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54)
아카데미가 망했다 154화
과학 경진대회는 나쁘지 않은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다.
1경기부터 시작된 아미의 기권 때문에 관중석의 과학도들은 크게 실망했지만, 다행히도 아미를 제외한 선수들의 수준은 그들을 만족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렇게 이번 대제전은 종합적으로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큰 성과를 남겼다.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완벽한 부활을 제국 전역에 알리게 된 것이다.
‘도시 하나의 후원을 전격으로 받을 수 있는 뒷배! 그리고 수많은 귀족 자제들을 선수로 유치할 수 있는 인지도! 이외에도 경기장 건설이 가능한 자금력 등을 감안하면 어지간한 중소 아카데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
게다가 부수입으로 브레슬이 기획한 먹거리 부스가 대중들의 호평을 받으며, 큰 흑자를 기록했기에 이번 대제전은 여러모로 남는 장사였다.
그 과정에서 아카데미의 주방장이 차라리 날 죽이라며 장기 휴가를 요청했기에 당분간은 알아서 식사를 챙겨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했으나, 브레슬과 아몬에게는 그다지 아쉬운 상황이 아니었다.
-호오, 그래? 그렇다면 당분간 내가 식사를 준비해 주지. 최근에 새로운 음식을 고안하고 있으니 나로서도 나쁘지 않은 일이니 말이야.
마왕, 조아민트가 손수 주방장 업무를 대신해 주기로 선언했으니, 아몬과 브레슬은 얼마나 맛난 음식을 즐길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로 설렐 따름이었다.
언뜻 듣자 하니 ‘오이’라는 박 종류의 작물로 시원한 스프를 만든다거나, 반쯤 말린 명태를 사용해 ‘강정’을 만든다고 했다.
‘하나같이 생소한 음식들이지만, 조아민트가 만드는 음식이 나랑 부학교장의 입맛에는 잘 맞으니 참으로 기대되는군.’
그런 이유로 다른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주방장이 복귀할 때까지는 외부에서 식사를 한다는데, 아몬으로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맛을 모르다니…… 참으로 안타깝군. 인생의 절반을 손해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야.’
그들의 수준 낮은 미각에 대한 동정으로 쯧쯧 혀를 차던 아몬이 힐끔 시선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당장 눈앞의 일부터 처리해야 했다.
여태 생각에 잠겨 있던 아몬이 스르르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자…… 그래서 우리 아미 학생.”
“으으윽…….”
마치 한 마리의 짐승처럼 땅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고 있던 ‘아미’라는 이름의 무언가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오, 오빠, 잘못했어…….”
“오빠? 누가 그쪽의 오빠란 말입니까?”
“으으윽…….”
“제 동생은 참으로 착한 아이입니다. 게다가 똑똑하고, 자신이 맡은 일에 등 돌리지 않는 책임감 있는 아이예요.”
그래. 12번째 세계선의 아미쯤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
아몬이 말을 쏟아 냈다.
“32강의 첫 번째 경기, 경기 시작 17초 만에 기권한 그쪽은 제 동생이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핏줄을 부정하는 아몬의 박한 언사에 아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하하하! 심하다고요?”
영지로 돌아가기 전 아버지가 아몬에게 똑똑히 말했었다.
‘아몬아.’
‘……예, 아버지.’
‘아미가 이 아카데미에 남아 있을 이유가 있는 거니……?’
경기 시작 17초 만에 기권하는 딸을 본 아버지의 진지한 의문!
어머니도 말했었다.
‘아몬아, 죽이지만 않으면 될 것 같구나.’
‘예, 어머니. 그럼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라면 딱 맞겠군요.’
‘그래. 너만 믿는다.’
그 대화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아몬은 동생의 여리디여린 마음을 단단하게 담금질하리라 다짐했다.
교육과 학대 그 사이의 무언가!
아몬이 자신 있는 분야 중 하나였다.
그 대화를 똑똑히 기억하는 아몬이 엄한 얼굴로 호통쳤다.
“이보세요. 반말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누가 보면 서로 아는 사이인 줄 알겠네요? 허 참 내.”
“…….”
“그보다 누가 편하게 바닥에 뺨 붙이고 있으라 했어요? 도로 엎드리세요.”
아미가 낑낑거리며 엎드려 뻗쳤다.
“없어요. 이래선 도저히 없어요.”
“머, 뭐가요……?”
