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52)
아카데미가 망했다 152화
반쯤 비어 있는 드넓은 관중석.
너무나도 섭섭하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야만적인 검술과 마법을 숭상하는 더러운 세상의 흐름이 그런 것을 말이다.
아무리 아몬이라고 하더라도,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래서 요즘 젊은것들은…… 나 때는 말이야, 역사를 잊으면 미래도 없다는 선인들의 말씀을 뼛속 깊이 새기고 열심히 학업에 열중했건만…….’
관중 대부분이 아몬보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이라는 걸 감안하면 딱히 들어맞는 말은 아니었지만, 섭섭한 심정을 꼰대질로 토로한 아몬이 한숨을 쉬었다.
‘쯧, 이러나저러나 진행은 해야지.’
가문의 상단에서 새로 공수해 온 음성 증폭 장치(마리온이 부순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변상하기로 했다)를 매만지며 말했다.
-이번 역사학 토론 대회를 맡게 된 아몬 드레이크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자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산한 관중석에서 드문드문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앞으로 제국의 미래를, 나아가서 대륙의 앞날을 짊어질 수많은 인재들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선수 여러분들, 경기장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일정에도, 대본에도 없는 말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 진행자가 쭈뼛거리며 아몬의 옷소매를 당겼다.
“아, 아몬 선생님. 지금 뭐 하시는……?”
하지만 아몬은 괜찮다는 듯 진행자의 손을 가볍게 밀어냈다.
그리고 개회식을 마치고 선수 대기실로 들어가려던 학생들 역시 당혹을 감추지 못한 채 웅성거리며 쭈뼛거린 채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그런 그들의 면면을 확실하게 기억하겠다는 듯이 하나하나 훑어보던 아몬이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관중 여러분, 이 젊은 인재들을 똑똑히 봐 주십시오. 과거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는 법입니다. 그리고 이 젊은 인재들은 과거를 지나간 일로 두지 않고 ‘역사’라는 이름으로 모두에게 전해 주려는 숭고한 의식을 지닌 이들입니다.
아몬의 연설에 장내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그 침묵을 깨는 아몬의 말이 이어졌다.
-이들의 열정 또한 마법이라 불릴 수 있겠지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듯, 역사서에 한 글자 한 글자 새기는 이들의 힘은 그 어떤 검술보다 강합니다. 부디 그 사실 하나만은 잊지 말아 주십시오.
낮지만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지는 힘찬 아몬의 목소리에 관중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 중 몇몇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노인, 중년인, 젊은 남자 할 것 없이 기립박수를 치는 그들은 하나같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다!
그들은 모두 역사학자들이었다!
그들 역시 검술, 마법 대회와 비교하면 한산한 관중석을 보고 가슴 아파하고 있었는데 마음을 울리는 아몬의 연설에 가슴이 벅차오른 것이다!
짝짝짝짝-!
손바닥이 벌겋게 부을 정도로 열렬하게 박수를 치는 역사학자들!
그리고 이해관계를 떠나서, 역사를 향한 아몬의 뜨거운 마음에 베스트릭 아카데미에서 온 역사학 교수도 눈물을 글썽이며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옆에서 베스트릭 아카데미의 학교장인 벤자민이 눈을 부라렸지만, 역사를 향한 뜨거운 피를 끓게 만드는 연설을 듣고도 어찌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후우. 그래참으로 마음씨가 올바른 청년이로다!’
황실에서 파견 나온 수석 사관도 늙은 노구를 파르르 떨면서 아몬의 연설이 가져다준 감격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리고 아나르엘은 아예 감동의 폭풍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흑흑흑, 아몬 선생님이 그토록 자신의 일에 신념을 가지실 줄은……!”
카이도 눈시울을 붉힌 채 코밑을 쓱 훔치고 있었다.
‘후후, 아몬 선배님. 역시 선배님은 참 대단한 인물이십니다.’
그리고 한편, 관계자석에 앉아 단상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슬로스가 마리온을 보며 수군거렸다.
“저거 검술판 저격한 거 맞지?”
“……마법판도 덩달아 저격한 것 같구먼.”
그들은 눈치채고 말았다.
아몬이 진심으로 역사를 사랑했기에 저렇게 일장연설을 늘어놓은 게 아니라 검술계, 마법계에 대한 열등감에 기인해서 저따위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그러니 여러분께서는!
“오오오오!”
-과거의 일을 다룬다는 스스로의 책무에 신념을 가지시고!
“와와와!”
-역사를후대에전한다는숭고한마음으로주눅들지말고어디서나당당하게걷기!
“끼에에에엑!”
관중들을 세뇌하기 시작하는 아몬의 모습에 슬로스와 마리온은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 * *
솔직히 토론 대회가 마법, 검술 대회보다 볼 게 없고, 지루한 건 사실이었다.
앞선 대회들이야 때리고 구르고, 시원하게 펑펑 터지니까 볼 맛이라도 있는데, 토론 대회는 두 놈이 마주 앉아선 혀만 휘둘러 대는 게 전부다.
“봉봉 영지의 참극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기인된 것입니닷!”
“그러나 그 이면에는 백성들의 무지함도 간과할 수 없는…….”
“지금 백성 비하 발언을 하신 겁니깟!”
“예?”
게다가 수준까지 그렇게 높진 않았으니, 아몬은 단상 위에 거만하게 앉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미 역사학자들의 뜨거운 신봉을 받고 있으니만큼, 그의 거만함을 지적하는 무뢰배는 아무도 없었다.
