서고 있는 라인벨트는 의미심장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허허, 이놈 이거 싹수가 꽤 보이는 녀석이로군.’
언뜻 보기에는 내숭을 떠는 아몬과 비슷한 태도였지만, 아임의 목소리에서는 겸손과 진심이 뚝뚝 묻어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아몬의 형이니 녀석만큼 대단한 자질을 지니고 있을 테지? 끌끌, 내 제자로 들이면 정말 좋을 텐데.’
하지만 가문의 후계자이며 도시 하나를 담당하고 있는 아임을 정말 제자로 들일 수는 없었다.
청빈을 덕으로 삼는 라인벨트이니만큼, 그런 아임에게 ‘속세를 떠나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큰 무례가 될 테니 말이다.
‘쯧쯧쯧, 내게도 아쉬운 일이지만 이 녀석에게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되겠군. 다름 아닌 본인의 제자가 될 기회가 흔치 않은데 말이야!’
혀를 차며 앞장서 걸어가는 라인벨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임은 안도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다행히 제자 이야기는 안 꺼내시려는 모양이로군.’
아임은 이미 아몬에게 모든 것을 들었다!
‘형, 정문에 도착하면 미친 영감이 하나 있을 겁니다. 그 영감은 제국 4대 기사 신분인데 돈이 없어서 산나물이나 캐 먹고 사는 희대의 미친 영감입니다. 혹시나 형을 제자로 들이니 뭐니 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세요.’
모든 내막을 전해 들었기에 어떻게든 라인벨트가 괜한 말을 꺼낼 수 없도록 쉴 새 없이 말을 붙였던 것뿐이다!
“흠흠, 그나저나 이곳이 학교장실이네.”
“예, 어르신. 여기까지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허, 아니네. 그보다 자네, 혹여 나중에 검의 길을 걷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임은 동생의 조언에 힘입어 뒤도 안 돌아보고 학교장실로 달려갔다.
멀어지는 아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라인벨트가 못 말리겠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쯧쯧, 동생이나 형이나 수줍음이 많군!”
* * *
아임은 바짝 얼어붙은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학교장인 아나르엘이 심각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님이 왔는데도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한 후 진지한 얼굴로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으니, 아임 입장에선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임이 얼어붙은 이유도 따로 있었다.
‘세상에, 이분이 학교장님…….’
평범한 인간과 궤를 달리하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숲의 일족이자 고귀한 하이엘프인 아나르엘!
그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기다란 속눈썹이 반짝거리는 것을 본 아임이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단순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것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아몬은 이렇게 아름다운 분을 모시고 있는 거구나. 그 녀석도 이분 앞에선 나처럼 이렇게 바짝 얼어붙어 있겠지? 학교장과 평교사 신분이니까!’
부러움과 함께 동생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는 와중이었다.
“저, 아임 님. 실례지만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예? 아, 예. 학교장님. 뭐든 여쭤보십시오.”
“도도슬러그, 하나팔콘스. 둘 중 뭐가 어감이 좋은 것 같으세요?”
“……예?”
난데없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린 아임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하나팔콘스…… 가 조금 더 좋아 보입니다만.”
“그렇군요, 하나팔콘스.”
웬 종이에 찍, 하고 선을 그은 아나르엘이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서류를 내려놓은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보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반가워요. 그리고 이번 저희 아카데미의 대제전에 투자를 해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중하게 꾸벅 고개를 숙이는 아나르엘의 모습에 아임이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제 동생이 이곳에 일하고 있기도 하고 마침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으니 크게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아뇨. 저희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됐으니까요. 당연히 감사드려야죠.”
“하하하…….”
“휴우, 그나저나 지금까지 아몬 선생님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런 방향으로까지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네요.”
“오오, 우리 아몬이 열심히 하나 봅니다?”
아임의 말에 아나르엘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귀를 퍼덕이며 아몬의 훌륭함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묵묵히 동생에 대한 칭찬을 듣던 아임은 생각했다.
‘아몬 녀석, 열심히 하고 있구나.’
그런데 어째서일까?
눈을 빛내며 아몬에 대해 칭찬하는 아나르엘을 보니, 어째서 동생이 조금 미워지는 것일까?
* * *
잠시 후, 아나르엘과 투자의 사용처에 대해서 대략적인 대화를 마친 아임은 학교장실에서 나왔다.
마침 점심시간 무렵이었기에 식당에 아몬이 있으리란 말을 듣고 오랜만에 동생의 얼굴을 볼 작정이었다.
‘음, 이쪽이 식당이라고 했었지.’
이윽고 식당에 도착해 안을 들여다본 아임은 익숙한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기 있구나!’
아임이 혼자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 아몬에게 다가가려던 순간이었다.
“야, 너 왜 혼자 앉아서 먹고 있어?”
“……우물우물.”
“입에 든 거 삼키고 말하지?”
