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56)
아카데미가 망했다 156화
아몬은 만신창이었다.
옷은 넝마가 따로 없을 정도로 찢어졌지, 얼굴이고 발끝이고 할 것 없이 무언가가 할퀴고 지나간 생채기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런 아몬이 허리는 뒤로 빼고, 양손은 무언가를 막으려는 듯 앞으로 쭉 뻗은 채 입을 열었다.
“아미야.”
“께에에엑!”
“드디어 인간의 언어를 상실했구나! 부탁이니 진정해라.”
“크르르르…….”
눈을 벌겋게 물들인 채 승냥이처럼 목울음을 흘리는 동생의 흉한 모습에 아몬은 어쩌다가 일을 이렇게 그르쳤는지를 한탄했다.
자신이 대관절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아몬이 억울함을 담아 토로했다.
“아미야! 부디 이성을 되찾고 내 말을 들어 보렴.”
“게르르륵.”
“너한테 거짓말을 한 건 미안하다. 우리 집의 기둥뿌리가 반쯤 뽑혀서 휘청거리는 것도 거짓말이고, 부모님이 빵에 간장으로만 찬을 해서 먹는 것도 거짓말이었다.”
아몬이 눈물을 글썽이며 외쳤다.
“그 모든 것은 너의 성적 향상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단다! 잘 생각해 보렴!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네 머리통, 아니지. 네 머리로 그런 성적이 가당키나 했겠니? 안 그래?”
“그으으으…….”
분노로 흐트러진 이성 속에서도 아미는 아몬의 말에 설득당하고 있었다.
아미도 제 머리가 그리 총명하지 않다는 건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니 아미야, 이 오빠의 심정도 이해해다오. 사…… 사, 사. 아끼는 동생을 낭떠러지로 걷어차 넣는 이 오라비의 가슴도 찢어질 듯 아팠단다!”
차마 사랑하는 동생이라는 말은 내뱉을 수 없었던 아몬이 아미를 아끼는 동생으로 포장하자, 그녀의 흐려진 눈빛에 이성이 돌아왔다.
“크…… 큭, 머리가……!”
“아미야! 드디어 정신이 돌아온 것이더냐!”
감격에 젖은 아몬의 외침에 아미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응, 덕분에…….”
“그렇구나!”
비로소 동생의 이성이 돌아오자 아몬은 크게 기뻐했다.
‘이성이 없다면 두들겨 패는 건 의미가 없다!’
정신도 돌아왔으니, 하늘 같은 오빠에게 감히 도전한 동생과의 서열을 새로이 세워야 할 시간이었다.
주먹을 불끈 움켜쥔 아몬이 아미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럼 이제 맞자!”
아몬이 호통치며 달려들자 아미가 눈을 까뒤집으며 검을 꽂아 넣었다.
“그럴 줄 알았다!”
“켁!?”
검으로 정확하게 명치를 찔린 아몬이 그대로 몸을 웅크린 채 고꾸라졌다.
날 없는 뭉툭한 쇠막대나 다름없는 연습용 철검이라 망정이지, 진검이었다면 아몬은 돌아가신 역대 가주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으리라!
“바, 반칙…….”
“반칙? 웃기고 있네. 오빠가 구라친 게 반칙이지.”
“구, 구라? 너 어디서 그런 못된 말을…….”
오빠만 졸졸 따라다니던(아니다) 그렇게나 곱고 착하던 아이가 저따위 시정잡배들이나 쓸 법한 저질스러운 말을 입에 담다니!
아몬이 몸을 웅크린 채 슬픔으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명치가 너무 아프…… 아니, 가슴이 아프구나. 아미가 저런 말을 입에 담다니. 이것은 필시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저열한 교육이 불러온 결과이리라.’
그 저열한 교육을 몸소 베풀고 있는 아몬이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리고 오빠와 동생 간의 서열을 역전시키는 데 성공한 아미가 벌레처럼 몸을 옹송그리고 있는 아몬의 등을 쿡쿡 찌르는 와중이었다.
“아몬 선생님~ 아몬 선생…… 어머나!”
아미가 검으로 찌를 때마다 푸드득거리고 있는 아몬을 본 아나르엘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한달음에 달려왔다.
“아미 학생! 이게 무슨 짓이에욧!”