황실의 수석 사관조차 아몬이 저렇게 삐딱하게 앉아 있는 것 역시 현 세태를 풍자하는 것이 아닐지를 내심 궁리하고 있었으니 말 다했다.
그러나 아몬의 속마음은 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떡하지? 더럽게 재미없는데.’
관중석이 한산한 이유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나야 역사에 대해서 좀 아니까 알아듣긴 하지만,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저게 뭔 소리다냐 하면서 나가 버리겠는걸?’
실제로, 오늘도 대제전에서 재밌는 걸 하겠지 싶은 생각에 앉아 있던 일반 관객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반쯤은 텅 비어서 휑하던 객석은 더욱더 빈곳을 늘려 가고 있었다.
‘게다가 토론 대회란 걸 의식해서 그런지 주제도 너무 어려워. 그 지역의 토속 신앙 때문에 백성들의 의식 저변에 깔려 있는 사상이 어쩌고저쩌고. 일부러 우승하려고 어려운 주제를 작정하고 준비한 모양인데?’
역사학자는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학문이라면 흥미를 가질 만한 교육자도 학을 떼며 물러날 주제였다.
그 증거로 관계자석에 앉아 있는 다른 분야의 교수들도 꾸벅꾸벅 졸고 있고, 아나르엘은 아예 침까지 줄줄 흘리며 자고 있지 않은가!
‘……아나르엘은 원래 그렇다 쳐도, 다른 교수들까지 그럴 정도면 말 다한 거지. 이를 어떡한다.’
하지만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아몬이라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뾰족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지금부터 서로 싸워라…… 고 하면 더 재밌겠지만, 그럼 안 되겠지.’
쓴웃음을 흘린 아몬이 경기장을 힐끔 내려다봤다.
두 학생의 토론이 슬슬 끝나려는 모양인지 심사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용을 정리해 주고 있었다.
아몬이 슬픈 눈빛으로 하늘을 응시했다.
‘후후…… 쓸쓸하군.’
하지만 괜찮다.
‘이 쓸쓸한 감정을 나만 느낄 수는 없지.’
내일 있을 수학 경시 대회! 그리고 마지막 날에 있을 과학 경시 대회!
둘 역시 역사학 뺨치게 재미없는 종목이니 관중석은 오늘보다 더 한산할 게 분명했다!
‘크크크, 카이와 피오라의 얼굴이 볼만하겠군!’
그 둘도 같은 기분을 느낄 것이다! 아몬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 * *
다음 날, 대망의 수학 경시 대회가 개최되었다.
둘의 좌절감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 자리한 아몬의 뺨이 파르르 떨렸다.
‘아니, 세상에. 이게 무슨 미친 상황이야.’
관객석은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미어터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걸치고 있는 옷도 하나같이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고급스러운 관중들이 하하호호 떠들며 관중석에 죽치고 앉아 있는 모습에 아몬의 배알은 더 이상 꼬일 수 없을 정도로 뒤틀려 있었다.
‘말도 안 돼. 수학이 역사학보다 인기가 이렇게 많아? 아니, 같은 일반 학문인데 이건 차이가 심해도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아픈 배를 움켜쥔 채 낑낑거리던 아몬이 단상 위에 앉은 카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살금살금 단상 뒤편으로 다가가 카이를 슬쩍 불렀다.
“카, 카이야.”
이제 막 개최 연설을 마친 카이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이쪽을 돌아봤다.
“응? 선배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가득 차다 못해 사람들이 굴러떨어질 것 같은 관중석을 슬그머니 둘러본 카이가 빙그레 웃었다.
“하하,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다. 카이는 안다.
‘후후, 어머니께 말씀드려서 시간이 남는 귀족들을 모두 대제전으로 보내 달라고 말씀드린 보람이 있군.’
이것이 바로 황실의 힘이다!
황실에 조금이라도 연을 대려는 귀족 가문은 발에 차일 정도로 많고, 황후가 그런 부탁을 했다면 말처럼 달려가 자리에 엉덩이를 붙일 귀족 가문은 해변의 모래알만큼 많다!
‘물론 부탁의 대가로 나중에 이것저것 해 드리기로 했지만 말이지.’
훗날 황후가 이것저것 시키는 일 때문에 골치가 조금 아파질지도 모르지만, 뭐 어떤가?
‘관중석이 한산해졌다고 아몬 선배님의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어 드렸으니 참으로 기분이 좋군!’
사실 아몬은 ‘너도 내일 관중석 텅 비어 있는 걸 봐야 할 텐데 미리 알고 끙끙거리며 걱정해라’라는 의도로 말한 것이지만, 그 사실을 카이가 알 리 없었다.
새하얗게 질린 채 갈팡질팡하는 아몬의 모습에 카이가 유쾌하게 웃었다.
‘아몬 선배님이 이렇게 기뻐하시니 보람이 있군!’
물론 아몬은 기뻐하는 게 아니었다.
‘이럴 수가…… 역사학은 이제 다 저물어져 가는 해인가? 지금이라도 수학 공부를 좀 해 둬야 하나? 내가 공부할 때만 해도 역사학은 철밥통이라고 명성이 자자했는데 어찌 이런…….’
‘하하하! 아몬 선배님, 걱정 마십시오! 관중은 제가 꽉 채워 놨습니다!’
‘근데 카이, 이 새끼는 왜 자꾸 실실 웃지? 내가 만만한가? 관중이 더 많다고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건가?’
두 사람의 오해는 더더욱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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