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49)
아카데미가 망했다 149화
“허! 허허헛!”
마리온은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가르친 애제자가 백작가의 자제를 단숨에 쓰러트렸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쏜가!
어지간한 백작가의 자제쯤 되면 작은 아카데미에서 교육받는 것보다 훌륭한 가르침을 받곤 한다.
가정교사, 초청받은 유명인 등에게 어릴 때부터 돈을 펴 발라 집중 밀착 교육을 받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백작가의 자제를 보리스가 단숨에 꺾었단 말이지. 후후, 하긴. 내가 가르쳤으니 당연히 그 정도는 해 줘야지!’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마리온이 자신의 손을 힐끔 바라봤다.
‘아니, 혹시 어쩌면 내가 간절히 소원을 빌었기에 하늘이 감복해서 보리스가 그렇게 간단히 이긴 걸지도 모르겠군!’
마리온이 양손의 손등에 힘줄이 불거질 정도로 힘껏 맞잡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보리스의 승리를 기원했다.
‘하늘이시여! 보리스가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 해 주소서!’
평생 신이라곤 믿지도 않던 마리온은 내친김에 질서신교의 바누민트 여신에게도 보리스의 승리를 빌었다.
‘바누민트 여신이시여! 당신의 용사에게 축복을 내려 주소서!’
그 시각, 바누민트 여신은 질서신교의 신도들이 공물로 바친 초콜릿을 까먹으며 배를 긁고 있었다.
-히히힛! 역시 초콜릿은 맛있도다!
* * *
32강 토너먼트가 성황리에 마무리되고, 하루 안에 모든 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인 이상 16강 경기 역시 쉴 틈이라곤 없이 곧바로 진행된다.
16강 경기의 4번째 경기, 1조의 마지막 순서인 라스티아넬은 조금 전에 보았던 보리스의 경기를 떠올렸다.
‘흐응, 일격에 상대를 장외로 날려 버리다니. 그러면 안 되는데. 제가 뭐 때문에 마법 대회에 참가했겠냐고요.’
모처럼 자신이 고생하기로 마음먹었다.
한데 고생한 보람도 없이 재미없는 결과가 나오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라스티아넬은 자신의 차례가 오자 경기장으로 올라갔다.
상대가 굳은 얼굴로 뭐라 말하며 자신을 도발하고 있기는 한데, 일절 관심을 주지 않고 보리스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던 라스티아넬이 씩 웃었다.
‘이제야 이쪽을 보네요? 드디어 긴장이 풀렸나 봐요.’
보리스도 직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위험 요소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그건 대회에 참가한 순간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긴장감에 파묻혀 있던 아까 전까지의 보리스에게 라스티아넬은 넘을 수 없는 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긴장이 풀린 지금은 넘을 수 없는 벽이 아니라 ‘넘어야 할 벽’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거군요.”
그렇기에 자신을 저렇게나 뚫어져라 응시하면서 관찰하고 있는 것이리라.
혹여나 있을 약점, 파고들 틈을 찾기 위해서.
“좋아요, 그렇게 나와야죠.”
라스티아넬이 재밌다는 듯 키득키득 웃는 와중이었다.
“어이. 내 말을 듣고는 있는 거냐? 뭘 혼자 자꾸 중얼거리고 있어?”
“……응? 아, 죄송합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허! 다른 생각이라고?”
라스티아넬의 상대는 베스트릭 아카데미의 유망주, 드라고 자작가의 에버랜이었다.
32강에서는 신성왕국의 최연소 사제를 쓰러트리고 16강에 당당히 진출했다.
그는 예전 아모니스 아카데미와의 교류전에서 패배했던 마이어의 절친한 친구로, 친구의 설욕을 하고자 대회에 참가했다.
‘그 교류전에서의 패배로 마이어는 내정됐던 견습 황실 마법사의 채용이 취소됐다. 게다가 소속 마탑에서도 크게 혼쭐났다고 했지.’
그러니만큼 에버랜은 이번 경기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라스티아넬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에버랜이 싸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 최대 마법으로 순식간에 쓰러트려 주지. 그리고 다음은 보리스다. 그 천한 평민 핏줄의 놈이 결승까지 올라올지는 모르겠다만.’
곧이어 심사관이 다가왔다.
“상호 간에 예의.”
두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심사관의 경기 시작 선언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에버랜이 마법을 전개했다.
‘받아라! 내 최대 마법! 4서클의 워터 스트라…….’
마법이 발동되려는 순간이었다.
빡-!
관자놀이에 꽂힌 충격에 에버랜의 몸뚱이가 휘청거렸다.
‘……어라?’
조그만 돌멩이에 얻어맞은 듯한 가벼운 충격.
하지만 그 정도로도 준비된 마나가 흩어지기에는 충분했다.
마법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학문이다.
‘제, 젠장! 방금 그건 대체 뭐였지?’
의문은 잠시.
흩어진 마나를 허겁지겁 그러모아 재차 마법을 준비하던 에버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새 새하얀 백색의 화살이 사방팔방을 뒤덮고 있었다.
‘……매, 매직 애로우?’
매직 애로우는 공격 마법이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위력의 1서클 마법.
또한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경기장에 마나 방해진이 깔려 있어 그 위력은 잘 쳐줘도 작은 돌멩이에 얻어맞는 수준의 충격에 불과하리라.
‘설마 방금 날 때린 게 이거였나? 매직 애로우? 이까짓 저급한 마법으로 나를 공격했다고!?’
황당함, 그리고 분노.
어금니를 악문 에버랜이 전력을 다해 4서클 마법, 워터 스트라이크를 발동시켰…….
