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58)
아카데미가 망했다 158화
사람이 바뀐 것처럼 거만해진 아버지의 모습에 아몬의 뺨이 파르르 떨렸다.
잠깐 못 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버지가 저렇게 되었단 말인가!
‘백작위라는 거대한 감투가 아버지를 저렇게 만든 것일까? 아니지, 겉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 그냥 단순하게 기분이 너무 좋으신 나머지 흥에 겨우셔서 잠깐 저러시는 걸지도 몰라.’
그리 판단한 아몬이 아버지, 카임을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아이고, 아버지! 대제전 때 뵙고 이게 얼마만…….”
다소 격의 없는 아몬의 말투에 카임이 눈을 부라리며 일갈했다.
“갈! 아몬, 이놈! 대드레이크 변경백의 차남 된 자가 어찌하여 손님들 앞에서 이토록 방자하게 입을 놀리느냐!”
“…….”
크게 대노한 카임의 호통에 아몬의 얼굴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X됐다. 뭐가 그르쳐도 단단히 그르친 것 같다.’
아버지가 백작위에 봉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데 속되게 말해, 이렇게 ‘뽕’에 차서 거만하게 변하신 걸 보니 조만간 왕이라도 된 것처럼 행세할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치밀었다.
‘그럼 우리 가문의 풍비박산은 시간문제인데…….’
그게 아주 허황된 억측이 아니라는 게 더더욱 문제였다.
아버지는 백작위에 봉해졌지만, 아르마 산맥이라는 험한 국토를 방위하는 영지의 특성상 ‘변경백’의 명예로운 직위까지 함께 수행하게 된다.
‘변경백은 소유한 영토에 한해서 왕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막대한 권력을 부여받는다. 황실에 헌상해야 할 공물을 면제받는 건 물론이고, 영지 내부에서 군대 규모의 사병을 육성하는 것까지 가능하지.’
영토의 국경을 수호하는 입장이니만큼 불가피한 혜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군주가 변경백을 의심의 눈으로 보는 결과와 이어진다.
공물의 면제로 인한 자금 확보, 사병의 육성으로 인한 군사력의 증강은 당연히 군주에게 상당한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혜택을 주는 대가로 명분 있는 감시의 눈으로 변경백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큰 힘에는 큰 대가가 주어진다는 말이 바로 그 뜻이지.’
그러니만큼 변경백은 남들 보는 눈앞에서는 ‘황제 폐하, 너무 좋아, 황제 폐하, 너무 사랑해!’라며 직접 작사 작곡까지 해서 열창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대체 무슨 꼬라지란 말인가!
“이노오옴! 내 그토록 대드레이크 가문의 차남으로서 예와 격을 다하라 일컬었거늘! 어찌된것이아비말은귓등으로도안듣고.”
“억, 어어억……!”
“내 이 죄는 추후 엄히 묻겠다!”
준엄하게 아들의 방자함을 꾸짖는 아버지의 모습에 아몬이 뒷목을 잡았다.
말하는 것은 이미 일국의 왕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변경백이라는 지위는 황제에게 있어 양날의 검이다. 변경백이 정말로 충성한다면 황제의 든든한 검이 되는 거고, 혹시 딴 마음을 먹으면 호시탐탐 뒤통수를 노리는 대역죄인이 되는 거다.’
때문에 변경백이 됐다면 당분간은 바짝 엎드려서 가훈이 공손, 청렴, 예의인 것처럼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근데 아버지께서 손님들 앞에서 저토록 위풍당당하게 구시다니!
역사학 교사인 아몬은 여태 있었던 변경백들의 말로가 둘 중 하나였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작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다.
‘변경백? 반역자 아니면 가문의 충신 둘 중 하나잖아!’
그 중에서도 ‘반역을 일으킨 모 뭐시기가 참수되어 효수를 당했다!’는 글귀만 역사서에 달랑 한 줄 남긴 변경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많고 많은 역대 변경백 중 현대까지 가문을 남긴 것도 몇이 안 된다.
그중 하나가 뒤편에서 이쪽을 흥미롭다는 듯 응시하고 있는 피오라의 가문인 펜도리안 공작가였다.
