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163)
아카데미가 망했다 163화
이야기가 전혀 이어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에 클로에와 아미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라스티아넬이 수줍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잘 모르시나 본데, 드래곤의 성별이 결정되는 조건은 여러 가지예요. 그런데 그중 하나가 ‘처음으로 충격적인 인상을 심어 준 상대의 반대 성별’이 될 때가 많아요. 그게 제 경우에는 보리스인 거죠.”
마치 변명하는 것처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라스티아넬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던 둘의 표정이 별안간 따스해졌다.
‘얘가 드디어 정신이 나갔구나.’
‘내가 드래곤이다, 드래곤이다 노래를 부를 때부터 이상한 애라는 걸 알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진심일 줄은 몰랐지.’
라스티아넬을 향한 불신이 오가던 와중에도 두 사람의 생각은 한 자기 공통점을 띠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보리스를 좋아한다는 거 아냐?’
‘그걸 가지고 성별이 결정되니 뭐네 변명하다니. 이렇게 구차할 수가 있나.’
이른바 어린 소녀가 자신의 연심을 깨닫고 드래곤을 방패로 삼아 멋들어지게 포장한 것이리라.
‘어쩐지, 그래서 보리스와 레이몬드를 떨어트려 놓고 온 거구나?’
흐뭇하게 웃은 아미가 라스티아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그래. 네 마음 잘 알겠어.”
“정말요?”
“그러어엄. 우리만 믿어.”
“네? 뭘 믿어요?”
훈훈한 미소를 지은 아미가 말했다.
“보리스한테 고백하고 싶을 때 말해! 우리가 도와줄 테니까!”
아미의 협력 발언을 들은 라스티아넬이 펄쩍 뛰었다.
“고, 고백이라뇨! 그런 거 아니에요! 저, 저는 그냥…….”
우물쭈물하는 라스티아넬의 모습에 아미는 그저 흐뭇하다는 듯 웃었다.
그러나 한참 멍청한 얼굴로 라스티아넬과 아미를 번갈아 바라보던 클로에가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보리스의 어느 부분이 좋은 거야?”
“네!? 아니, 그러니까 좋아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럼 말을 바꿔서, 어느 부분에서 보리스한테 충격적인 인상을 받았다는 거야? 나는 도저히 모르겠어서 그래.”
클로에의 표정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하기야 클로에는 이 중에서 누구보다 보리스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었다.
그런 클로에한테 있어 보리스는 동갑이지만, 소심하고 손이 많이 가는 남동생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평소에는 항상 이상한 탕약을 마시면서 실실 웃고, 이상한 스크롤을 펼쳐 보면서 실실 웃는단 말이야. 시도 때도 없이 탕약이랑 스크롤을 우리한테 권하기도 하고…….’
적어도 클로에에게 있어 이성적인 호감이 가는 상대는 아니었다.
그런데 라스티아넬은 도대체 어째서……?
“그, 그게 말이죠. 대제전 때 있었던 일인데요.”
“역시 대제전 때 뭐가 있었구나…….”
“네. 그때 보리스 씨가 저를 상대로 이겼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봐준 거라면서?”
라스티아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봐줬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는 드래곤이라고요.”
“아, 어, 응. 그래.”
“보리스 씨의 수준에 맞춰서 상대해 준 건데, 갑자기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어서 저를 이겼는데 어떻게 인상적이지 않겠어요?”
“……그, 그래?”
그렇게 풀어서 설명을 들으니 확실히 인상적일 것 같기는 했다.
적당히 봐주던 상대가 별안간 눈앞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장족의 발전을 이룬다면 기억에 제법 오래 남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제관계라는 게 있는 것이다.
아직은 학생인 그들이었기에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선생인 아몬이라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이야기였다.
“게다가 보리스 씨는 어쩌면 마법의 역사에 남을 대발견을 한 것일지도 몰라요. 물론 인간의 역사겠지만요.”
“대발견? 걔가?”
“네!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요…….”
라스티아넬은 그날 보리스가 새로 창조해 낸 개념인 ‘메모라이즈’에 대해 설명했다.
