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59)
아카데미가 망했다 159화
카이는 세상 심각한 표정이었다.
지금의 그는 아카데미의 교사이자 아몬의 후배인 ‘카이’가 아니라 ‘황태자 카이야스’로서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히 아몬 선배님의 우려는 정확하다. 변경백은 혜택이 큰 만큼 책임감도 커다란, 일종의 양날의 검이다. 황실에 있어서도, 변경백에 있어서도 상당한 부담감을 안고 가는 셈이지.’
그리고 자초지종을 들은 ‘황태자 카이야스’도 갑자기 돌변한 카임의 ‘거만함’은 그다지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황제 폐하께서 드레이크 백작에게 변경백의 직위를 수여하신 이유는 카임 백작이 드레이크 가문의 사람답지 않게 겸손하고 소탈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변경백에 봉해지자마자 사람이 바뀌었다는 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지만, 이토록 단기간에 확실하게 바꿔 버릴 거라곤 그 말을 처음 한 사람도 알지 못하리라.
그 사실에 황당함을 느끼는 한편, 이번에는 아몬의 후배인 ‘카이’로서 큰 위기감을 느꼈다.
‘게다가 상당히 의미심장한 상황이다.’
문득 예전에 사교 대회 때 느꼈던 위화감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황제 폐하가 ‘드레이크 가문’을 상대로만 난폭한 면모를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무도 대회 당시 황제 폐하가 아몬의 아버지를 상대로 보여 준 모습은 그 가설을 무너뜨려 버렸다.
‘당시 아몬 선배님의 아버지가 보여 주신 모습은 겸손함과 연약함.’
평소에 아몬이 보여 주는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그리고 ‘평소의 아몬’과 오늘 본 ‘아몬의 아버지’가 보여 준 공통분모.
“그렇군요.”
“응?”
“역시 인성이 문제였던 거군요.”
갑자기 카이가 인성을 들먹이자 아몬이 눈을 부라렸다.
“야 이 쌔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의 아버지한테 인성을 운운해!?”
아몬이 불끈 쥔 주먹을 붕붕 흔들었다.
이 주먹에 맞고 싶지 않다면 똑바로 해명하라고 말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카이가 얼른 물러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니, 선배님. 오해입니다.”
“뭔 또 오해여.”
“일단 한번 들어 보십시오.”
카이가 설명을 시작했다.
사교 대회 때 보았던, 아버지를 향한 황제 폐하의 부드러운 태도.
그와 상반된, 아몬을 향한 황제 폐하의 심술궂은 태도.
“……하여, 황제 폐하를 자극하는 역린은 ‘인성’으로 추측됩니다.”
카이의 설명이 끝나자 아몬의 얼굴이 삽시간에 썩어 버렸다.
“그 말은 즉, 내 인성이 개판나서 그런 거라고? 황제 폐하는 내가 인성이 못나 빠진 걸 알고 그러시는 거고?”
“……옙.”
결국 아버지를 향한 모욕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모욕이었다!
돌고 돌아 욕을 먹은, 그것도 후배에게 ‘네 인성은 박살 났다.’는 소리를 들은 아몬의 눈이 뒤집혔다.
“카이! 네가 정녕 아르마 산맥의 험준함을 무박 28일로 겪고 싶나 보구나!”
“선배님! 가설, 가설입니다! 가설이요!”
가드를 올리며 훌쩍 아몬에게서 물러난 카이가 다급히 말했다.
“만약에 이 가설이 맞다면 나중에 큰일 날지도 모른다고요!”
“크르르르…….”
“정말, 정말로 만약에 선배님의 아버님께서 폐하의 어전에서도 저러셨다가는 큰일 나지 않겠습니까? 그랬다가 ‘갑자기 드레이크 백작이 좀 건방져졌구나’하고 넘어가실 게 아니라, 아몬 선배님께 그러시는 것처럼 대하실지도 모른다고요!”
“크르, 크르르…….”
속사포 같은 카이의 설명에 아몬의 사나운 기세가 누그러졌다.
하지만 의문이 있었다.
“그르르…… 근데 네 말대로라면 이미 늦은 거 아니냐? 사람 인성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바뀌고 그러는 게 아니잖아.”
“……바뀌었잖아요.”
“아.”
하필이면 그 증거가 자신의 아버지라니.
“게다가 황제 폐하는 분명히 아몬 선배님의 아버님께 호의적이셨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자중하시면…… 마음만 조금 바꾸시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군.”
침음성을 흘리며 카이의 의견에 동도하던 아몬이 문득 말했다.
“근데 잠깐만. 네 가설에는 아주 중대한 오류가 있다.”
“예? 또 뭡니까.”
