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47)
아카데미가 망했다 147화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한 대결.
어느새 관중들의 얼굴에는 짙은 긴장감이 떠올라 있었다.
조금 전 소드 오러를 사용한 경기를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소드 오러를 사용한 싸움은 이따금, 가끔이지만 기사들의 진지한 대결에서 볼 수 있었던 장면이다.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은 귀족들이 많았기에, 학생들의 소드 오러를 사용하는 대결은 ‘흥미로운 진풍경’ 정도로 취급될 뿐이다.
‘……하지만 오러 블레이드는 다르다.’
마법의 종주는 드래곤이다.
그들이 창조한 작품의 편린을 인간들이 연구 끝에 모방해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나 오러 블레이드는 오롯이 인간들이 빚어낸 작품.
그 결과물의 정점이자 걸작.
그것이 바로 오러 블레이드였다.
꿀꺽-!
그것을 불과 십대에 불과한 어린 학생들이 자신의 것으로 만든 채 서로에게 겨누고 있었다.
대제전에 초청받은 황실 검술 지도관, 볼베르는 흉터로 가득한 얼굴을 씰룩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현역 시절, 대규모 전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이다. 애당초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검사는 흔치 않다. 어느 정도 규모의 전장에서는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기사들이 태반인 경우가 대부분이지. 때문에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기사가 없거나, 혹은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자의 일방적인 학살극이 펼쳐지곤 한다.’
전장의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압도적인 전략병기가 바로 소드 마스터였다.
그리고 그들을 타국보다 월등하게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제국이 제국으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들은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으로 검사로서의 최고의 영예에 도전할 기회를 가진다.’
그랜드소드 마스터.
저 어린 학생들이 그 기회를 거머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그랜드소드 마스터의 등장을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벌떡-!
드르륵-!
관중들 중,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는 기사들이 우르르 몸을 일으켰다.
차마 앉아서 지켜보기에는 너무나도 숭고한 대결.
무거운 긴장감으로 가득한 그 풍경 속에서, 클로에와 레이몬드는 오러 블레이드를 전개한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감히 더러운 돼지가 나를 깔봤어?’
사납게 뜬 클로에의 눈을 응시하며 레이몬드가 가슴팍을 더듬었다.
든든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분신(레이몬드를 본따 만든 손바닥 크기의 인형)이 만져졌다.
‘항상 나를 저런 눈으로 본단 말이지.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안 그래, 레이몬드?’
‘네 말이 맞아, 레이몬드.’
자기 자신의 응원에 힘입은 레이몬드가 전력으로 힘을 끌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오러 블레이드가 용솟음치고, 그 거대한 힘을 검에 휘감은 채 레이몬드가 지면을 박찼다.
콰아앙-!
도약의 거대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가는 지면!
흡사 화살처럼 쏘아진 레이몬드가 클로에를 향해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고, 그와 동시에 클로에의 검이 피드 가문의 교활한 검초를 물 흐르는 것처럼 펼쳐 냈다.
스르르르-!
하단에서 상단으로, 동시에 상단을 훑어 올리며 하단으로 끌어당겨 상대의 힘을 파훼하는 검격.
흡사 팽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속의 회전력을 가미한 클로에의 검이 수직으로 내려찍는 레이몬드의 검을 감싸 안은 채 그 힘을 사방으로 흘려 버렸다.
콰과과과광-!
흩어진 검격의 힘이 갈피 없이 뿜어지며 지면을 사정없이 난자했다.
그 바람에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파편 속에서 눈을 마주친 레이몬드와 클로에가 서로를 향해 싸늘하게 웃어 보였다.
‘후후후, 돼지 따위가.’
‘저, 저저저 눈깔.’
두 사람의 대결은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한편.
주르륵-
아몬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클로에의 놀라운 성장세 때문은 아니었다.
‘경기장, 다 부서지네…….’
실시간으로 개박살 나고 있는 경기장을 보니 라스티아넬이 군침을 흘리며 수리비를 빨아먹으리라는 사실을 예상한 것이다.
* * *
결승의 결과는 의외로 허무했다.
클로에, 레이몬드 두 사람의 공동 우승으로 결정된 것이다.
다소 허무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대결이 무서울 정도로 살벌했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가 뒈져야만 끝날 것 같은 심각한 분위기 때문에 슬로스가 다급히 뛰어들어 경기 종료를 선언했고, 어느 한쪽이 우세하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공동 우승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 바람에 에덴의 상단에서 운영하는 ‘건전하며 합법인 사설 투투’에서 발행한 증명서가 찢어진 채 꽃잎처럼 휘날리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나, 아몬이 알 바는 아니었다.