물론 그들은 마법에 대해 이론만 조금 아는 수준이었기에 대마법사조차 감탄한 메모라이즈라는 신개념에 대해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라스티아넬이 침을 튀기며 그 위업을 열렬하게 어필하는 것을 보아하니 꽤 대단하긴 한 모양이었다.
“흠…… 보리스 걔가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한 거라고?”
“네! 인간의 마법계에 있어선 큰 도약과도 같은 일대 사건이라고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향후 수백 년간은 그 이름이 남을걸요?”
싱글벙글 웃으며 보리스의 대단함을 말하는 라스티아넬을 빤히 바라보던 아미가 히죽 웃었다.
“그래서 반했다고?”
“악!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강력하게 부정하는 라스티아넬의 얼굴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도 있지만, 아미는 부정은 그냥 부정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눈앞의 경우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그냥 자기 마음을 제대로 정리 못 해서 갈팡질팡하는 거구만, 뭘.’
낄낄 웃은 아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너 보리스한테 안 반했다.”
“아니, 그니까아…….”
반쯤 울먹거리는 라스티아넬의 모습에 아미가 한층 더 즐거워하며 깔깔 웃던 와중, 클로에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라스티아넬의 이야기 때문에 황당함에 잠겨 있던 그녀가 뒤늦게 어느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아몬 선생님?”
“응? 오쁘그아몬 선생님이 왜?”
모두 진작 아미가 아몬의 동생이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 필사적인 부정을 가볍게 흘려넘긴 클로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클로에 얘도 싱겁긴. 하여간 라스티아넬! 우리만 단단히 믿어! 무슨 일 있으면 꼭 상담하고!”
“아니, 그러니까 그게요오…….”
아미가 반쯤 울먹이는 라스티아넬을 놀리고, 어느 방향을 빤히 바라보던 클로에가 고개를 흔들며 생각했다.
‘아몬 선생님은 왜 저기에 숨어 계시지? 뭐, 숨어 계실 이유가 있으니까 숨어 계시는 거겠지. 그냥 모르는 척하자.’
그렇다!
아몬은 그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나무 뒤편에 숨은 채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본래 선생이란 학생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알고서도 모른 척하고, 열려 있는 귀마저도 닫아 주는 것이 예의지만 아몬이 어디 흔해 빠진 보통 선생이던가!
그는 학생들에게 고민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는 이 시대의 참 교사였다!
그리고 그 참교사는.
‘X됐다……!’
충격으로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인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라스티아넬은 인간 세상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런데 웬 인간 꼬맹이한테 반해 버려서 성별이 결정됐다고……?’
모르긴 몰라도, 만약 아몬이 부모였다면 자식을 홀린 못된 인간 꼬맹이의 주리를 틀어 꼬리를 흔들어 댄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했을 것이다.
‘분명히 라스티아넬이 아마란스 혈족이라 그랬던가? 카셀라그 어르신이 나를 믿고 아마란스 혈족에게 중개해 줬을 텐데, 귀한 드래곤의 자식을 웬 인간한테 반한 이 종족 사랑꾼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아몬은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아까 아버지에게 언뜻 듣자니, 내일이면 카셀라그 어르신과 라스티아넬의 아버지 되는 드래곤도 함께 올 것이라 했다.
‘큰일이군. 이 정도면 내 인생에서 두 번째쯤 되는 커다란 위기다.’
첫 번째는 다름 아닌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부임한 것이다.
‘그나저나 어떡하지? 이참에 드래곤 슬레이어 한번 되어 봐? 아니지, 라스티아넬을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참담한 심정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끙끙 앓던 아몬이 고민의 발단이 된 라스티아넬을 원망스럽다는 듯 흘겨봤다.
‘근데 확실히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애가 조금 여자애다워졌네.’
예전에는 무성이었다는 말처럼, 이전에는 상당히 중성적인 외모였었다.
전체적으로 선이 얇으면서도 한편으론 남성적인 부분도 두드러지는, 언뜻 봐선 성별을 쉽사리 알아챌 수 없었던 라스티아넬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라스티아넬은 누가 봐도 여자아이였다.