“꿀꺽! 왜요. 뭐. 혼자 먹든 말든 뭔 상관입니까?”
“아, 진짜. 할 이야기가 있다니까.”
스스럼없이 아몬의 맞은편 자리에 걸터앉는 여인을 본 아임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얼어붙고 말았다.
‘……저, 저건 또 누구지?’
이제 막 자다 깬 것처럼 부스스한 몰골이긴 했지만, 웬 아름다운 여인이 아몬을 향해 하소연하는 것처럼 투덜거리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산 침낭, 그거 너랑 공동구매한 거였잖아. 네 건 멀쩡해?”
“제건 멀쩡하던데요.”
“근데 내건 왜 벌써 안쪽 거위 털이 뭉쳐서 말려 들어갔지?”
“그거야 하루 종일 껴안고 아무 데서 자니까…….”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임이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혹시 피곤해서 자신이 잘못 보고 있는 건가?
‘아니군.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군.’
아몬 녀석, 아름다운 이성 동료와도 친하게 잘 지내고 있구나.
형으로서 참으로 부럽, 아니지. 기특하기 짝이 없구나.
‘음…… 나도 슬슬 허기가 지는데 식사나 해야지.’
아임이 다시금 아몬을 향해 다가가려고 한 걸음을 내민 순간이었다.
“아몬 선생, 잠깐 앉아도 됩니까?”
“엥? 어, 예. 부학교장님.”
웬 아름다운 다크엘프 여인이 아몬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아임은 또다시 얼어붙고 말았다.
‘아니, 이건 또 뭔데.’
학교장은 엘프고, 부학교장은 다크엘프였나?
게다가 이번에는 부학교장이 아몬을 대하는 태도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부학교장이 아몬의 귀에 대고 뭐라 귓속말을 하니 아몬이 헤벌쭉 웃는 게 아닌가!
“조아민트 님이 새로 신메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흐흐흐…… 그거 참, 오늘 일과 끝나고 먹으러 가 봐야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조아민트 님이 잠깐 식당으로 들른다고 하시는군요. 맛보기로 한번 먹어 보라고…….”
“꿀꺽! 그거 참 기대가 됩니다…….”
소곤소곤, 귓속말인지라 아임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부스스한 머리칼의 여인은 귓속말을 나누는 아몬과 부학교장을 굳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대화 내용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끔찍한 것을 바라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아임은 괜히 발만 동동 굴렀다.
‘아몬아! 눈앞을 봐라! 질투하고 있잖아! 그나저나 아몬 저 녀석, 여자 관계가 왜 저렇게 복잡…….’
그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어느새 나타난 웬 검은 드레스 차림의 여인이 아몬의 앞에 접시 하나를 내려놓았다.
-자, 우선 맛을 한번 보도록.
“오오오……!”
감탄을 터뜨리며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 치우는 아몬의 모습에 부학교장은 울상을 지었다.
“제, 제 건 없습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굽는 중이니.
부스스한 몰골의 여인은 참혹함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으며.
“……저, 저걸 맛있다고 먹어?”
검은 드레스 차림의 여인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역시 입에 맞나 보군.
“구와아악! 빵과 건포도가 이렇게 궁합이 잘 맞을 줄은……!”
이런 대화가 오가고 있었지만, 멀찍이 있는 아임은 대화를 듣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임의 눈에 비춰지는 광경은 수라장 그 자체였다.
‘아몬 저 녀석…… 뒷 감당을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눈치도 없는 거냐!’
동생이 저지르고 있는 불명예스러운 행위에 아임이 치를 떨며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였다.
“저…… 선배님.”
“우걱우걱! 엉?”
또다시 나타난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수줍은 듯 홍조를 띤 채 뭔가를 내밀었다.
“저, 이거 좀 봐 주셨으면…….”
“아 씨, 밥 먹는데.”
확 짜증을 내며 여인이 내민 종이를 받아드는 아몬을 본 아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더 이상은 못 보겠군. 그냥 돌아가자.’
아임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어차피 학교장과 투자처에 대한 이야기도 끝마쳤겠다, 이곳에 계속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동생이야 나중에 보면 될 일이고 말이다.
‘저 녀석, 언제 한번 시간을 내서 단단히 혼을 내야겠군. 인생 그렇게 살면 언젠가 칼 맞는다고 말이야.’
본심은 동생에게 드리워진 핑크빛 오라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임이 아파 오는 가슴을 움켜쥔 채 아카데미를 벗어나고.
피오라가 수줍게 내민 커리큘럼표를 체크하며 수정해 주던 아몬이 숟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때렸다.
“넌 좀! 이제 슬슬 이거 혼자 할 때 안 됐냐!”
“아악! 먹던 숟가락으로 사람 머리를……!”
아임의 생각과는 달리, 아몬의 사전에 핑크빛은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