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4)
아카데미가 망했다 14화
관객석에 앉은 아몬이 손을 꽉 맞잡았다.
‘얘들아, 제발 부탁한다.’
학생들은 알까?
남아 있는 여비 전부인 12실버를 ‘토너먼트 1회전 승리’에 베팅했기에 삐끗하면 죽도 밥도 안 되게 생겼다는 사실을?
그런 생각에 잠겨 있던 와중.
관중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곧이어 울려 퍼지는 목소리.
“전원, 기립.”
낮고 깊게 울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모든 관중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곧이어 단상 위로 모습을 드러낸 노인.
아모니스 제국의 황제가 등장했다.
“허허허! 제국의 아들딸들이여! 오늘 같은 경사스러운 날에 그대들이 이렇게 자리를 빛내 주어 고맙구나!”
가식 없이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하는 황제의 목소리.
‘저분이 황제 폐하.’
수도 땅도 처음 밟아 보는 아몬!
황제를 먼발치에서나마 알현하는 것 역시 처음이다.
‘현 제국을 역사에 남을 태평성대로 다스리고 계시는 성군 중의 성군.’
산드리오 아르지아 아모니스.
아모니스 18세.
짤막하게 연설을 마친 그가 외쳤다.
“경진대회를 시작하겠노라!”
외침과 동시에 하늘을 수놓은 마법의 향연!
그 화려함에 아몬이 입을 헤 벌렸다.
‘역시 수도구나! 저거 하나 펼치는데 마법사랑 돈을 얼마나 갈아 넣었을까!’
감탄을 터뜨리는 와중.
경진대회의 첫 번째 일정인 검술 부문이 진행됐다.
‘검술 부문의 시작은 참가자 전원의 검무.’
그리고 검술 부문에 참가한 학생은 수십여 명.
그들이 무대 위로 우르르 올라오니 널찍했던 무대가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저런 상황에서 참가자 모두가 일제히 ‘검무’를 펼치는 것이다.
‘문제는 학생 모두가 똑같은 검술을 배운 게 아니다. 각기 다른 가문과 기법의 검술을 배웠겠지.’
즉 저렇게 미어터지는 상황에서 전원이 각기 다른 검무를 펼친다면, 서로 뒤엉켜서 넘어지고 난리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특별한 소수를 가려낼 수 있다. 난잡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움직임을 잃지 않고 방해받지 않을 능력을 가진 인재 말이지.’
또한 수십 명이 같은 춤을 춘다한들, 그중에서 유독 눈에 밟히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재능을 가진 이들.
‘이 단체 검무는 그걸 사전에 가려내는 작업.’
그렇기에 아몬은 마음을 편히 먹을 수 있었다.
‘보리스, 클로에의 재능은 나쁘지 않아. 특히 상대의 동작을 읽고 피하는 것은 상당한 수준!’
클로에가 투기장에서 그 사실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보리스는…… 긴장을 해서 그런 거고.’
아무튼 아몬은 편한 마음으로 검무를 감상하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으아악! 뭐야!?”
“죄송합니다!”
“야! 내 진로 방해하지 마!”
“죄, 죄송합니다!”
보리스는 목검으로 다른 학생들을 때리고,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있었다.
‘망했군.’
무대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보리스!
“뭐야? 저 근본도 없는 녀석은.”
“어느 아카데미 출신이지?”
주변의 쑥덕거림에 아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리온의 얼굴 역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제 사 둔 술을 먹고 취했기 때문이다.
“꺼꺼꺽! 보리스 녀석, 잘하고 있구만!”
“……잘하는 거 아닙니다.”
“엉? 다른 학생들을 쓰러트리고 있잖아?”
“……쓰러트리면 안 되는 거라고요.”
“엥? 어째서?”
“……그냥 술이나 드십쇼.”
“그래! 술맛 좋다!”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이건 그냥 토너먼트 시작 전의 여흥일 뿐이야.’
토너먼트와는 관계도 없겠다, 그냥 눈 감고 안 보기로 했다.
그때였다.
“오호, 저 소녀. 상당한데?”
