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40)
아카데미가 망했다 140화
“예? 형이 다녀갔다고요?”
“아몬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갈 거라고 하시던데, 못 만나셨나 봐요?”
“예…… 얼굴은커녕 그림자도 못 봤는데요?”
아몬이 떨떠름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왜 여기까지 와 놓고 얼굴 한번 안 보고 돌아갔을까? 내가 형한테 뭐 잘못한 거 있나?’
그래서 기분이 상해서 돌아가 버린 걸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히 형에게 실수를 저지른 기억은 없었다.
애초에 최근에는 얼굴 한번 보지도 못했으니까 말이다.
‘아, 설마 얼마나 바쁘기에 얼굴 한번 안 비추냐고 섭섭해하시는 건가?’
하긴, 그런 거라면 섭섭함을 느낄 만도 했다.
형도 요즘은 에덴을 성장시키느라 몹시 힘들었을 텐데, 그 수고도 모르고 인사도 한 번 안 하고 얼굴 한 번을 안 비췄으니 말이다.
‘대제전 개최일에 다시 올 거라고 했으니 그때 이야기를 좀 해 봐야겠군.’
아무튼 형에 대해서는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아나르엘이 자신을 왜 불렀는지에 대해서 집중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번 대제전에 참가할 인원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죠?”
“네, 맞아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원이 너무 많아서 예선을 치르는 것조차 힘들 정도라는 거예요. 예선전에 들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인원이 이렇게 많으니 일정이 꼬이게 생겼거든요.”
아나르엘은 짐짓 곤란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눈동자에는 기쁨의 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쫄딱 망했던 아카데미가 부흥의 궤도에 올랐고, 큰맘 먹고 여는 대제전이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너무 많은 인원이 참가한다는 행복한 문제에 직면했으니까!
“그럼 인원을 좀 추릴 필요가 있겠는데…… 이거 함부로 추리기도 힘들겠는데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이번 대제전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모두 콧방귀 좀 뀐다는 사람들 뿐이니까요.”
즉, 그럴싸한 명분 없이 인원을 추렸다가는 뒤에서 못된 말을 들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면전에서 쌍욕을 먹을지도 모를 일.
‘그런데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인데, 이런 대단한 놈들이 왜 이런 망해 가는 아카데미가 개최하는 대제전에 참가하려고 하는 걸까……?’
물론 대놓고 목적이 보이는 놈들도 있었다.
‘베스트릭 아카데미? 이놈들은 보나 마나 예전 교류전 때의 복수를 하려는 거겠고, 신성왕국 그레고리안? 이놈들도 우리 아카데미한테 좋은 감정은 없을 테니까 허튼짓을 저지를 생각이 넘칠 테고.’
그러니만큼 그들에 대한 방침을 간단히 정할 수 있었다.
‘철저하게 우리가 그럼 그렇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태도로 대해야겠군. 그런데 다른 곳들은 우리한테 악감정도 없을 텐데, 왜 참가하려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네.’
세상에 시달린 게 워낙 많은 아몬이었기에 기본 전제가 ‘악감정이 있으니 찾아오는 거겠지’가 되어 있었다.
‘아무튼 아나르엘 말대로 참가자가 이렇게 많다면 수를 줄이기는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이지. 이대로 가면 예선전을 치르는데도 며칠은 걸리겠는걸?’
솔직히 대제전에 투자해 준 가문의 홍보를 겸하는 행사이니만큼 최대한 많은 인원을 수용하고 싶다는 욕심은 있었다.
하지만 뭐든지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다.
참가자가 너무 많아서 일정에 차질을 빚느니 욕심은 적당히 부리는 게 옳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가 활을 부러뜨려 먹는 꼴이지. 자, 그럼 인원을 어떻게 추리느냐가 문제인 건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아몬이 입을 열었다.
“학교장님.”
“네?”
“듣자 하니, 대제전 개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참가 인원은 대부분 아무르에 머무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나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무르가 상업 도시고 하니, 여독을 풀면서 대기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덕분에 여러 유력 귀족들이 방문해서 돈을 펑펑 써 대고 있기에 상점, 여관, 주점들은 때아닌 대목을 맞이해 싱글벙글하고 있다고 들었다.
“역시 그렇군요. 마침 잘됐습니다.”
“아!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르셨나 봐요?”
믿고 있었다는 듯 아나르엘이 탄성을 내지르자 아몬이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카데미 안에 참가 인원들이 머무를 숙소의 단장도 끝났겠죠?”
“그럼요. 오늘 아몬 선생님의 형님분께서 오셔서 이번 시설에 들어가는 지출 내역도 확인하고 가셨어요. 숙소 이외의 시설들도 모두 준비가 끝났고요.”
“흠흠, 그렇다면 학교장님.”
“네?”
“여기,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이 네 곳.”
아몬이 체크한 명단의 이름들을 본 아나르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네 곳이 왜요?”
“얘들한테 시드권 줘 버리죠.”