7대 황제의 심복으로 시작해 변경백 시절을 거친 후 황실의 충실한 번견으로 자리매김한 바로 그 가문!
‘그런 펜도리안 가문의 피오라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변경백으로 봉해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람이 저렇게 바뀐 모습을 보여 주시다니…….’
활활 타오르는 드레이크 가문의 깃발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던 아몬은 눈물이 줄줄 흘러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눈물샘을 봉쇄한 아몬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니다! 아직은 수습할 수 있다.’
아몬이 아버지에게 눈을 찡긋거리며 황급히 말을 이었다.
“하, 하하하! 아버지, 그보다 손님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권력은 권력으로 짓누른다!
아몬은 일행 중 당당한 권세를 누리는 이들을 들이밀기로 했다.
‘아버지, 진짜 권력자들을 보고 정신을 되찾으세요!’
아몬이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자작인 마리온 선배로는 급이 떨어진다! 게다가 친 황실 가문이라 해도, 스트로 자작가 출신인 카이도급이 너무 떨어져!’
애초에 카이는 잠깐 영지 밖을 둘러보느라 조금 늦게 오기로 했었다.
그렇기에 아몬은 가장 먼저 슬로스라는 이름의 몽둥이를 휘둘렀다.
“명망 높은 피드 후작가의 사. 랑. 받. 는 따님이신 슬로스 피드 아가씨입니다!”
피드 후작가의 권력을 깨달으라는 듯, 한자 한자 뚝뚝 끊어지는 아몬의 소개에 카임은 껄껄 웃었다.
“허허허! 반갑소, 본인은 이곳 드레이크 영지의 변. 경. 백. 인 카임 에덴 드레이크라 하오! 영애께선 본 변경백과 이미 구면이지만, 다시 한번 잘 부탁드겠소!”
“예? 아, 어. 예.”
아몬이 입을 쩍 벌렸다.
피드 후작가를 내세웠는데도 아버지는 오만해 보일 정도로 당당했다.
애초에 변경백 정도면 권세 약한 후작가와 비빌 정도이긴 하지만, 얼마 전에 변경백에 봉해진 아버지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이런 젠장! 피드 후작 본인을 데려왔어야 됐나?’
후작위를 승계 받지도 못할 슬로스로는 힘이 모자랐던 모양이다.
어금니를 꽉 깨문 아몬이 다음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분은! 펜도리안 공. 작. 가의 영애이신 피오라 펜도리안 아가씨입니다!”
제국의 수호자!
펜도리안의 이름이라면 아버지도 겸손을 되찾으실 터!
“크하하하! 반갑소이다! 펜도리안 공작가의 위명은 본 변경백도 귀 아프도록 들었지! 부친께서는 강녕하신가?”
“예? 아, 예. 뭐.”
펜도리안 공작가라는 몽둥이도 큰 효과는 없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펜도리안 공작 전하랑 한 번도 못 만나 보셨을 텐데 자주 본 것처럼 말씀을 하시네?’
턱을 부들부들 떨던 아몬이 마지막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 이분은 제국 4대 기사 중 한분이시자 창천검왕 라인벨트 나마크 어르신으로…….”
그 말에 카임은 어깨가 하늘에 솟을 것처럼 우쭐해져선 광소를 터뜨렸다.
“껄껄껄껄! 어르신의 하늘에 닿을 듯한 명성은 참으로 많이 들었습니다! 한데 어르신께선 아직 어느 가문에 적을 두시지 않은 걸로 들었습니다만, 혹여나 저희 가문에 의탁하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엉? 어…… 관심 없네.”
아예 라인벨트에게 작위가 없다는 걸 언급하며 가신으로 들이려는 미친 행보까지!
아몬의 다리가 휘청휘청 떨렸다.
‘아, 아아. 보인다. 우리 가문의 깃발이 활활 불타오르는 게 보인다.’
불타는 깃발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은 환각에 아몬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떡하지? 내 기어이 불효자의 오명을 짊어져야 하나?’
패륜을 저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
아니, 막지 않는 게 오히려 패륜이다.
결심한 아몬이 주먹을 불끈 움켜쥐어 ‘아몬 특제 핫스파이시 효자 펀치’를 아버지에게 대접해 드리려는 찰나였다.