빡-!
이번에는 턱을 후려치는 매직 애로우!
워터 스크라이크를 위해 모여들던 에버랜의 마나가 재차 산산이 흩어졌다.
휘청거리는 에버랜을 본 라스티아넬이 피식 웃었다.
‘한심하네요.’
매직 애로우는 간단한 마법이기에 발동하는 시간은 다른 마법과 비교하는 게 우스울 정도로 짧고, 여러 개를 만들어 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만큼 위력은 떨어지지만, 애초에 공격을 목적으로 하는 마법이 아니었다.
‘마법을 캐스팅하는 상대의 주의력을 흩뜨려 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물론 간단한 수단이니만큼 대응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간단한 방어 마법이나 윈드 마법만 사용하면 매직 애로우 따윈 얼마든지 막고 날려 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못 한다는 건, 당황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교육 자체가 그런 방향이기 때문이겠죠?’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마법은 단조롭다.
무조건 서클만 높여서 ‘센 거!’나 ‘멋진 거!’라거나 ‘다 때려 부수는 거!’를 위주로 가르친다.
물론 실전적인 응용을 가르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자고로 마법사라면 고서클 마법을 줄줄 읊을 줄 알아야지!’라는 사상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일례가 눈앞에 있는 어린 인간 마법사였다.
‘4서클의 워터 스트라이크. 위협적인 마법인 건 인정하지만 캐스팅하는데 적어도 4초에서 6초는 걸리지 않나요?’
상대는 4초에서 6초라는 시간을 손가락 쪽쪽 빨면서 기다려 주나?
절대 그럴 리가 없다.
‘그런 면에서 마법 교사인 마리온 선생님은 참 좋은 선생님이란 말이죠.’
마리온은 배틀 메이지다.
전장에 서는 마법사가 몇 초라는 시간 동안 캐스팅한답시고 꿍얼거리고 있으면 적군 병사가 특별 포상금을 위해 용맹하게 검을 휘둘러 올 것이다.
물론 배틀 메이지를 호위하는 병사가 있겠지만, 대규모 공격 마법에 휘말릴 것을 염려해 최소로 필요한 병력만을 배치하는 게 보통이다.
즉, 상대가 작정하고 잡으러 오면 버틸 재간이 없다.
‘결국 배틀 메이지의 우수함은 빠른 영창, 빠른 마법의 난사죠. 그런 면에서 마리온 선생님은 홍염의 마귀라는 이명을 얻을 정도로 우수한 배틀 메이지. 호위 병력만 믿고 앉아서 대규모 마법만 영창하는 것으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칭호겠죠?’
쿡쿡 웃은 라스티아넬이 손가락을 휙 흔들었다.
끝까지 그놈의 워터 스트라이크를 포기하지 못하고 주문을 꿍얼거리던 에버랜이 매직 애로우에 얻어맞고 땅을 나뒹군다.
그 광경을 보며 라스티아넬이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보리스가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 마리온 선생님이 심혈을 기울여 가르친 제자인 당신이니만큼,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해낼 수 있겠죠?’
우연의 일치인지, 그 마음속 독백과 동시에 보리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는 건지 감을 잡았다는 기색이었다.
‘후후, 좋아요. 그럼…….’
준비해 둔 매직 애로우가 거의 동날 때쯤, 라스티아넬은 미리 준비해 뒀던 마법을 전개했다.
매직 애로우를 유지하는 것과 동시에 캐스팅할 수 있는 정신력의 마지노선으로 발동 가능한 마법, 2서클의 공격 마법인 파이어 애로우였다.
* * *
“꽤애액!”
파이어 애로우의 폭발 때문에 옷에 불이 붙은 에버랜이 비명을 지르며 경기장 밖으로 구르는 것처럼 뛰어 내려갔다.
그 바람에 경기장 밖에 대기하고 있던 안전 요원이 물을 뒤집어씌우는 둥.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보리스에게는 관심 없는 사건이었다.
‘……라스티아넬.’
라스티아넬의 경기를 지켜보며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사용한 매직 애로우의 개수는 9개.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유지하며 발동할 수 있는 마법의 한계가 2서클.
‘설마 내 수준에 맞춰서 경기를 진행하고 있는 거였어?’
라스티아넬이 치렀던 32강의 경기도 나름대로 치열한 대결이었다.
그의 마법 수준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상대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져야 할 테니까.
그런데 라스티아넬은 그러지 않고 있었다.
철저하게 보리스의 수준에 맞춰서 경기에 임하는 것이다.
‘왜?’
그러한 의문이 들었지만, 보리스는 금세 그 의문을 접어 버렸다.
지금은 그따위 이유를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라스티아넬을 보고 하나라도 더 배우는 수밖에 없어.’
마리온에게 ‘실전적인 마법의 활용’에 대해서 배우기는 했지만, 그것은 결국 입으로 이야기를 듣고 시범을 보여 주는 것을 본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라스티아넬은 대회에서 실전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니만큼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고 기억해야 했다.
‘……그런데 잠깐만.’
문득 라스티아넬과 지난번에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상대로 만나게 되면 적당히 해 드릴게요.’
‘최선을 다해서 싸우죠!’
적당히 해 준다.
최선을 다해서 싸운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라스티아넬이 저렇게 ‘자신의 수준으로 실력을 제한해서’ 싸운다면?
“……하하! 그런 의미였어?”
황당하다는 듯 웃은 보리스가 얼굴을 스르르 쓸어 올렸다.
소년의 눈동자에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순수함이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오늘은 소년이 처음으로 스스로를 넘을 시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