“하, 학교장님!?”
아미가 얼른 검을 등 뒤로 숨겼다.
“오해입니다요.”
“오해는 무슨 오해요!”
“사실, 이게 오빠 취향입니다요.”
“아, 아몬 선생님의 취향이라고요?”
아나르엘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래, 존중은 취향 되어야 하는 법.
헛기침을 한 아나르엘이 말을 이었다.
“흠! 흠흠흠, 그래요?”
“그러합니다요.”
“엣흠…… 그럼 아미 학생, 검 좀 잠깐 빌려주실…….”
“취향은 도대체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취향!”
후다닥 몸을 일으킨 아몬이 쓰라린 명치를 붙잡은 채 투덜거렸다.
“쳇, 동생이라고 하나 있는 게 오빠를 무슨 거지발싸개로 알고 있으니 원.”
“나도 둘밖에 없는 오빠 중 하나가 거지발싸개라 너무 슬퍼.”
“이게 이제 좀 컸다고 한마디도 안 지려고 하네.”
“읍! 읍! 느르? 느르흤드?”
입술을 붙잡힌 채 발버둥을 치는 아미와 옥신각신하던 와중, 아나르엘이 얼른 아몬의 팔을 붙들며 말했다.
“아몬 선생님, 그보다 이럴 때가 아니에요.”
“이럴 때가 아니라뇨? 또 올 것이 와 버렸습니까?”
“아뇨, 이번에는 그런 게 아니라…….”
아나르엘이 웬 편지를 주섬주섬 꺼내 내밀었다.
“서신이 한 통 왔어요.”
“학교장님께 온 서신 아닙니까?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
“상관이 있으니까 하는 말이죠!”
귀를 펄펄 휘두르며 역정을 낸 아나르엘이 그것을 펼쳐 읽어 줬다.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드레이크 가문의 가주, 즉 아몬의 아버지가 정식으로 백작으로 승작했다.
그러니 그간 감사하고 있던 인원들을 초대해 축하연을 개최할 테니, 부디 참석하여 주시어 이 자리를 빛내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해서, 아카데미의 모든 인원이 초대받았어요!”
“예?”
아몬이 얼빠진 얼굴로 눈을 끔뻑거렸다.
“아카데미의 인원이…… 모두 초대받았다고요?”
“네. 애초에 얼마 없잖아요.”
“……하긴, 학생과 교사를 전부 합쳐 봐야 12명이니까요.”
무슨 12사도도 아니고 말이야.
시골 깡촌의 학관도 이보다는 인원이 더 많을 것이다.
“어머, 아몬 선생님. 열넷이죠.”
“예? 어째서 열넷입니까?”
수를 잘못 셌나?
하지만 잘못 세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학교장, 부학교장. 그리고 교사 다섯에 학생 다섯. 열둘 맞잖아.’
아나르엘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라인벨트 님이랑, 조아민트…… 님도 있으시잖아요.”
아몬이 침음을 흘렸다.
라인벨트야 자신이 실수로 빼먹었다 쳐도, 조아민트도 포함이란 말인가.
근데 ‘님’이라는 경칭조차 망설일 정도로 꺼리면서 굳이 왜 일행에 포함시키려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이유를 묻자 아나르엘이 투덜거렸다.
“혼자 방치하는 것보단, 데려가서 감시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래도 마왕인데.”
“……마왕이었습니까? 아, 그랬죠.”
맛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부주방장쯤 되는 인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기억을 잘 더듬어 보니 마왕 비슷한 무언가로 불리었던 것 같기도 했다.
“쩝. 아무튼 그렇…… 잠깐만.”
문득 위화감을 느낀 아몬이 눈을 날카롭게 뜨며 말했다.
“학교장님.”
“……네?”
“편지 좀 보여 주시죠.”
“네? 갑자기 편지는 왜요?”
아몬이 예리한 시선으로 아나르엘을 노려보며 말했다.
“저희 아버지처럼 낯을 가리시는 분이 아카데미의 인원 전부를 이렇게 불러 모을 리가 없습니다.”
“앗.”
“그런데 아카데미의 인원 전부를 초대했다? 앞뒤가 안 맞는다 이거예요.”
아몬이 쓰지도 않은 안경을 고쳐 쓰는 시늉을 하며 아나르엘의 손에서 서신을 낚아챘다.