“새끼가 또는. 하여간 그 논리대로라면, 황제 폐하가 나를 싫어하실 리가 없잖아?”
“……예?”
아몬이 자신의 가슴팍을 짚었다.
“나처럼 겸손하고.”
“허.”
“인성 바르고.”
“허허허.”
“착한 청년이, 근데 이 새끼가 왜 자꾸 웃지?”
넋 나간 사람처럼 허허 웃던 카이가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
“선배님, 제가 길게 말씀드릴 필요 없겠지요. 다른 일행 분들에게 한번 여쭤보고 오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너 여기서 딱 기다려라. 아르마 산맥이랑 하나 될 준비하고 있어.”
“예, 선배님. 멀리 안 나가겠습니다.”
잠시 후, 아몬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알쏭달쏭한 얼굴로 돌아왔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선배님.”
“내 인성이 그렇게 X창 났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린데…….”
“선배님, 이제 그만 인정하실 때도 됐습니다.”
놀랍게도 일행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아몬의 인성에 하자가 있음을 선언했다.
우선 아나르엘은 그리 말한 후 덧붙였다.
‘아몬 선생님, 정말 죄송하지만…… 엘프는 거짓말을 하지 못해요.’
식후에 한 번 빈도로 거짓말을 일삼는 아나르엘이었기에 아몬은 그녀의 말은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브레슬의 경우.
‘아몬 선생의 인성이 바닥을 기는 건 아무르 사람 모두가 알 겁니다.’
아몬은 타락한 다크엘프의 말 따위는 믿지 않는다.
그리고 슬로스는 언제 가져온 건지 모를 침낭 속에서 꼬물대며 말했다.
‘네가 여태 나한테 저지른 짓 절반만 우리 아버지한테 말해도 넌 우리 집 뒤뜰의 돼지우리에 먹이로 뿌려졌을 거야. 알아?’
게으름에는 약도 없다는데, 게으름뱅이가 하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껄껄껄! 자네 인성이…….’
‘아, 말 걸지 마십쇼.’
마찬가지로 주정뱅이와 망나니의 말 역시 믿을 게 못되었다.
그리고 라인벨트도 지나가며 한마디 내뱉었다.
‘이제 막 떠올랐는데, 네놈이 4대 기사 회합에서 자네가 보여 준 왕이라도 된 것처럼 굴던 거만한 모습…… 아까 본 드레이크 백작과 똑 닮았더군.’
조아민트도 은근슬쩍 끼어들어 말했었다.
‘바누민트마저 두들겨 팰 때 알아봤느니라. 걔가 그래 봬도 질서의 신인데.’
그 둘의 말이 떠오른 아몬은 고개를 흔들어 기억을 날려 버렸다.
정규 교사도 아닌 그들에게는 발언권 자체가 없었으니, 라인벨트과 조아민트의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으음…… 그렇군.”
“선배님, 드디어 받아들이신 겁니까?”
“다들 나 없을 때 짰구나?”
“선배님…….”
슬슬 인지부조화 상태에 돌입하는 아몬을 본 카이가 슬픈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만 받아들이십시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애들한테도 물어보고 왔는데, 클로에는 내가 엄청 착하다고 해 줬단 말이야…… 클로에는 내가 천사랬어…….”
“그새 학생들한테까지 가서 물어보고 온 겁니까…… 그럼 클로에 말고 다른 애들은요?”
“…….”
대답하지 못하고 입만 오물거리는 아몬을 본 카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있다간 아몬이 인지부조화로 인해 정신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킬 것만 같았다.
카이가 서둘러 말했다.
“선배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엇! 여,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지금은 선배님의 아버님에 대해서만 생각하십시오!”
“아, 아버지? 으, 으음. 그래.”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몬이 침음을 흘렸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군. 아버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
뜨거운 효자가 되는 것은 한번으로 족했다.
그렇기에 아몬과 카이가 머리를 맞대고 끙끙거리는 와중이었다.
“응? 아몬,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응? 어머니?”
어머니가 산길 아래에서 터벅터벅 올라오고 있었다.
이윽고 아몬과 카이 앞에 선 어머니가 카이를 향해 반갑다는 듯 말했다.
“어머나, 지난번에 뵌 아몬의 후배시죠?”
“예? 아, 예. 안녕하십니까, 어머님.”
“반가워요. 오늘 축하연 때문에 오셨나 봐요?”
“예, 그렇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이와 인사를 나눈 어머니가 아몬을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둘이 무슨 이야기라도 하고 있었나 봐?”
“네. 그런데……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세요?”
아몬의 물음에 어머니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휴, 요즘 아임이 끼니도 거르고 일에 몰두하고 있다지 뭐니.”
“형이요?”
