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42)
아카데미가 망했다 142화
자식으로서 부모 된 마음으로 최대한 빨리 장가를 보내 주겠다는 것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귀족가의 자제들은 일찌기 혼약을 맺고 후계자를 가지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듣기로는 네 살 배기 꼬맹이 때부터 약혼자가 있다는 경우도 더러 있다지.’
그렇기에 아몬은 ‘많이 늦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직 이르다’고 할 수도 없는 연령이었다.
결국 딱 적당한 때이니만큼, 가문의 형편이 나아진 틈을 빌어 아몬의 짝을 찾아 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몬의 기분이었다.
‘이제야 슬슬 아카데미의 성장도 궤도에 오르고 있고, 학생들도 제몫을 하려는 것 같은데 그런 일로 괜한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지. 만약 혼인을 하게 되면 그만큼 일하는데 시간을 뺏기는 게 당연할 테니까.’
아직 아몬은 자신의 일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었다.
그 진솔한 심경을 토로하자 아카데미의 외로운 남정네들은 끌끌 혀를 찼다.
아직 오전이라, 오후부터 진행하는 본선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은 데다 아몬의 부모님이 도착하기까지도 여유가 있었기에 그들과 긴급회의를 하는 와중이었다.
“쯧쯧, 배부른 소리 하고 자빠졌군.”
아카데미의 외로운 남정네 3인방 중 우익을 담당하고 있는 마리온이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늦기 전에, 조금 이르다 싶을 때 가는 게 최고야. 이르게 가면 그만큼 자리 잡기도 수월치 않겠나? 옛말에 남자는 짝이 있어야 제 구실을 한다는 말이 있잖나.”
마리온의 통렬한 일침에 아몬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어쩐지 마리온 선배님 구실이 영 시원찮다 싶더라니…….”
“떽! 나는 이미 갔다가 돌아온 사람이고!”
“엥? 가셨습니까?”
“쯧! 내 나이가 얼만데 장가 한번 안 갔겠나? 사정이 있어서 갈라선 거지.”
“으음,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려던 아몬이 흠칫했다.
‘그럼 엘프 마을에서 유니콘이 마리온 선배의 머리카락을 우물거리던 건 대체 뭔데?’
둘 중 하나였다.
유니콘이 미쳤거나, 아니면 마리온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그런데 마리온이 말을 하면서도 눈동자를 굴리며 식은땀을 흘리는 걸 보니, 마리온이 거짓부렁을 입에 담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착한 후배로서, 그리고 한 명의 남자로서 이 사실을 조용히 덮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은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 미소는 뭔가?”
“제 미소가 뭐 어때서요? 원래 제 얼굴이 이렇게 생겨 먹었습니다. 혹시 도둑이십니까?”
“뭐? 웬 도둑?”
“제발 저리시길래요.”
“이 새끼가!”
“크아악!”
뒤엉켜 서로를 때리는 두 사람의 추한 모습에 외로운 남정네 3인방 중에서 가장 큰 어른이자 든든한 중심, 라인벨트가 우익 마리온과 좌익 아몬을 뜯어말렸다.
“그만하게! 다 큰 어른이 되어서 이게 무슨 추태인가!”
“크으윽! 하지만…….”
마리온이 휘두른 술병에 머리를 맞은 아몬이 볼멘소리로 투덜거렸지만, 외로운 남정네의 원로이신 라인벨트의 냉엄하기 그지없는 시선에 결국 꼬리를 말았다.
그리고 소란이 수습되자 라인벨트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심정도 이해가 되네. 사나이가 되어서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상황 아닌가!”
“오오! 맞습니다.”
“커허험! 그러니만큼 부모님께는 예를 다해 설명드리는 게 좋을 것이야!”
“캬! 역시 우리 모임의 가장 웃어른! 역시 가 보셨던 분이라 생각의 깊이부터가 다르셔!”
애초에 라인벨트는 ‘손자‘인 레이몬드가 있지 않은가!
유니콘에게 머리카락을 우물우물당하던 마리온의 근거 없는 주장과는 달리, 진짜로 장가를 갔던 사람의 조언이니만큼 묵직한 무게감과 설득력이 느껴졌다!
