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57)
아카데미가 망했다 157화
아몬은 우선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드레이크 가문의 축하연을 위해 드레이크 영지로 간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교사들에게는 아나르엘이 직접 소식을 전해 주기로 했는데, 아몬은 내심 교사중 몇 명은 가지 않으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슬로스 선배야 귀찮다고 안 가려 할 거고, 피오라는 나와 사이가 워낙 안 좋으니 때려 죽인대도 안 가려 하겠지. 라인벨트 어르신은 글쎄…… 잘 모르겠군.’
갈 확률이 높은 인물도 적당히 추려 봤다.
‘마리온 선배는 공짜술을 먹을 절호의 기회니 바락바락 기를 쓰고 가려 할 테고, 브레슬 부학교장과 조아민트는 아카데미에 남겨 두면 큰 위협이 될 테니 억지로 끌고 가야 하고…… 카이는 후배된 도리를 지켜야지. 암, 그렇고말고.’
멋도 모르고 축하연에 따라온 카이에게 아르마 산맥의 험준함을 몸소 맛보여 주리라.
아몬은 대제전 이후 카이가 자신을 얼마나 멸시하고 핍박했는지를 결코 잊지 않는다!
‘흑흑, 나더러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관중석을 비우는 재주가 있을 줄은 몰랐다며 얼마나 깔보고 비웃던지. 게다가 눈을 벌겋게 해선 틈만 나면 나한테 벌레를 먹이려고 들곤 했지. 극악무도하기 그지없는 놈 같으니라고.’
사실 카이는 아몬을 비웃지도 않았고 벌레를 먹이려 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카이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탓인지, 그런 악몽을 한번 꿨던 아몬은 현실과 꿈을 단단히 혼동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기억에 혼동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려는 시도조차 않고 있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 벌레를 그렇게 좋아하는 놈이니 나한테도 한번 먹여 보고 싶겠지. 아무튼 우리 영지로 가면 아르마 산맥에서 무박 7일로 자연 체험을 하게 해 주마. 기대해라, 카이.’
아몬이 비열한 미소를 얼굴 한가득 드리웠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본 학생들은 진저리를 쳤다.
“선생님, 왜 그런 표정을 지어요?”
“우리 마음에 안 드세요?”
“엇.”
그러고 보니 학생들을 불러 모은 참이었다.
헛기침을 한 아몬이 비열한 표정을 싹 지우더니 가능한한 선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흠흠, 잠깐 다른 생각을 했단다. 그보다 얘들아.”
“네, 선생님.”
“이번에 선생님네 영지에서 축하연을 하거든?”
레이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기숙사로 드레이크 가문의 승작 소식이 담긴 신문을 가져온 장본인이다.
“네! 선생님의 아버지께서 백작위에 봉해지셨다면서요? 축하드려요!”
“오오! 알고 있었구나.”
드높은 드레이크 가문의 명성이 이런 초라하고 궁벽한 아카데미까지 닿을 줄은!
흐뭇하게 웃은 아몬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너희들도 축하연에 갈 의향이 있는지를 묻고 싶구나. 솔직히 말하자면, 다들 같이 가 줬으면 좋겠어. 너희들은 내 첫 제자니까 꼭 함께하고 싶거든.”
“선생님…….”
학생들이 감동의 바다에 빠져 있을 때, 라스티아넬이 말했다.
“선생님, 저는 남을…….”
“커허험!”
“……갈게요.”
“그래. 예외는 없단다.”
사실 강제였다.
슬금슬금 꺼내던 ‘공부 잘하게 해 주는 약’을 도로 허리춤으로 밀어 넣은 아몬이 흡족하게 웃었다.
“그럼 모두 가는 걸로 알고 있으마. 아마 내일 아침에 출발할 테니 그렇게 알고 준비하고 있으렴.”
“네, 선생님!”
기숙사 건물에서 나온 아몬은 본관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근데 라스티아넬은 왜 안 가려고 할까?’
슬슬 사춘기가 올 어린 드래곤이라 혼자 있고 싶은 걸까?
그러나 아무리 사춘기라고 한들 모두가 참가하는 행사에 빠지는 못된 드래곤으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카셀라그 어르신한테 황금을 받아먹었으니 교사로서 최소한의 인성 교육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아나르엘 학교장이 다른 교사들한테도 물어봤을 텐데, 누가 가고 누가 안 가려나? 그걸 알아야 워프 마법진을 사용할 예산을 정할 텐데.’
지난번에 듣기로는 에덴으로 향하는 공간이동 마법진이 설치되었다고 했다.
규모가 크진 않더라도 예전의 에덴과 영지의 형편을 생각하면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고 할 정도의 쾌거였다.