‘클로에와 아미 사이에 있으니 확실하게 알겠군. 아무튼 외모도 저렇게 극적으로 바뀌었으니까, 오랜만에 보는 부모라면 척 보면 상태를 눈치챌 것이다. 그런 사실 없었다고 뚝 잡아뗄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지.’
막막함에 눈두덩을 꾹꾹 누르던 아몬이 문득 움직임을 멈춰 우뚝 굳었다.
‘잠깐.’
요점은 ‘귀한 드래곤의 자식이 웬 인간 놈팽이에게 반해서 성별을 정했다.’라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보리스가 인간 놈팽이가 아니게 되어 버린다면?’
드래곤이 봐도 걸출한, 드래곤도 무릎을 치면서 ‘캬, 이 정도면 내 딸을 줘도 내 마음이 편하겠다!’라고 감탄할 정도의 대단한 인물이라면?
만약 다른 사람이 봤다면 아몬이 또 미쳤다고 삿대질을 했겠지만, 사실 아주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모두들 잊고 있겠지만 보리스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
‘보리스는 질서의 여신, 바누민트의 신검에게 선택받은 용사다. 애가 평소에 탕약이랑 스크롤에 찌들어서 빈티가 흐르는 것뿐이지, 어떻게 겉만 잘 갈고닦으면 용사로서 전혀 모자람이 없는 아이지.’
예전에 라스티아넬도 최초의 드래곤 용사를 꿈꾸지 않았던가?
드래곤에게도 용사라는 이름은 꽤 먹히는 게 분명했다.
‘……좋아, 이젠 정말 그 방법뿐이다.’
결단을 내린 아몬이 몸을 일으켰다.
* * *
카이는 갑자기 기쁜 얼굴로 다가오는 아몬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배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아니. 솔직히 지금 상황은 최악이다.”
“예? 또 무슨 일이 생겼기에…… 아니, 그보다 상황이 최악이라면서 왜 그렇게 싱글벙글 웃고 계십니까?”
“그 최악의 상황을 타개할 최고의 방법이 떠올랐기 때문이지.”
알쏭달쏭한 아몬의 말에 카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고, 아몬은 카이에게 작금의 사태를 간략하게 풀어 설명했다.
라스티아넬의 프라이버시는 그렇게 아몬에 의해 카이에게 알려졌다!
“흠, 그런 상황이…….”
“그래. 만약 라스티아넬의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나는 드래곤의 한 끼 식사가 되겠지.”
“그럴지도요…… 아무튼, 타개할 방법이 떠오르셨다면서요?”
“그래.”
아몬이 2층을 바라보며 말했다.
“바로, 보리스를 한 명의 번듯한 사나이로 만드는 것이다.”
“예? 번듯한 사나이라면…….”
“드래곤이 봐도 놀랄 정도로 걸출한 사나이로 만드는 것이지. 그러기 위해선 너의 조력이 필요하다. 너는 황가를 보필하는 스트로 가문 출신이잖아. 그러니까…….”
아몬이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말했다.
“보리스의 몸에 귀족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철저하게 때려 박아 넣어다오. 이건 오직 너만이 가능한 일이야.”
확실히 카이 이외에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몬을 포함한 드레이크 일가는 이제 막 백작위에 오른 귀족이고, 예전에는 흔히 말하는 귀족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몬조차 제대로 된 귀족의 상식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몸에 익어 실천하는 수준까진 이르지 못했다.
카이가 그럴싸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학교장님, 부학교장님은 신분은 귀족 신분이지만 그다지 귀족스러운 언행과 몸가짐을 보여 주시진 않으시지. 슬로스 선배는 누가 봐도 훌륭한 귀족 영애시지만, 그건 겉모습뿐이고…….’
마리온과 라인벨트에 이르면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어진다.
결국 자신이 적임이라는 사실을 이해한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선배님. 제게 맡겨 주십시오.”
“오! 그래! 믿음직스럽구나, 카이!”
“오늘 하루, 밤을 꼬박 새워서라도 보리스의 몸에 귀족의 품격을 철저하게 새겨 주겠습니다.”
“그래! 너만 믿겠다!”
그 시각.
부르르르-!
드러누운 채 뒹굴고 있던 보리스는 별안간 닥쳐온 오한에 몸을 떨었다.
오