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45)
아카데미가 망했다 145화
제국 최강, 최고를 자랑하는 베스트릭 아카데미.
제국의 어느 누구도 그 사실에 이견을 내놓지 않지만, 최근에 한 가지 은밀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베스트릭 아카데미? 최고의 아카데미지. 그런데 그곳이 아모니스 아카데미와의 교류전에서 졌다는 소문이 있던데?’
‘예끼, 이 사람아. 보나마나 베스트릭 아카데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 아니겠나?’
‘하지만 신문에서도 그러던걸?’
‘예에끼! 보나마나 아모니스 아카데미한테 돈을 받아 먹었겠지.’
‘하하하! 그렇지? 하긴, 다 몰락해 가는 아모니스 아카데미가 어찌 베스트릭 아카데미를 상대로 승리했겠나?’
반쯤 농을 섞어 떠도는 소문들이었다.
소문을 듣는 사람들의 태반도 그 이야기를 전혀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의 학교장인 벤자민, 그리고 베스트릭 아카데미의 관계자들은 그 농담 섞인 풍문을 접할 때마다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소문이 변명할 여지 없는 진실이었으니 말이다.
‘크크크, 그런데 이렇게 설욕할 기회가 생기다니. 아나르엘 학교장, 무슨 정신머리로 우리를 대제전에 초대했는지 모르겠군.’
꼴에 염치라는 게 있는지 시드권 할당이라는 특혜를 부여하기는 했다.
하지만 고작 그것으로는 지난 일의 분노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관계자석에 앉아 있는 벤자민이 고개를 들어 귀빈석을 지키고 있는 아나르엘을 힐끔 올려다봤다.
‘후후후, 여전히 아름답, 아니. 아무튼 이번 대제전의 모든 종목에서 우리 아카데미의 인원들이 시드권을 받고 참가했다. 그리고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학생을 역시 모두 시드권을 받았다. 그 말은 모든 경기에서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처참하게 박살 낼 수 있다는 뜻!’
그렇기에 벤자민은 대제전에 참가하는 모든 학생들을 최고로 선별해 참가시켰다.
‘크크크, 아나르엘 학교장. 이번에야말로 아카데미의 격의 차이를 알려 주도록 하지. 근데 우리 아카데미한테 시드권을 몽땅 준 걸 보면 나한테 혹시 마음 있는 게 아닐까?’
인기 없는 남자의 표본과도 같은 생각을 하며, 벤자민은 경기장 위로 올라서 몸을 풀고 있는 학생을 바라봤다.
이번 검술 경기에 참가하는 베스트릭 아카데미의 학생이었다.
그는 지난번 교류전에 참가했다가 클로에한테 참담한 패배를 맛봤던 올리버였다.
한번 패배했던 전력이 있으니만큼 벤자민은 올리버를 이번 경기에 참가시키지 않으려 했으나, 패배를 맛본 이후 올리버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만을 버리고,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벤자민이 원래 참가시키려던 학생을 꺾고 당당하게 대제전의 참가권을 획득한 것이다.
그리고 관중들의 시선을 받으며 조용히 몸을 풀던 올리버의 눈동자가 한 차례 반짝거렸다.
‘……왔군.’
이번 경기의 상대방이었다.
이미 한번 만나 봤음에도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듯이, 혹은 일절 관심이 없다는 듯 무표정하게 경기장으로 올라온 소녀.
‘클로에 아란…… 지난번 교류전에서 나를 쓰러트렸던 소녀.’
공교롭게도 첫 번째 상대로 그녀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올리버도, 클로에도 시드권으로 올라온 것이니만큼 의미심장한 상황이었다.
‘혹시 아모니스 아카데미도 이전의 싸움을 마무리 지으라 말하려는 것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처음부터 맞닥뜨리게 했을 리는 없겠지.’
아니다!
그냥 대충 자리를 맞추다 보니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아무튼 올리버에게 있어선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추잡한 복수심 따위는 없었다.
그때의 패배로 인해 자만을 버렸고, 스스로의 모자람을 통감하였기에.
‘이번에는 지지 않겠다.’
결연한 표정을 지은 올리버가 검을 들어 올렸다.
마침 심사관이 경기의 시작을 위해 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 * *
-아아!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베스트릭 아카데미의 올리버 선수! 조그만 소녀인 클로에 학생에게 그야말로 개처럼 두들겨 맞고 있어요!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운 경기!