‘이전이었다면 영지를 싹 다 팔더라도 물건을 전송하는 용도의 손바닥만 한 워프 마법진조차 설치할 수 없었겠지.’
그런 워프 마법진을 설치했으니 실사용도 해 보고 남들에게 유세도 떨어야 하지 않겠는가!
‘후후, 사실 아나르엘 학교장의 워프 마법을 사용하면 돈도 안 들겠지만…… 우리 영지에 이런 것도 생겼다! 그런 자랑도 좀 해 주고 해야 세상 사는 맛도 나고 그러지 않겠어?’
느이 집엔 이런 거 읍제!
그런 꿍꿍이를 지닌 채 본관으로 향한 아몬은 곧 아나르엘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간다고요……?”
“네. 다들 흔쾌히 승낙했어요. 근데 왜 그렇게 놀란 표정이세요?”
“그야…… 슬로스 선배랑 피오라는 당연히 안 갈 거라고 말할 줄 알았거든요.”
그 게을러빠진 슬로스가 흔쾌히 축하연 참석을 승낙했다니.
‘어째서? 설마 학생들한테 공부 잘하게 해 주는 약을 쓰는 걸 보고 덩달아 게으름병이 고쳐진 건가?’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럼 피오라는 왜 간다는 거지? 공부 잘하게 해 주는 약을 통해 교육자로서의 격의 차이를 깨달아 버린 것인가?’
이것도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납득과는 별개로 공간이동 마법진 이용료가 두 명분만큼 추가됐다는 사실에 아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 갈 줄 알고 예산에 넣지도 않으려 했는데 갑자기 추가되니 괜히 돈을 낭비하는 기분이군.’
팔짱을 낀 채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아몬을 본 아나르엘이 말했다.
“또, 또 괘씸한 생각.”
“크흠…… 하여간 모두가 간다니. 시끌벅적하겠군요.”
“그러게요. 예전에 아몬 선생님의 영지로 갔던 현장체험학습이 생각나네요.”
그 말에 ‘그런 일도 있었지’ 하며 푸근하게 웃던 아몬의 얼굴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었다.
‘지난번에는 가자마자 몬스터들이 파티다! 하면서 달려왔었는데, 설마 이번에도……?’
늘 낭떠러지 아래로 처박히던 자신의 불운을 생각하면 이번에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아몬은 애써 그 불길한 생각을 접었다.
‘그래, 우리 아버지도 이제 백작이야. 백작령이라고, 백작령. 아버지가 어느 안전이라고 몬스터가 날뛰느냐며 호통 한번만 내질러 주면 몬스터들도 자기들이 설칠 자리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냉큼 물러가겠지?’
아몬이 호탕하게 웃었다.
* * *
“몬스터다!”
“제길! 또 습격인가!”
아침 댓바람부터 일어난 몬스터들의 습격 때문에 드레이크 영지에 난리가 났다.
모처럼 살림을 핀 영지민들은 예전이랑 비교하는 게 우스울 정도로 좋은 옷과 맛난 음식을 먹으며 인생의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었으나 도끼를 들고 몬스터와 싸워야 한다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삶의 애환을 느꼈다.
“젠장! 요새는 잠잠하던 몬스터들이 왜 또 난리인 거야!?”
“이게 얼마만의 습격인지도 모르겠네!”
역정 섞인 투덜거림을 뱉으며 몬스터들을 베어넘기는 영지민들의 선두에서 달리던 아몬의 얼굴은 창백했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자신의 재수가 옴붙어도 확실하게 옴붙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두 번이라야 ‘운이 안 좋군’하고 웃어 넘기지, 자신이 영지에 돌아올 때마다 몬스터의 습격이 일어나는 꼴을 보아하니 자신에게 몬스터를 불러 모으는 체취라도 풍기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내가 어릴 때도 몬스터의 습격은 꾸준히 있었어. 하지만 내가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부임한 이후로는 몬스터의 습격이 뜸해졌다. 그런데 내가 돌아올 때마다 이 지랄이라는 걸 보면, 확실하다.’
자신이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번 생이 이따위 이꼴이란 말인가!
아몬은 서러움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몬스터들을 베어 넘겼다.
* * *
다행히 몬스터의 습격을 막아 내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축하연에 참석하기 위해 동행한 아카데미의 밥버러지들이 모처럼 밥값을 해 준 것이다.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슬로스, 홍염의 마귀라 불리는 마리온, 8서클 마법사임과 동시에 소드 마스터의 정점에 오른 실력자인 카이, 펜도리안 공작 가문 출신의 피오라까지!