“답이요.”
“…….”
“과학 경진대회에 참가한다길래 드디어 아미 학생이 뭔가 큰 뜻이라도 세웠는가 싶어서 안심했더니, 경기 시작 17초 만에 기권하고 경기장을 내려올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피오라 선생님도 그럴 줄은 몰랐다고 하시대요.”
아몬이 아미의 성적표를 팔랑거리며 하나둘 넘겨 봤다.
“그렇다고 다른 과목에서 두각을 보이는 것도 아니에요. 그나마 과학이 개미 뒷다리 털만큼 나을 뿐이죠.”
한탄하던 아몬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근데 그런 아미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다른 학생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별안간 고개를 치켜든 불안감에 아몬이 얼른 고개를 붕붕 흔들었다.
불길한 예감을 애써 잠재운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여간, 아미 학생의 부모님께서 제게 간곡히 요청하셨어요.”
“어, 엄마 아빠가……?”
“그래요. 최근 드레이크 가문의 내부 사정에 대해서는 들었나요?”
“우리 가문의 내부 사정……?”
“그래요. 우리 가문이 이번 대제전에 큰돈을 투자한 건 알고 있으시죠?”
어느새 아몬은 자기도 모르게 ‘우리 가문’이라며 아미와 자신을 한 혈육으로 묶어 버렸다.
아미가 슬그머니 ‘우리’라고 발언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같은 가문으로 엮는 것에도 성공했겠다, 아미가 슬금슬금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알지…… 그런데 우리 가문의 내부 사정이라니?”
“아미 학생! 왜 무릎을 꿇습니깍!”
“가문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데 어떻게 엎드려뻗친 불경한 자세로 듣겠습니깟!”
하기야 다른 이야기도 아니고 가문의 ‘내부 사정’에 대한 이야기였으니 바닥에 엎드려 드러누운 모양새로 들을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여간 누굴 닮았는지, 호박이 넝쿨째로 담 넘어가듯 스스로를 향한 부조리를 흘려넘기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쳇. 하여간 아미 학생도 아시다시피, 우리 가문이 그렇게 넉넉한 상황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응? 어, 응. 알지…….”
비로소 아미가 조금 주눅 든 얼굴로 쭈뼛거렸다.
조금 안타까운 이야기가 되겠지만, 자식은 부모가 돈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것을 몹시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즉 아몬도 ‘없는 형편’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서 살아왔고, 아미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입장이었다.
그런 마당에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입학한 아미가 아몬의 말에 주눅 드는 것은 당연했다.
“흠흠, 안다면 이야기가 빨라지겠군요. 하여간 없는 형편임에도 우리 가문은 이번 대제전에 많은 돈을 투자했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유는 ‘도시 에덴의 인지도를 높여 부흥을 가속화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에 한해서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드레이크 가문이 미쳐서 없는 형편에 돈지랄을 하는구나.’라고 착각할 것이다.
‘그리고 아임 형이 아직 아미한테는 아버지가 변경백으로 승작이 예정됐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지.’
특정 귀족 가문의 승작은 몹시 예민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소문 하나에 휘둘리고, 작은 꼬투리라도 하나 잡히면 무산되는 일도 많은 물거품과도 같은 안건.
아몬은 그 사실을 익히 알만큼 사리 분별은 하니까 아임이 말해 준 것이지만, 아미의 경우에는 ‘알려 줘도 된다.’는 확신이 없었던 것이리라.
하기야 아직 어린 소녀고, 귀족 세계의 음습함을 잘 모를 테니 아임의 판단이 옳았을 것이다.
‘만에 하나 누구한테 잘못 말했다가 사교계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이래저래 구설수에 시달릴지도 모르지. 아무튼 아미보다는 클로에가 그에 대해서 훨씬 잘 알지도.’
아무튼, 결과적으로 아미는 앞으로 가문에 닥칠 부와 명예에 관해 조금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가문은 없는 형편에 무슨 돈이 있어서 이렇게 크게 투자했대?’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아미 학생, 얼른 대답해 보세요. 우리 가문이 대제전에 투자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 그게.”
대역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떨어트린 채 쭈뼛거리건 아미가 말했다.
아니, 말하려 했지만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지 입만 오물거릴 뿐이었다.
하기야 예상가는 게 있겠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할 것이다.
새빨갛게 물든 아미의 얼굴을 본 아몬이 말을 이었다.