해설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관객석을 가득 울리고, 베스트릭 아카데미의 학교장인 벤자민은 처참한 얼굴로 고개를 떨어트리고 있었다.
‘올리버, 네놈은 돌아가자마자 징계다. 꾸역꾸역 참가권을 얻어서 굳이 대제전에 참가하더니 내 이럴 줄 알았다.’
벤자민은 차마 경기를 지켜볼 수 없었다.
한편, 올리버가 클로에한테 얼마나 처량하게 두들겨 맞는지 관중석의 사람들은 웅성거릴 뿐이었다.
“베, 베스트릭 아카데미의 학생이 저렇게나 밀린다고?”
“말도 안 돼. 베스트릭에서 내보낸 학생이 실력이 떨어지는 거 아니야? 그냥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체면이나 살려 주려고…….”
“아냐. 올리버 바스켓 학생은 나도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야. 어린 나이인데도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실력자라고 했어.”
“어린 나이? 어른 아니었어?”
“어리대.”
학생답지 않게 건장한 올리버의 체격을 보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처절할 정도로 클로에한테 얻어맞던 올리버가 결국 손을 들었다.
“기, 기권! 기권하겠습니다!”
올리버의 포기 선언에 심사관이 황급히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고, 해설이 깜짝 놀랐다는 듯 외쳤다.
-아! 올리버 선수의 기권! 스스로의 모자람을 인정하는 것 또한 기사도 정신이겠지요! 부디 정진하여 앞으로는 더 멋진 모습을 보여 주시길 바랍니다!
일방적인 경기였지만, 해설의 팔자 좋은 해석에 선동당한 관중들은 우레와도 같은 박수와 환성을 보냈다.
그리고 흠씬 두들겨 맞느라 헐떡거리던 올리버가 클로에를 향해 다가갔다.
“이렇게 또 당신에게 지고 말았군.”
“…….”
“다음번에는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거요. 부디 다음에 또 뵙기를.”
지난번의 패배로 정신적인 수양을 깊이 쌓은 올리버였다.
정중하고 엄숙하게 훗날 있을 재전을 다짐하는 올리버를 본 클로에가 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예전에 우리가 만난 적 있었나요?”
“……아.”
올리버는 클로에의 머릿속에 한 톨의 기억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 * *
우물우물, 먹거리 부스에서 팝콘을 입 안 가득 넣고 씹던 아몬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흐음, 클로에도 굉장한걸. 실력이 언제 저렇게 늘었담?’
아몬은 이번 검술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찬찬히 훑어봤다.
그의 판단으로는 이번 대회의 우승 후보는 넷이었다.
‘첫 번째로 레이몬드. 이미 소드 마스터의 실력자인데다 라인벨트 어르신께서 직접 가르친지라 기교면에서는 다른 검사들과는 비교가 안 되지. 그리고 두 번째로는 신성왕국의 성기사 지망생인 우서 다치시오.’
우서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기세는 자신이 평범한 학생 수준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근데 그럼 뭐 하나? 이미 레이몬드한테 졌는데.
‘그리고 세 번째 우승 후보로는 베스트릭 아카데미의 올리버 바스켓. 그런데 이 녀석도 클로에한테 패배했고…….’
생각에 잠겨 있던 아몬이 힐끔 시선을 돌렸다.
네 번째, 마지막 우승 후보인 클로에를 바라보던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클로에를 후보로 내심 올려 둘지 말지를 굉장히 고민했는데, 올리버를 쓰러트리는 것을 보니 우승 후보로 생각해도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클로에는 아직 소드 익스퍼트지만, 검술의 기량 하나만은 소드 마스터의 실력자들을 명백히 웃돌고 있다. 그렇다면 결승에서 레이몬드와 맞붙게 될 것 같은데?’
흥미진진하다는 미소를 지은 아몬이 경기장을 내려다봤다.
마침 다음 경기가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 * *
클로에는 검을 눈높이에 맞춘 채 응시하고 있었다.
대회용으로 만들어진 날 없는 뭉툭한 철검.
목검과는 다르게 마나가 통한다.
그 사실을 염두에 둔 채 생각에 잠겨 있던 클로에가 고개를 돌렸다.
“레이몬드.”
“응? 왜?”
어느새 대기실에는 레이몬드와 클로에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앞서 여러 경기가 치러졌고, 남은 것은 결승뿐.
마지막까지 남은 두 사람의 경기만이 남은 것이다.