“어휴, 길이 왜 이리 험한지 원…….”
영지 밖을 둘러보는 것을 마친 카이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뒤늦게 나타난 그를 본 아버지가 입을 쩍 벌렸다.
“……꺾!?”
아버지는 카이를 이미 한번 만나 본 적 있었다.
아몬의 후배 교사라는 탈을 뒤집어쓰고 있는 제국의 황태자 전하.
카이야스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것을 본 카임의 위풍당당한 태도가 삽시간에 쪼그라 들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뜨거운 효자가 휘두른 주먹이 아버지의 턱에 작렬했다.
* * *
아나르엘을 비롯한 아카데미의 비전투원들은 몬스터의 습격 때문에 먼저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들것에 실려 돌아온 카임의 모습에 아나르엘이 펄쩍 뛰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카임 백작께서 왜 이러시는 거예요?”
눈을 까뒤집은 채 기절한 카임의 눈을 뒤집어 보는 둥, 부산을 떨던 아나르엘의 모습에 아몬이 참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이거 아무리 봐도 주먹으로 맞은 것 같은데요? 아몬 선생님, 설마……?”
하다 하다 패륜까지 저지를 줄은 몰랐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나르엘의 눈빛에 아몬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진짜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요. 그보다 학교장님.”
“뭔가요!”
아몬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저희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서는 제가 대신 깊이 사과드리겠습니다.”
“네? 무슨…….”
“그, 아버지와 이미 만나시지 않았습니까?”
카임에게 회복 마법을 펼쳐주던 아나르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먼저 만나 뵙기는 했죠? 근데 그게 왜요?”
“그…… 아버지께서 예전과 달리 엄청 거만하게 행동하시지 않았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아나르엘이 다시 한번 고개와 귀를 갸웃거렸다.
“그렇긴 하셨죠? 근데 그게 왜요?”
“……아니, 그게, 뭐시냐. 갑자기 그러시면, 남들이 보기에 안 좋지 않겠습니까? 변경백이라는 자리가 자리인지라.”
아몬의 말에 브레슬이 끼어들었다.
“아몬 선생이랑 똑 닮았던데요 뭘.”
“……뭐라고요?”
“예전에 교무부장 어쩌고 할 때랑 똑같아서 뭐. 익숙하더군요.”
그 말에 아몬이 고개를 휙 돌려 다른 교사들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슬로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몬, 쟤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구나 싶더라.”
마리온도 끌끌 웃으며 말했다.
“뭐, 며칠이나 몇 주 저러다 말겠지 싶더군.”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라인벨트가 말했다.
“자네, 혹시 교무부장 내정 어쩌고 하면서 나더러 ‘어디 천한 늙은이가 아몬 교무부장님의 길을 막느냐!’ 하면서 행패 부리던 것 기억나지 않나?”
“제가요? 언제요?”
“허, 자각조차 없는 모양이군.”
아몬이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 말대로, 아카데미의 다른 사람들은 아몬의 아버지인 카임이 오만방자하게 구는 것이 남 같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때문에 아몬은 안도감이 드는 한편, 그렇다고 이대로 아버지를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고, 이러다가 혹시 남들 눈에 보이기라도 하면 크게 경을 칠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한 아몬이 여태 잠자코 있는 카이를 힐끔 바라봤다.
그는 세상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젠장, 역시 카이 저 녀석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로군.’
아몬이 알기로 카이는 황실의 심복 가문이다.
그것도 황태자와 황후마마의 명을 직접 수행하는 심복 중의 심복.
그런 카이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은, 아몬의 걱정이 쓸데없는 기우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
“카, 카이야.”
“……예, 아몬 선배님.”
카이에게 다가간 아몬이 소곤소곤 말했다.
“혹시 내가 하는 걱정이 네 생각과 일치하고 있니?”
“……변경백의 무게와 황실의 견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황실의 심복인 카이도 그 부분을 유의 깊게 보고 있었구나.
한숨을 푹 내뱉은 아몬이 손짓했다.
“잠깐 둘이서 이야기 좀 하자.”
“……그러죠, 선배님.”
아몬과 카이가 슬금슬금 저택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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