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6)
아카데미가 망했다 16화
느닷없는 황제의 일갈에 아몬이 흠칫했다.
“예…… 예?”
“누가 네 황제냐고 했다!”
“……?”
“쯔쯔쯔, 어째 탐욕이 덕지덕지 묻은 흉측한 면상이 낯익다 했더니, 드레이크 가문 놈이었구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칭찬하더니?
영문 모를 황제의 악다구니에 제아무리 온화한 성품의 아몬이라도 발끈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문을 욕해?’
그러나 상대는 다름 아닌 제국의 지존인 황제!
분노를 억누른 채 고개를 넙죽 조아렸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그리 외치며 주머니나 내놓으라는 듯 손을 들이밀자 황제가 기가 찬다는 듯 삿대질을 했다.
“하! 역시 드레이크 놈 아니랄까 봐 탐욕이 그득하구나!”
“…….”
“에잉, 그래! 받아라!”
손바닥에 닿는 주머니의 감촉!
얼른 움켜쥐려 하자 황제가 벼락같이 주머니를 뺐다.
“크하하! 이놈, 어림도 없다!”
그 장난질에 아몬이 스르르 고개를 들었다.
‘이게 성군 중의 성군인 아모니스 18세?’
저토록 비열한 얼굴로 웃고 있는 늙은이가?
“크하하! 이거나 받고 떨어져라!”
“…….”
“안 줄 거지롱!”
“…….”
“에잉, 먹고 떨어져…… 못 잡겠지?”
수천 군중이 지켜보는 자리!
그곳에서 황제와 돈주머니로 쌀보리 놀이나 하게 되다니!
‘……참자.’
자칫 대들었다간 가문이 몰살당할 것이다.
‘그러니까 실수인 척하고 죽통 한 대만 시원하게 때리자.’
그 정도면 세상도 용서해 줄 것이다.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매콤 주먹을 휘두를 준비를 마친 순간이었다.
콰직-!
별안간 황제의 뒷목에서 뭔가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소리가 터져 나오고, 황제가 눈을 뒤집은 채 쓰러진다.
그리고 어느새 나타난 중년 여인이 황제를 부축하며 외쳤다.
“어머나, 폐하! 그간 격무로 많이 피곤하셨나 보군요! 갑자기 쓰러지시다니!”
“꺽, 끄르륵…….”
여인이 게거품을 문 황제의 귓가에 속삭였다.
“공적인 자리에서 무슨 추태에 망발이십니까? 제국의 황제로서 자리에 걸맞은 위엄을 보이셔야 합니다.”
“부, 부인…….”
“공적인 자리입니다. 황후라 하셔야죠?”
서슬 퍼런 황후의 속삭임에 황제가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아몬은 깨달았다.
‘이분이 빅토리아 황후님!’
황후는 강했다.
기세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황제보다 한층 더 강했다.
그런 황후에게 새끼 고양이마냥 목덜미를 붙잡힌 황제가 중얼거렸다.
“화, 황후. 알겠으니 그만 놓아주시오.”
“알겠습니다, 폐하. 군중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잘 수습해 주시지요.”
황후가 손을 떼자 헛기침을 한 황제가 다시 인자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짐이 그간의 격무로 인해 잠시 못 볼 꼴을 보였도다!”
여전히 군중들의 반응이 싸늘하자 황제가 재차 외쳤다.
“짐의 아량으로, 이번 경진대회의 관중 모두에게 금을 하사하겠노라!”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황제 폐하 만세!”
“제국에 영광 있으리!”
관중의 환호에 황제가 ‘잘했지?’라는 눈빛으로 황후를 돌아보고, 빙그레 웃은 황후가 말했다.
“이건 폐하의 사비로 처리하겠습니다.”
“화, 황후!”
“뭐요.”
“……아니오.”
꽉 잡혀 사는 황제!
이윽고 황후가 이쪽을 보며 말했다.
“드레이크 가문의 청년이라 했나요?”
“……그렇습니다.”
즉각 튀어나온 아몬의 대답에 황후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아모니스 가문과 드레이크 가문 간의 내막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모양이군요.”
“예? 그게 무슨…….”
대대로 제국을 다스려 온 황제의 혈통인 아모니스 가문.
대륙 끝자락 시골 귀족인 드레이크 가문.