“보나 마나 우리 영지로 놀러 가려는 학교장님의 계획이…… 아니로군.”
편지에는 확실한 아버지의 필체로 적혀 있었다.
괜찮다면 아카데미의 모두가 방문해 주셨으면 감사하겠다는 무척이나 정중한 어조였다.
“음.”
“…….”
“으으음…… 그렇군. 고쳐 쓰셨군요?”
“아니에욧!”
성난 황소처럼, 귀를 뿔과 같이 곧추세운 아나르엘이 도로 편지를 뺏으며 툴툴거렸다.
“실례네요! 도대체 엘프를 뭐로 보고.”
‘우리가 더 이상 서로한테 보여 줄 만한 실례스러운 모습이 남아 있던가?’
“또 무슨 괘씸한 생각을 하고 계시는데요?”
“어라? 어떻게…….”
“그렇게 눈동자를 굴릴 땐 항상 못된 생각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침음성을 흘린 아몬이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다. 대충 찍어서 맞춘 거겠지. 저 풍뎅이처럼 어리석은 엘프가 나의 깊은 속내를 헤아릴 수 있을 리가…….’
“또, 또 이상한 생각.”
“뭐…… 라고?”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한 아몬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나저나 모두가 우리 영지에 방문할 여력이 되긴 합니까? 교육 일정은 어떻게 하고요?”
그 말대로 교육부에서 내려 주는 커리큘럼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아무리 나름대로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아카데미라고 한들 어느 정도는 교육부의 일정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멋대로 아카데미를 휴일로 점철시켜서 놀고먹는 학교장과 교사를 만들지 않겠다는 교육부의 강력한 의지였다.
하여간 아몬의 의문에 아나르엘이 별 게 걱정이라는 듯 말했다.
“에이, 대제전이 끝난 이후로 제대로 쉬지도 못했잖아요? 원래 대제전처럼 큰 행사 이후로 며칠 정도는 쉬어 주는 게 관례라고요.”
“……그래요?”
정말로 그런 관례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나르엘의 말대로 ‘공부 잘하게 해 주는 약’의 효능을 아미에게 시험해 보느라 따로 쉬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게다가 도시 에덴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우리 영지도 얼마나 풍족했는지도 볼 겸…….’
아몬이 힐끔 아나르엘을 보며 말했다.
“설마 이거 연차에서 깝니까?”
“아뇨? 공식 행사니까요.”
“까짓것 갑시다!”
* * *
호쾌하게 승낙하긴 했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아몬이 아는 아버지는 유약한 학자 성향이신지라 사람이 많은 곳을 꺼린다.
‘애초에 대제전 때도 관중들 앞에서 연설할 때 입에 거품 물고 난리도 아니셨는데…….’
그런 분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들을 초대한다고?
‘아니…… 많지는 않지. 그래도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을 십수 명을 이렇게 대뜸 불러 모은다고? 이건 내가 아는 아버지가 아닌데…….’
백작이 되시면서 인격과 자신감도 백작의 그것으로 교체되어 버린 건가?
그렇다고 아나르엘이 사악한 술수를 부린 것도 아닌 게, 아몬에게 온 편지에도 똑똑히 적혀 있었던 것이다.
가급적 아카데미의 모두를 데리고 와 줬으면 좋겠다고.
‘이상하다. 이상해. 아버지는 이럴 분이 아니신데.’
쯧 혀를 찬 아몬이 편지를 덮으며 중얼거렸다.
“뭐, 가 보면 알겠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
* * *
아몬의 아버지, 카임 에덴 드레이크 ‘백작’은 화려한 테라스에 선 채로 와인잔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백작으로 승작한 기념으로 새로 신축한 저택이 참으로 멋들어졌다.
“껄껄껄! 저 도시가 바로 내 도시란 말인가.”
산 아래로 보이는 에덴의 걸출한 풍경이 가슴에 와닿았다.
오만! 그리고 탐욕!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도시의 야경을 둘러보던 카임이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래, 이제 시작인 것이다. 과거 선조들의 드높은 영예를 되돌릴 때가!”
호탕한 카임의 웃음이 울려 퍼졌다.
여태 돈도 없고, 뭣도 없어서 억눌려 있던 카임의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