“움직임이 굉장히 날렵하군요.”
그 말에 아몬이 눈을 번쩍 떴다.
‘어이어이! 믿고 있었다고, 클로에!’
클로에가 아니었다.
‘진짜 망했군.’
클로에도 보리스와 함께 무대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 * *
검무가 끝난 후 토너먼트가 시작됐다.
그리고 몇 번의 경기 이후.
‘먼저 클로에 차례구나.’
아몬이 양손을 꼭 맞잡은 채 승리를 기원했다.
‘제발 이겨다오! 네 배당은 꽤 높았다고!’
망국, 아란의 왕족인 클로에.
이름이 알려진 것도 아니고, 아모니스 아카데미도 쫄딱 망한 상황!
게다가 상대는 제법 유명한 귀족가문의 자제이며, 속한 아카데미도 지금의 아모니스 아카데미보다 훨씬 훌륭한 곳이다!
그리고 무대 위.
기스 자작가의 여식, 쥬라가 싸늘한 얼굴로 클로에를 향해 검을 겨눴다.
“흥, 클로에라 했나요?”
“…….”
“검무 때 나를 밀쳤죠? 그런 어수룩한 검술로 이런 곳에 나오다니…… 주제 파악을 시켜 드리죠.”
쥬라의 서늘한 말에 클로에가 답했다.
“일부러 그런 거예요.”
“……뭐라고요?”
“보리스 혼자 돋보이는 게 싫더라고요.”
“네? 그게 무슨…….”
쥬라가 눈살을 찌푸리는 와중 경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팟-!
날렵하게 달려든 클로에가 검을 휘둘렀다.
“……윽!?”
황급히 클로에의 검을 막으려던 쥬라가 눈을 부릅떴다.
돌연 궤도를 바꾼 클로에의 검이 심장을 노리고 쏘아진 것이다.
그리고 실전을 가정한 대련인 이상, 심장 등의 급소 부분을 공격당하면 그걸로 경기는 끝이다.
‘이, 이렇게 진다고……!?’
하지만.
퍽-!
심장을 노린 검이 다시 궤도를 바꿔 옆구리를 때렸다.
“아악!”
쥬라가 옆구리를 붙잡고 주저앉은 순간.
심사관이 외쳤다.
“클로에, 1점!”
점수를 빼앗겼다!
그 사실에 쥬라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바, 방금 뭐였지? 분명 심장을 칠 수 있었는데 왜 옆구리를……?’
그 사실에 클로에를 노려본 쥬라가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클로에의 눈빛에 새겨져 있는 비웃음.
입가에 묻어 있는 경멸.
1점을 따낸 순간 쏟아진 관객들의 환성을 받으며, 몸을 파르르 떤 클로에가 황홀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더 할 수 있겠어요?”
“……뭐, 뭐?”
“있죠? 할 수 있죠?”
쥬라는 깨달았다.
‘나, 날 갖고 놀려고?’
발끈한 쥬라가 클로에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퍽-!
“클로에, 1점!”
퍼억-!
“클로에, 1점!”
퍼버버버벅-!
“그, 그만! 경기 끝!”
집요할 정도로 급소를 제외한 부분을 후려갈기는 클로에의 모습에 심사관이 황급히 경기를 중단시켰다.
“승자는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클로에 아란!”
그 순간 수천에 달하는 관중들이 터뜨린 환성이 몸을 때린다.
그 감각을 곱씹으며, 관중들을 둘러본 클로에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천한 돼지들이 좋아라 하긴.’
피식 웃은 클로에가 무대를 내려갔다.
그리고 한편, 관중석.
‘이겼다! 클로에가 해냈어!’
아몬은 펄쩍펄쩍 뛰면서 물개 박수라도 치고 싶었지만 주변 관중들의 시선을 감안해 자제하기로 했다.
‘배당률은 10배! 이걸로 60실버를 확보했어!’
아몬이 다시금 무대를 내려다봤다.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이 보리스의 경기였다.
‘상대는 라다 백작가문의 엑스트! 하지만 보리스는 평민 출신이라 배당이 클로에보다 높다!’