그때 모임의 특별 고문인(곧 장가를 가기 때문에 결국 정식 멤버가 되진 못했다!)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기억이 맞다면 라인벨트 어르신도 장가를 안 가셨을 텐데? 레이는 라인벨트 어르신의 외가쪽 혈통인데, 제자로 삼으시려고 레이를 입양해서 어르신의 나마크 가문으로 들인 거잖아?’
밝혀지는 충격적인 비밀!
사실 레이몬드는 라인벨트의 외손자다!
애초에 검 하나만 바라보며 산나물 캐 먹고 살던 라인벨트의 인생에 여자가 끼어들 여지는 단 하나도 없었다!
아무튼 의문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카이가 흠칫했다.
-내 체면을 생각해서 그냥 넘어가 주게.
“…….”
카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가를 가 보고 손자까지 있는 라인벨트’의 드넓은 혜안에 연신 감탄을 터뜨리며 박수갈채를 보내던 아몬이 문득 카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특별 고문 카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제 의견이 중요합니까? 선배님은 이미 내심 결정을 내리신 것 같은데요.”
“그래도 특별 고문의 말도 들어 봐야지.”
“으음…….”
괜히 머리를 긁적거리던 카이가 말했다.
“혼인을 하면 시간을 많이 빼앗길 것 같아 교사 일에 전념할 수 없을 것 같다. 선배님은 이걸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시죠?”
“응.”
“그럼 부정적인 면은 뒤로하고, 긍정적인 면도 한번 생각해 보죠.”
카이가 말을 이었다.
“귀족에게 있어 혼인은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죠. 사람과 사람의 결합이 아닌, 가문과 가문의 결합입니다. 정략적인 혼인이 아니더라도 그 부분은 절대 간과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드레이크 백쯔으으-남작가의 현재 상황을 생각해 보면.”
“방금 그 백쯔으으는 뭐냐?”
“아, 하품이 나와서요.”
드레이크 가문이 백작가로 승격될 거라는 소식을 이미 접한 카이였기에 하마터면 말실수를 할 뻔한 것이다!
“흠흠, 아무튼 아몬 선배님의 가문이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다른 가문과의 결합은 손해가 되진 않을 겁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긴 뭐하지만, 현재 드레이크 남작가를 섬기는 가신은…… 가족분들 이외엔 없죠?”
“그…… 렇지?”
가신이란 가문을 섬기는 귀족 혈통의 신하를 뜻한다.
즉 현 시점에서 드레이크 가문의 가신은 가주를 제외한 가족들이 전부라는 뜻이다.
그리고 다른 귀족들은 대부분 그걸 가신으로 쳐주지는 않는다!
“가신의 수가 가문의 세를 뜻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 평균이라는 게 있습니다. 남작가는 못해도 두셋 이상의 가신을 거느리는 게 보통이죠. 그래서 본론은, 다른 가문과 결합하게 될 경우 그쪽 가문에서 가신에 걸맞은 이들을 주선해 줄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입니다. 즉, 인맥의 창구가 새로 열리게 된다는 뜻이죠.”
“……으음. 확실히 그렇겠구나.”
귀족 가문은 서로가 경쟁의 대상이다.
그렇기에 혼인이라는 수단을 통해 상대를 경쟁의 대상이 아닌 ‘동맹’으로 삼는 셈이다.
물론 뒤에서야 크고 작은 싸움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겉으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기야 우리 가문도 이제 돈도, 작위도 아쉬울 게 없지만 귀족의 인맥이라는 건 돈으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야. 그런 면에서 우리 가문은 아예 새로 작위를 받은 가문보다 형편이 나빠. 오랫동안 귀족 가문이었는데도 가신이 없다? 확실한 근거가 없다면 새로 가신이 될 마음을 먹기는 힘들겠지. 그러니만큼 인맥 관련으로는 생색낼 정도로는 도움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구나.’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어. 또?”
“끝입니다.”
“엥?”
“톡 까놓고 귀족으로서의 혼인의 장점은 그게 끝이죠. 아니면 혹시 짝이 생겨서 외롭지 않다, 정신적인 위안이 된다? 그런 말을 원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럴 줄 알았습니다.”
어깨를 으쓱이는 카이를 본 아몬이 생각에 잠겼다.