아나르엘이 펄쩍 뛰었다.
아몬이 체크한 곳들은 베스트릭 아카데미, 신성왕국 그레고리안, 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명문 아카데미인 존홉스킨 아카데미, 그리고 황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로열 아카데미였다.
“이 정도로 쟁쟁한 것들한테 시드권을 준다면 이 아래로는 뭐라고 말 못 할 것 아닙니까?”
“그, 그야 그렇겠지만…… 휴, 하기야 이 정도 되는 곳들은 다른 대회에서도 시드권을 종종 받으니까 딱히 문제는 없을 것 같네요.”
고개를 끄덕인 아몬이 작게 속삭였다.
“겸사겸사 우리 애들한테도 시드권 주고.”
“네? 작아서 못 들었는데 한 번 더 말해 주세요.”
“혼잣말입니다. 아무튼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올라가는 인원은 각 종목당 32명으로, 5종목이니 160명. 그중에서 시드권으로 올라가는 인원은 25명.”
“4개 아카데미에 시드권을 주면 20명 아니에요? 아유, 아몬 선생님. 산수를 틀리시면 어떡해요!”
아나르엘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아몬이 계속해서 중얼중얼 셈을 했다.
“음, 그럼 단가를 어떻게 매겨야…….”
“네? 단가요?”
“흠, 이건 너무 높은가…….”
“네? 뭐가 높아요?”
“음…… 적당한 액수를 모르겠네.”
아몬이 자꾸 혼자 중얼거리자 아나르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몬 선생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아나르엘의 순진한 물음에 아몬이 도리어 무슨 헛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돈 받고 시드권을 팔아야죠?”
“……뭐라고요?”
경악으로 펄쩍 뛰는 아나르엘은 본 아몬이 히죽 웃었다.
“두고 보세요. 보면 압니다.”
* * *
아무르 내부에 대량의 공고문이 뿌려졌다.
[아모니스 아카데미 배 대제전 예선 일정표] [월요일-검술] [화요일-마법] [수요일-역사학] [목요일-수학] [금요일-과학] [예선전이 끝난 후 다음 주부터 동일한 일정으로 본선을 진행합니다.] [예선 면제 명단-베스트릭 아카데미, 신성왕국 그레고리안 참가팀, 존홉스킨 아카데미, 로열 아카데미, 아모니스 아카데미.]뿌려진 공고문을 본 이들의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쯧, 역시 베스트릭 아카데미와 로열 아카데미는 예선이 면제되는군요.”
“하기야 그 두 곳이라면 면제를 예선해 줄 만도 하지.”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인 두 개의 아카데미는 그 실력이 이미 만천하에 알려졌기에 시드권을 받았다 해도 대부분 그러려니 하는 반응들이었다.
“아모니스 아카데미도 예선 면제? 아아, 개최 아카데미로군.”
“개최 아카데미라면 어쩔 수 없지…….”
약간 짜증 나기는 해도 개최하는 곳에서 자기네 학생들에게 시드권을 준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납득해야지.
“그리고 존홉스킨 아카데미는…… 음, 여기도 명문 중의 명문이니 충분히 시드권을 줄 만하지.”
“그래도 존홉스킨은 베스트릭과 로열에 비하면 좀 떨어지지 않습니까……?”
“……명문이라는 건 사실이잖나.”
뭐, 결국 그들은 명문이라는 이름에 납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신성왕국 그레고리안? 여기는 왜 시드권을 받는 거지?”
신앙으로 똘똘 뭉친 나라였기에 무시 못 할 국가인 건 사실이지만, 제국에 비하면 초라한 국력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곳이 그레고리안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 어째서 시드권을 준다는 말인가!
“이해가 안 가는군. 아무리 봐도 시드권을 받을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황당함, 의혹, 분노!
그들이 술렁이는 와중이었다.
“아! 설마…….”
“혹시 뭐라도 들은 게 있나?”
“얼마 전에, 아모니스 아카데미에서 신검 누카엘의 선택을 받은 용사가 나왔다는 이야기로 떠들썩했지 않습니까?”
“응? 아아, 그 소식은 들었는데 그거랑 시드권이랑 무슨 상관…… 잠깐, 설마 그 용사 탄생 건으로 아모니스 아카데미와 그레고리안 신성왕국이?”
“예…… 그 이후로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가 된 거 아니겠습니까?”
두루뭉술했던 의혹이 점차 뚜렷한 형상을 띠고 사람들을 휘어잡기 시작했다.
“설마 친분으로 시드권을 줬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가!”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의심은 가지 않습니까?”
“끙…….”
그 말대로 의심은 가지만, 그렇다고 신성왕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우르르 몰려가 ‘혹시 친분으로 시드권을 받았느냐?’고 따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혹여나 감정이 격해진다면 외교적 결례로 번질 가능성이 높으니까.
게다가 신성왕국의 일행에게 가서 따지는 것보다는 훨씬 ‘만만한’ 곳이 있지 않은가!
