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61)
아카데미가 망했다 161화
의미 모를 압박감이 느껴지는 그들의 시선에 아몬과 카이가 쭈뼛거렸다.
솔직히 라인벨트가 저렇게 눈을 시퍼렇게 뜨고 노려보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비공식 혈맹인 ‘외로운 남정네즈’의 가장 큰 어르신인 그를 제쳐 두고 아몬에게 만남을 주선해 주겠다니, 라인벨트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배알이 꼴리겠는가!
물론 카이도 그런 라인벨트의 심정은 십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제국 4대 기사라는 명성과 반비례하는 빈약한 재산을 감안하면 황태자가 아닌 황제가 오더라도 쉽사리 만남을 성사시키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카이는 섭섭함으로 곧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라인벨트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흠흠, 하여간 아몬 선배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만남을 좀 주선…….”
카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슬로스가 탐탁지 않은 기색으로 말했다.
“저기, 카이.”
“예? 왜 그러십니까, 슬로스 선배님?”
슬로스가 여전히 축하연이 벌어지고 있는 저택 안을 들여다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무턱대고 만남을 강요하는 건, 좀 아니라고 봐.”
슬로스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아몬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아카데미의 업무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아몬은 혼인에 대해서 생각하는 건 조금 미루고 싶었다.
‘사실 내 나이의 귀족들은 대부분 장가를 갔거나 약혼을 마쳤고, 이미 자식이 한둘쯤 있는 사람들도 흔하다지만…… 나는 조금 아슬아슬할 때까지 미루고 싶단 말이지.’
그렇기에 웬일로 자신과 마음이 일치해 편들어 주는 게 되어 버린 슬로스에게 감사함이 조금 솟아오른 순간이었다.
카이가 뺨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저는 솔직히 서둘러도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뭐?”
“언제까지고 미룰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다못해 기정사실이라도 하나 만들어 뒀다면 또 모를까, 이렇게 차일피일 미룰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설교하는 것 같은 카이의 말투에 아몬의 얼굴이 삽시간에 썩어 들어갔다.
듣자듣자 하니, 남은 잔치를 열 생각도 없는데 엄한 놈이 잔치를 열어라 말아라 훈수를 두는 격이었다.
슬슬 도를 넘은 카이의 무례함에 아몬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야.”
“……아. 예, 선배님.”
“잠자코 들으려니까 화나네. 네가 뭐 내 부모님이라도 돼?”
“……!”
“네가 뭔데 나더러 혼인을 해라 마라야? 선배한테…… 아니, 선배가 아니더라도 그게 남한테 멋대로 할 말이야?”
정색하고 쏘아붙이는 아몬을 본 카이가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이건…… 내 실수다.’
카이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혹여 드레이크 가문과 아모니스 가문, 정확히는 아몬과 황제 폐하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 아몬의 기분은 생각지도 못하고 말을 쏟아 내고 만 것이다.
‘……마음이 급했다.’
또한 멋대로 해선 안 될 말을 입에 담았다.
그 사실을 순순히 인정한 카이가 벌떡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선배님 말씀대로 제가 해서 안 될 말을 입에 담았습니다.”
정중한 카이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아몬이 굳은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됐다. 엎드려 절받기도 아니고.”
“……정말 죄송합니다.”
“됐다고.”
툭 내뱉은 아몬이 쭈뼛거리며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는 카이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정말 미안해하는 것 같기는 했다.
“근데 이유나 들어 보자. 갑자기 웬 혼인이니 뭐니 하는 거냐?”
“예? 아, 그것이…….”
솔직하게 ‘결혼해서 꽉 잡혀 살면 당신의 그 박살 난 인성이 억눌려서 황제와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럼 선배님의 부모님께서 화목하신 걸 보니 선배님도 얼른 장가가셨으면 좋겠다?
아까 카임이 율리아한테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는 것을 보고서도 내뱉을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변명이 딱히 생각나지도 않는데…….’
내심 끙끙거리던 카이는 아몬의 눈동자가 의혹으로 빛나는 것을 보고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저, 사실 그것이…….”
“뭔데?”
카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저도 조만간 혼인을 하거든요…….”
“……뭣!?”
약혼자가 있다는 말은 들었다만, 언제 귀리가 익어 오트밀이 됐단 말인가!
“조만간 제가 유부남이 될 텐데, 우리 아카데미에 가장 먼저 유부남이 될 만한 분이…… 크흠! 아몬 선배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 대목에서 라인벨트의 뺨을 타고 굵은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축하연이 열리는 연회장에서 카임을 보좌해 흥을 돋우던 마리온이 별안간 욱신거리는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서 뭐…… 아몬 선배님도 혼인을 하시면 같은 주제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거고요. 이래저래 문제가 생겨도 서로 해결법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에서…….”
하하, 멋쩍게 웃은 카이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과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후배로서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마지막으로 가려운 옆구리를 시원하게 긁어 주는 것 같은 아부성 발언에 아몬이 심각한 얼굴로 침음을 흘렸다.
‘음……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카이가 아무리 버르장머리를 오트밀에 비벼 먹은 것 같은 놈이더라도 이번이 첫 번째로 치르는 혼례일 것이다.
‘아냐, 이놈 인성을 생각해 보면 두 번째일……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번이 첫 번째겠지.’
아무튼 그러니만큼 카이도 이래저래 불안하고, 미래에 대해 무서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믿음직스럽고 훌륭하고 멋지고 뭐든지 잘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선배인 나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다면 그만큼 든든한 일이 또 없을 테지. 솔직히 내가 내 후배였더라도 내게 의지하고 싶었을 거야.’
훌륭한 선배인 아몬이라면 부부 생활 중에 생기는 불상사에 대해서도 대법관의 뺨을 후려치는 명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크흠!”