“좋은 생각이 있는데, 들어 볼래?”
“응? 좋은 생각?”
고개를 끄덕인 클로에가 설명했다.
그리고 묵묵히 이야기를 듣는 레이몬드의 눈가에 웃음기가 비치기 시작했다.
* * *
이른 저녁, 먹거리 부스에서 사 온 고기볶음과 ‘파인애플 피자’를 저녁 식사 삼아서 맛나게 먹던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맛은 굉장히 안정적이야. 장사도 잘되는 것 같고.’
아무래도 ‘파인애플 피자’는 잘 안 팔리는 모양이었지만 다른 음식들의 수준이 워낙 높았기에 먹거리 부스의 최전선에 서 있는 아카데미의 주방장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먹성만 좋은 게 아니라, 입맛도 꽤 까다로운 브레슬 부학교장의 입에 맞추려고 그렇게 노력했으니 실력도 좋겠지.’
황급히 아무르에서 다른 주방장들을 투입하긴 했지만, 관중들이 워낙 많았기에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아몬이 식사를 이어 가며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결승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클로에랑 레이몬드가 결승에 올랐단 말이지.’
결승전에 오른 두 명이 모두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소속이라니!
‘자랑스럽다! 우리 학생들!’
흐뭇함을 감추지 못한 아몬이 함께 관계자석에 앉아 있는 이들을 훑어봤다.
이미 면식이 있는 두 명, 신성왕국의 일등사제 레이즌과 베스트릭 아카데미의 벤자민 학교장은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떨어트리고 있었다.
“벤자민 학교장님, 좀 드시겠습니까?”
“치우쇼.”
“넵.”
먹다 남은 파인애플 피자를 도로 끌어당긴 아몬이 내심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입맛이 없나 보군. 그나저나 슬슬 시작할 때가…… 아, 시작한다.’
경기장 위로 올라오는 두 명의 학생들.
레이몬드와 클로에를 본 아몬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가 키운 학생들! 이 맛에 교사 노릇을 하는 거지.’
라인벨트가 키웠고, 슬로스가 가르친 두 학생이지만 아몬은 그들을 제 배 아파 낳은 자식들처럼 여기고 있었다.
이윽고 심사관이 두 명의 학생들에게 상호 간의 예의를 갖출 것을 당부하고, 높게 들어 올린 손만 내리그으면 경기가 시작된다.
두 학생의 정정당당한 대결에 기대감은 품은 아몬이 침을 꼴깍 삼킨 순간이었다.
-아, 잠시 안내 말씀 있겠습니다!
갑자기 해설이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자 아몬이 고개를 홱 돌렸다.
신성한 경기가 시작되려는 참인데 무슨 놈의 안내 말씀인가?
-에, 그러니까…… 결승에 오른 두 학생의 건의가 있었습니다. 두 학생은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소속이며, 오랜 기간 서로를 상대로 합을 맞춰 대련을 치렀다고 합니다. 때문에 관중 여러분께 감사의 의미로…….
해설이 쪽지를 툭 내려놓으며 말했다.
-실전을 전제로 하여, 마나의 사용을 허용한 경기를 선보이겠다고 합니다.
열심히 파인애플 피자를 씹던 아몬의 턱이 우뚝 멈췄다.
‘……뭐?’
마나를 사용해서 경기를 치른다고?
다른 관중들은 여타 대회와는 다른 내용에 웅성거리며 기뻐하고 있었지만, 학생들을 아끼는 아몬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람 잡을 일 있어!?’
벌떡 일어난 아몬이 검술 대회의 총 책임자인 슬로스를 향해 외쳤다.
“슬로스 선배! 이게 무슨…….”
“쉿.”
검지를 입에 세운 채 침묵을 강요한 슬로스가 고개를 돌려 턱을 까딱거렸다.
입 다물고 경기를 지켜보라는 뜻이다.
그런 그녀의 눈빛에는 학생들을 향한 묵직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슬로스도 이미 학생들에게 들은 내용인 모양이었다.
“……젠장.”
그래, 학생들을 안 믿으면 누가 쟤들을 믿겠나.
투덜거린 아몬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위험할 것 같으면 당장 뛰어들 겁니다.”
“후후, 마음대로 해.”
“……속 편하시긴.”
한숨을 쉰 아몬이 심각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마나, 소드 오러를 사용한 경기.
검술 대회 결승전, 클로에와 레이몬드의 경기가 시작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