‘그럼 결국 시간을 뺏기기 싫다는 불이익과 가문에 도움이 된다는 이익, 두 개를 놓고 저울질해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결론을 내리는 건 간단했다.
‘나도 그렇지만, 부모님도 내가 정략적인 이유로 혼인을 하는 건 원하지 않으셔.’
목적만을 노리는 정략결혼은 결국 자식을 ‘이용’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사랑으로 맺어진 부모님이기에 자식을 그런 일에 써먹고 싶지 않으시다는 이유는 참으로 감사했다.
때문에 아몬은 단언할 수 있었다.
“당분간 혼인은 하지 않는 쪽으로 말씀드려야겠네.”
심각할 정도로 진지한 아몬의 목소리에 마리온이 팔짱을 낀 채 흐뭇하게 웃었다.
“훗. 그래야 우리 아몬이지. 그렇지 않습니까, 어르신.”
라인벨트도 팔짱을 낀 채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크큭, 오른팔 자네 말이 맞네. 아몬은 역시 내 왼팔답군.”
“허허허!”
“과찬이십니다, 선배님들.”
세 명의 외로운 남정네들이 서로의 팔을 힘차게 교차시켰다.
돈독한 우애를 나누는 그들의 주접을 본 카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몬 선배야 그렇다쳐도…… 다른 두 분께서는 외로움으로 미쳐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도 마리온은 둘째 치고, 라인벨트가 머물고 있는 정문 부근의 숙소에는 방 한구석이 움푹 패여 있었다.
기나긴 독수공방에 라인벨트가 눈물을 흘리며 애꿎은 방바닥만 벅벅 긁어 댄 흔적이었다!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 카이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 중 마리온과 라인벨트에 걸맞은 짝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딱 3초만 생각해 봤는데 답이 나왔다.
‘……없군. 누가 술주정뱅이와 혼인할 것이며, 속세를 등지고 땅 한 뼘 안 갖고 계신 영감님과 함께하려 들겠어.’
괜스레 코가 시큰거리는 것 같은 기분에 카이가 코를 훌쩍거린 순간이었다.
“아몬, 안에 있느냐?”
갑자기 회의실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카이가 고개를 홱 돌렸다.
‘이 목소리는…… 얼마 전 사교대회에서 들어 본 목소리?’
분명 아몬의 아버지인 카임의 목소리였다.
‘사교대회 때 짧게나마 인사를 나눈 적도 있었지. 이렇게 금세 또 뵙게 될 줄은 몰랐군.’
카이는 자신의 얼굴에 용모변환 마법이 걸려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서둘러 문을 열었다.
“예, 선배님은 계십니다만 누구십니까?”
문을 열며 카임에게 웃어 보인 순간, 카이의 얼굴을 본 카임이 퍼뜩 굳더니 이내 소스라치게 놀라며 냅다 몸을 숙였다.
“황……!”
태자 전하, 그 뒷말이 나오기 직전에 카이는 기겁을 하며 카임을 부축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카임을 끌어안은 채 입을 틀어막고 있는 찰나의 시간, 카이의 머리는 미친 듯이 팽팽 돌아갔다.
‘뭐지왜선배의아버지도내마법을간파하는거지대체이게무슨일이냐미치겠네.’
기나긴 의문이 찰나의 시간 동안 머릿속을 폭풍처럼 휩쓸고, 금세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낸 카이가 카임의 귀에 속삭였다.
“부디 조용히…….”
“읍! 읍읍!?”
“사정이 있습니다.”
“……!”
카이의 심각한 목소리에 카임은 금세 상황을 눈치챘다.
황태자 전하가 무슨 연유에선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카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실에 카이가 안도하며 틀어막고 있던 카임의 입에서 손을 뗀 순간, 아몬이 카이를 향해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이 미친 새끼가 우리 아버지한테 뭐 하는 짓이야!”
카이가 아버지를 와락 끌어안은 채 입을 틀어막고 있고, 아버지는 입을 틀어막힌 채 ‘읍읍’거리고 있는 상황!
냅다 달려든 아몬이 카이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끄에에엑!”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에 카이는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땅에 처박히고.
“……억!”
자신의 아들이 황태자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는 사실에 카임은 단말마의 비명을 뱉으며 풀썩 기절하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