“엇.”
“크허허험! 카이야.”
“아, 예! 선배님.”
아몬이 자애로 가득한 얼굴로 빙그레 웃었다.
“그래, 네 심정은 십분 이해한다. 비슷한 입장이 되어 닮은 문제를 공유할 수 있다면, 나만큼 든든한 사람이 또 없겠지.”
“……아, 예.”
“방금 그 공백은 뭐지?”
“감동해서요.”
“그렇군. 하여간 네 기분도 알겠지만, 다른 사람의 혼인에 대한 문제는 멋대로 왈가왈부하면 안 되지.”
“……예, 거듭 죄송합니다.”
그제야 화가 어느 정도 풀렸는지 아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카이의 어깨를 툭툭 쳐줬다.
“아무튼, 그래. 혹시 나중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예…… 예? 궁금한 거라뇨?”
“응?”
아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인하고 나서 문제 생기거나 하면 말하라고. 아무리 내가 혼인을 안 했더라도 해결법은 생각해 줄 수 있지 않겠어? 하핫!”
순간 카이는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러나 초인적인 안면 근육을 토대로 삽시간에 기쁜 표정을 지어 보인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예. 물론입니다, 선배님.”
“하하하! 그렇다고 너무 자주 찾아오진 말고. 너무 많이 찾아오면 상담료 받을 거야.”
“……하하하!”
카이는 결심했다.
가정 내 불화가 생기더라도 아몬에겐 절대 말하지 않기로.
“흠흠, 그나저나 카이야.”
“예?”
“그 영애분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준다는 거, 나중에라도 가능하냐……?”
그 말에 카이가 빙그레 웃었다.
황태자의 인맥을 이용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했다.
“하하하. 물론이죠, 선배님.”
“그래, 그래. 역시 믿을 건 우리 후배님밖에 없어.”
아몬과 카이가 훈훈한 분위기로 서로를 핥아 주는 와중 슬로스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걸 누가 데려가려나 몰라.”
비아냥이 다분한 슬로스의 목소리에 훈훈하던 분위기가 팍 깨져 버렸다.
‘뭐지? 갑자기 왜 시비지?’
조금 전까지는 뜻이 조금 맞는가 싶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게으름뱅이 따위와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당혹감도 잠시, 아몬이 눈을 까뒤집으며 슬로스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내가 뭐 어때서…….”
아몬이 내지른 분노의 일갈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나르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슬로스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렇긴 해요. 어지간한 포용력이 없는 한 아몬 선생님을 감당하긴 힘들겠죠. 인내심도 좋아야 할 거고요.”
“뭐라고요……!? 제, 제가 뭐 어때서…….”
잠깐 아나르엘의 말을 곱씹던 슬로스가 덧붙였다.
“애초에 아몬이 저지르는 일의 뒷수습을 해 주려면 가문도 꽤 번듯해야겠죠. 재력도 받쳐 줘야 할 거고요.”
순간 귀를 흠칫 떤 아나르엘이 저택 안을 들여다보는 슬로스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별안간 묘한 침묵이 감돌고, 아나르엘이 무어라 입을 열려던 와중 피오라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뱉었다.
“그렇겠네요. 슬로스 선배님 말도 맞고, 학교장님 말도 맞는 것 같아요.”
그 말이 끝나자 저택 안을 들여다보던 슬로스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리고, 아나르엘의 귀는 부르르 떨렸다.
피오라는 어째서인지 조금 우쭐한 표정을 지은 채 축하연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게 진득한 침묵이 감도는 와중, 세 사람의 연이은 도발에 금세라도 폭발할 것처럼 부들부들 떠는 아몬을 허겁지겁 다독이던 카이가 심각한 얼굴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
‘설마…….’
머릿속으로 의혹을 곱씹던 카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이, 아니겠지.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데 뭘. 만약 맞다고 해도 아몬 선배님과 혼인할 사람은 누구보다 강해야 한다.’
황제와 황후가 그렇듯, 카임과 율리아의 서열이 그러하듯, 아몬의 부인 될 사람은 그가 정신줄을 놓고 날뛰려는 순간 여물통을 박살 내서 입을 닫게 할 만한 무력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키는 한 2미터 40센치에, 집채만 한 바위를 공깃돌처럼 가지고 놀 만큼 강력한 여인이어야 한다. 분명 저쪽 바바리안 왕국에 그런 아가씨가 하나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흐음. 아니지, 그러고 보니 오거 부족 하나가 우리 제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있으니 그쪽으로 한번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아몬이 알았다면 여물통을 단숨에 박살 낼 생각을 하던 카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몬이 말했듯, 자신이 멋대로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때 저택 안에서 벌어지는 축하연을 구경하며 손가락만 쪽쪽 빨던 브레슬이 슬픈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배가 고프군요…….”
조아민트도 중얼거렸다.
-인간은 손님을 이렇게 대접하는 것이냐……?
그들의 슬픈 목소리를 들은 아몬과 카이는 음식을 공수하러 허겁지겁 자택 안으로 잠입했다.
* * *
저택의 2층.
학생들은 마리온처럼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투입될 리 없었으므로 저택의 2층에서 쉬고 있었다.
1층에서 벌어지는 축하연의 시끌벅적한 소리를 듣던 학생들 중 클로에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갑자기 웬 오한이……?’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리던 클로에가 문득 라스티아넬을 바라봤다.
라스티아넬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라스티아넬, 아까부터 표정이 왜 그래?”
“……네?”
“표정이 심각해서.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그러고 보니 라스티아넬은 축하연에 오지 않으려 했었다.
클로에가 그 사실을 지적하자 라스티아넬이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