거기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라인벨트까지 동행하고 있었으니, 습격을 강행하던 몬스터들은 무리의 절반 이상이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고 황급히 배를 까뒤집으며 태세전환을 했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스스로의 기구함에 극도로 분노한 아몬의 함성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몬스터들을 모조리 잡아 죽입시다! 아주 그냥 싹을 말려 버립시다!’
눈물을 흘리며 영지민들과 아카데미의 교사들에게 호소하는 아몬 덕분에 영지를 습격한 몬스터들의 무리는 그날 해골 3개를 받고 말았다.
그리고 전투가 끝난 후, 아몬은 몬스터의 사체 위에 앉은 채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이럴 순 없어. 내가 영지에 올 때마다 이런 꼬라지가 일어난다고?’
아몬이 저멀리 보이는 영지의 경계를 바라봤다.
아까 영지에 막 도착했을 때 영지민 하나와 나눈 대화가 아련하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이구, 작은 도련님 오셨습니까? 아하! 저게 뭐냐구요? 흐흐, 우리 영지도 이제 형편이 좀 나아져서 영지 경계에 나무 울타리 대신 돌담을 쌓을 수 있게 됐…… 몬스터의 습격이다!’
영지민이 기쁜 얼굴로 자랑하던 돌벽은 처참하게 무너져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어흐흑!”
머리를 쥐어뜯으며 오열하던 아몬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어이구, 오랜만에 몸을 좀 썼더니 허리가 영 말을 안 듣는구먼.”
“……라인벨트 어르신.”
아몬과 함께 선두를 달리며 신들린 것처럼 몬스터를 휩쓸던 라인벨트가 괜히 허리를 통통 두들기며 말했다.
“근데 뭐가 그리 슬퍼서 구슬피도 우느냐?”
“그것이…….”
제가 영지에 올때마다 영지가 개박살 나리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렇게 말할 순 없는 일이었다.
“별일 아닙니다. 그저 영지에 이렇게 환난이 닥치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플 따름입니다.”
“흠. 그래?”
라인벨트가 눈을 희번득 빛냈다.
“그럼 내가 영지민들한테 검술을 좀 가르쳐 주랴? 그리하면 이깟 몬스터들이 한 무더기로 덤벼도…….”
“제가 제자가 되면 말이죠?”
“크흠.”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본 아몬이 한숨을 쉬었다.
이제 백작가 아들내미가 되어 형편 좀 펴 보려는데 미친 거지 영감 밑에서 썩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닥친 환난을 스스로 헤쳐 나가지 못할 영지민들이 아닙니다.”
“근데 왜 그렇게 쳐 울고 있어.”
라인벨트가 뒤를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다른 교사들이 저마다 수군거리며 아몬을 훔쳐 보고 있었다.
“네가 나라 잃은 것처럼 하도 구슬피 울어 대니 다른 놈들이 좀 물어봐 달라지 않냐.”
그런 이유로 가장 웃어른인 라인벨트가 등 떠밀린 것이다.
그 내막을 깨달은 아몬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렇군요. 괜히 신경 쓰이게 했나 봅니다.”
“그래.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니긴 했으니, 슬슬 진정됐으면 돌아가자고.”
“예, 어르신.”
몸을 일으킨 아몬이 일행과 합류했다.
어쨌든 지금 자신이 직면한 문제는 잠깐 고민해 본다고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앞으로 내가 영지로의 발길을 끊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야.’
평생 자라 온 고향이었다.
그러니만큼 괜한 위협에 시달리는 걸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인간적으로, 평생 자라 온 고향에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쉽사리 인정하기 힘들었다.
‘몬스터의 습격이야 이 정도 인원이 있다면 가볍게 막아 낼 수 있으니까…… 조금만 찬찬히 생각해 보자.’
애써 마음을 추스른 아몬은 일행들과 함께 영지로 돌아갔다.
그런데 영지로 돌아온 아몬은 묘한 사실을 깨달았다.
영지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위풍당당한 돌담에 시선이 빼앗겼기에 겨를이 없었건만, 저만치 보이는 언덕 위의 커다란 저택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사실에 의아함을 느끼는 와중이었다.
펄럭-!
웬 호화스러운 망토를 펄럭이며 나타난 아버지가 양팔을 활짝 벌리며 외쳤다.
“내 아들, 드레이크 백작가의 차남! 아몬 드레이크가 왔구나!”
껄껄 웃으며 거만한 자태로 외치는 아버지의 모습에 아몬의 낯짝이 시퍼렇게 물들었다.
‘대체 아버지한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안 그래도 갑작스러운 고민에 머릿속이 어지러웠는데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또 하나의 문제가 늘어난 듯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