‘흑흑! 경기장이 왜 흙바닥이 됐지?’
몽땅 박살 난 경기장만이 가슴 아프게 느껴질 뿐!
저만치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라스티아넬이 이쪽을 훔쳐보며 혀를 날름날름 휘둘러 대는 것을 보니 더더욱 가슴이 아팠다.
아무튼 대회의 수상을 위해 단상 위에 세 명의 학생이 올라 있었다.
공동 우승자인 클로에와 레이몬드, 그리고 서둘러 치러진 준우승자 결정전의 승리 학생이었다.
-……하여, 아모니스 아카데미 대제전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 준 세 학생에게 메달과 부상을 수여하겠습니다!
슬로스의 선언에 관중들이 환성을 터뜨렸다.
훌륭한 경기를 보았으니 그들의 환성과 박수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그때 슬로스가 말을 이었다.
-덧붙이자면, 메달과 부상은 드레이크 영지와 도시 에덴의 영주이신 드레이크 남작님의 후원에 크게 힘입었습니다! 드레이크 남작님께도 박수와 환성 부탁드립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관중들의 환성에서 진심이 절반 정도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가식이 채웠다.
‘아니, 슬로스 선배님!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서 반감을 사세요!’
대제전 시작 전에 입에서 침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우리 가문이 지원해 준 덕분에 대제전을 치르는 거다’라거나 ‘세상에는 돈이 전부다. 봐라. 우리 가문이 돈을 지원해 주니까 이깟 허물어져 가던 아카데미가 대제전도 열지 않느냐’라며 세뇌하다시피 강조했기에 저따위 시키지도 않은 짓을 저지른 것일까!
엎어진 우유는 핥아 먹으면 그만이지만, 내뱉은 말은 도로 삼킬 수 없는 일이기에 아몬은 한탄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단상 위, 클로에가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슬로스 선생님! 저 우승했어요!”
그 말에 레이몬드가 질세라 손을 번쩍 내밀었다.
“아니에요! 제가 우승했어요!”
“뭐래? 내가 우승이지.”
“아닌데? 내가 우승인데? 그치, 레이몬드?”
‘맞아, 레이몬드.’
스스로의 우승을 강력 주장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유일한 준우승자는 잔뜩 움츠러들어 찌그러진 깡통처럼 구석으로 밀려났다.
단상 위로 올라와서까지 투지를 잃지 않고 아옹다옹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슬로스가 흐뭇하게 웃었다.
툭-!
음성 증폭 장치를 끈 슬로스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
“네! 선생님!”
“깝치지 말고 상 받고 내려가렴. 짜증 나니까.”
“…….”
평소의 슬로스였다면 결코 내뱉지 않았을 난폭한 발언!
그녀로서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
‘나는 손이 피떡이 될 때까지 검을 휘둘러서 간신히 소드 마스터에 올랐는데, 얘들은 이 어린 나이에 소드 마스터가 되어선 저렇게 치열하게 싸운다고? 인생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야? 둘 다 수저 대신 칼이라도 물고 태어났나?’
스스로가 검술 명가인 피드 후작가 출신이라는 건 까맣게 잊을 정도로 맹렬한 질투!
학생들을 상대로 졸렬한 시기심을 표출한 슬로스가 생긋 웃었다.
“자, 상 받으렴.”
“네…….”
구렁이 앞의 병아리가 되어 버린 두 학생이 오들오들 떨며 상을 넘겨받았다.
곧이어 준우승자도 메달과 부상을 받은 후 단상에서 내려가고, 다시 음성 증폭 장치를 켠 슬로스가 말했다.
-이상으로 시상식을 마치겠습니다!
“와! 우와와와!”
-마지막으로, 이번 대제전의 후원자이신 드레이크 영지와 에덴의 영주이신 드레이크 남작님께서 관중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뭐?
그건 계획에 없었는데?
우르르르-
관중들이 썰물처럼 우르르 대회장을 빠져나가자 또 시키지도 않은 짓을 저질러서 반감만 샀다는 생각에 아몬은 게거품을 물고 말았다.
* * *
“슬로스 선배님.”
“…….”
“꼭 그렇게 했어야 속이 후련하셨습니까?”
슬로스는 침낭에 쏙 들어간 채 드러누워 있었다.
누가 봐도 훌륭한 번데기의 모습이었다.
아몬은 성충으로의 탈바꿈을 꾀하는 슬로스 번데기를 찰싹찰싹 때리며 질책했다.