거의 100배에 달하는 배당!
즉 보리스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없이 적다는 뜻이다.
‘하지만 보리스! 선생님은 널 믿는다!’
* * *
보리스를 향한 아몬의 믿음은 배신당했다.
엑스트를 상대로 열심히 싸우긴 했지만 결국 패배한 것이다.
‘내 인생이 그럼 그렇지 뭐.’
하늘을 올려다봤다.
보리스에게 걸었던 6실버가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럼 남은 희망은 클로에뿐인가…….’
“허어, 저 평민 소년. 대단하군.”
‘응? 뭐가 대단해? 아아, 6실버를 단숨에 날려 먹는 재주가 있긴 하…….’
“엑스트를 상대로 저렇게 선방할 줄은…….”
‘……엥?’
관객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엑스트는 검술 부문의 우승 후보. 그런데 평민 출신임에도 라다 가문의 자제를 상대로 저렇게 선전하다니…… 장래가 기대되는구려.”
상대가 우승 후보였어?
‘보리스! 비록 졌지만 잘 싸웠구나!’
아몬이 금세 생각을 고쳐먹었다.
‘보리스! 비록 졌지만 선생님은 네가 자랑스럽다!’
교육자의 마음!
그리고 잠시 후, 1회전이 끝나자 주어진 휴식시간.
미리 학생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향했다.
“얘들아! 모두 고생했다!”
“아, 선생님…….”
보리스는 울상이었다.
“녀석, 표정이 왜 그래?”
“죄, 죄송해요. 1회전에서 져 버려서…….”
아몬이 녀석의 머리를 북북 쓰다듬었다.
“괜찮아, 정말 잘했어. 오늘만 기회가 아니잖니?”
“그래도…….”
“오늘 경험을 밑거름 삼으면 된단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렴.”
교육자의 자상한 마음!
그때 아몬과 보리스를 지켜보던 클로에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아, 클로에!”
아몬이 뒤늦게 클로에의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잘했다! 이야, 대단하던걸?”
비로소 클로에가 생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둘 다 배고프지? 점심 먹으러 갈까?”
“네! 선생님!”
교육자 아몬의 모습은 끝.
어른 아몬이 말했다.
“근데 여비가 좀 빠듯해서, 어제처럼 비싼 건 못 사 주겠구나.”
“…….”
잠시 후, 근처 매점에서 학생들과 식사를 하던 와중.
보리스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근데 마리온 선생님이랑 브레슬 부학교장님은요?”
마리온은 술에 취해 관중석에서 퍼질러 자고 있을 것이다.
브레슬은 어제 단단히 혼을 내서 그런지 잔뜩 삐져선 말도 않고 있다.
때문에 아몬이 산뜻한 얼굴로 말했다.
“몰라, 둘 다 죽었겠지 뭐.”
“…….”
* * *
잘그락-
애들 밥 사 주고 남은 돈.
50실버.
‘유일한 희망. 나의 빛과 소금.’
아몬이 주머니를 남자에게 내밀었다.
“클로에의 토너먼트 2회전 승리에 50실버 걸겠습니다.”
“예! 여기 확인증 받으십쇼!”
첫 번째 경기의 퍼포먼스가 워낙 압도적이었던 탓일까?
배당률은 현격히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상대가 제법 유명한 귀족가문의 자제라서 그나마 선방했군.’
결국 매겨진 배당률은 4배.
이기면 무려 2골드가 수중에 들어온다.
‘……그 정도면 여비론 충분하겠지.’
더 이상 위험부담을 안고 갈 수는 없으니, 이번에 딴다면 교육자로서 온당치 못한 이따위 행위를 그만둘 작정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클로에의 두 번째 경기.
“클로에, 1점!”
퍼억, 퍼퍽-!
“클로에 3점! 아아! 상대 학생의 기권! 승자는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클로에 아란!”
귀가 아플 정도로 커다란 환성이 쏟아지고, 아몬은 감격에 젖은 채 박수를 쳤다.
‘클로에! 너란 녀석은 정말!’