접점조차 없을 것 같은 두 일족 사이에 무슨 내막이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황후는 그에 관해 더 이상 말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당사자가 아닌 제가 말할 내용은 아닙니다. 또한, 폐하께서도 그에 관해 친절히 설명해 주실 생각은 없는 듯합니다.”
“크르르르…….”
“폐하! 체통을 좀!”
헛기침을 한 황후가 말했다.
“하여간 폐하의 행동엔 이유가 있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그럼 오늘은 이만 물러가시지요.”
“……알겠습니다.”
비틀비틀 단상 밑으로 내려가던 아몬이 뒤를 슥 돌아봤다.
‘금화는 정말 안 주려나?’
그때 눈이 마주친 황제가 주머니를 흔들며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황후의 손바닥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황제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 * *
유야무야 마무리된 경진대회 첫날!
황제가 한숨을 쉬었다.
“휴우, 부인. 미안하오. 가증스러운 드레이크 가문의 자식이 눈앞에 있다 하니 내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소.”
머리를 손질하던 황후가 말했다.
“이해합니다, 폐하. 그러나 저에게 미안할 일은 아니지요. 오늘 벌어진 일은 폐하의 위명에 누가 될지도 모를 일. 그러니 감정을 다스리셔야 합니다.”
“……맞는 말이오. 그런데 부인.”
“예, 폐하.”
“공식 석상에서 황제를 때린 부인이 할 말은 아니…….”
“그 자리에 제 움직임을 본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하긴, 황후는 황제의 반려자임과 동시에 오랜 스승이었다.
“……안 보이기만 하면 된단 말이오?”
“세상 일이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그렇다면…….”
“드레이크 가문 청년에게 암살자를 보내려 하시는군요?”
황제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
“부인! 암살자라니! 어찌 그런 숭한 말을…….”
“아닌가요?”
“암살자가 아니라, 자객을 보내 좀 손봐 주라고…….”
“그게 그거 아닙니까!”
아모니스 18세의 성군 중의 성군이라는 평가는 사실에 한없이 가까웠다.
이렇게 ‘드레이크 가문’과 관련되면 한없이 유치해지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휴, 산드리오.”
“……빅토리아.”
황후가 황제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 역시 그대 가문과 드레이크 가문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합니다.”
“…….”
“그러나 그는 그대의 원한과 아무 관계없는 젊은 청년일 뿐이잖아요?”
“으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성군 중의 성군, 아모니스 18세가 한숨을 쉬었다.
“그대의 말이 맞소. 내가 큰 실수를 했구려. 오랜 과거의 앙금. 슬슬 풀 때가 되었지.”
“그럼…….”
“날이 밝는 대로 드레이크 일족의 청년을 불러 사죄해야겠군. 혹여 그가 궁금해 한다면 가문과 가문 간의 이야기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구려.”
자비롭기 그지없는 황제의 목소리에 황후가 그를 부둥켜안았다.
“아아, 산드리오! 그대는 어쩜…….”
“오오, 빅토리아! 내 어리석음을 일깨워 줘 고맙소!”
황제는 황후를 안으며 다시금 다짐했다.
날이 밝는 대로 아몬이라는 청년을 황궁으로 불러오기로.
* * *
이른 아침.
마차에 탄 아몬은 아카데미가 있는 도시, 아무르가 눈에 들어오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이제 마음이 좀 놓이는군. 망할 황제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람?’
성군? 성군은 무슨.
‘폭군이 따로 없더구만. 남의 돈 가지고 장난질이나 쳐?’
게다가 이유는 몰라도 황제에게 밉보였다는 것이 확정된 상황!
그렇기에 야반도주하듯 수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간밤에 자객이나 안 보내면 다행이지! 게다가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아침이 되는 대로 병사를 보내서 범죄자로 연행할 것 같은 분위기더만!’
그런 꼴을 당하느니, 꺼지라는데 얌전히 꺼져 주는 게 현명한 판단!
아몬은 스스로의 현명함에 찬사를 보냈다.
‘휴, 아무튼 슬슬 도착해 가니 다른 사람들을 깨워 볼까?’
늘 그렇듯, 마리온은 술에 취해 자고 있었다.
무슨 돈이 있어 술을 마셨냐고?
‘저기, 클로에.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니?’
‘네, 마리온 선생님.’
‘돈 좀 빌려다오.’
아몬은 즉각 마리온의 궁둥이를 걷어찼다.
그러나 마음씨 착한 클로에는 부득불 1골드를 빌려준 것이다.