“그래. 시종이 끼니를 챙겨 줘도 입에 대지도 않고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더라고. 그래서 내가 며칠 챙겨 주고 오는 길이란다.”
문득 아몬은 어릴 적의 기억이 떠올랐다.
검은 빵을 먹기 싫어 밥상 투정이라도 부렸다간, 어머니는 강제로 입을 벌려서 검은 빵을 개서 만든 죽을 꾸역꾸역 흘려 넣곤 했었다.
“……형은, 살아 있죠?”
“그럼. 처음에는 반항을 좀 하던데, 나중에는 알아서 잘 먹던걸? 아무튼 아임도 저녁 때쯤 일을 마무리하고 축하연에 참석하기로 했단다.”
“다행이군요.”
“그나저나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 어머나!”
아몬과 카이를 번갈아 바라보던 어머니가 푸근한 얼굴로 말했다.
“그랬구나, 아몬. 안심하렴. 우리 가문의 대는 네 형인 아임이 이을…….”
“어, 어머니! 잠깐만요!”
“아유, 얘는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런대? 그렇게 싫은…….”
“아뇨, 그게 아니라…….”
아몬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그, 요새 에덴에서 큰형을 며칠 챙겨 주고 오시는 길이라고요?”
“그럼. 밥을 안 먹는다손 치면 입을 이렇게 이르케 딱 벌려 가지고…….”
아임을 핍박한 무용담을 자랑스레 말하던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그게 왜?”
“그게…… 어머니, 혹시 어머니가 가시기 전에도 아버지가 저러셨어요?”
“저랬다니? 뭐가?”
아몬의 설명을 들은 어머니가 눈살을 찌푸렸다.
“응? 그이가 거만하게 굴었다고?”
“예. 어디서 구하셨는지 웬 번지르르한 망토도 걸치고 나오셔선…….”
“그이가 그랬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그이가 거만하게 구는 걸 여태 한 번도 못 봤는데?”
“제 눈으로 똑똑히 봤구먼유.”
“흠…… 그래?”
영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어머니가 걸음을 옮겼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저택이 가까워졌을 때였다.
“껄껄껄! 그래, 마리온 자작! 본 변경백의 어깨가 찌뿌듯하니 어디 한번 시원하게 주물러 보시게나!”
“예이, 변경백 나으리.”
“으허허헉! 그래, 아가씨들! 본 변경백에게 잘 보이셔야 아까 했던 이야기를 제대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 아버님.”
“허허헉! 이야, 본 변경백이 참으로 흡족…… 푸흡!?”
우민들의 대접을 즐기던 변경백께서 눈을 부릅뜬 채 경련하셨다.
어느새 아몬의 어머니, 율리아가 저택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카임?”
“유, 유, 율리아? 에, 에, 에덴에서 며칠 지내다 오겠다고……?”
“오늘이 그 며칠 후예요.”
“어, 어어, 나, 날이 벌써 그렇게 되었나?”
허겁지겁 몸을 일으킨 변경백께서 후다닥 율리아에게 달려가려다가 웬 망토가 거치적거리자 냅다 풀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율리아 앞에 선 카임이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 율리아. 그게 아니라.”
“네.”
“흠흠, 전부 오해라오.”
“오해였군요.”
“허허, 그렇…….”
카임은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머리채를 붙잡히고 말았다.
“아아아악!”
“조용히 하고 따라오세요.”
“아악! 머리, 머리! 여보! 부인! 마님!”
그 길로 저택 안으로 끌려들어간 위대하신 드레이크 변경백의 비명이 영지를 가득 울렸으니, 그 참혹한 비명을 들은 뭇 영지민들이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더라.
그리고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던 아몬이 카이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안 계셔서 잠깐 일탈을 좀 즐기셨나 본데?”
그 말에 카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황제와 황후마마, 카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가끔 보여 주던 모습이었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드레이크 가문도 우리 가문의 친척이라 저런 것도 닮았구나…….’
카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약혼녀인 레일라도 가끔씩 눈빛이 매서운 걸 감안하면, 자신도 혼인 후에는 저렇게 꽉 잡혀 살 것 같다는 예감이 든 것이다.
‘……그런데 잠깐만. 그 말은?’
카이가 아몬을 바라봤다.
왜 쳐다보냐는 듯, 멀뚱한 시선으로 자신을 마주 바라보는 아몬을 본 카이가 생각했다.
‘그럼 아몬 선배도 혼인해서 꽉 잡혀 살면, 황제 폐하께서도 아몬 선배를 좋게 봐 주시지 않을까?’
큰 깨달음을 얻은 카이가 눈을 부릅뜬 채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아몬을 바라보고, 그 시선을 받은 아몬이 불안한 기색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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