“말씀 좀 해 보세요. 왜 번데기가 되신 거예요.”
“아야.”
“왜 그러셨냐고요.”
“아야. 엉덩이 때리지 마.”
“선배님 엉덩이는 등에 달려 있습니까?”
연이은 아몬의 질책을 잠자코 듣고만 있던 슬로스가 지퍼를 얼굴까지 쭉 올리더니 퉁명스레 말했다.
“모처럼 네 부모님이 오셨다고 해서 체면 좀 살려 드리려고 그랬다, 왜.”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다니!
“거짓말하지 마세요.”
“…….”
“우리 아버지, 그렇게 사람 많은 자리에 나서는 게 처음이셔서 갓 태어난 강아지처럼 바들바들 떠는 거 못 보셨어요? 관중들이 조금만 덜 빠져나갔으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우셨을걸요.”
체면 두 번 차려 줬다간 아버지가 대성통곡을 하며 데굴데굴 구르는 꼴을 봤을 것이다.
“에휴, 이미 지난 일이니 뭐 어쩌겠냐만…… 아무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대로 등 돌린 아몬이 저벅저벅 걸어가는 와중이었다.
“아, 아몬! 저기…… 잠깐만.”
“……뭡니까?”
슬로스가 별안간 수줍은 목소리로 자신을 불러 세우자 아몬이 뒤를 돌아봤다.
그녀는 침낭이라는 고치 안에 갇힌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치, 침낭 좀 열어 주고 가. 지퍼가 고장 났나 봐. 안에서 안 열려.”
“……에휴.”
자기 자신의 힘으로 번데기를 찢고 나와야 슬로스라는 이름의 나방이 훌륭하게 날갯짓할 수 있으리라!
아몬은 귀를 막고 달렸다.
“야, 아몬! 아몬! 거기 있지? 아, 장난 치지 말라고!”
* * *
보리스는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마법 종목에 참가했을까?’
라스티아넬의 도발에 힘입어 호기롭게 참가하기로 결정하긴 했지만, 후회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마법은 혈통에 크게 구애받는 학문이다.
혈통만 보자면, 빼도 박도 못하게 평민 그 자체인 혈통을 타고난 보리스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뭐, 한 20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귀족의 피가 몇 방울쯤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법 대회에 참가하는 건 전부 쟁쟁한 귀족들이랬어. 아몬 선생님도 참가자 명단을 보니까 이 정도 귀족 군세면 왕국 하나 만들어도 되겠다면서 혀를 내두르셨지.’
그런데 뚝 떨어진 평민 하나가 마법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다.
뒤늦은 후회에 보리스가 태풍 만난 사시나무처럼 떠는 와중이었다.
“보리스 씨.”
“라, 라스티아넬?”
다가온 라스티아넬이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많이 무서워요?”
보리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무서워.”
“……아, 네. 그럼 혹시 상대로 만나면 봐드릴까요?”
“응. 봐줘. 아니, 져 줘.”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승부조작 제안!
라스티아넬이 생긋 웃었다.
“져 주는 건 힘들고요. 만나게 되면 봐드릴게요.”
“……저, 정말?”
“물론이죠. 이래 봬도 드래곤이니, 인간과 마법으로 겨루면 결과가 너무 뻔하잖아요?”
아직도 스스로를 드래곤이라 주장하는 라스티아넬의 기행에도 불구하고, 보리스는 딴죽을 걸 생각조차 않고 그의 상상에 힘을 보태줬다.
“맞아, 맞아. 위대하신 드래곤님 체면이 있지, 한낱 미개한 인간 따위를 상대로 전력을 다할 순 없지?”
“네? 어, 음. 그렇게까진 말 안 했어요.”
“아냐. 드래곤님께서 손짓, 발짓 한 번만 하면 우수수 나가떨어질 천한 인간을 상대하는데 정색하고 덤비면 안 된다는 네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해.”
“그렇게까진 말 안 했다니까요…….”
못 말리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 라스티아넬이 말했다.
“아무튼 상대로 만나게 되면 적당히 해 드릴게요.”
“……정말?”
“네, 물론이죠. 우린 친구잖아요.”
“친구…….”
보리스가 방긋 웃었다.
“그래, 우린 친구야.”
“맞아요. 그리고 친구끼리는 싸우다 보면 정드는 거랬어요.”
“……어?”
“그러니 우리 최선을 다해서 싸우죠!”
순진무구한 얼굴로 주먹을 꼭 움켜쥐는 라스티아넬을 본 보리스의 얼굴에 절망이 떠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