나중에 2골드로 갚으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마리온을 흔들어 깨우며, 다음 깨울 사람인 부학교장 브레슬을 바라봤다.
그녀는 간밤의 식사로 통통하게 부푼 배를 부여잡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브레슬한테는 무슨 돈이 있었을까?
‘클로에 학생.’
‘네, 부학교장님.’
여기까지 들은 아몬은 나머지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그녀를 걷어찼다.
‘왜, 왜 때립니까!’
‘밥 먹게 돈 좀 빌려 달라고 하려고 했죠?’
‘어, 어떻게 알았습니까?’
‘왜 모를 거라 생각합니까?’
아무튼, 마음씨 착한 클로에는 브레슬에게 1골드를 빌려줬다.
나중에 3골드로 갚으라는 말과 함께.
‘……나는 왜 세 배로 갚아야 하지?’
브레슬의 물음에 클로에는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 섬뜩한 미소에 브레슬조차 기가 질려 더 이상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이 쓸데없는 인간들은 뭘 잘했다고 쿨쿨 자고 있을까……?’
결국 그들을 깨우는데 사심이 섞일 수밖에 없었다.
입을 벌리고 자는 마리온의 목젖을 쿡 찌르고, 배를 붙잡고 자는 브레슬의 배를 철썩철썩 때리는 방향으로.
“우웩! 켁, 뭐, 무슨……!”
“아아악! 배, 배 터져……!”
“도착했습니다, 부학교장님, 마리온 선배님.”
두 사람이 잡아먹을 듯 사나운 눈빛으로 노려봤지만 아몬은 당당했다.
“죄송합니다. 계속 깨웠는데 두 분이 안 일어나시더라고요.”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둘은 납득하면서도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사람 목을…….”
“엘프 배를 막 때리다니…….”
“죄송합니다. 워낙 안 일어나셔서 그만. 아무튼 슬슬 내릴 준비하죠.”
무능한 교사들에게서 관심을 끊고 시선을 돌리니, 보리스와 클로에 역시 몸을 웅크린 채 쿨쿨 자고 있었다.
“보리스, 클로에. 일어나렴.”
차원이 다른 대접에 마리온과 브레슬이 부들부들 떨었지만, 학생들을 질투하는 시점에서 이 아카데미는 끝장난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보리스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지만, 많이 피곤했는지 클로에는 쉽사리 일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다시 흔들어 깨우니 갑자기 클로에가 손을 탁 쳐 냈다.
“@#$가 건드리지 마…….”
“……으, 응?”
그때 클로에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아, 선생님!”
“그, 그래. 일어났니? 슬슬 아카데미에 도착한단다. 내릴 준비하렴.”
“네!”
얼른 준비하는 클로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보리스를 바라봤다.
“맞다, 보리스.”
“하아암…… 네, 선생님?”
당사자 이야기니만큼, 목소리를 낮춰 소곤소곤 말했다.
“클로에가 이상하다며? 무슨 말이니?”
“아, 그게 말이죠…….”
보리스도 클로에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얼마 전부터 클로에가 다른 사람들을 ‘@#$’라고 말해요.”
“응? ‘@#$’라고?”
“네. 아란 왕국의 방언인데…….”
침을 꼴깍 삼킨 보리스가 말했다.
“천한 돼지라는 뜻이에요.”
“……뭐?”
천한 돼지? 갑자기 웬 돼지?
‘잠깐, 설마…….’
예전에 클로에에게 다른 사람의 시선이 무섭다면, 다른 사람을 ‘익숙하고 만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란 왕국에 흔한 것……?’
돼지다.
목축업이 발달했으니까.
그 사실에 오싹 소름이 돋은 아몬이 클로에를 홱 바라봤다.
마침 마차에서 내리던 클로에는 시선을 느낀 모양인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선생님?”
그리 말하며 생긋 웃는 클로에의 천연덕스러운 미소.
아몬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깔며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른다.’
눈을 깐 채, 아몬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란다.”
* * *
마차에서 내려 아카데미로 걸어가는 와중.
도시 한복판인데도 말 한 필이 부리나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시가지를 달릴 수 있도록 허용된, 급보를 전하는 전령이었다.
‘여기만큼 평화로운 도시가 어디 있다고, 웬 급보를 전하는 전령이?’
그리고 전령이 말을 달리는 곳을 바라본 아몬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전령은 아카데미로 향하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