상대도 나쁘지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건만, 클로에가 아예 가지고 놀다시피 승리한 것이다.
‘……응? 그런데 클로에가 왜 저러지?’
환성과 박수 세례를 받던 클로에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긴장이 풀렸나?”
그 중얼거림에 보리스가 말했다.
“저, 아몬 선생님.”
1회전 탈락해서 관중석에 있는 보리스가 무슨 용건일까?
“왜 그러니?”
“그게, 요즘 클로에가 좀 이상해요.”
“응? 뭐가?”
“그게…….”
보리스가 뭐라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우와아아아!”
돌연 우레처럼 터져 나온 환성에 아몬도 보리스도 귀를 틀어막았다.
‘으, 시끄러워라.’
혀를 찬 아몬이 몸을 일으켰다.
“휴, 보리스. 미안한데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서 들으마.”
“아, 네. 선생님.”
이윽고 밖으로 나간 아몬이 ‘사설 투투’ 담당자에게 향했다.
“여기 확인증이요!”
“오, 축하드립니다. 2골드 받으십쇼.”
돈 자루를 받은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비도 생겼겠다, 여기서 끊는 게 좋겠지?’
여태 하고 있는 ‘투투’는 교육자로서 해선 안 될 행위다.
잘그락-!
아몬이 금화와 은화, 동전이 섞인 자루를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만약 더 불릴 수 있다면 애들 맛있는 거 먹일 수도 있겠지.’
조금 전 저렴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돌아갈 때도 괜찮은 마차를 탈 수 있을 거고…….’
아몬이 대진표를 슬쩍 훑어봤다.
‘……다음 클로에 상대는, 레이몬드? 성이 없는 걸 보면, 평민인가?’
아몬이 투투 담당자에게 슬쩍 말해 봤다.
“레이몬드 학생은 배당이 어떻게 되죠?”
“음? 아아, 그 학생이요? 어디보자, 클로에 학생과 붙겠구만?”
대진표와 앞선 성적을 훑어보던 투투 담당자가 말했다.
“레이몬드 학생은 어찌 이기는 건지 신기할 정도로 아슬아슬해요. 게다가 클로에 학생은 경기력이 대단히 뛰어나서 배당률이 낮고요.”
아슬아슬하다는 말에 아까 레이몬드라는 학생의 경기가 떠올랐다.
‘아, 소속 아카데미 없이 그냥 참가했다던 학생이구나?’
확실히 경기력이 형편없긴 했었다.
구르고, 넘어지고, 헛손질하고.
그런 이유로 클로에의 승리를 점치는 승부사들이 많다는 뜻.
‘……클로에한테 걸어도 큰 이득은 못 보겠는데?’
하지만 그만큼 안전하다는 뜻!
아몬이 갈등했다.
‘어떡하지? 여비잖아? 쓰면 안 되는 돈이잖아?’
그 순간 악마 아몬이 속삭였다.
-따면 되잖아?
천사 아몬도 속삭였다.
-열심히 가르친 학생이잖아요? 학생을 믿으세요.
아몬이 돈자루를 내밀었다.
“클로에의 승리에 1골드 50실버 걸겠습니다.”
“예! 여기 확인증 받으십쇼!”
50실버는 최소한의 양심이었다.
* * *
소년, 레이몬드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할아버지도 참. 이런 대회에서 무슨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하늘 같은 할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이번 경진대회에서 네 실력을 최대한 숨기고 싸워 보거라!’
한숨을 쉰 레이몬드가 애써 불만을 삭였다.
“뭐, 다 뜻이 있으시겠지. 아무튼 슬슬 다음 경기네? 얼른 가자.”
제국의 그랜드소드 마스터 중 하나.
창천검왕, 라인벨트의 숨겨 둔 손자인 레이몬드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시각.
‘클로에가 이기면 1골드 50실버가 대충 2골드가 될 테니까, 그걸 여비로 삼자. 그리고 걸고 남은 50실버는 혹시 모를 비상금으로 쓰고…….’
아몬은 현명한 소비 계획을 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