“흥!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가서 이 사실을 확인해 봐야겠군!”
* * *
별안간 학교장실로 들이닥친 성난 군중들의 매서운 기세에 아나르엘은 귀를 축 늘어뜨린 채 와들와들 떨고만 있었다.
“별 볼 일 없는 신성왕국에 시드권을 주다니!”
“히익!”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주시오!”
“헤에엑!”
아몬이 ‘두고 보세요.’라고 말했던 게 이런 의미였단 말인가!
아나르엘이 어떻게 좀 해 보라는 듯 아몬과 군중을 번갈아 바라보자, 여태 뒤에서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아몬이 앞으로 나서며 호통쳤다.
“대뜸 찾아와서는 대관절 이게 무슨 행패십니까!”
“뭐…….”
“신성왕국은 우리 아모니스 아카데미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로, 용사의 선출과 관련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에 대한 은혜로 예선전의 면제라는 작디작은 혜택을 제공한 것에 불과합니다!”
벼락같은 아몬의 일갈에 그들은 입을 쩍 벌렸다.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 결국 친분으로 시드권을 준 게 맞다는 뜻이다!
그런데 저렇게까지 당당하게 나오니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 하지만 공정함에 어긋나는 일…….”
“입은 은혜를 무시하고 등 돌리는 것을 공정이라고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고…….”
“입은 은혜를 무시한다면 우리 아카데미는 명예도 모르는 소인배가 될 뿐입니다! 정녕 저희가 소인배가 되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아니, 갑자기 그게 왜 그렇게 되는…….”
“받은게있으면베풀줄도알고오가는정도있어야하며.”
“크으으윽…….”
아몬이 뱀의 혀를 사방팔방으로 휘두르자 잔뜩 성나 찾아온 군중들 중 절반가량은 제풀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아몬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허허험! 저희의 입장은 그렇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 주십시오!”
“……예, 이만 물러가지요.”
그들은 순순히 학교장실에서 나갔다.
이윽고 성난 폭도들이 몽땅 사라지자 아나르엘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심장이야. 그나저나 아몬 선생님.”
“예?”
“일이 이렇게 됐는데 시드권을 돈 받고 팔겠다는 그런 괘씸한 일은 물 건너갔네요?”
“……예?”
“다행이네요. 솔직히 양심에 켕겼었는데…….”
아나르엘의 말에 아몬이 한숨을 쉬었다.
숲속에서 평온한 삶을 살던 순박한 엘프는 이렇게나 순진하다는 말인가!
“학교장님은 누가 보증 서 달라고 하면 단숨에 뺨을 때려서 쫓아내십시오. 누가 사업하자고 꼬드기면, 아…… 이미 많이 당했구나.”
안타까움에 탄식을 내뱉던 와중이었다.
똑똑-!
돌연 학교장실의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아나르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누가 또 찾아온…….”
“들어오십시오!”
아나르엘의 의문은 뒤로하고, 아몬이 기다렸다는 듯이 외치자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얼굴을 확인한 아몬이 내심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 학교장실에서 잠시 동안 나가지 않고 눈치를 살피던 이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몬은 짐짓 모른 체하며 말했다.
“크흐흠! 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흐흐, 아몬 교무부장님.”
“커허허험! 예, 듣고 있습니다.”
“조금 전 아몬 교무부장님께서 하신 말씀, 참으로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그 말씀대로,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법이죠. 암, 그렇고 말고요. 그런 의미에서…….”
크리티아누 아카데미의 교사가 큼직한 주머니를 슬그머니 꺼내며 말했다.
“큰 가르침을 내려 주신 아몬 교무부장님께 감사의 의미로 작은 성의 표시를 하고 싶은데 말입니다.”
그 말에 아몬이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설마! 그 돈을 받고 시드권을 달라는 말씀이십니깍!”
아몬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크리티아누 아카데미의 교사는 실실 웃으며 주머니를 슬쩍 열어 보여 줬다.
“아이구! 그런 게 아니라 작은 성의 표시일뿐입니다! 헤헤헤!”
‘시드권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겁니까! 대제전의 취지를 모욕할 셈입니까!’라고 꾸짖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헤헤헤! 그저 성의 표시일뿐입니다.”
“아, 진짜 이러면 안 되는 건데…….”
“교무부장님의 말씀이 워낙 감명 깊었기에 작은 성의를 보이는 것뿐이니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아몬이 슬그머니 주머니를 받으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흠흠, 그래서 어느 학생을……?”
“히히힉! 마법 종목의 쇼노 호나드 학생을 좀…….”
“아! 그 학생의 뛰어난 실력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굳이 예선을 치를 필요 없는 걸출한 학생이라죠!”
“바로 그렇습니다!!”
화기애애하게 비리, 부정, 청탁이 오가는 현장!
‘이런 건 내가 생각한 대제전이 아니야…….’
아나르엘은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울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