“제가 이유를 말씀드리죠.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 그러신 겁니다.”
“……!”
“우리 가문은 빈말로라도 좋은 가문이라고 말할 수 없죠. 그런 우리의 체면을 조금이라고 살려 주고 싶은 마음에, 부모님께서는 이번 대제전에 큰맘 먹고 투자를 감행하신 거라고요! 없는 살림에…… 자식새끼들이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고 사셨으면 하는 마음에!”
“……흑!”
이번 투자를 ‘우리 자식들 좀 잘 봐 달라’는 의미의 촌지로 냅다 둔갑시킨 아몬이 아미의 어깨를 덥석 움켜쥐었다.
그런 아몬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미 학생!”
“……으, 응.”
아미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아몬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붉어진 채 눈물이 고여 있는 아몬을 눈가를 본 아미의 코끝도 덩달아 빨갛게 물들었다.
그것을 확인한 아몬이 기세를 빌어 내뱉었다.
“아니, 내 동생 아미야……!”
여태 혈육이라는 사실에 선을 그어 부정하다가 내뱉어진 혈육 인정 발언!
아미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빠.”
물기가 역력한 아미의 목소리에 벌겋게 물든 아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누가 봐도 울음을 참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사실 박장대소가 터져 나올 것을 참느라 그런 것뿐이다.
‘젠장, 웃음 참다가 잘못하면 죽겠다.’
그러니만큼 아몬은 단번에 승부를 보기로 했다.
솔직히 이럴 땐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잘하자……!”
아몬의 말에 아미가 눈물을 왈칵 쏟으며 고개를 맹렬하게 끄덕였다.
“응! 나, 이제부터 정말로 열심히 할게……!”
“그래! 열심히 하자, 우리……!”
“흐흑! 응!”
고장 난 태엽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거리는 아미의 모습에 아몬은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치며 화사하게 웃었다.
“그럼 동생아.”
“응!”
아몬이 책상 위에 올려 뒀던 것을 슬그머니 움켜쥐었다.
“앞으로 열심히 하자꾸나.”
“응…… 근데 지금 들고 있는 거 뭐야?”
아몬이 싱긋 웃었다.
“약이야.”
“……어?”
“공부 잘하게 해 주는 약.”
“……?”
* * *
아몬은 ‘공부 잘하게 해 주는 약’을 쥐고 마구 휘둘렀다.
“아미 학생! 검을 휘두르는 자세가 그게 대체 뭡니까!”
“까아아악!”
“좀 더 열심히 휘두르십시오, 노예! 아니지, 학생!”
아몬은 슬로스의 양해를 구하고, 아미 학생의 성적 부진을 타파한다는 명목으로 검술 수업에 참관하고 있었다.
공부 잘하게 해 주는 약, 새끼줄을 꼬아 만든 채찍(안 아프다)은 아몬의 엄청난 완력 때문에 공기를 찢어발기며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토하고 있었다.
부와아앙-!
쐐애앵-!
그것이 아슬아슬하게 아미를 빗겨나가 흙바닥을 때릴 때마다 폭음을 일으키고 있으니, 육체적인 충격은 주지 않더라도 심적으로는 엄청난 중압감과 고통을 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 또한 동생의 성적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
‘동생아, 이렇게 채찍질하는 오빠의 찢어지는 심정을 이해해다오!’
아몬은 입이 찢어져라 싱글벙글 웃으며 채찍(안 아프다)을 마구 휘둘렀다.
“노예! 아니지, 학생! 검을 좀 더 열심히 휘두르도록!”
“께에에엑!”
폭음, 파공음, 비명이 난무하는 와중, 클로에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채찍…… 많이 보던 건데.”
예전에 교류전을 할 때 아몬이 암기를 강요하며 휘두르던 물건이었다.
한편 보리스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크윽! 이, 이 기억은 대체……!”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보리스!
레이몬드도 애써 시선을 피한 채 생각했다.
‘눈 마주치면 나한테도 휘두를라.’
‘맞아. 조심해, 레이몬드.’
‘고마워, 레이몬드.’
라스티아넬조차 아몬이 휘두르는 채찍을 보며 신음했다.
‘저건 나도 맞으면 기절하겠는데?’
서로 다른 생각을 하던 학생들은 이윽고 공통된 결심을 했다.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아몬에 대한 공포와 경외가 자신도 모르는 곳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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